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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리세는 한참을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꼬리를 투명하게 만들고 몸을 돌렸다. 고급 참빗으로 꼬리를 손질해주고 있던 나루미는 갑자기 꼬리가 사라졌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참빗에 끼인 털을 조심스럽게 잘 모아서 깨끗한 천에 감쌌고, 그것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작은 상자에 잘 담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리세는 작은 진동이 느껴지자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 러시아에서의 일이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다. 문제는 없느냐? 』

         

       리세는 자신에게 연락이 온 것이 행복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변을 보냈다.

         

       『 문제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신주님께서 주신 인형에 푹 빠져 있어서 여성 관련 추문으로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일도 없어졌어요. 원로님이 힘을 써주셔서 야쿠자들도 많이 소탕했습니다. 신사는 두 곳 다 어느 정도 돌아가고는 있지만, 아버지와 요시아키 신관님이 다른 곳에 관심을 보이는지라 간신히 현상유지만 되고 있습니다. 』

       『 심령 스폿에 관한 것은? 』

       『 총 5곳을 확보했습니다. 건설사를 껴서 토지와 건물을 구입하고 경비를 세워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신주님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금줄을 쳐서 안의 존재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결계를 쳤어요. 』

       『 신사 분점을 내는 것은? 』

         

       리세는 나루미를 흘낏 쳐다보았다.

         

       “나루미.”

       “네, 아가씨.”

         

       시녀가 입을법한 옷을 입은 나루미는 공손하게 리세의 말에 답해주었다.

       그 행동은 공손했고, 어투는 공경이 가득했지만, 표정만큼은 무표정한 것이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 보였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 질문에 나루미는 잠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행복합니다.”

         

       리세는 그 대답을 듣고 새타니를 불러 그녀에게 붙였다.

       제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한 새타니는 그녀의 곁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나루미의 곁을 맴돌기도 하고, 벌레가 나무를 기어 올라가듯 팔다리를 놀리며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가 머리에 물구나무서기도 했다.

         

       그렇게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던 새타니는 히죽 웃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고는 또박또박 입을 움직여 말하길.

         

       아.

       니.

       야.

         

       그 모습에 리세는 표정을 굳히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나루미의 턱 끝에 손가락을 올려 들어 올리곤, 무표정한 나루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진짜요?”

       “네. 행복합니다.”

       “무엇 덕분에 행복한가요?”

       “신주님을 모실 수 있어서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듣기만 한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으로도,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이라도 볼 법한 어투. 하지만 리세의 시선 밖에서 나루미의 주먹 쥔 손이 살짝 떨리며 그녀의 감정을 일부나마 밖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행복하다?”

       “네. 훌륭하신 분을 모신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그녀의 말에 리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시선을 위로 향했다.

         

       새타니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게다가 또박또박 느리게 입을 움직이던 아까와는 다르게 리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를 원망하고 있어.”

       “신주를 원망하고 있어.”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을 원망하고 있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복수를 원해.”

       “너를 질투하고 있어.”

       “너를 질투하고 있어 강한 사람에게 아양을 떨어서 과분한 힘을 얻은 너를 질투하고 있어 하찮은 네가 갑자기 자신의 위에 서 있는 것을 질투하고 화내고 있어 이 여자는”

       “이 여자는.”

       “불만이”

       “가득해.”

         

       리세는 새타니의 목소리에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행복도 있을 수 있겠네요.”

       “네.”

       “훌륭한 분을 모신다. 그래요. 저는 신주님을 모시기로 맹세했고,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해서는 많은 걸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은 분명 훌륭한 분이었어요.”

         

       리세는 슬쩍 나루미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과격하지만요. 적어도 그분은, 네. 저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으니, 훌륭한 분이 맞겠지요.”

       “물론입니다.”

         

       나루미는 계속 무표정하게 리세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무표정에 회답하듯, 리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당신에게 신주님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옅게 그려진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추운 겨울날 내린 눈이 채 얼지 못한 물에 녹아 사라지듯이, 냉기를 품은 바람이 앙상한 나무를 스쳐 지나가듯이.

       다만 얼지 못한 물에 떨어진 눈이 물을 얼음으로 바꾸고, 냉기를 품은 바람이 그 흔적으로 나무를 꽁꽁 얼리듯 싸늘함은 그대로 남아 나루미를 얼어붙게 했다.

         

       “거짓말쟁이.”

       “네?”

