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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 * *

       

       

       러시아령 북만주 하얼빈

       

       

       

       북만주에 정착한 민족은 유대인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만주의 토착민인 만주인도 있었고. 소수의 한족 및, 최근에 만주에서 주요 민족이 된 조선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본래 상하이 임시정부에 속할 임시정부 요인들이 음지에서 몰래 임시정부를 꾸리고 있었다.

       

       하얼빈에 꾸린 한국의 임시정부는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또 아직은 드러낼 수 없는 미미한 세력이지만, 이곳은 임시 총리까지 갖춘 엄연한 임시정부였다.

       

       

       “전하. 생활에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아나스타샤가 굴린 역사의 개변으로 인해 하얼빈 임시정부의 총리로 추대된 안창호는 눈앞의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망국의 황족으로 내 조국도 아닌 남의 땅에서 생활이 풍족함을 바라겠소?”

       

       

       사내의 이름은 의친왕 이강.

       

       그는 대한이 아직 국가로 존속할 시기에 나약한 제국의 군주인 고종태황제와 귀인 장씨의 아들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감시 아래에 살던 그는 이 무렵, 남만주로 신분 위장으로 도피했다가 만철군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가 불령선인들을 북만주로 보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후, 무타구치 렌야와 거래하는 아시아 기마사단 쪽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해서 겨우 북만주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크흠. 이제 하얼빈 임시 정부도 출범하였으니, 전하를 구심점으로 세력을 키우면 될 것입니다.”

       “하하하. 구심점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지금 조선에서 다른 건 몰라도 황실에 대한 지지는 떨어지고 있다고 들었소.”

       

       

       그랬다.

       

       현재 한반도에서 일제의 한반도 경영 정책 중 유일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이 이왕가 격하 정책였다.

       

       조선인들이 러시아의 여제처럼 이왕가를 중심으로 뭉칠까봐, 일본 본국에서 직접 주도한 것이었다.

       

       이왕가는 전조 시절부터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알게 모르게 민중에 퍼지고, 때마침 의친왕 이강의 행방불명으로 조선 내의 이왕가 지지도는 수직 낙하해 버렸다.

       

       

       “전하.”

       “아아, 내 불만을 내뱉는 것이 아니오. 그만큼 우리 황실이 신민에게 못할 짓을 했으니까. 일제가 퍼트린 것이 역사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말이오. ”

       

       

       약간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긴 하지만, 일본 정부가 퍼트린 소문이 근거 없는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다.

       

       이강은 그래도 한국 황실의 후손이었다.

       

       나라를 말아 먹고 일제에 팔아먹으며 일제에 부역하고 이왕가로 만족하는 황족들 사이에서 최소한 양심은 지키고 싶었다.

       

       

       “제국의 부활은 바라지도 않소. 그러나,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내 한 몸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제에 맞서고 싶소.”

       “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만주의 조선인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오. 임시 정부 수립은 아라사의 여제에게 허락받은 일은 아니지 않소?”

       

       

       엄염히 말하면 겉으로는 북만주로 이주온 조선인인 집단처럼 되어있었다.

       

       안창호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은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지만, 이강으로서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정부를 과연 임시정부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북만주의 개척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아라사의 여제가 직접 순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직접 모스크바에 갈 수는 없지만, 아라사의 여제가 하얼빈으로 온다면, 그때 접촉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라사의 여제와 접촉이라.

       

       이강은 아라사의 여제가 여장부이며, 내전을 직접 끝낸 러시아의 영웅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만나는 것은 좀 꺼려졌다.

       

       한국 황실과는 다르게 자신의 나라를 되찾아 심지어 발전하고 있는 점은 흠모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그것과 별개로 러시아는 일본의 우방이 아닌가.

       

       

       “아라사는 일본의 우방이라던데, 우리를 용인하겠소?”

       

       

       우방이라고 하기엔 약간 좀 미묘한 관계로 보이지만. 이강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협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기야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깨지긴 했어도 동서양에 걸친 거대한 내전 이후, 승천하는 용이고, 일본도 굳이 러시아를 건드려 2차 러일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나마 이 하얼빈에서, 똑같이 나라 잃은 처지인 유대인 자본가의 도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이건 다행이었다.

       

       

       “명분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명분?”

       “지금, 아라사의 여제는 입헌군주라 스스로 칭하지만, 내전을 직접 승리로 이끈 영향력은 전제군주정에 필적한다합니다. 여제만 설득하면 임시 정부를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입헌 군주제라고 하지만, 만주에 오랫동안 머물며 러시아 사정을 살피던 안창호가 보기에는 여제의 영향력이 저 구라파에서 극동까지 닿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제군주정이나 다름없는 상황.

       

       

       “명분이라. 흠. 안총리께서 보시기에는 뭐가 있겠소?”

