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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어야 할 시각.

        ​

        밤이 깊었지만 보육원에서는 때아닌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

        와글 와글 –

        ​

        “쟤들 좀 봐! 다쳤나 봐!”

        ​

        “쉿! 조용히 해야 해.”

        ​

        “맞아, 제이니 언니가 함부로 남에대해 말하는 거 아니랬어.”

        ​

        아주 똑 부러지는 여자아이였다.

        ​

        한순간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으니.

        ​

        그리고 제이니라고 불린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일 것이다.

        ​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뒤에 아이들은…”

        ​

        사십이 넘어가는 인원이다 보니,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

        다들 상태도 안 좋았기 때문에 제이니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

        클로셀 영감님이 슬금슬금 내 옆으로 붙었다.

        ​

        “내 자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네만,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네.”

        ​

        사실 영감님의 말이 정론에 가까웠다.

        ​

        납치되어 있던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수색에 나설 것이다.

        ​

        결국에는 이곳을 찾아낼 확률이 크겠지.

        ​

        하지만.

        ​

        “괜찮아요.”

        ​

        아까부터 할머니의 시선이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

        내 몸주신인 할머니로 말하자면.

        ​

        아이를 점지 할 뿐만이 아니라, 잘 자라게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는 신령님.

        ​

        자꾸만 혀를차고 싶어지는 걸 보면, 상당히 안타까워하는 게 분명하리라.

        ​

        “그럼 되었네. 따로 필요한 도움은 없는가?”

        ​

        “으음…”

        ​

        고민하고 있을 때 제이니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

        아주 당찬 표정을 하고서는 말이다.

        ​

        “아이들이 아픈 건 알겠어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도요. 여기오는 아이들은 다 사정이 있으니까요.”

        ​

        다시 말을 시작하려던 제이니가 돌연 허리에 손을 얹었다.

        ​

        “헬렌? 먼저 스튜를 데워줄래?”

        ​

        “네에!”

        ​

        삼삼오오 모여 어딘가로 달려가는 아이들.

        ​

        아마 내 뒤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줄 스튜인 것 같았다.

        ​

        제이니가 목을 가다듬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아이들을 한 번에 다 받는 건 불가능해요.”

        ​

        나는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는듯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어떻게든 해볼게요.”

        ​

        갈색 머리에 진한 눈썹.

        ​

        오뚝한 콧대와 두툼한 입술까지.

        ​

        심지어 눈마저 사슴을 닮아 있었다.

        ​

        관상이 아주 좋았다.

        ​

        “흐음….”

        ​

        큰 대운 같은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

        ​

        아마 운수가 터질일도 없을 것이다.

        ​

        옆에 아이들에게 죄다 나눠 주고 있었으니까.

        ​

        “기특한 사람이네.”

        ​

        “네?”

        ​

        심지가 대나무처럼 곧은 사람.

        ​

        그것도 아주 좋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

        “여기로 온 이유가 있었네요.”

        ​

        “저기요! 이상한 말만 하지 말고…”

        ​

        “복 받으실 거예요. 으음, 아마 바라는 형태로 찾아올 것 같네요.”

       

       제이니가 바라고 있는 형태조차 아름다울 것 같았다.

       

       마음이 푸근해져 오는 것이 할머니께서도 마음에 들어하는 듯 했다.

        ​

        나는 곧장 품을 뒤져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

        “기다려보세요.”

        ​

        스윽 –

        ​

        짧게 썼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도움이 되리라.

        ​

        “음…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는 게 좋겠지? 루나야.”

        ​

        “아우?”

        ​

        “잠깐 손 좀 줘볼래?”

        ​

        ***

        ​

        알루어드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

        전날 밤에 클로셀에게 연락을 받았다.

        ​

        목적지는 수도이며 하르프왕국의 국경에 들어섰다고.

        ​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부랴부랴 움직이던 알루어드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

        “…또!”

        ​

        어디가 아픈 건지 입술이 새파래진 아이.

        ​

        두 눈이 움푹 파인것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았다.

        ​

        “꼬마야, 괜찮니?”

        ​

        흐린 눈이 알루어드에게로 향했다.

        ​

        “신관님…?”

        ​

        “그래, 나는 일리아님을 모시는 신관이란다.”

        ​

        “저…전 돈이 없어요.”

        ​

        흠칫.

        ​

        오늘만 벌써 몇 번을 들었던 말일까.

        ​

        이 아이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다른 꼬마를 치료해주고 오는 길이었다.

        ​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저것이었다.

        ​

        돈이 없다는 말.

        ​

        어떻게 어린아이들이 아픔보다 돈을 먼저 걱정한다는 말인가.

        ​

        “일리아시여…”

        ​

        다 그간의 업보이리라.

        ​

        “꼬마야, 신성력을 쓰는데는 대가가 필요 없단다.”

        ​

        원래 이런 곳에 쓰라고 받은 힘인데, 따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

        “정말요…?”

        ​

        “대가가 있어도 신관들이 치를테니 걱정 마렴.”

       

       더 대화를 나누는 것 보단 먼저 행동하는게 좋으리라.

