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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릴리아와의 대화 이후 교국의 사제들을 만나 몸소 스스로의 순수함을 증명하려던 나.

        그러나 행사장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음에도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결국 성신제가 시작되어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늦은 저녁.

        오두막에 돌아온 나는 프리나와 단둘이 앉아 시간이나 때우게 되었다.

       

        “으, 시끄러 죽겠네. 인싸 놈들은 이 시간에 일정 없이 일찍 자는 사람이 있다곤 생각 못 하는 거야?”

       

        그녀는 위에서 음악이 쿵쿵거리는 소음이 들려오는 중에도 묵묵히 갤러리 관리에 열중이었다.

        새로 얻게 된 권력을 이용해 관리자 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버튼 등 여러 기능을 살펴보는 모양.

        학파 규칙에 따라 프리나를 붙잡고 앉아 있었기에 뒤에서 그것을 다 볼 수 있었다.

        펑퍼짐한 로브 아래로 만져지는 허리는 위치노트를 세로로 얹으면 완벽히 가려질 정도로 가늘었다.

       

        “근데 선배도 오늘 동기모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얼굴만 비추고 올 거야. 왜 성신제 타이밍에 맞춰 부르는 거냐고, 누, 누군 일정이 없는 줄 알아.”

        “좀 전이랑 말이 반대잖아요.”

       

        투덜대며 나갈 채비를 하는 프리나.

        친구가 하나도 없기로 자타공인 마탑에서 제일 유명한 그녀가 무려 ‘약속’을 잡다니.

        별로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왜 나가는지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주었다.

        가뜩이나 성신제 때문에 기숙사에 외부침입이 많은 지금, 오두막에 남아있는 이유는 오직 학파규칙 때문이었으니까.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프리나의 심신이 안정되기만 한다면 어딜 갈 때도 이렇게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

       

        “어디서 마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호, 혹시 늦으면 데리러 오게?”

       

        그럴 리가.

        프리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이쪽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에게 약속했던 영석을 따내기 위해 부스의 상품들을 돌아보는 것.

        오다가다 마주쳐서 내가 주딱이라는 걸 들키면 곤란하기에 미리 동선을 확보해 그곳을 피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프리나는 묘한 기대감에 부푼 시선으로 부엉이 가면의 깃털을 정돈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

        “왜, 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 앞에서 지나치게 술에 취한 자신을 회식 후 남친이 데리러 오는 상황’은 실제로는 서로 어색하고 별로 우월감도 안 느껴질뿐더러 내일 아침쯤 되면 하루 종일 머리 싸매고 후회할 거라 생각해요.”

        “아아악! 그, 그, 그런 생각한 적 없거든!!?”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게 완벽하게 정곡을 찔린 반응이었다.

        보나 마나 수업을 들을 때도 검은별 흑마법사들이 강의실에 쳐들어오는 상상을 했겠지.

        다른 동기들이 겁에 질려 있을 때 저주술사인 자신이 멋있게 나서서 그들을 처치하는 모습 같은 걸 그리지 않았을까.

        프리나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론이었다.

       

        “아, 아무튼 난 여기 적힌 주소에 있을 거니까 알아서 해! 그리고 학파 규칙 잊지 마!”

        “네네, 길 걷다가 왼손이 갑자기 어디론가 끌려가면 저항하지 말고 따라가라는 거였죠.”

        “무슨 소리야 반대라고! 내가 준 실은 오른손에 감았잖아.”

       

        그랬던가?

        프리나는 내 손바닥을 노려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넌 나처럼 친구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얽혀있는 데가 많아. 왼손은 말할 것도 없고 목이랑 다른 곳에도…….”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강제력이 발동되는 맹세나 약속을 잔뜩 걸어놔서 운명에 휘둘릴 수 있다는 뜻이야. 천칭을 안 쓰고도 이 정도면 어떤 의미로 대단하네.”

       

        아무튼 자기가 지금 침 발라놓은 곳은 오른손이라며 연신 당부를 하고 떠난 그녀였다.

