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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찹쌀 감자떡을 기다란 젓가락으로 하나씩 꺼내 커다란 새 접시에 옮겨 담았다. 

       

       꿀꺽.

       꼴깍.

       

       옆에서 실비아와 아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접시를 낮은 간이 탁자 위에 올렸다. 

       

       “지금은 뜨거우니까 천천히 후후 불어서 먹어요. 특히 아르는 더 천천히 먹어야 돼.”

       “쀼!”

       

       아르는 일어서서 뜨거운 감자떡들을 바라보며 애가 타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나는 김을 뿜고 있는 감자떡들을 스윽 훑어 보았다. 

       그리고 곧 웃음을 터뜨렸다. 

       

       “푸흣. 근데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어떤 게 누가 빚은 떡인지 바로 알겠네요.”

       “제가 좀 완벽하게 빚긴 했죠?”

       “쀼!”

       

       실비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빚은 감자떡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완벽하긴 해요.”

       

       정확히 말하면 실비아가 빚은 떡은 완벽하게 동글동글한 떡이었다. 

       

       심지어 한 번 꾹 눌러 모양을 망가뜨리고 안에다가 꿀을 집어 넣은 떡도 다시 겉을 완벽하게 빚어 마치 커다란 구슬처럼 동그랗게 만들었다. 

       

       한편 내가 빚은 떡은 딱히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반죽을 손으로 꾹 쥐어 손가락의 자국이 남아 있는 흔하디 흔한 모양이었다. 

       

       ‘맛만 있으면 되지, 뭐.’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고 동의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보기에 나쁘지도 않으니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송편 만들 때도 이런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아르가 빚은 떡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건 나름 동글동글했고, 어떤 건 마치 주사위처럼 육면체에 가까웠고, 어떤 건 가래떡처럼 길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눈덩이를 뭉쳐 놓은 것 같은, 사람 주먹보다도 큰 커다란 떡이었다. 

       

       사실 찜기에 넣을 때부터 눈에 띄긴 했는데, 아르가 나름 공들여 만든 것 같아서 내버려둔 떡이었다. 

       

       저렇게 다른 떡보다 훨씬 커다랗게 만들어 버리면 속까지 익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저 떡을 가운데에다 놓고 쪘다. 

       

       ‘아무래도 아르는 떡을 마음대로 빚어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모양이야.’

       

       나야 떡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으니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아르는 빚는 것 자체를 하나의 놀이라고 여긴 듯했다. 

       

       ‘아주 좋은 현상이지.’

       

       이렇게 막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해 봐야 이게 나중에 다 추억으로 남는 거니까. 

       

       나야 이미 동심 같은 건 파괴된 지 오래니, 아르를 보며 동심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쀼우, 쀼?”

       “응, 아르가 만든 떡이 제일 개성 있고 멋있네.”

       “쀼웃!”

       

       아르의 ‘레온, 아르 떡 잘 만드러써? 잘해써?’라는 물음에, 나는 웃으며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쀼우?”

       “그래. 이제 먹어도 되겠다.”

       

       목적이었던 칭찬을 받아 낸 아르는 ‘이제 머거도 대? 우응?’ 하고 애타는 듯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쀼우우웃!”

       

       아르는 오늘 들은 쀼 소리 중에 두 번째로 하이톤인 쀼를 내며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나와 실비아도 얼른 각자가 빚은 떡을 하나씩 집었다. 

       

       “으음! 역시 쫄깃쫄깃하니 맛있네요.”

       

       나는 쫄깃한 찹쌀이 섞인 떡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감자떡이라 솔직히 맛 자체는 조금 심심한 편이었지만, 감자가루의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점점 특유의 단맛이 살아났고 무엇보다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와, 진짜 엄청 쫄깃해요. 오오, 게다가 꿀 당첨이에요!”

       

       동그란 구슬감자떡을 먹던 실비아의 눈동자에 생기가 핑 돌았다. 

       

       “너무 맛있어요…. 감자떡이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는데….”

       

       실비아는 감동을 받은 듯 감자떡을 하나 더 집어 먹었다. 

       

       “오, 저도 이번엔 꿀 당첨이네요.”

       

       나도 어서 꿀 감자떡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가운데 부분의 색이 더 어두운 떡을 찾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을 문 순간, 톡 하고 터져 나오는 따끈따끈한 꿀이 곧 입 안을 물들였다. 

       

       ‘크으…. 이 맛이지.’

       

       안 그래도 씹는 것만으로도 쫄깃쫄깃해서 몇 개라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있는 떡인데, 거기에 꿀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최상의 맛이었다. 

       

       ‘반죽에 따로 설탕을 넣지 않은 게 오히려 신의 한 수였어.’

       

       지금 한 반죽은 설탕을 조금도 첨가하지 않고 감자가루와 찹쌀가루, 뜨거운 물만으로 만든 것.

       

       그래서 자칫 심심한 맹떡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오히려 감자 본연의 맛이 은은하게 묻어 나오는 데다가 그 심심하고 은은한 맛이 꿀의 단맛을 적당하게 중화시켜 주고 있었다. 

       

       “아르야, 아르도 꿀 든 걸 한 번…. 응?”

       

       꿀 감자떡에 감탄한 나는 아르는 뭘 먹고 있나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쀼움. 쀼우움.”

