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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3분?”

         

       말렉이 얼굴을 찡그리며 코웃음 쳤다.

         

       “진 바렌베르크. 네가 강한 건 알고 있다만,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뿌득. 말렉의 주먹에 핏줄과 힘줄이 가득 올라온다. 압축되고 또 압축되었던 팔뚝의 우락부락한 근육이 꿈틀거린다.

         

       “내 이름은 말렉. 위대한 사막의 전사이자 모옥의 마스터. 비록 여기서 패배해 목숨을 잃더라도 너에게 치명상은 안기고 가겠다.”

         

       우우웅…! 주변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응?’

         

       아까와는 명백하게 다르다. 성질을 발현시킨 건가? 나는 칼자루를 쥐고 검신을 옆으로 세웠다.

         

       “후우욱…!”

         

       쪼그라들었던 폐에 공기가 단번에 채워지는 소리. 뭔가 준비하고 있다.

         

       ‘선택지는 둘.’

         

       알 수 없는 저 기술을 사용하기도 전에 가서 베어버릴지, 아니면 방어에 집중할 것인지.

         

       지금까지 놈이 보여준 기술들은 전부 회피와 반격에 집중됐다. 만약 저 기술도 반격형 기술이라면? 내가 먼저 달려들 걸 노리고 있는 거라면? 전자는 너무 위험성이 크다.

         

       ‘후자가 맞는 선택인가?’

         

       방어에 집중한다 해도 안전한 건 아니다. 내가 오러를 폭발시켜 일대를 날려버린 것처럼 큰 기술을 사용하는 걸 수도 있잖나.

         

       ‘경험이 많았어야 알지. 그냥 직감에 맡길까?’

         

       내가 고뇌하며 선택지를 고르는 동안 말렉의 입에서는 공기를 계속해서 흡입하는 소리가 났다.

         

       “코호오오옥…!”

         

       말렉의 전신이 팽창한다. 근육 자체가 커지고 있다.

         

       ‘역시 큰 기술인가?’

         

       직감으로 선택한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베어낸다.

         

       쿠궁─!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오른손에 들린 검을 높게 든다. 반으로 갈라버린다는 생각으로 내려찍는다.

         

       “흐읍…!”

         

       검신이 쇄도해 말렉의 머리에 맞닿을 무렵. 그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픽 웃었다.

         

       “글래디에이터.”

         

       파삭! 오러가 담긴 검을 내리찍으니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

         

       말렉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무수히 많은 별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비추고, 바닥은 다리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모래로 가득하다.

         

       여기는, 사막이다.

         

       “어서 와라, 내 세상에.”

       “…….”

         

       나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건 없다.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울퉁불퉁하게 올라온 모래의 산뿐.

         

       “이건 뭐지?”

       “고유 결계. 주술의 일종이다.”

       “…….”

         

       고유 결계라.

         

       게임을 할 때도 이런 능력을 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연출을 위한 그래픽 반전인 줄 알았는데 주술이었을 줄이야.

         

       “이 세상에 떠도는 공기는 너에겐 독이 되고 나에겐 보약이 되지. 내 오러에 감응해 더 강력한 힘을 내보낼 거고, 너의 오러는 흩어져 덧없이 약해질 거다.”

         

       한 마디로 홈그라운드로 끌고 왔다는 거군. 나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검날을 세웠다.

         

       “오러에 주술까지. 모옥의 마스터 자리에 앉으려면 다재다능해야 하는 건가?”

         

       내 농담에 큭큭거리며 웃은 말렉.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모옥의 마스터지. 애초에 우리 길드에 존재하는 주술사들은 전부 내가 키운 거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이 모옥을 쌓아 올렸다는 거 아닌가.

         

       “대단하긴 하군. 뭐, 이게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휙. 사선으로 검을 쭉 뻗은 채 전신에 흐르는 혈류를 가속시켰다. 오러를 활성화하고 검 끝에 집중시킨다.

         

       “그럼 가지.”

         

       파악! 모래를 박차며 말렉이 달려들었다. 그에 맞춰 검을 휘두르려 했건만…….

         

       “!?”

         

       물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면 방어할 수가…!

         

       콰앙─!

         

       “커헉!”

         

       말렉이 내지른 주먹이 왼쪽 턱을 강타했다. 동공이 위로 올라가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직 많이 남았어!”

         

       터엉─! 터엉─! 터엉─!

