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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하아···.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아멜리아의 어처구니없는 오해에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길 수십 분.

       

       한참이 지나서야 내 말에 납득한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와 시우를 바라보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뭔가 납득했다기보다는 넘어가 준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제대로 이해한 거 맞겠지?

       

       

       “피임이라니. 시우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는데. 그렇죠?”

       

       “···응, 뭐. 그렇지.”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그건 아니죠.”

       

       

       이거 봐.

       

       시우는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히로인이라는 녀석들이 주인공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면 어떡하라고?

       

       심통이 나 아멜리아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지금 따진다면 또 이상한 오해를 할 것 같아서.

       

       ···게다가, 뭐.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사실 시우가 주변에 없으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위험해지는데, 그걸 도와주려고 동거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해.

       

       

       “그냥 저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인데.”

       

       

       나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시우를 믿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한창때의 남자아이.

       

       시우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 경계심은 마치 길가의 고양이처럼 높았다.

       

       도와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빌미로 사심을 채우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나도 내 몸이 예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우를 지켜보면서도, 그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경계하고 있었지.

       

       그런데 내가 시우를 지켜본 결과 그는 무해했다.

       

       한 달. 거의 한 달가량을 동거했는데도 시우는 여전히 내게 친절했다.

       

       나를 성적인 눈빛으로 바라본 적도 없었고.

       

       적어도 남자였을 무렵의 나라면 불가능했을 거다.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귀찮지는 않을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은 정도로 달라붙었으니까.

       

       

       “저는 믿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응, 기쁘네.”

       

       

       시우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으로서의 조건을 잘 갖춘 모양이었다.

       

       작가님이 갑자기 시우를 수정할 수 없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반대로 그 이전에는 수정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작가님이니까 뭐, 라이트노벨처럼 주인공이 연애에 둔감하다던가 그런 설정을 집어넣은 거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나였다면 버틸 자신이 없거든.

       

       이 정도 미소녀가 같은 집에 눌러살고,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조건에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그런 거겠지.

       

       한 번은 시우의 태평한 모습에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이 정도 조건의 미소녀인데도 남자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이유 모를 패배감이 들잖아.

       

       게다가 예전에, 이 세계에 빠지기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고.

       

       뭐였더라. 연애 못하는 놈들은 이 세계로 가서 잘생기거나 예뻐져도 평생 연애 못 한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던가?

       

       그 말 그대로, 나는 이 세계로 넘어와서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보는 사람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슬펐거든.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거에 슬퍼할 필요가 없더라.

       

       어차피 여기서 누군가랑 사귀기는 불가능하잖아?

       

       세상에 다 인형뿐인데 무슨.

       

       

       “···아, 오늘 저녁으로 뭔가 드시고 싶은 게 있나요?”

       

       “요리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데.”

       

       “어허.”

       

       “···그럼 오랜만에 스테이크로.”

       

       “맡겨주세요!”

       

       

       시우의 의견을 들어 오늘은 스테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음,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양파랑 후추가 슬슬 부족하던데, 고기를 사는 김에 보충해야겠다.

       

       시우네 집 냉장고 속 식재료들의 현황을 떠올리고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시우와 함께.

       

       

       “이런 거라도 해드려야지, 제가 불편하지 않아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안 힘들어?”

       

       “요리는 평소에도 자주 해 먹어서 괜찮거든요. 이 이야기도 벌써 몇 번째인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우가 착하기는 한데, 나한테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였다.

       

       그럴 수는 없지.

       

       다른 사람의 집에 갑작스럽게 눌러앉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예의가 어쩌고 하기 이전에, 내가 불편해서 참지 못한다.

       

       마침 시우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너무 대충 먹더라고.

       

       혼자 사는데 뭐 어떠냐는 말에는 나도 동의했지만···.

       

       뭐라도 해야 덜 불편할 거라는 나의 아주 개인적인 판단하에, 일단 내가 시우네 집에 눌러앉아 있을 동안에는 내가 요리를 담당하기로 했다.

       

       시우는 그것도 꺼리는 모양이었지만.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는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는 건 꽤 즐거웠다.

       

       그렇게 만든 요리를 다른 사람이 먹어주는 것도 꽤 즐겁더라.

       

       

       “어머, 오늘도 왔네.”

       

       “안녕하세요. 고기 좀 보러 왔는데요. ···이거 맛있어 보이네. 이걸로 주세요.”

       

       “그럼 물론이죠, 귀한 손님. 눈이 좋으시네요.”

       

       

       역시 아카데미의 위상이 높아지긴 했구나.

       

       거의 매일같이 들리는데도 주변 손님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게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학생이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최근에는 우리를 보며 소곤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부담스러운데.”

       

       “그래요? 조금 더 좋아해도 괜찮을 텐데.”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잖아.”

       

       “오.”

       

       

       역시 주인공이라 이건가.

       

       시우의 이런 면모를 볼 때마다 참 신기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틀에 박힌 말을 한다면 믿지 못했을 텐데.

       

       시우가 하는 말이니 믿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니까.

