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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마을로 향하는 밤길은 어두웠다.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불빛은 밝은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길에는 나무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등불을 반대편 손으로 바꿔 들어 마야의 발아래를 비춰주었다.

       그는 ‘판금 갑옷’ 수준의 조직 경도를 가진 덕분에 넘어지거나 어디 찧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테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뛰어난 천재인 것과 별개로 그녀의 몸은 또래보다 가늘고 여린 편이었다.

       눈처럼 하얀 피부는 모래 알갱이만 스쳐도 상처가 날 것 같았다.

         

       게임에서도 그녀는 일정 시간 이상 연속해서 움직이면 멈춰서 헉헉댄다든지 앞으로 꽈당 넘어지곤 했다.

       고작 마차를 타면서도 몸을 못가누는 그녀를 보면서 ‘마야=약골’이라는 원더스타인의 편견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기사와 도적의 육체적 스펙이 워낙 괴물이라서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 그녀는 결코 몸이 약한 편이 아니었다.

       마력술을 꾸준히 단련한 탓에 겉보기보다 훨씬 튼튼했다.

       옆에서 비교되는 사람이 체술로는 또래에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엘라라서 몸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마야는 그가 내민 등불이 눈 부신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필요 없어요. 치우세요.”

         

       그녀의 손에서 빛의 구체가 둥실 떠올랐다.

       환상 마법은 빛의 입자를 다루는 마법이었다.

       등불을 대신할 것을 만드는 것은 그녀에게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구체를 몇 개 띄우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원더스타인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등불을 다시 고쳐 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야는 속으로 방금 자신의 행동을 곱씹어 보았다.

         

       싸늘한 말투.

        냉정한 표정.

       매몰찬 거절.

         

       자신이 또 ‘보통’의 기준을 벗어나서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만 걸까?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별종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제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뭐라 떠들든 무시하고 그녀 갈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싫었다.

       항상 따뜻한 미소를 짓던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 실망이나 짜증을 표한다면?

         

       -천재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나.

       -위아래도 없는 년.

       -진짜 상종하기 싫네.

         

       그녀를 백안시하던 사람들의 표정에 원더스타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심장이 욱씬거렸다.

         

       그건……

       그건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단장님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발을 멈춘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언짢으셨다면 죄송해요.”

         

       원더스타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제가 화난 것처럼 보였습니까?”

         

       생각보다 온화한 그의 태도에 마야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제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제 욕을 했어요…….”

         

       원더스타인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사과를 한다든지 머뭇거린다든지 모두 그가 보기에는 신선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게임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마이페이스의 화신이었다.

       분위기나 맥락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었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감정 표현’ 명령을 사용하지 않으면 표정의 변화를 거의 관찰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 딱 한 번.

       TT1에서 원더스타인을 처치하고서는 굉장히 후련한 표정을 짓기는 했다.

       그거야 고생 끝에 최종 보스를 쓰러트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그녀를 본 원더스타인이기에 지금의 그녀는 예의가 없기는커녕 오히려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야 양이 보통의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더스타인이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

         

       그의 미소를 보면서……

       마야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

         

       자신을 안 지 얼마나 됐다고.

       자신을 얼마나 안다고.

       마치 오랫동안 그녀를 봐온 사람처럼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녀의 재능에 반했던 선생들 모두가 그녀의 성격에 질려서 떠나갔다.

       가장 온화했던 선생조차 ‘내가 버티기 힘들구나’라는 말로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무시받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부단장이 버릇없이 굴 때도, 단원들이 그를 피해 다닐때도 그는 늘 미소지었다.

       그래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사람.

       그녀의 이성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동시에 그녀의 가슴 한 구석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는 훨씬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걸음을 재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대화가 오고갔다.

         

       “오늘 기사를 읽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요?”

       “제 환상이 형편없다고 한 거요.”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단원들이 상처를 받을까 엘라가 <크리스티앙 가이드>는 따로 치워뒀는데 어느새 읽은 모양이었다.

         

       “그게 왜 다행이죠?”

       “만약 제가 단장님의 제자를 자처했더라면, 단장님의 명예에 손상이 갔을 거잖아요. 고작 그정도 환상을 새로운 방식이라고 가르쳤냐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기사를 읽는 순간 밝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실한 아이.

       그는 흐뭇함을 느낌과 동시에 화도 났다.

       은막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방치해뒀길래 2년 뒤에는 그렇게 냉정하고 사회성이 바닥을 쳐버리는 걸까.

         

       “그 기사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죠. 후후, 엘라 양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불평불만만 많은 곳이라고. 거기다 마야 양은 마력의 80% 이상을 그림 인쇄하는 데 썼잖아요?”

         

       그는 마야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그녀가 서커스단에 합류한 것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굉장히 반가운 존재였다.

         

       엘라를 제외한 기존 단원들은 게임에서 그가 수십 번은 넘게 죽였던 보스 몬스터들이었다.

