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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햇볕이 유독 강렬한 하늘.

         

       태양의 기운이 강성해지는 계절이 사뿐히 찾아왔음을 증명하는 열기.

       남부 대륙은 대개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시원한 기후가 특성이지만. 유독 팬드래건이 속한 영역만큼은 더위가 무성한 편이었다.

       팬드래건 영역 근처에 자리 잡은 ‘영산 불칸’이 품은 불의 기운이 여름만 되면 기승을 부려 여름의 날씨가 여타의 곳보다 무더워진다는 것이 학자들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마력과 신비, 요정의 장난 등이 공존하는 대륙에선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 현상이기도 하여 이상기후에도 이상함을 느끼는 이들은 드물었다.

         

       도리어 동부 대륙처럼 마법에 실패하여 반년 동안 비가 내리는, ‘대우기(大雨期)’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거나, 중앙 대륙처럼 요정들에게 분노를 사서 1년 내내 ‘대폭설’에 시달리는 것만 아니라면, 도리어 이렇게 더위만 기승을 부리는 게 팬드래건 입장에서도 행운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여름 휴교란 이름을 쓰지만, 아실 분은 아실 겁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불칸을 비롯한 요정들을 위한 의식을 거행할 예정인 것을, 이처럼 우리 인류만이 대륙에 사는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무수한 종족과 자연 등과 함께 이 대륙에서 공존하는 무수한 집단 중 하나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만한 제국처럼 자신들이 대륙의 주인인 것마냥 행동해선 안 된다는 뜻이며, 또한…!”

         

       ……뭐, 그렇다고 한다.

         

       대충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조차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요약하면 되리라.

         

       “이거, 언제 끝나?”

       “쉿, 들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러다 탈수증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그런다고….”

       “그럼 차라리 쓰러지는 게 좋지 않을까? 회복실로 이동할 테니까.”

       “무슨 너…! …천재냐?”

         

       학장의 일장연설을 듣는 생도들은 지루함을 넘어 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당에 모여 있긴 했지만, 수백 명 인원이 빽빽하게 모여 있으니 강당조차 더운 건 변함이 없다.

       한데 이런 무더운 환경에서 무려 한 시간 넘게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듣고 있으려니, 생도들의 표정이 아찔해지는 것도 당연한 노릇.

       한데 이렇다고 해서 학장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이들도 없다.

         

       감히 군신의 시대에서 명재상 소리 듣던 전직 재상을 상대로 대꾸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으랴.

         

       이렇다 보니 정신이 회까닥 하는 생도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뜻은 아니란 거다.

         

       “카린 영애님, 학장님을 좀 말릴 수 없나요? 영애의 조부시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할아버님께서 연설을 시작하면 친족조차 막을 수 없답니다. 막으려면 못해도 할아버님의 친우 분 정도가 갑작스레 방문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친우 분이 누구신데요?”

       “으음, 트리스탄의 전 가주님이나, 아니면 현왕 전하, …혹은 펠리시아 공 같은 분들이 얼마 없는 친우 분이시죠.”

       “…그냥 이 연설을 끝까지 듣는 게 현명한 거군요.”

         

       언급한 이들이 오면 더욱 큰 재난이 아닐 수 없는 바.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귀족 영애는 깨갱하며 그대로 침몰했다.

         

       아름다운 진보라색 눈동자를 빛내며 카린은 예의 바른 미소만 지었다.

       어딘지 가면을 쓴 듯한 미소.

       어느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회색 더벅머리 소년을 대할 때완 달리 유독 생기가 적은 그녀였다.

         

       그러던 중.

         

       “끄으으응….”

       “…….”

       “하아아아….”

       “…영애님?”

       “하아아아아!”

       “…아이린?”

       “응? 부르셨어요?”

       “…하하,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영애라고 부르면 반응이 없고, 이름으로 부르니 반응하는 소녀.

         

       어디 가서 외모가 꿀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던 카린이었지만, 눈앞의 소녀와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조금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무수한 신비종족 중 그 아름다움으로 손꼽히는 인어와 조인, 그리고 요정.

       그중 요정을 닮은 듯한 신비한 푸른 보석안과 금으로 세공한 금실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같은 여성조차 매혹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이린 윈들러.

         

       이번 세대, 아니 시대를 대표할 마법사가 되리라 확신 받는 마법사이자, 갈라하드 공작의 수양딸로도 잘 알려진 학술원 최고의 유명인.

         

       다른 이들은 감히 그런 소녀의 옆에 앉거나 근처에 있지 못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카린이 옆에 앉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곳에 앉았어야 했을 것 같다.

