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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루크의 싸늘한 표정에 예르나는 매우 크게 당황했다.

    인공교배라니, 그러고보니 루크가 그런걸 좋아할리가 없는데!

    인체실험을 당했을 루크에게 인공교배라는건 필시 끔찍한 일일 것이다.

    예르나는 어쩔 줄 모른채 안절부절했다.

    예르나만큼은 아니어도, 루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하긴, 인공교배라는 말은 아이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끼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말을 좀 돌려서 말했어야 했나?’

    하지만 똑똑한 루크라면 분명히 보다 정확한 설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루아와 예르나의 걱정과는 달리, 루크라고 해서 딱히 인공교배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크가 인공교배에 관해 불만을 가진 부분이 일반인의 그것과는 달랐을 뿐이다.

    실제로 생명을 조작하는 것은 고대마법에서는 꽤 흔했으니까.

    그야, 자신도 이렇게 키메라를 만들었지 않은가?

    생명마법에 관한 법률이 강화된 현대와는 달리, 그런 법률 따위 없던 5000년 전 과거의 사고방식을 지닌 루크에겐 오랜 세월에 걸친 인공교배는 정말이지, 지루할 정도로 재미없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해답이 너무 간단하군.’

    몸집이 작은 개를 만들기 위해 몇가지의 복잡한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가장 재미없는 방식의 결론이 난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루크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법사로서, 모든 것을 마법과 연관 짓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해답이 간단한 데에 이어서, 루크의 생각으로는 개를 작게 만들어서 얻어질 이득을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아무리봐도 이 자그마한 개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데다, 그다지 육체적으로 뛰어나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의아하다.

    귀엽기는 하지만, 단지 그 뿐이 아닌가?

    이렇게 태어난 것은 녀석의 의지가 아니었을 터다.

    뭔가 분명한 목적이 있을진데…….

    ‘도저히 개를 작게 만들어서 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군.’’

    개는 과거에도 사냥, 전투, 색적, 목축 등의 이유로 길러져왔다.

    그리고 녀석들은 다들 야성적이었고, 강했다.

    하지만, 이 조그맣고 허약한 녀석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만들었다는 말인가?

    루크는 쭈그려 앉아서 대니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루아, 너는 대체 왜 이렇게 작은 개를 만든 게지?”

    루크의 뭔가 안쓰러운 것을 본다는 표정.

    하지만 그런 시선과 말을 받게 된 루아는 억울했다.

    “그……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난 그냥 키우는 것 뿐이라고-!”

    “그런가?”

    루아의 절규(?)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루아가 인공교배에 관한 지식이 따로 있어보이지는 않았으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 아는것인지, 대니는 루크에게 여전히도 헥헥거리며 앞발을 들어올리고는 재롱을 부린다.

    루크는 그런 대니를 살짝 받쳐주고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이 녀석은 너무 사람의 손길을 좋아하는 것 같구나…….”

    “후훗, 그렇지-? 너무 사람을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루크는 그러다 문득, 학술적인 호기심이 들었다.

    성장제한이나, 키메라가 아니라면 분명 정상적인 탄생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보통 개들의 새끼때 수준으로 작은 개라면 새끼때는 대체 얼마나 작았다는 이야기인가?

    생각해보니 꽤 궁금한 주제였다.

    루크는 대니의 재롱에서 눈을 떼고 루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정도로 작다면 새끼때는 정말 작았겠군. 혹시, 그때 찍은 사진이 있으면 보고싶구나.”

    루아는 살짝 표정을 굳히곤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은, 대니는 원래 유기견이었거든. 그래서 새끼 때 사진은 없어.”

    “유기견?”

    “응.”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서 말이지, 라고 말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루아 에라스트, 그녀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루크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사람에게 버려진 건가.”

    ‘그거 참 비극이로구나.’

    녀석은 야생에서 생존을 장담할 수 없어 보였다.

    강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녀석이 가진 재주라곤, 자그마한 몸집과 재롱을 부리는 정도.