       그들의 얼굴만 봐도 게임에서 그들이 저질렀던 학살 행위와 자신이 그들을 사냥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당연히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생 초기에 그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그녀는 시리즈 내내 그가 조종했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기사나 도적만큼 감정이 풍부한 캐릭터가 아니었지만, 다들 미쳐 날뛰는 트릴 트릴로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의 존재는 각별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단원 중 유일하게 자신이 어떠한 부채의식을 느껴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었다. 자연스레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 스케치북은 고칠 수 없는 건가요?”

       “아직은요. 혹시 모르죠. 나중에 어떤 방법이 나올지. 기다려 보세요.”

         

       마야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 마도구를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셨나요?”

       “대가요? 별거 없었습니다.”

         

       그의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마야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풀고 베풀고 또 베풀어 주면서 자신이 희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내세우려 들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

       그녀는 속으로 한 번 더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렇게 걷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숲을 빠져나왔다.

         

       언덕 위로 계단식으로 일군 논과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자를 지게 할 나무들이 없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눈앞이 훤했다.

       둘은 논밭 옆에 난 길을 따라 마을을 둘러싼 목책 앞에 다가갔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은 해가 지고 찾아온 외지인이었다.

       환영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더 험악했다.

         

       밤이라도 보통 목책의 입구는 열려있거나 느슨하게 걸쳐져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문이 꽉 닫혀 있었다.

       거기다 망루 위로 언뜻 비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갑옷과 칼을 갖춘 것이 정규 군인 같았다.

         

       “정지! 거기 멈추시오!”

         

       보초의 말에 두 사람은 목책의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장교 망토를 걸친 한 명의 중년인이 목책 위로 올라왔다.

       그는 피로에 찌든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어봤다.

         

       “나는 이 마을의 치안을 임시로 담당하고 있는 기사 이바넨코요. 그대들은 누구요?”

       “저희는 지나가던 유랑 서커스단입니다. 마을 근처에서 하룻밤 머무르다 갈수 없을까 찾아왔습니다.”

         

       원더스타인의 말에 이바넨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오.”

       “어째서입니까?”

       “그대들을 위해서요. 여기에 있다가는 좋지 못한 꼴을 볼 것이오. 그러니 숲에서 잤다가 해가 뜨면 바로 떠나는 게 좋을 거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이바넨코는 묻는 게 뭐이리 많냐고 짜증을 내려다 곧 한숨을 내쉬고는 나직히 말했다.

         

       “역병이 퍼졌소.”

       “역병이요?”

       “그렇소. 젠장, 지금 10구를 더 태우고 오는 중이오.”

         

       그제야 원더스타인은 알아차렸다.

       마을을 밝히는 불빛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라 생각했던 것은 시체를 태우면서 발생한 것들이었다.

         

       “제가 의술을 조금 배웠는데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이바넨코는 코웃음을 쳤다.

         

       “의술 따위로 치료할 게 아니오. 이건 그 끔찍한 ‘저주 역병’이니까.”

         

       저주 역병이 뭐냐고 되물으려던 원더스타인은 멈칫했다.

       이름만 대도 아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식의 병을 모른다고 묻는 것 자체가 ‘나 실력없는 돌팔이요’라고 떠드는 것과 같았다.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괜찮습니까?”

       “우리는 은하수를 투입받았소. 1주일은 버틸 수 있지.”

         

       저주 역병.

       은하수.

         

       그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단어라 생각했다.

         

       그러다 곧 예전에 미노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금술 길드에서 만든 ‘은하수’라는 약 때문에 저렇다네. ‘저주 역병’ 치료제로 개발된 것인데 종양 억제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용 중이지.

         

       딸의 몸을 상하게 하는 걸 알면서도 병의 억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했던 약이 저주 역병의 치료를 위해 개발됐다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

       원래는 그냥 돌아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돌아갈 거면 진즉에 물러났어야 했다.

       이바넨코에게 병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퀘스트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서브 퀘스트-역병 치료

       : 마을에 역병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달성조건

       : 역병에 걸린 사람 200명 구하기.

         

       성공 시 보상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데볼루트 –200]

         

         

       성공 시 보상은 없는 주제에 페널티만 가득한 퀘스트.

       뭐 때문에 그런 것일까.

       시스템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마야 양은 마차로 돌아가계세요.”

       “단장님은요?”

       “저는 안에 사람들을 좀 살피다 가겠습니다.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병도 제 몸을 해칠 수 없으니까요.”

         

       그의 말에 마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단장님만 두고갈 수 없어요. 저도 같이 갈게요.”

       “하지만…….”

       “괜찮아요. 몸에 마력을 흘리면 은하수와 비슷한 효과가 나요. 데볼루트에 저항할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했다.

         

       그녀의 말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평소와 같은 무뚝뚝하고 무심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가 쓴 단어 하나가 그의 신경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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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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