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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사실 학교의 ‘징계위원회’는 그 단어가 가진 무시무시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존나 별것도 없다.

        

       그도 그럴 게, 기껏해야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월급 정도는 걸린 징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당연히 재판과 비교하면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다.

        

       게다가 이 학교의 아이들은 전부 부잣집 아이들이다. 돈 많은 아이들끼리는 서로 알아서 서열이 정해지고, 일부러 그 서열을 깨려는 아이들은 잘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학교 내에서 교칙을 어겨서 받는 불이익보다, 서열을 깨서 졸업 후에 생기는 불이익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학교의 징계위원회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선생과 학생 간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진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선생은 뇌물을 받는 존재고 학생들은 뇌물을 주는 존재다. 실질적으로 뇌물을 건네는 인물이 학생들의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는 것은 학생들.

        

       ‘서열’로 따지자면 선생들은 학생보다 더 아래라는 것이다.

        

       분명 학교 바깥에서는 이름을 날릴 교사진들이 교내에서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업자득이긴 하다만.

        

       당연히 학교 내의 징계위원회 위상이 바닥일 수밖에 없다.

        

       열기 전에 교사들이 막을 가능성이 크고, 열어도 아무 의미도 없이 떠들다가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니까.

        

       ……‘원래는’ 그랬다.

        

       “아~ 좆같아서 학교 못 다니겠네~”

        

       책상 위에 당당하게 다리를 올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오른팔을 걸친,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양아치가 저런 소리를 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 양아치는, 이 학교에 입학해서 내 옆자리에 앉기 위해 십수억 원을 쏟아부은 양아치였다.

        

       사실, 서열은 기본적으로 돈의 많고 적음으로 이루어지지만, 나의 경우에는 특수한 경우였다. 단순히 재산 규모로만 서열이 정해진다면 이 학교는 그야말로 예사라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야 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작에서도 그렇긴 했지. 결말에선 결국 몰락하긴 하지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몰락한 걸까.

        

       예사라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학교를 쥐고 흔드는 수준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려울 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사라가 진짜로 자살에 실패하고 미쳐버려서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 아니면,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해서 어떻게든 두 번째 시도를 한 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말이 되긴 한다.

        

       그런데, 어떻게 예사라가 ‘몰락’할 수 있었을까?

        

       본인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자산만 200조다. 단순히 200조인 것이 아니라, 1년에 조 단위의 배당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언론이 미처 조명하지 못한 신탁자산과, 남들이 함부로 열람할 수 없는, 현금이 가득한 개인 계좌까지 가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예인수 전 회장은 자기 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최나경 회장을 완전히 믿지도 못했고.

        

       그래서 수많은 안전장치로, 예사라의 실질적인 재산이 최나경 회장보다 많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해둔 것이다.

        

       덕분에, 막말로 예사라가 마구 휘두른 주먹에 중소기업 몇 개 정도는 비명횡사해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중견기업이라도 몸을 숙여야 할 판이고, 대기업도 눈치를 봐야 하는 수준.

        

       교내에서 조 단위의 돈을 휘두르며 선생들을 물 먹이고 학생들을 처단하고 다녀도, 여전히 백조 단위의 돈이 남는다.

        

       회장이 버리는 것으로 예사라가 ‘몰락’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예사라의 기억이 최나경 회장에게 묶여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그만큼 망가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조차도 전부 예사라의 ‘계획’이었다거나.

        

       게임의 시점은 철저하게 유하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당연히 플레이어는 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예사라 루트에 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다시 현 상황으로 돌아와서.

        

       징계위원회는 진짜로 별 볼 일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학교라도 교내에 재판장을 만들어놓지는 않으므로, 그냥 빈 교실에 책상을 이리저리 짜 맞춰서 재판장 흉내를 낸 정도였다.

        

       솔직히 소꿉장난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 같기는 했지만,

        

       뭐, 그래서 오히려 지금 상황이 더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할까.

        

       “애들이 하나같이 날 무시하는데, 이거 따돌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있는 사람을 없는 거 취급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소희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건 동시에 내 상황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소희가 처한 상황이 지금 내 상황과 똑같았으니까.

        

       참고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교실에 다 들어오지도 못했다. 백 명 넘는 숫자였으니 교실에 다 못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굳이 교실이 아니라 강당에서 모였으면 될 일인데, 굳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하고 싶은 모양이다.

        

       당연하다. 신문에 나는 것은 둘째치고, 지금 선생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최나경일 테니까.

        

       그리고, 교실에 들어와서 가해자 자리에 앉아있는 녀석들은, 전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 태도를 보면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저 애들은 학교 내의 ‘돈 많은 애들’이 아니라는 것. 따돌림 가해자로 지목당한 아이들은 1학년 여학생의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한국 재산 순위 순위권에 들어있는 애들도, 중소기업 사장의 딸도, 그리고 성적으로 입학한 외부 입학생도 있었다.

