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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왜 따라 붙으려 하는 것이냐?”

       “화산을 도우러 가야 하지 않겠나.”

       “그건 내가 가면 그만이지 않나. 이 산의 신령이라면 이 산을 수호해야지.”

       “보거라. 이 산에 지킬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으냐? 내 백 년을 비워도 이 산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긴 이 돌산에 무얼 지킬 게 있겠느냐. 신령이 있든가 없든가 이 산에선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들떠 있는 신령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한 말은 핑계에 불과하구나. 그대는 그저 무료한 돌산의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지 않나.

       

       화산을 돕는다는 대의가 있어 죄책감도 없으니 최적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

       

       지금 있는 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이니 그를 나쁘다고 말하진 못하겠구나.

       

       “본인은 중간에 사라졌다 나왔다 할 터인데?”

       “아네. 그대는 외부인이지 않은가.”

       

       검성도 그렇고, 지금 이 자도 그렇고, 화음의 군수도 그렇고 다들 외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구나.

       

       그게 게임을 하는 유저를 뜻하는 의미인 것일까?

       

       하긴 무림에다 유저라는 존재를 그대로 던져 놓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를 해결하기 위한 설정이라 봐야겠구나.

       

       “그대가 사라지더라도 아무런 문제없다! 이래 뵈도 신령이다. 나 하나의 몸을 지킬 여력은 존재한다!”

       

       그렇겠지. 그대의 안에 담긴 기운은 잠시 뿐이지만 내 호기심을 끌 정도이니까.

       

       허나 그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는 동행의 존재 자체가 그리 달갑지 않으니 말이다.

       

       무림을 돌아다니며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데 본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눈치 챈 건지 신령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설령 위험한 순간이 온다 해도 이렇게!”

       

       신령이 폴쩍 뛰어서 한바퀴를 돌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여자아이의 형상이 사라지고 꼬리 여럿을 지닌 주홍색 털의 여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바꾸어서 숨으면 그만이니라!”

       

       여우가 입을 움직이자 거기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무슨.

       

       나는 즉시 신령에게 다가가 그 옆구리를 붙잡아서 들었다.

       

       여우가 된 신령은 그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는 것이야?”

       

       너무 귀엽지 않으냐!

       

       동행이 필요 없다 했던 것은 취소다.

       

       보들보들한 주홍색 털을 지닌 데다, 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이라니! 이를 어찌 버려두고 가라는 소리더냐.

       

       가만 여우와 눈을 마주하던 순간이나마 체통을 잃었다는 걸 깨닫고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겨우 동물일 뿐이지 않으냐. 좀 생긴 것이 괜찮고, 털이 부드러운 데다가, 온기가 느껴지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녀석일 뿐이다.

       

       속으로 생각을 하면 생각을 할수록 스스로에게 휘말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나를 보고 있는 이도 없는데 조금은 내 멋대로 굴어도 괜찮지 않겠느냐.

       

       “쓰다듬어도 되느냐?”

       “마음대로 하거라!”

       

       타인이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만지는 게 불쾌할 수도 있음에도 신령은 환영한다는 듯 활짝 웃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조심스럽게 여우의 머리를 쓸어 올렸더니 거세게 흔들리던 꼬리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지는 것이 싫은데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 건 아닌가 보구나.

       

       게임에서 나가기로 했던 건 취소를 해야겠다. 이런 귀여운 것이 내 앞에 있는데 어찌 이를 버려두고 떠나갈까.

       

       어학당에 가기까지 남은 시간도 많겠다 당분간은 이 녀석과 함께 놀자꾸나.

       

       *

       

       [화령 화룡무인 고인물이었던 거 아님?]

       

       무공을 잘 다루는 것도 그렇고.

       

       튜토 빠르게 스킵하는 것도 그렇고.

       

       검선 보자마자 이름 아는 것도 그렇고.

       

       오늘 검선이 쓴 낙일검도 지난번에 화령이 용 날려버릴 때 썼던 거잖아.

       

       예전부터 화룡무인 하던 골수 유저가 천마 컨셉 잡고 겜 시작한 거 아님?

       

       – 엔리가 처음이랬는데?

       └ 그놈의 엔리.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어케 암?