         

       “바, 방금 전부터 한숨을 푹푹 쉬셔서 무슨 일인가 하고요….”

         

       대놓고 우울한 티를 내고 있으니, 말을 안 걸 수도 없지 않은가.

         

       연신 한숨을 내쉬는 아이린이었고, 카린은 그런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말을 걸고 말았다.

         

       그러자.

         

       “미안해요, 저도 티내고 싶지 않은데, 그냥 좀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어, 서요.”

       “저런. 그거 힘들겠군요.”

       “그게 말이죠, …어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시다면야….”

       “그래도 말이죠!”

       “…….”

         

       …아, 이 애 성격이 귀찮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 소녀는 생긴 거랑 달리 귀찮은 애라고.

       하여 말을 건 것은 잘못된 선택지였음이 분명하다고.

         

       ‘…데릭이 보고 싶어요.’

         

       반응이 귀여운 회색빛 강아지와 같은 소년.

       그의 풋풋한 반응을 즐기면 즐겼지,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소녀의 상담사 노릇을 하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다만.

         

       “응? 카린 영애님, 많이 더우세요?”

       “네에? 아…. 아무래도 좀 덥죠?”

       “그래요, 그럼.”

         

       따악!

         

       휘이잉.

         

       “…어머나?”

       “헤헤, 시원하죠!”

       “네에, 정말 그러네요….”

         

       소녀의 물빛 마력이 그녀를 한 번 휩쓸었고, 카린은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을 만끽했다.

       땀은 물론이요 먼지나 더러운 노폐물조차 단번에 씻겨나갔다고 할까?

         

       한데도 그 상쾌함과 시원함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카린은 두 눈을 깜빡였다.

         

       “이래 봬도 제가 물과 바람의 마법사잖아요. 이 정도는 간단해요, 후후.”

       “어머! 그거 정말 대단하네요!”

         

       카린은 이제 좀 진심으로 소녀를 어화둥둥 해주기로 결정했다.

         

       먼저 예쁜 짓을 하면 호감도가 오르는 게 사람의 심리란 것이기에.

         

       카린 알렌시아 드 귀네비어.

       아무래도 그녀는 이 귀찮은 소녀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아이린의 고민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내 존재감, 너무 옅어진 것 같지 않아?’

         

       존재감의 유무라고 할까, 호감 가는 남성과 대화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딘지….

         

       [활약이 줄어들긴 했지. 영화나 드라마로 치면 딱 한 번 활약하고 하차하는 까메오 느낌이기도 하고.]

         

       ‘끄으응!’

         

       부정할 수 없는 유령 소녀의 촌철살인!

         

       아이린은 앓고 싶었다.

         

       다만.

         

       ‘이러면 내가 너무 속 좁아 보이잖아. 레비가 무사한 건 다행인데….’

         

       아이린 윈들러를 더욱 주눅 들게 하며,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원흉이 있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였고, 이대로 속상해 하면 너무 자신이 나쁜 년이 되는 것 같아 차마 앓는 티조차 제대로 못 낸다는 것이 문제였다.

         

       레비 폴트.

         

       학술원으로 무사히 복귀한 친구, 그리고 그 소녀의 존재가 최근 아이린의 존재감을 위협하며 우울하게 만드는 원흉이었다.

         

       ‘…나, 너무 속이 좁나?’

         

       [그걸 이제야 알았니?]

         

       ‘넌 내 편을 들어줘야지!’

         

       [뭐가 예쁘다고?]

         

       ‘…씨이.’

         

       세상 서러운 아이린이었다.

         

         

         

         

         

       소녀가, 레비가 무사히 학술원에 복귀한 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었고, 모두가 소녀의 복귀를 환영했다.

         

       – 곰순이, 이제 괜찮은 건가??

       – 무사히 돌아와 다행입니다. 영애.

       –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아가씨.

         

       걱정과 안도, 또한 충고가 곁들여진 잔소리가 한동안 소녀에게 이어졌으나, 레비는 그 모든 잔소리를 해맑게 들었다.

         

       –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모두.

         

       …겨우 며칠 동안 보지 못했을 뿐인데 훨씬 더 성숙해진 소녀였고, 동기들은 그저 레비가 한동안 고생이 많아 성숙해진 것이라고 판단했을 따름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묻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교관님이 활약해주셨으리라 짐작할 뿐.

         

       …아니나 다를까.

         

       – 교, 교관님?

       – 그, 그 붕대는 대체!?