    그러나 이토록 작고 연약한 몸을 갖게 된 것은 대니의 의지가 아니다.

    인간의 손에 교배되어진 결과인 것이다.

    타인에 의해 이미 도태된 먹이사슬에 뒤늦게 합류해봤자, 사슬에 묶여 잡아먹힐 뿐이겠지.

    헌데 그리 만들어놓고 버릴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럼 대체 이 작은 개를 왜 만들었나?

    자원의 낭비군, 루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루아에게 물었다.

    “그럼 이미 버려진 대니를 왜 키우는 건가? 그대는 뭔가 목적이 있을 것 아닌가.”

    어느새 표정을 조금 풀어낸 루크의 물음에 루아는 겨우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목적은 무슨……. 그냥 키우는 거지. 귀엽지 않아-?”

    “그냥? 그래, 귀엽기는 하지만…….”

    루크는 대니를 쓰다듬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보았을 땐 키운다고 해봤자 그다지 득 될것이 없어보였다.

    자신도 고양이를 키워보았지마는, 그것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마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어쩔 수 없는 ‘사고’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냥 키운다라…….’

    뭐,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

    생각해보면 예르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루크는 문득 예르나와 한차례 눈을 마주쳤다.

    ———-

    대니는 루크를 너무도 잘 따랐다.

    그건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좋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 정도로 친근함을 표시하지는 않는 게 보통이니까.

    마치 일주일정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주인을 반기는 모양새가 딱 저럴 것이다.

    실제로, 자신에겐 대니가 저 정도로 달려들지는 않았었다.

    꼬리를 몇 번 정도 치며 다가오고나서, 쓰다듬으면 손의 냄새를 맡고 몸을 돌리는 정도.

    그런데 루크에겐 계속해서 달려들면서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니, 하긴 루크에게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기는 하다.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것이 개들 한테도 통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니를 쓰다듬던 루크도 그런 녀석의 재롱이 싫지는 않은 지, 입가에 미소를 담고 있었다.

    예르나는 그 모습에 꽤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도 잘 웃어보이고는 했지만, 어쩐지 만들어진 미소라는 느낌이다. 

    마치, 웃는 것이 예절이니 그리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주 웃는 루크라고 해도 이정도의 미소는 그다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리 대니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루크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이정도로 작다면 새끼때는 정말 작았겠군. 혹시, 그때 찍은 사진이 있으면 보고싶구나.”

    대니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하던 루크의 목소리는 분명 들떠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루크가 보고싶어했던 사진은 없었다.

    녀석은 유기견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루크와 너무나 닮지 않았나.

    인공교배로 탄생한 소형 유기견과 인체실험의 피해자라.

    예르나는 그리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니의 사정을 보면 루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각을 멈추고 다급히 루크의 표정을 보았을 때는 루크의 표정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던 미소가 어느 순간 사라진 채 담담하고 차분한 눈동자로 대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여전히 헥헥거리며 마구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다.

    “그렇군, 사람에게 버려진건가.”

    루크의 입에서 새어나온 목소리는 예르나의 생각보다 굉장히 담담했다.

    어떻게 이 작은 아이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그동안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일전에 숲에서의 ‘용화’이후론 거의 기억이 돌아왔는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고는 했다.

    인체실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지만, 그것을 말했다는 것으로 이미 기억이 대부분 돌아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대체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루크는 자신의 사정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분명 기억이 돌아와서 힘들었을 텐데, 남이 걱정하는 것을 우려해서.

    예르나는 문득 마음이 물로 젖은 솜처럼 늘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짜내면 그 물들이 눈을 통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예르나는 그 물들을 막으려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시선은 이미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괜찮아. 

    아직 울지는 않고 있으니까.

    “예르나, 또 그런 표정을 짓고 있군. 그러지 않기로 했잖은가.”

    이런, 루크에게는 들킨 모양이다.

    “응. 그랬지, 참.”