       

       

       임시정부 안창호는 빙긋 웃었다.

       

       명분은 충분히 있다.

       

       

       “아라사의 여제는 성녀로 불리는 몸이며, 저 유럽의 천자이기도 합니다. 여제는 친일 정권에 맞서는 호법정부 천중밍의 지원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만일 일본을 진정 우방으로 여겼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에 임시정부를 꾸리기 위해 중국의 사정을 알아봤던 안창호는 러시아가 친일 정권인 돤치루이의 북양정부 대신 돤치루이에 맞선 호법 정부를 지지하며 군사 고문과 무기를 보낸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면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라사와 일본이 각자 지원하는 세력에 무기도 팔아넘기고 있다는데, 이건 이해관계가 일치해서가 아니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오나, 어쨌든 아라사가 호법정부를 지원하는 대외적인 명분은 결국 정의입니다. 더군다나 아시아 기마사단에는 조선인들도 많고, 러시아 정부 역시 북만주로 건너오는 조선인을 받아주는 것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도박이 되겠군.”

       “접촉 후에, 그래도 실패할 경우가 있으니, 만일을 대비해 전하께서 피난할 수 있도록, 저 미국에 있는 우남(이승만)에게 준비해두라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아라사 여제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결국 이강 역시 위험한 처지에 놓이니까.

       

       안창호의 말에 이강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 일은 내가 직접 하겠소.”

       “전하께서 말씀입니까?”

       “매국노 황실이라는 욕을 먹고 있으니, 어떻게든 발버둥이라도 처 봐야지. 아라사의 여제가 북만주로 온다면 내 직접 알현할 것이오.”

       

       

       이왕가는 나라를 몽골에 팔아먹고, 다시 몽골을 배신해 고려에 쌍성총관부를 들어 바치고. 다시 또 그 고려의 뒤통수를 쳐 조선을 세웠다가. 이제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말 그대로 매국노 황실이라는 오명을 쓴 상태였다.

       

       그럼 최소한 자신 혼자라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면서 러시아의 여제를 설득해 봐야 하지 않겠나.

       

       

       * * *

       

       모스크바 크렘린궁

       

       

       방공협정을 맺고 나서 나는 약속대로 이뇌뉘에게 쿠르드족 토벌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했다.

       

       

       “일단 저희가 직접 돕지는 못합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선언.

       

       우방국이란 나라가 먼저 쿠르드족에 무기까지 넣어줬으면서 토벌은 돕지 않겠다니. 이뇌뉘도 어이가 없는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쿠르드족에게 준 무기로 쿠르드족이 우리 군을 죽이는 것도 우습지 않겠냐.

       

       그러니까 직접 도울 수는 없다.

       

       왜 남의 나라 전쟁에 얻는 것도 없는데 들어가겠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튀르키예가 서운해 할 수 있으니. 나는 미리 계획한 대로 공수부대 관련건을 꺼냈다.

       

       

       “그럼, 무엇으로 돕겠다는 겁니까?”

       

       

       이뇌뉘의 얼굴에 슬슬 짜증이 어렸다.

       

       감질나니까 좀 빨리 말해달라는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 너무 뜸들여도 안 되겠지.

       

       

       “무기 지원은 더 드리면서 새롭게 도전해볼 것이 있습니다만.”

       “도전해볼 일이라 하시면?”

       “군대에 관련된 것입니다.”

       “차리나께서 직접 말입니까?”

       

       

       뭘 그리 놀라고 있어.

       

       내가 이래 보여도, 어? 예카테린부르크에서부터 총들고 싸운 몸이라고. 물론 몸이 탕후루긴 하지만, 탕후루인 거 감안해도 총알 빗발치는 곳에 가는 게 쉬운 잘 알아?

       

       그것도 이 시대에? 그것도 여군도 아니었던 온실 속 화초가?

       

       나나 되니까 그런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으면 아라라트산의 쿠르드족도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냥 저는 이 계획을 꺼냈으니까요.”

       

       

       내가 검은 남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품에서 공수부대 계획서를 꺼냈다.

       

       제공권을 갖추고 나서 수송기를 이용해 병력을 떨어트리는 기발한 계획.

       

       대공포조차 없는 아라라트산은 딱히 제공권을 잡을 필요조차 없다.

       

       쿠르드인들에게는 항공기도 없으니까.

       

       있다고 해도 튀르케예에 러시아의 전투기를 지원하면 끝이지.

       

       

       “흠,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 나쁘지 않군요.”

       “예. 이걸 한 번 쿠르드족과의 전투에서 써보면 어떻겠습니까?”

       

       

       이뇌뉘는 계획서를 훑으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이건 그럼, 양국이 함께 운용해 보는 것입니까?”