       – …트롤 백 마리랑 싸우기라도 한 건가?

         

       교관은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그의 남다른 무력을 아는 생도들로선 경악성마저 터졌다.

       저 양반이 저토록 다치다니….

         

       어디 봉인된 고대의 마물이 부활한 게 아닐까 싶은 공포마저 들었다면 믿겠는가?

         

       허나 그들의 걱정과 공포가 무색하게도, 교관은 무덤덤하게.

         

       – 원래 어른들은 애들이 모르는 여러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많이 묻지 마라.

         

       걱정을 일축하며 평소처럼 잔소리를 할 따름이었다.

         

       – …그게 지금 할 예시론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 어허!

       – …….

       – 됐고, 모두 잘 알아둬라. 곰순이는 자퇴서인지 뭔지도 낸 적이 없으며. 잠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와 무단결석을 했을 뿐이란 걸.

       – 저 나이에요?

       – 원래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빠르게 찾아오거나 늦게 찾아올 수도 있는 거야. 곰순이한텐 그 시기가 좀 늦게 찾아왔을 뿐이고.

       – …….

       – 대·답.

       – 아, 악!

         

       …그렇게 레비의 탈주기는 얼렁뚱땅 끝이 났으나, 여전히 의문인 구석은 많다.

         

       왜 교관은 저토록 상처를 많이 입고 온 것이며, 레비 폴트는….

         

       – 아, 앞으로 폴트란 성으로 안 부르셔도 돼요. …성은 버렸거든요.

       – ?

         

       성(姓)을, 가문을 버리게 된 건지도….

         

       여러모로 풀리지 않은 의문은 많았으나, 생도들은 의문을 접어두었다.

         

       그래, 중요한 건 소녀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다지 큰 신경은 쓰지 않기로 한 그들이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 아, 교관님. 혹시 아카데미 조교 신청은 어디서 하면 되나요?

         

       ……경악을 넘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그녀를 마주하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게 되었지만.

         

       레비 폴…, 아니 레비가 조교 과정을 밟으려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했다.

         

       특히.

         

       – 레, 리비 영애! 왜 사서 이 불바다에 들어오시려는 겁니까?!

         

       데미안 폴렛.

       이한의 조교(노예)인 그는 처음 입학식 때, 잘 차려입은 도련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구울과 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초췌한 인상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뭐, 모든 조교가 저런 건 아니었다.

         

       유난히 모든 일을 다 맡겨버리는 이한으로 인해 유난히 고생 중인 것뿐이지.

         

       허나 레비가 조교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그의 조교로 들어오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고, 데미안 폴렛은 말릴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란 말이 절로 나올 따름.

         

       허나 그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해맑게 조교 신청서를 내고, 빠르게 조교에 합류하게 된 소녀였으며, 모두가 아연실색했으나….

         

       – 으음, 할 만한데요?

         

       소녀는 조교 일이 너무 쉬워 오히려 눈을 끔뻑거릴 따름이었다.

         

       – 에?

         

       데미안이 엄살을 부린 걸까?

       그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조교가 2인이 됐다 한들, 중노동인 건 변함이 없었으니까.

         

       허나 소녀의 감각은 달랐다.

       무려 19년 동안 진정으로 고난과 역경, 괴로움이 사무치는 나날을 보냈던 소녀에게 있어 이러한 일들은 뭐랄까.

         

       – 오히려 너무 쉬워서 놀랐어요, 후후.

       – …….

         

       그래, 그냥 쉽고도 편했다.

         

       나중에 듣길, 데미안 폴렛이 소녀를 두려워하며 존경하게 된 계기라 하였고. 소녀는 눈 깜짝할 새 일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모습을 연신 보여줬다.

         

       전보다 더 열심히 수련하고.

       전보다 더 생도들과 친근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해주고.

       전보다 더 최선을 다해….

         

       – 사부님, 이건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 사부님, 피곤하시진 않으세요?

         

       – 사부님-!

         

       깍듯하게, 아니 지극정성으로 교관을 모시는 등.

         

       어딘지 과감해진 듯하면서도, 밝아진 소녀를 보고 있자니 무성한 초목의 싱그러움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소녀의 얼굴에는 어두움조차 보이지 않은 해맑은 생기만이 가득했으니까.

         

       …하여 생도들은 새삼 궁금했다.

         

       대체 소녀에게, 아니 교관과 소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고.

         

       그리고 이 모습을 보던 아이린 윈들러는….

         

       – 어라?

         

       소녀의 시선에서 순수하다 못해 지고지순한 애정(愛情)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만 바보 같은 표정마저 짓고 말았다.