        ​

        알루어드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동시에 창백했던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파랬던 입술도 점차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

        “하아…따듯해요.”

        ​

        “왜 여기에 혼자 있니?”

        ​

        알루어드의 물음에 아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

        “아픈거 알면 누나가 걱정해요.”

        ​

        “허어…”

        ​

        벌써 배려심이 이렇게 깊은 아이라니.

        ​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퍽 아름다웠다.

        ​

        알루어드의 눈빛이 한없이 따듯해졌다.

        ​

        “저기, 신관님! 혹시…”

        ​

        “말해 보렴.”

        ​

        “아픈 친구들이 더 있는데 도와주실수 있나요?”

        ​

        “같이 가자꾸나.”

        ​

        알루어드가 아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나 또 이렇게 이어졌다.

        ​

        아픈아이에게서 아픈아이에게로.

        ​

        어떻게 가는 길 마다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

        “설마…”

        ​

        아이를 따라가던 알루어드가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

        “간밤에 불이 났다지 뭔가?”

        ​

        “안에 있던 식량들이 홀라당 타버렸다더군.”

        ​

        “그것이 다가 아닌 것 같네. 내 알고 지내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

        소란스럽게 오고 가는 말들.

        ​

        알루어드는 단번에 눈치챘다.

        ​

        저 사건에 크리스가 연관되어 있음을.

        ​

        ‘역시,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

        길을 따라 외곽으로.

        ​

        그렇게 한참을 더 간 알루어드가 도착한 곳에선 시끌벅적한 식사준비가 한창이었다.

        ​

        “언니! 빵이 모자라요!”

        ​

        모두가 이른 아침인데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칼슨씨가 더 가져다주기로 하셨어!”

        ​

        “누나! 어제 온 친구가 열이 많이나요!”

        ​

        열이 난다는 말에 팔을 걷어 붙이고 달려가는 여인.

        ​

        알루어드 역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

        “교단에서 나온 신관입니다.”

        ​

        무언가 말을 하려는 여인.

        ​

        알루어드가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

        ​

        “돈은 없어도 됩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

        스으으 –

        ​

        번쩍 –

        ​

        눈 부신 빛이 한동안 아이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

        조금씩 편안 해지는 호흡.

        ​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났다.

        ​

        “감사해요. 신관님이 아니었다면 곤란했을거예요.”

        ​

        “아픈 아이들이 더 있습니까?”

        ​

        알루어드가 바쁘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

        번쩍 –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

        학대를 당한 흔적마저 보였다.

        ​

        보아하니 오갈 곳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

        ​

        아까부터 언니라고 불리던 여인이 알루어드의 앞으로 다가왔다.

        ​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

        “무슨 일이십니까?”

        ​

        “느끼하게 생긴 사람이 오면 건네주라고 했어요.”

        ​

        “…?”

        ​

        알루어드가 황당한 얼굴로 쪽지를 건네받았다.

        ​

        자기를 보고 느끼하다고 표현할 사람이 한 명 떠오르기는 했다.

        ​

        종이를 향해 고개를 내린 알루어드는 이내 그 사람이 크리스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

        – 최선을 다해 도울 것, 보호 필요.

        ​

        짧은 글귀밑에 적힌 크리스라는 이름.

        ​

        그리고 찍혀진 작은 손 모양.

        ​

        “…루나님?”

        ​

        앙증맞은 손자국이 쪽지에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

        “제가 제대로 드린 게 맞나요?”

        ​

        “맞습니다.”

        ​

        주변을 훑어본 알루어드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

        “지금은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

        경비로 사용하려고 가져온 30실버.

        ​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많아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리라.

       

       이럴 줄 알았다면 여유있게 챙길 것을.

        ​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

        잠시 생각하던 알루어드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

        파앗 –

        ​

        “알루어드입니다.”

        ​

        – 알루어드경! 말씀하십시오.

        ​

        “하르프 왕국내에 있는 신관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국경과 가장 가까운 곳에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

        크리스를 따라다녔던 알루어드는 직감할 수 있었다.

        ​

        이것이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

        ‘합류가 늦어지겠구나.’

       

       부디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이것이 맞기를.

       

       “일리아시여…”

        ​

        ***

        ​

        부스럭 –

        ​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다.

        ​

        피곤하지만 어쩌겠는가.

        ​

        다 내 팔자인 것을.

        ​

        스윽 –

        ​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잠들어 있는 세레나가 보였다.

        ​

        잡티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

        그림 같은 이목구비와 선홍빛 입술.

        ​

        잠들어 있어서 그런지 차가운 얼굴이 조금은 부드럽게 바뀌어 있었다.

        ​

        세레나를 구경하던 나는 무언가 허전함을 깨달았다.

        ​

        “…음?”

        ​

        세레나와 나 사이에 잠들어 있어야 할 루나가 사라진 것이다.

        ​

        “…?”

        ​

        벌떡 –

        ​

        몸을 일으킨 나는 입을 떠억 벌리고 말았다.

        ​

        작은 몸 하나가 침대 위에 서 있었다.

        ​

        루나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

        “커쪄.”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 진짜로 아픈거였네요.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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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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