       

       

       그건 당연하다.

       

       공수부대라는 것을 만들어두면 전쟁에도 좋을테니까.

       

       제공권을 꽉 잡고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독일 지역을 장악해 전쟁을 압도적으로 끝내야지.

       

       

       “그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 부대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한데, 따로 전쟁을 벌일 수 없고. 귀국의 도움이 필요하겠죠.”

       

       

       그리스와 전쟁할 때도 공수부대는 도움이 될 거다.

       

       

       “확실히 산에 병력을 투입하고, 아래에서 공격해 양동작전을 벌인다면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만.”

       

       

       애초에 쿠르드족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거다.

       

       당장 들어오는 정보를 보면, 남은 쿠르드 잔존병력은 뿔뿔이 흩어져 산에서 게릴라를 벌이는 거 같은데.

       

       

       “이 방법이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러시아는 귀국의 우방이니까요.”

       “공수라는 것이 참 신기하군. 흠 좋습니다.”

       

       

       이뇌뉘는 돌아가기 전에 백군부와 몇가지 협의를 거쳤다.

       

       공수부대 관련한 군사정보 공유. 쿠르드인과의 전투관련된 자료 등등.

       

       백군부의 주도로  튀르키예와는 군사협정을 맺었다.

       

       아라라트산의 쿠르드족과의 싸움이 좀 더 끌리면 참 좋을 텐데. 자, 그러면 튀르키에는 이 정도면 되었고.

       

       아직 러시아를 떠나지 않은 자가 남아 있다.

       

       호르티 미클로시.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는 돌아가지 않고 헝가리 측의 관료들과 함께 남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섭정께서는 무슨 일로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습니까?”

       “러시아의 전지전능하신 차르시여.”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뭐길래 그렇게 띄우고 있어.

       

       나는 아부 같은 거 싫어하지는 않지만. 막상 그 호르티가 저러니 좀 궁금하다.

       

       내 물음에 호르티는 본론으로 넘어가겠다는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마니아를 방공협정에 두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흠. 어째서인가요?”

       “루마니아는 실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겁니다. 당장 협상국편을 들어 트란실바니아도 뜯어가지 않았습니까.”

       “그 문제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압니다만.”

       

       

       나는 뒤끝있는 거 좀 싫어한다.

       

       트란실바니아는 뭐, 헝가리 영토를 생각하면 너무 크게 떼간 거긴 하지만. 그래도 방공협정을 생각하면 글쎄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요?”

       

       

       그래.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나도 단도직입적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우리 호르티씨가 무슨 불만이 있을까.

       

       내가 바라는 대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재건을 위해서는 최소한 호르티씨를 친러파로 만들어야 한다.

       

       호르티 본인이 힘을 내기 위해서라도 도움을 줘야 하고.

       

       뭐 루마니아는 나도 좀 그렇기는 하다.

       

       솔직히 루마니아는 좀 불안한 나라다.

       

       무려 자기가 좋아서 결혼한 아내를 내버려 두고 유대계 여자인 마그다 엘레네 루페스쿠와 만나고 나서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 여자랑 살지.

       

        그 바람에 페르디난드 1세는 개차반인 아들을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시키고 카롤2세의 아들 미하이를 왕세손으로 책봉한다.

       

       카롤 2세는 아들인 미하이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이건 불합리하다며 아들을 압박해 기어이 왕위를 뺏고.

       

       딱히 내부에서 별일이 없다면 또 카롤 2세가 자기 아들 미하이 1세에게 넘어간 왕위를 빼앗을 수도 있고, 전쟁이 아주 만일, 기묘하게 변한다면, 미하이가 공산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아 카를 2세를 축출하고 루마니아를 장악할 수 있고. 반대로 역사의 개변으로 미하이 1세가 왕위 유지하다가 카롤 2세가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세력 갈아탈 수도 있는 것이고.

       

       공산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군주제지만, 당장에 자기 왕위를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공산당과 손잡을 가능성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루마니아 내부를 바로 잡아주기에는 또 문제가 있고.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실제로 루마니아는 편을 갈아타고 나서 소련군과 함께 나치 독일과 싸우지 않았던가.

       

       내가 다 준비해도 헝가리까지 밀릴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임시정부가 등장했지만 이 작품은 러시아 배경인 만큼 국뽕 요소는 없을 예정입니다.

    만력제는 그나마 제후국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달 수 있지. 주인공이 지원은 해도 개연성 없이 마구 지원하진 않아요.

    전에 본 어떤 외국인 빙의 대역물에서 개연성없이 독립군 마구 지원하고 거 보고 좀 그렇더라고요.

    국뽕요소가 생긴다면, 아마 다음에 나올지도 모를 한국 배경 대역일지도….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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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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