        나는 간질거리는 손가락을 매만지다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영석을 얻고 부차적으로는 교국의 사제들을 만나 무고함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마탑의 1층부터 행사장에 있던 부스를 돌기 시작해 지금은 30층으로 올라갈 차례였다.

       

        ‘증명의 층’이라 불리는 30층은 내게 있어 익숙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왜냐하면 모험가 시절 각종 의뢰를 수령하는 조합의 사무실 같은 건물이 잔뜩 늘어선 곳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증명의 층은 오로지 천변의 방을 통과하기 위한 발판의 일종.

        시련에 입장했다가 실패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증명의 층에 머물고 있으면 마탑으로부터 시련을 통과할 힌트가 주어진다.

        학파를 불문하고 마법사들 사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런 불가사의한 이벤트가 발생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맞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시련에 통과하지 못한 이들을 돕기 위해 중층에서 활동하는 마법사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

        공략대에 참여하려면 이명이 필수였으니 원석을 가려내 가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거기 창을 들고 혼자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시는 수상한 마법사 분! 저희 카페에 잠시 들렀다 가지 않으실래요?”

        “대학원생들의 공연이 잠시 후 시작됩니다! 대학원에서 탈옥하려는 사악한 저주술사를 막는 치안대 영웅들의 활약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4번가로 오세요!”

        “마탑에서 가장 힘센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현재 우승 후보는 애인을 경매장에서 빼앗겼다는 고위 마법사! 다양한 상품도 준비되어 있으니 참여해 보세요!”

       

        물론 지금은 성신제 때문에 술집과 행사가 가득한 놀자판으로 변해 온통 호객행위뿐이었다.

        나는 부엉이 가면을 쓴 채 영석을 얻을 만한 부스를 찾아다녔다.

        대체로 고층으로 올라올수록 위계가 높은 마법사들이 많아서인지 상품의 가치도 높은 편이었다.

       

        “응?”

       

        그런데 위치노트와 주위를 번갈아 보며 걷던 나는 갑자기 무언가 머리채를 잡아끄는 느낌을 받았다.

        가면의 이음새에 걸린 건가 싶었지만 다리까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이게 프리나가 말했던 운명인 듯했다.

        오른손이 아니라 학파규칙은 적용되지 않았지만 일단 미증유의 힘에 몸을 맡긴 나는 근처에서 지나가던 퍼레이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때마침 행사장 부스도 프리나도 없는 골목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줄 서시려고요?”

        “네?”

        “여기 되게 용한 타로집이거든요. 폐관수련을 마친 점성학파 출신 마법사가 궁금한 걸 모두 알려준대요.”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대답해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잽싸게 그의 앞에 섰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니 잡아야 했다.

        교국의 사제들을 만날 방법이나 영석을 얻을 수 있는 곳, 선량한 해주술사를 음해하는 세간의 풍파를 헤쳐나가는 법 등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렇게 조금씩 줄어드는 줄을 기다리던 도중 드디어 차례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보라색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마스크로 입을 가린 어느 여인과 대면했다.

       

        “어서 오세요, 천체의 운행이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군요.”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후훗, 성미가 급하시네요. 별에게 운명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귀를 간지럽혀야 한답니다. 우선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보시겠어요?”

       

        점술이란 게 원래 그런 식인가?

        그냥 질문을 던지고 답이나 들으려던 나는 그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마음속으로 정리해놓은 여러 의문과 고민들까지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용하다는 점성술사는 내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나빠졌다.

       

        “그러니까…… 당신은 아주 먼 곳에서 왔고 수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지금은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탑을 오르기 위해 마탑에 왔다는 건가요?”

        “네, 그 말대로에요.”

        “헌데 얼마 전까지 치안부의 수배에 걸려 있었고 흑마법사를 숨겨준 전적도 있는데다 진짜 정체가 들통 나면 마탑이 통째로 뒤집어질 만한 인물이라는 거네요?”

        “맞습니다.”

        “최근에는 그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고 있는 느낌을 받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당신을 악의 수장이라고 이야기하며 때때로 암살 위협도 당한다는 말이죠?”