       – 다른 건 몰라도 무협겜 해본 것 팩트일 듯.

       – 근데 낙일검 다른 고인물들도 모르던 건데.

       └ 화룡무인에서 자기만 아는 정보 안 풀고 묵히는 애가 한 둘인 줄 암?

       └ 사람들 존나 음습하다니까.

       

       [화룡무인 애들 난리 났네.]

       

       이번에 화령이 한 일 여파가 큰 듯?

       

       – 천마님 또 뭔 일 했음?

       └ 1. 검선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게 밝혀짐.

            2. 신선의 조각이란 게 나와서 신선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김.

       └ 2는 관심 없는데 1은 겁나 신기하게. 그게 가능했어?

       

       [지금 검선이 있는 숲 앞쪽 필드 난리 났음. 오지 마셈.]

       

       거대 문파 몇 개가 한바탕 하고 있음.

       

       여기서 사냥할 생각 하던 분들 다른 데로 가세요.

       

       여기 휘말렸다가 골로 갑니다.

       

       – 아니 또 뭔데.

       └ 검선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게 밝혀져서 문파끼리 경쟁 붙었음.

       └ 좆 됐네. 나 거기 퀘스트 있었는데.

       – 개같은 문파 새끼들. 다 같이 망했으면 좋겠다.

       

       [화령님 천마신교 가겠죠?]

       

       천마신교로 안 가신다고 그러던데 말만 그렇지 한 번 들리시겠죠?

       

       솔직히 이 분이 천마신교 안 가는 거 말도 안 되잖아요.

       

       – 무조건이지.

       – 천마랑 천마랑 만나는 걸 어떻게 참음.

       – 방송각 때문이라도 한 번 가지 않을까.

       – 천마랑 화령님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 화령이 질 것 같진 않은데. 천마도 겁나 쌔니까.

       └ 화령님이 니 친구냐? 왜 화령이라고 부름?

       └ 마교도 새끼. 대답해줘도 지랄이네.

       

       *

       

       여우가 된 신령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낸 후 어학당으로 돌아온 나는 엔리를 만나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했다.

       

       나를 봐도 겁먹지 않는 동물을 발견했다고. 그 녀석을 잔뜩 쓰다듬어 주고 와서 너무 즐겁다고.

       

       여느 때라면 과장된 반응으로 내 기쁨에 공감해줬을 엔리는 턱을 괸 채 무미건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 그런 얼굴이에요? …혹시 삐졌어요?”

       

       설마 어제 내가 제멋대로 방송을 끄는 바람에 화가 난 것이냐? 정말로?

       

       아무리 엔리가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 한들 겨우 그런 걸로 삐질 리가.

       

       “네. 삐졌어요. 가지 말라고 돈까지 드렸는데 끄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미안함보다 당혹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방송을 끌 때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이야기 했던 본인이 저런 말을 할 줄은.

       

       그래서 멀뚱히 쳐다보았더니 엔리가 양 뺨을 붉혔다. 자신이 추한 행동을 했단 자각은 있는 것 같았다.

       

       “그치만 저 화룡무인 스토리가 궁금했단 말이에요!”

       “안 해 봤어요?”

       “네! 안 해 봤어요! 무협겜처럼 손 타는 게임을 제가 어떻게 해요!”

       

       엔리는 화룡무인이란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무협과 관련된 게임은 무협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를 따라갈 수 있는 피지컬을 요구하는데 자신에겐 어느 것도 없다고. 그래서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그래도 스토리는 볼 수 있잖아요.”

       “무협에 흥미가 없는데 무협겜 스토리를 왜 봐요.”

       “…그럼 지금은 왜 흥미가 생기셨는데요.”

       “너요. 너 때문에요.”

       

       평소의 엔리답지 않은 논리정연함에 밀려버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지금 투덜거리는 그녀를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아니 그럼 30분만 더 하자 그런 이유는 뭔가요.”

       “프롤로그 진입을 하면 거기 끝날 때까지는 봐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

       “그런데 기대를 배신하고 방송을 끄더니 자기는 혼자 밤을 새며 게임을 하면서 놀고 오셨다? 동물이랑 놀면서?”