    예르나는 한차례 눈가를 비비고는 피식, 웃어보였다.

    ———

    푸른 전광, 섬뜩하게 찢어지는 듯한 소음, 그을린 흔적.

    그리고,

    파칙, 파칙-.

    마치 노이즈가 섞인 라디오 같은 소리를 지어내던 검은 기둥이 마침내 쓰러졌다.

    털썩-.

    쓰러진 그것은 바닥의 먼지를 살짝 들어올리는 정도의 바람을 일으키고는 움찔, 움찔하면서 경련했다.

    신체내부에 아직 남아있는 잔존전류 때문이리라.

    그렇다, 그것은 기둥따위가 아니라 엄연한 생물, 아니…….

    생물이었던 것이다.

    생명활동을 멈춘 이상 더는 생물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시야를 넓혀보면, 복도엔 방금 무생물이 된 이 검은 것 외에도 꽤 많은 검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 남자가 있었다.

    “하아, 하아.”

    극심한 피로감과 서클의 고통에 남자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주머니를 헤집어 분홍색의 알약을 꺼내어 입 안에 탈탈 털어넣고는 이빨로 아작 아작 씹어 침과 함께 넘긴다.

    가장 손쉽게, 빨리 몸에 흡수시키는 방법이다.

    끔찍할 정도로 쓰기는 하지만, 그딴 건 아무렴.

    “크윽…….”

    약발이 드는지 시야가 잠깐 암전했다가 돌아온다.

    이제야 흑백이던 시야에 색이 입혀졌다.

    시야가 정상화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고통이 둔감해지면서 정신이 안정될 차례다.

    익숙하고 싶지는 않지만, 익숙한 감각.

    고양된 기분도 차분히 가라앉으니 서클도 더 이상 날뛰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시간 혹사한 탓인가, 날뛰진 않아도 심장이 쪼개질듯한 고통은 견뎌내기 어렵다.

    “젠장, 더럽네.”

    오감이 약의 힘을 빌어 되돌아옴에 따라, 옷 전체에 묻은 지저분한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악취도 심각하군.

    집은 물이 안나오니까 돌아가기 전에 어디서 몸이라도 씻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 잘난 마법으로 얼마든지 순수한 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라도 수도요금을 내야한다니, 웃기는 세상이다.

    ‘이쪽은 약과 식량을 사는 것도 빠듯한데.’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힘겹게 건물에서 나가려는 순간.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남자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아직 살아있는 놈이 있었나.”

    그러자 터져나오는 웃음.

    “하ㅡ. 크하하, 하하하!”

    “미쳤나보군.”

    저벅,저벅.

    과도한 마력의 사용으로 삐걱대는 몸을 이끌고 마침내 도달한 웃음소리의 진원지.

    그곳에 남자는 손가락을 내밀며 마력을 모았다.

    쥐꼬리만큼 남은 마력을 끌어모은다.

    그러자 손 끝에는 파직, 파직, 하며 푸른 섬광이 모여들고 있다.

    웃던 남자는 그 손끝에 모이는 푸른 마력을 보다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한번 웃는다.

    “큭, 크큭. 멍청한 ‘서클러’녀석……. 네가 지금 건드린 게 누군지는 아나?”

    “내가 그것까지 알 필요 없잖아.”

    “프로이튼 가문이야, 병……..”

    파칙–!

    마지막 기력을 쏘아낸 라이트닝.

    그럼에도 사람 한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에는 충분했다.

    “프로이튼가문……?”

    흠. 끝까지 들어볼걸 그랬나, 하지만 캐스팅을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었다.

    취소했다면 마력반동으로 죽은 것은 이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의뢰내용은 분명 ‘급한 건물청소’가 아니었던가?

    “건물의 주인이 ‘프로이튼’일거라는 말은 안 했던 것 같은데.”

    뭔가 단단히 꼬였다.

    의뢰금을 조금 더 받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거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아지 좀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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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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