       

       

       “방금 그거, 조금 멋있었어요?”

       

       

       음, 음.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고기를 손질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자, 여기요. 가져가세요.”

       

       “···네? 돈은요?”

       

       “학생들한테 돈을 어떻게 받아요. 빨리. 팔 아프니까.”

       

       

       ···저번에도 안 받았잖아.

       

       게다가 이거, 아무리 봐도 아까 달라고 했던 고기가 아니다.

       

       물론 내가 고른 고기도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그것보다 훨씬 비싸 보이는데.

       

       뭔가 크기도 더 커졌고.

       

       

       “아주머니, 하지만 이건···.”

       

       “빨리 받아요. 학생들이니까 많이 먹어야지.”

       

       “저희는 이걸 받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아니, 받아도 괜찮아요. 학생들 덕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주머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야 괜찮았지만, 주변이 부서지고 난리가 났는데 학생들이 도와줬잖아. 빨리 받아요. 나 팔 아프다니까?”

       

       “···.”

       

       

       그러고 보니 이 주변 상가, 방학식 날에 피해를 받은 곳 중 하나였던가.

       

       그 탓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주로 포인트를 수급하는 위치라고 들었던 것 같다.

       

       위치도 가깝고, 복구해야 할 것도 많고.

       

       지금은 거의 복구가 완료되어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모양이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작가님의 설정 탓에 부서진 상가인데, 작가님의 설정 탓에 다시 복구되다니.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자 아주머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빨리 가져가요. 남자친구 맛있는 거 먹여줘야지.”

       

       “···그런 거 아닌데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릴. 매일 같이 오면서. 맛난 거 먹고 시민들 지켜줘요. 우린 그걸로 충분하니까.”

       

       

       남자친구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우는 히로인과 이어질 건데.

       

       지금은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렇게 동거하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시우가 없어도 괜찮아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멜리아. 혹은 도로시.

       

       아니, 어쩌면 언젠가 나올 새로운 히로인과 이어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주인공답게 그 모두와 결혼한다거나.

       

       

       “···.”

       

       

       결국 고기를 받아서 들고, 다른 가게에서 부족한 식재료를 몇 개 집어 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극구 사양하는 주인 탓에 값을 치르지 못했다.

       

       시우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문득, 정말로 작가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보았다.

       

       시우의 옆에 다른 여자가 행복하게 웃고 있고, 나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그걸 지켜보고 있겠지.

       

       ···뭔가 기분 나쁜데.

       

       

       

       ***

       

       

       

       “그럼, 먼저 씻고 계셔도 괜찮아요. 식사를 준비할 테니까.”

       

       “괜찮겠어?”

       

       “하, 하하···. 그럼요. 그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요.”

       

       

       거짓말이다.

       

       거의 한 달간 둘이서 동거를 해왔으니, 시우도 아르테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저건 허세다. 분명 십 분만 있어도 호흡곤란을 호소하겠지.

       

       하지만 허세인 걸 알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랑 같이 욕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시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올게.”

       

       “천천히 하셔도 괜찮아요.”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부엌을 벗어나,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시우는 벽에 머리를 박았다.

       

       

       “참자, 참아···. 참는 거야, 유시우···.”

       

       

       최근 한 달간, 시우는 점점 정신이 마모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훈련을 너무 많이 한 것도 아니다. 휴식은 충분히 취하고 있다.

       

       직감으로 어디까지 해야 효율적으로 훈련을 끝마칠 수 있을지 알 수 있었으니까.

       

       밤잠을 설친 것도 아니다.

       

       아르테가 눌러앉고 난 이후부터, 주변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그런 걸까.

       

       잠이 잘 오더라고.

       

       시우의 정신이 마모되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무방비한 거 아니냐고···.”

       

       

       온종일 아르테와 지내면서 생기는 욕구 때문이었다.

       

       도와주기로 했는데 아르테를 이런 눈길로 바라보는 걸 그녀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실망할까? 경멸할까?

       

       ···어쩌면 내가 주변에 있어도 호흡곤란을 겪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는 안 돼.

       

       아르테가 멀리서 지켜봤을 때는 참기 쉬웠다.

       

       커튼 너머로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강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무방비했다.

       

       그나마 처음에는 조금 경계하는가 싶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가볍게 풀어버리더라.

       

       사람에게 버려진 길고양이냐고. 경계심이 너무 쉽게 풀리는 거 아냐?

       

       시우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최대한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기 시작했다.

       

       샤워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아르테는 내가 근처에 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부디 아르테의 증상이 나아지거나, 아니면 조금 더 경계심을 가졌으면.

       

       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히로인(실눈)

    여러분 아르테 러프가 나왔거든요?

    진짜 와

    제 취향을 듬뿍 담다못해 퍼부어서 그런가

    구도부터 헤어스타일, 입고있는 옷에 표정까지

    전부 제 취향으로 했더니 너무 꼴려요 세상에···.

    상스럽지만, 발···아닙니다.

    어쨌든 이건 나만 볼거에요. 당신들은 완성본까지 기다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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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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