        “그렇긴 한데요, 암살은 이 허리에 찬 녀석이…….”

        “그, 그래서 이제는 성신제를 틈타 찾아온 교국의 사제들을 납치하고 더 늦기 전에 마력의 정수인 영석을 손에 넣어 이번에야말로 마탑을 무너뜨리겠다는 거죠?”

        “어, 음…… 네?”

       

        도중부터 뭔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검은 안개가 잔뜩 낀 수정구를 보며 덜덜 떨던 점성술사는 갑자기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치며 일어났다.

       

        “나, 난 그냥 천칭으로 연애운이나 점지해 주려던 거였는데……! 신고, 신고 해야만…… 아니, 몰래 나온 걸 들키면 스승님께 혼날 거야, 그럼 어떻게……!?”

        “저기요?”

        “자,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죄송합니다!”

       

        손님을 앞에 두고 다급히 자리를 뜨는 가게 주인.

        덕분에 나는 제대로 된 조언을 듣지도 못하고 천막 안에 남겨져 버렸다.

        곧 돌아오려나 싶었으나 시간이 흘러도 주인이 오지 않자 뒤에 서 있던 손님들이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성술사가 완전히 도망쳐 버렸다는 확신이 들 때쯤, 기다리다 못한 마법사 하나가 천막을 걷고 들어와 나랑 눈이 마주쳤다.

       

        “저기요, 영업 안 해요?”

        “네?”

        “뭐야 안에 있었잖아? 빨리 다음 손님 받으셔야죠, 지금 다들 얼마나 화났는데요.”

       

        늑대 가면을 쓴 마법사는 나를 테이블 맞은편에 앉혀놓고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졸지에 용한 점성술사가 되어버린 나는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어야 했다.

        서로 가면을 쓴 마법사 둘이서 한쪽이 이야기하고 반대쪽이 고개를 끄덕이는 촌극을 벌이던 도중.

        뭔가 이상했는지 손님 측인 마법사가 읽을 줄도 모르는 타로카드를 뒤적이던 내게 말했다.

       

        “그런데 보통 점을 보려면 신상을 알아야 하지 않아요? 뭐 어느 계절의 몇 시에 태어났다든지…….”

        “아.”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금 전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 남자친구라는 분 위치노트 아이디가 어떻게 되시죠?”

       

       

       

        *

       

        “진짜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더라. 위계가 보통이 아닌가 봐.”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남자친구가 나 몰래 수인 카페에 갔던 것까지 알고 있더라고.”

        “자, 다음 분~.”

       

        나는 그 후로도 계속 손님을 받았다.

        갤러리에 쓴 글을 토대로 상대의 심리를 분석해 되는대로 떠드는 조언에 지나지 않았는데 생각 외로 사람들은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정작 주인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오두막으로 돌아갈까도 고민했지만 떠나려고 하면 머리카락을 당기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일일 타로점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밖의 줄 역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악덕 업주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자에게서 도망쳐 자유를 되찾고 싶은 것이에요.”

        “오, 낫을 든 사신 그림이군요. 당신은 그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고 죽어서도 그의 밑에서 개처럼 구르게 될 것입니다.”

        “아흐흐흑……!”

       

        금발이 삐져나와 있는 사슴 가면의 마법사를 울리며 떠나보낸 뒤.

        기지개를 켜던 그때 천막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슬슬 단속도 뜰 것 같고 오늘은 이쯤에서 퇴근하려고요.”

       

        천체의 운행 따위 볼 줄도 모르고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르기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만 자리를 뜨려던 시점.

        그런데 축객령을 받은 손님은 나가지도 않고 우두커니 선 채 가만히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새하얀 원피스에 꽃이 담긴 바구니를 한 손에 든 이상한 차림이었다.

       

        사짜 노릇을 하던 걸 들켰나? 싶어 두 번째로 대학원에 가게 되는 걸 걱정하던 찰나.

       

        “주딱? 호, 혹시 주딱이야……?”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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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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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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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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