         

       저 지고지순한 애정이 향하는 방향이….

         

       – [아린아, 시녀님 급 강적이 생긴 것 같은데?]

       – …….

         

       …우직한 기사를 향하고 있는 듯하여.

         

       아이린은 커다란 위기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골드 리트리버의 사랑스러움과 요정과 같은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시녀란 강적이 있는데, 왜 하필 저런 강적이 또 나타난 것인가 하고!

         

       그래서…!

         

       “-흠, 즉, 친구가 연적이 된 탓에 복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란 거군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긴요. 딱 봐도 그런 것 같은데.”

       “…….”

       “호오.”

         

       이것 봐라?

         

       ‘생각보다 더 재밌는 상황이네?’

         

       원래는 그저 심심풀이로 얘기를 들었을 뿐인데, 이게 듣다 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아무렴, 벌써 한 시간 동안 똑같은 얘기만 떠드는 할아버님, 아니 학장님에 비하면 훨씬 더 재밌고 마음 풋풋한 소녀의 사랑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흠, 제법이네요, 그 남자.’

         

       허나 흥미로우면서도 상대에 대한 감탄이 나온다.

       설마 학술원 최고의 미인과 더불어 학술원 남성들의 첫사랑이라 불리는 레비 영애의 사랑마저 독차지 하다니….

         

       이거야 원.

         

       ‘로엔 공자, 그렇게 안 봤는데…. 여심을 잡을 줄 아나 보죠?’

         

       연모의 대상이 누구인지 발설하지 않은 아이린에 의해 묘한 오해가 생긴 카린이었고. 카린은 북부의 사자에게 새삼스레 감탄했다.

         

       …그림체가 남다른 어느 기사가 그 대상이라곤 차마 떠올리지 못하였지만.

         

       * * *

         

       한편, 기사는 종업식을 빠진 상태였다.

       아무리 막나가는 그라 할지언정, 종업식을 빠지면 또 다시 학장에게 불려갈 우려가 있으나, 다행스럽게도.

         

       “허허, 금방 만나는구먼.”

       “…….”

         

       …권력자 찬스 덕에 불려갈 우려는 없을 듯하였다.

         

       제니미아 후작.

         

       …그가 이한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이한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복수라도 하러 왔…습니까?”

       “허허, 어울리지도 않은 존대는 그만두게. 영 낯간지럽군.”

       “그럼 나야 편하고.”

       “건방지긴, 허허! 근데 이상하게 듣기 좋구먼.”

       “…….”

         

       …그는 스리슬쩍 거리를 벌렸다.

         

       너무 친근한 척 다가오는 후작을 보고 있자니, 괜히 뻘쭘해서.

         

       “전날에는 사자 못지않게 용맹하기 그지없더니, 지금은 또 얌전하기 그지없군, 흘흘.”

       “내가 그래도 경우를 아는 놈인지라.”

       “경우를 아는 자가 그토록 내 기사들을 다 두들겨 패는가?”

       “죽은 놈들 없으면 됐지, 뭐.”

       “…이런 면은 얄밉기 그지없구먼.”

         

       허나 곧.

         

       “허나 그조차 마음에 드는구먼.”

         

       하지만 이미 이한이란 기사가 마음에 든 후작은 그의 행동이나 언행이 어떠하건 트집 잡지 않았다.

       무능한 자의 오만은 꼴불견이지만, 실력 있는 강자의 오만은 자신감이 맞기에.

         

       하여 후작은.

         

       “복수니 하는 건 그다지 관심 없네. 아, 우리 기사단은 모르겠군, 다친 몸을 이끌고 벌써부터 수련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말일세. 아마 다음엔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게야.”

       “그건, …기대되네.”

         

       확실히 마음에 드는 소식이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설욕을 원한다.

         

       이건 확실히 기쁜 소식이 맞았으니까.

         

       …그러나.

         

       “……뭐?”

         

       제니마아 후작의 입에서 다음으로 나오는 발언에 의해 이한은 벌렸던 거리를 확 줄여야 했다.

         

       그도 그럴 게.

         

       “일단 나나 자네나 말이 긴 건 취향이 아니지 않나? 하여 결론만 말하지. 나에게 시집오기로 한 여아 말이야. ─그냥 내 딸로 삼기로 했네.”

         

       “……너무 중간과정이 빠졌는데.”

         

       믿기 힘든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양반이…….

         

       ‘더위를 먹었나?’

         

       다시금 후작에게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시선을 보내고야 마는 그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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