         

       이어지는 연속기. 물 흐르듯이 내지르는 권격이 내 몸 이곳저곳을 강타한다. 방어하려고 몸을 움직여도 한 박자가 늦고 만다.

         

       “크핫! 진작에 이럴 걸 그랬군!”

         

       터엉! 터엉! 푸른색의 오러를 띈 주먹이 쉴 틈 없이 들어온다. 막 빙의한 시점을 제외하면 이런 고통은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커헉!”

         

       기침과 함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마무리다!”

         

       뻐억─! 말렉의 뒤돌려 차기. 복부가 움푹 들어가며 입이 벌려지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와 동시에 몸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치이익- 모래밭을 나뒹굴었다.

         

       “커흑, 컥!”

         

       피가 멈추지 않는다. 내장이 파열된 건가?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크윽…!”

         

       당장이라도 나를 혼절시킬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 바렌베르크를 죽이면 업적이 하나 추가되겠군.”

         

       큭큭거리는 웃음을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말렉.

         

       ‘큰일이군.’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검 끝으로 모은 오러는 흩어졌고 호흡하는 것조차 힘들다.

         

       “후우.”

         

       진 바렌베르크가 된 이후로 처음 겪는 목숨의 위기다. 처음 빙의하고 제국의 병사들과 싸울 때와는 현저히 다른 상황.

         

       나는 눈을 부릅뜨며 말렉을 바라봤다.

         

       “어이쿠, 그렇게 봐도 나오는 건 없어. 아, 참고로 이 결계는 나 아니면 네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아.”

         

       그런 효과까지. 말도 안 되는 주술이다.

         

       ‘주술 너무 사기적인 거 아니야?’

         

       게임 밸런스에 의문이 들 정도로 불합리한 힘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지금 불평불만이나 내뱉을 시간은 없다.

         

       후우, 나는 피에 절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너 아니면 내가 죽어야 이 결계가 풀린다고 했나?”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끝장을 봐야 한다는 소리지.”

         

       이 결계 속에서 저놈을 이길 방법은 없다. 집중이 조금이라도 깨지는 순간 오러는 흩어지고 몸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인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내 오러의 성질은 허무로 만들어버리는 소멸.

         

       이 결계 자체도 파괴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 일대를 지워버렸던 일격.

         

       ‘오러를 모은다.’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검 끝으로 모인다.

         

       화아악! 거대한 푸른 불꽃이 몸을 감싼다. 오러가 흩어지는 속도 이상으로 오러를 모은다. 집중만 깨지지 않으면 돼.

         

       “어딜!”

         

       말렉의 주먹이 눈앞으로 쇄도한다. 방어는 포기. 결계 파괴에 몰두한다.

         

       터엉! 터엉! 터엉! 주먹이 온몸 곳곳을 강타한다. 반동이 전해져 전신을 찌릿하게 만든다. 나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미친놈이…!”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말렉이 권법까지 사용해가며 내 몸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터엉! 터엉! 온몸이 파괴되는 고통.

         

       “이 미친 새끼가! 결계의 힘을 받고도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뭐야!”

         

       빠악! 빠악! 말렉의 이어지는 권법 폭격. 그러나 검 끝에 모이는 오러는 끊이지 않았다.

         

       “이봐. 아까 둘 중 하나가 죽어야 결계가 풀린다 했지?”

         

       말렉의 얼굴에 사색이 돌며 분칠이라도 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미친, 미친!”

         

       거대한 오러 앞에 말렉이 짓눌려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우우웅! 검 끝으로 모였던 오러가 초신성과 같이 빛났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여기서 그런 순수한 오러를…!”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칼자루를 역수로 쥐었다.

         

       “네가 만든 결계가 처참히 부서지는 걸 봐라.”

         

       푸욱! 모래 사이로 검신이 들어가.

         

       쿠구구구구──!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더니.

         

       콰과과과─!

         

       지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설마, 주술로 만든 결계를…!”

         

       붕괴한 지면 사이사이로 화산이 폭발하듯이 푸른 불꽃이 터져 나왔다.

         

       “자, 봐라. 지금까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게 부서지는 광경을.”

         

       삐이───!

         

       고막을 관통하는 듯한 이명과 함께.

         

       푸르른 불꽃이 사막 일대를 집어삼켰다.