        

       총알받이로 세우려면 얼마든지 뽑아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참고로 나는 가해자도 아니고 지목된 피해자도 아니지만, 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존재니까 들어와 있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

        

       나를 겁먹은 눈으로 흘끔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이 사람들은 모두 신소희에게 받은 돈을 무시하지 못해서 결국 위원회까지 열었다.

        

       그리고 ‘피해자’신소희는 나와서 증언을 하는 중이었다.

        

       다만, 소희가 하는 말은 엄밀히 따져서 본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고 있을 뿐이지.

        

       속이 시원할 정도로 불량한 태도와 목소리로 말이다.

        

       “에…… 흠, 그러니까.”

        

       이 교실에 모여있는 선생 중에서, 제일 중앙에 앉아있는 머리가 벗겨진 교사가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머리에 물을 줬던 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교장이나 교감은 나오지도 않았다.

        

       부르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무시한 걸까?

        

       그건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고.

        

       “그…… 신소희 양? 저희 교사진은, 분명히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징계 ‘위원회’라고 존댓말을 쓰는 건지, 아니면 소희 눈치 보느라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해요?”

        

       바로 조금 전까지 혼잣말이라는 핑계로 대놓고 교사들한테 반말을 쓰고 있던 소희가 존댓말로 물었다. 태도 때문인지 ‘내가 이번만은 봐준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있었다.

        

       ……우는 연기나 화난 연기는 더럽게 못 하면서 저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은, 역시 본질은 이렇다는 소리일까?

        

       뭐, 정말로 애들을 때리거나 돈을 뜯는 양아치는 아녔지만.

        

       “내가 겪은 일이 있는데, 오해?”

        

       “그것이…….”

        

       선생은 내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사실은 학생들도 소희 양과는 잘 지내보고 싶었다고…….”

        

       “…….”

        

       소희는 시선을 돌려서 가해자들이 줄줄이 앉아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나와 같은 반인 애들도 몇 명 정도는 보였다. 주로 내 근처에 앉아있던 애들이었다. 다만, 진짜 가까이 앉아있던 아이 중 몇 명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애들도 돈으로 갈려 나온 불쌍한 애들이겠지.

        

       아니, 딱히 불쌍할 것까지는 없나? 어쨌거나 가담자인 건 사실이니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거나,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거나,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거나……

        

       댈 수 있는 핑계야 당연히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예사라는 그것 때문에 무너졌으니까.

        

       저 아이들 중 전 학교에서 올라온 진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미, 미안해……!”

        

       그 가해자 학생 중 대표인지,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푹 숙이며 말했다.

        

       “우리는 네가 그렇게 상처받을 줄은 몰랐어! 멋대로 판단하고 거리를 둬서 미안……!”

        

       의외로 그럭저럭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였다. 적어도 소희가 보여주었던 우는 연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 진심이, ‘사과’나 ‘죄스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았다.

        

       저 말에 담긴 진짜 감정은 ‘두려움’이다.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부자의 자식이라면 징계 조금 받고 성적이 개판이라도 큰 문제 없다. 학교 졸업하고도 먹고 살 방법은 널렸으니까. 막말로 그냥 통장에 넣어둔 돈에서 이자만 받고 살아도 일반적인 서민이 상상조차 못할 만큼 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의 하청을 받아 일거리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나, 그조차도 되지 못하는 ‘사’자 돌림 직업의 자식들, 혹은 아예 성적만으로 외부 입학을 한 학생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성적만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얻으려면 당연하다. 대기업에 들어가는데 연줄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면 불이익도 거대하다. 심지어 그 이유가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라면 대학 진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테니까.

        

       참 이용해 먹기 좋은 상대다.

        

       뇌물을 바치지 않았으니 보호해 줄 이유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겁먹을 이유도 없다. 약점투성이에, 실제로 명분도 있었다. 게다가 본인이 절박하기까지 하니, 방패막이로 내세우기 쉽다.

        

       얼마나 대단한 학교란 말인가.

        

       하지만 물론, 우리들의 목적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을 말하지만, 가해자를 찾아내서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가진 진짜 목적은—

        

       “이제 올 때가 됐는데.”

        

       내가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교실 안에 일순간 적막이 흘렀다.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부른 사람이 누구일까?

        

       아마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새로운 증인일지, 피해자일지. 어쨌거나 이 사건을 뒤집을만한 무언가가 있으니까 불렀다고 생각하겠지.

        

       뭐, 새로운 증인이나 피해자를 걱정하는 거라면 그런 건 넣어두라고 하고 싶다.

        

       내가 부른 사람은—

        

       그때, 철컥, 하고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아,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들어온 사람은, 한가람 팀장이었다.

        

       한쪽 손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있었다.

        

       “……당신은……?”

        

       선생들도 알고 있는 얼굴일 거다. 한가람 팀장은 이 학교에 고객이 많다고 했으니까.

        

       선생들이 받은 돈도 당연히 관리해주겠지.

        

       “늦었네요.”

        

       내가 입을 삐죽 내밀고 말하자, 한가람 팀장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금융 당국의 시선을 피하면서 거금을 인출하는게 쉽지는 않아서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한 말에, 교실 안이 쩌적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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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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