       

       아르는 시작부터 자기가 만든 아주 커다란 감자떡을 안고 한 입씩 챱챱 베어 물고 있었다. 

       

       꿀이 든 것도 아닌데, 아르는 왜인지 매우 열중하며 감자떡을 쉴 새 없이 먹고 있었다. 

       

       ‘뭔가….’

       

       진심으로 맛있어서 쉴 새 없이 마구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에, 나는 아르를 불렀다. 

       

       “아르야?”

       “쀼?”

       

       그제야 아르는 정신을 차린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먹던 걸 꿀꺽 삼킨 뒤, 나에게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커다란 감자떡을 보여 주며 환하게 웃었다. 

       

       “쀼우우! 쀼우!”

       

       아르는 ‘레온! 이거 바! 먹어두 먹어두 안 줄어드는 거 가타! 헤헤.’라고 말했고.

       

       “쀼우웃!”

       

       이어서 ‘아르가 마니마니 먹어두 레온 줄 감자떡 마니 남아 이써! 레온두 어서 머거 바!’라고 말하며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와 자신이 먹던 감자떡을 내밀었다. 

       

       “아르야….”

       

       그제야 아르가 왜 이렇게 커다란 감자떡을 만들었는지 깨달은 나는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르는 그때 일이 아직도 마음에 한구석에 남아 있는 거야.’

       

       레어에서 나왔을 때 내 주머니 안에 있던 손바닥만 한 작은 감자떡. 

       아르는 내가 주는 그 감자떡을 받아 먹다가 어느새 손가락 두 마디 크기밖에 남지 않은 걸 보고 나에게 먹으라고 밀어냈었다.

       

       그때 아르도 배가 많이 고팠을 거고, 남은 감자떡을 나 안 주고 혼자 다 먹었어도 배를 채우기엔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는 그럼에도 자신이 정신없이 감자떡을 받아먹다가 내가 먹을 게 조금밖에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 것이었다. 

       

       ‘그때 풀지 못했던 한을 지금 풀고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흔히 어렸을 때 겪은 결핍은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들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사고 싶은 신발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든 부모님이 비싼 신발은 낭비라며 못 사게 했든, 어떤 이유로 사지 못했던 사람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었을 때는 필요 이상으로 신발을 마구 사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발을 마구 산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신발이 딱히 필요하지 않은데 자꾸 사게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었던 적이 있었지.’

       

       내가 게임 하는 걸 절대 두 눈 뜨고 보지 못했던 아빠 밑에서 자랐던 나는 어렸을 땐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욕구를 해소했고, 마침내 자취를 하고 알바를 하게 되면서 하지도 않는 게임을 마구 사들인 적이 있었다. 

       

       아르는 자기가 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그리고 나에게 주기에도 너무 조금밖에 남지 않은 감자떡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이제 자신이 감자떡을 마음껏 만들 수 있게 되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나에게도 당당히 먹으라고 내밀 수 있는 커다란 감자떡을 직접 만든 것이었다. 

       

       ‘고작 감자떡이 뭐라고….’

       

       나는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 잘 먹이지 못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나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줄어들지 않는 커다란 감자떡을 내미는 아르를 보니 더더욱 감정이 북받쳐 올라 왔다.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삼켰다. 

       

       아르랑 실비아 씨 앞에서 이런 걸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으응, 아르야. 먹어 볼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르가 내민 쫀득한 감자떡을 크게 베어 물었다. 

       

       내가 큼지막하게 떡을 베어 물자 아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쀼우?”

       

       기대에 찬 아르의 쀼 소리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맛있어. 아르가 직접 만든 거라 그런지 더 맛있네.”

       “쀼웃!”

       

       내 칭찬에 아르의 꼬리가 바닥을 토도독 두드렸다. 

       

       나는 아르가 더 먹으라며 자꾸만 감자떡을 내밀 때마다 군말없이 받아 먹었다.

       

       결국 내가 그 큰 감자떡을 다 먹고 나서야 아르는 만족한 듯 내 얼굴을 껴안았다. 

       

       나는 이걸로 아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풀렸기를 바랐다. 

       

       ***

       

       “쀼우움!”

       

       그 이후 아르는 내가 빚은 것, 실비아가 빚은 것을 가리지 않고 집어 먹었다.

       

       “쀼움!”

       

       그중에서도 꿀이 든 감자떡을 먹을 때마다 아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꼬리를 떨었다. 

       

       반면 나는 아르가 준 커다란 감자떡을 먹느라 배가 불러 고작 몇 개를 더 먹은 후 잠시 쉬어야 했다. 

       

       따뜻한 불 옆에 앉아 있는데 문득 저편에서 마차를 정리하고 있는 마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분명 버트 씨였지.

       

       “버트 씨! 여기 와서 같이 드세요!”

       “아이고, 전 괜찮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많이 먹어도 남을 것 같아서 그래요. 아르야, 이것 좀 갖다 드릴래?”

       “쀼우!”

       

       나는 작은 접시에 떡 몇 개를 따로 덜어 주었고, 아르는 접시를 들고 도도도 뛰어가 마부에게 내밀었다. 

       

       “어쿠, 이렇게까지…. 그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쀼!”

       

       우리는 그렇게 배불리 떡을 먹고, 간단히 식기를 정리한 뒤 텐트로 들어왔다. 

       

       후두두둑.

       

       마침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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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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