         

       리세의 눈은 공허했다.

       가진 것을 잃고 허무해진 나루미보다도 깊었고, 바라보다 보면 심연에 빨려 들어갈 듯 공허함이 가득 돌고 있었다. 다만 그 눈 가장 안쪽에는 탁해진 빛이 있어 오직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며 비는 광신도와 흡사했다.

         

       리세는 공허한 눈으로 나루미를 마주 보다가 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슬라임은 몸을 푸릉 한 번 떨더니 몸에서 가시 하나를 뽑아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끼기기긱!

         

       리세의 손에 들린 가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신력이 집중되었다.

         

       “당신은 저를 행복하지 않게 했어요. 사람들에게 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흘리고, 저와 대화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간신히 누군가와 친해지겠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 압박을 줘서 저와 사이가 멀어지게 만들었죠. 그래서 저는 다른 무녀와 친하지 않아요. 아니, 친해질 수가 없었어요.”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반성하고 있.”

       “그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무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죠.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고,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가 내려주는 신력은 저에게는 공기나 다름없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요. 어쩌면 저의 이런 태도가 당신에게는 거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든 자기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 수 있고, 그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그래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나루미는 홀린 듯 리세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그저, 리세의 손에 모이는 어마어마한 신력의 여파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저도 불만을 표출할 자유를 지금 행사하고 싶어요. 그래요. 지금 전 당신에게 불만이 있어요.”

       “네, 네?”

       “당신은 모실 신을 잃어버렸어요. 그랬기에 당신은 불행해졌죠.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옛날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고. 그 기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행복을 찾기를 원한다고. 같이 신주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악감정을 묻어두겠다고 말이에요. 기억하죠?”

       “네, 네.”

       “그런데 왜 신주님의 배려가, 제 배려가. 왜 일방통행으로 보이는 걸까요?”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 리세에게 묘한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신주님을 모시고, 새로운 신을 모시고. 오직 그것만 한다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당신은 마음을 다해 새로운 신을 모시겠다고, 신주님을 돕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네요.”

       “자, 잠깐!”

       “저는 신주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잠시 떠나계신 동안 제가 잘 관리를 하고 있겠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어디 빠지는 것 없이 신경을 쓰겠다고. 그런데 저는 신주님의 무녀가 될 후임조차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네요.”

       “잠깐, 리세! 내 말 좀 들어봐!”

         

       나루미는 다급하게 외쳤다.

       리세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사람에게 행했던 일을 따라다니면서 보았기에, 지금 그녀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것이다.

         

       “리세, 아니 아가씨!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래요?”

         

       리세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겠네요.”

         

       푸욱!

         

       리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가시를 나루미의 가슴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새타니는 제 모습을 드러내고는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뚝 하고 멈춰 서더니 리세를 보며 실실 웃었다.

         

       “갔.”

       “다.”

       “올.”

       “게.”

         

       새타니는 기괴할 정도로 웃으며 기절한 나루미의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더니 제 머리를 나루미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새타니의 머리는 어린아이의 크기이긴 해도 입에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지만 마치 공기가 쪼그라든 풍선을 쑤셔 넣듯이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나루미의 입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루미의 목이 꿀렁꿀렁 움직이고, 몸 안에 뱀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나루미의 가죽이 울룩불룩 움직였다. 그렇게 새타니는 나루미의 몸 안에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리세는 진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 죄송합니다. 아직이에요. 하지만 제가 책임지고 교육할게요. 』

       『 믿겠다. 』

         

       리세는 돌아온 문자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네. 믿어주세요. 저도 믿을게요.”

         

         

         

         

        * * *

         

         

         

         

       러시아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호텔의 분위기는 따스했다.

       벽난로의 앞에서 그 온기를 쬘 때 노곤해지듯, 넓디넓은 스위트룸에는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 풍기고 있었다.

         

       엘라는 자신도 모르는 언니가 생겼고, 아나스타시아는 이리저리 쏘다니며 말썽을 부리고 있었다. 이아린은 자신이 귀여워할 사람이 늘어났다며 좋아하며 둘에게 엉겨 붙었다.

         

       떠들썩한 그 모습은 그야말로 행복을 그대로 구현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닌 법.

         

       “이제는 너희의 차례다. 의식을 할 것인즉, 오늘 하루 화식을 금하고 목욕재계를 통해 몸을 정갈하게 하거라.”

         

       진성은 자신이 러시아에 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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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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