         

         

       * * *

         

         

       “허억…!”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내 오러의 폭발을 정통으로 맞은 말렉은 전신이 찢겨버렸다.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게 대단한 수준.

         

       “…커헉!”

         

       울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렉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퉤.”

         

       나는 입안에 들어갔던 모래를 뱉었다. 이번에도 가공할 만한 오러가 모인 덕에 모든 부상이 치료됐다.

         

       “설마 사막으로 데려갈 줄은 몰랐네. 아이, 씨. 옷 안으로 모래 들어간 거 봐.”

         

       제복을 펄럭이며 털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모래알들.

         

       “어떻게… 너는… 제정신이지…?”

       “나?”

         

       말렉이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관에선 내가 제일 세니까.”

         

       터벅터벅. 검날을 돌리곤 천천히 걸어갔다.

         

       “꽤 괜찮았어.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만난 상대 중에 네가 가장 강했다.”

       “…미친… 새끼…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스각! 툭.

         

       쾌검이 낸 빛과 함께 말렉의 머리가 낙하했다.

         

       “후우.”

         

       진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주술이었다. 마법이 차단된 카자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우, 씨. 여태껏 맞은 횟수보다 지금 맞은 게 훨씬 많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은 파열되고. 모옥 놈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다.

         

       ‘뭐, 어차피 오러로 다 회복돼서 상관은 없지만.’

         

       휙. 검에 묻은 피를 쳐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다 정리 됐으려나?”

         

       나는 케일과 라데아를 찾으러 기척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광장을 나와 무수히 많은 방이 있는 곳을 지나고, 겉보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길목에 들어서자.

         

       “끝난 건가?”

         

       케일과 라데아를 만날 수 있었다.

         

       “그쪽은?”

       “한참 전에 끝났다.”

       “카아락은 죽였나?”

       “그래.”

         

       케일은 “크흐흐.”하면서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진! 나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여태껏 허용되지 않았던 오러의 크기를 반동도 없이 버텼지!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었다! 그렇지 않나, 라데아?!”

         

       속사포를 내뱉었다. 아드레날린이 과다로 분비된 건가. 너무 흥분했는데.

         

       “그래요. 대단하더라고요.”

         

       짝짝. 손뼉을 마주하며 적당히 동조해주는 라데아. 한없이 기뻐 보이기에 나도 적당히 축하해주기로 했다.

         

       “어… 그래. 축하한다…….”

         

       케일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이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튼, 다른 길드원들까지 처리했나?”

       “빠지는 놈 하나 없이 다 처리했다.”

         

       고개를 끄덕이곤 라데아의 상태를 살폈다. 달리 상처는 없고. 케일이 일을 잘 처리해준 모양.

         

       “좋아, 이제 돌아간다.”

         

       거, 프란체한테 페델리안 사자 패 한 번 들려주기 어렵네.

         

       ‘그래도 이거면 됐어.’

         

       웬만한 처벌은 다 면제하며 반역을 꾀해도 한 번은 봐준다. 황실에서 내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특권이자 권력의 상징.

         

       본래는 제국 공신에게만 주는 것이지만, 나라는 존재를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페델리안 황제 패를 수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진 바렌베르크의 영향력은 컸으니까.

         

       “이제 바로 돌아가나요?”

         

       라데아가 물었다.

         

       “그래, 공녀님이 기다리시니까.”

       “사하라 관광 좀 하면 안 되나요?”

         

       얘는 또 뭔 소리래. 라데아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저 처음으로 타국에 온 거예요. 그리고 라이아 줄 선물도 가져가고 싶고요.”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야. 성녀랑 황태자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돌아가야지.”

         

       단호한 내 의견에 라데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러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조금만 관광하는 건 상관없지 않나? 돈은 모옥을 털어서 챙기고.”

         

       케일까지 동조했다. 이러면 나만 악덕 사장 같잖아.

         

       “…그래. 정말 조금만이다.”

         

       관광을 허락하자 한순간에 회복하는 라데아.

         

       “좋아요, 라이아의 선물도 사고 여기저기 들르면서 음식도 먹어보죠.”

         

       힘들어 죽겠는데 관광까지 하게 생겼다.

         

       ‘그래도 뭐, 하루 이틀이면 상관없겠지.’

         

       우리는 모옥의 사치품과 금품들을 털고 바깥으로 나갔다.

         

       돈지랄 좀 하다 가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전투씬은 이제 끝이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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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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