       

       엔리가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이런 투덜거림을 듣는 체 마는 체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내 지인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평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그녀에겐 그럴 수 없다.

       

       “어. 음.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사과의 말을 건네자마자 엔리가 방금 전의 진노는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밝게 웃었다.

       

       그런데 정말 농담 맞았느냐?

       

       방금 그 투정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마는.

       

       본인의 생각이 착각인 게 분명하더냐?

       

       내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엔리는 헛기침을 하고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는 동물을 찾으셨다는 거죠? 잘 됐네요.”

       “동물이라고 해야 하나. 동물 행세를 하는 신령이지만요.”

       “…네?”

       

       어제 돌산에 가서 있었던 일을 설명을 해주자 엔리의 표정이 점차 안 좋아졌다.

       

       무어냐. 이번에는 또 왜 그러는 것이야.

       

       “단순히 경치 구경을 한 게 아니라. NPC를 만나서 이벤트 진행하고 히든 퀘스트까지 받아 오셨다구요?”

       “네. 그런데요.”

       “…아무리 제가 방송 준비를 많이 도와드렸다지만 방송 불태우는 거까지 배우시면 어떡해요.”

       

       불태우다니?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는 것이냐?

       

       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스토리는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더냐. 한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만.

       

       내가 의아함을 표시하자 엔리는 그 이상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다.

       

       단지 자애로운 체 하는 미소를 지으며 방송을 키면 알게 될 것이라 말할 뿐이었다.

       

       *

       

       본래는 엔리에게 화룡무인에 관한 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확인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존재 했기에.

       

       허나 엔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선언을 해버린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린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학당이 끝나자마자 하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평소에는 내가 문자 하나만 보내도 10초 내로 답장을 하던 아해인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나중에 시간이 되면 연락해 달라 문자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니 경비원이 나를 불렀다.

       

       택배가 많이 왔다면서.

       

       드디어 온 것인가!

       

       경비원이 안내해 준 곳에는 커다란 상자가 세 개나 놓여 있었다.

       

       내가 산 것이 많기는 했다만 이렇게 보니 확실히 양이 체감 되는 구나.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할텐데 도와 드려요?”

       “괜찮습니다.”

       “너무 무리 안 해도.”

       

       단 번에 세 개의 상자를 들었더니 경비가 어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힘이 좋으시네요.”

       “별로 안 무거워요.”

       “무겁던데요…”

       

       집으로 돌아와 상자를 여니 그 안에 고히 모셔져 있던 인형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너무 귀엽지 않으냐.

       

       하나하나가 너무 보기에 좋아 어디 놓아야 할지 고민 될 정도였다.

       

       하나 둘 그들의 위치를 정해주며 고개를 끄덕이던 중 거대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놓을 곳이 없다.

       

       책상이니 서랍장 위니 하는 곳은 이미 다 채워졌다. 심지어 평소 쓰던 탁자 위에도 한 가득이다.

       

       그렇다 하여 저 귀여운 녀석들을 방바닥에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당혹스럽구나.

       

       내 여태 필요를 느끼지 못해 가구를 들이지 않았거늘 이렇게 후회하는 날이 올 줄이야.

       

       전시대를 사야겠구나. 그것도 큰 것으로.

       

       인형 같은 걸 살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

       

       생각이 난 김에 스마트 폰을 열어 괜찮은 물건이 없나 찾아보던 중 하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야 하던 일을 끝마쳤나 보구나.

       

       “안녕하세요…”

       

       하린의 목소리는 푹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잠에 빠져 있었던 걸까.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화룡무인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요.”

       “…으. 화룡무인이요?”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내게 화룡무인을 꼭 해달라 강권을 하던 하린이 화룡무인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질색을 하다니.

       

       “무슨 일 있었어요.”

       “좀 많은 일이 있었어요. 어제 화령님이 검선한테 제자가 되어 달라는 말을 들었잖아요.”

       “그랬죠.”

       

       사정을 모르는 그 노친네의 입장에서 난 경이로운 재능을 지닌 후기지수였을 터이니 욕심이 낫겠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내 아래에서 수학을 하라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이류의 육신을 지녔으면서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려 드는 신인이라니. 그걸 어떻게 참겠는가.

       

       “그거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키는 천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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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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