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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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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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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쩍쩍 갈라진 것처럼 따가웠고 목 안쪽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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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구역질을 참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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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르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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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쭉한 부리와 펼쳤을 때 6m가 넘는 날개, 3층 건물만 한 크기의 몬스터가 눈을 벌겋게 붉힌 채 노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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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르르릇!
   끼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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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몬스터가 무려 3마리나 되었다.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검을 휘둘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몬스터에게 이지가 없어, 급소를 쉽게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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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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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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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흐릿하게 풀리는 초점을 겨우 바로 잡으며 이곳에 들어온 시간을 세어보았다. 못해도 일주일 이상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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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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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속, 쉴 틈 없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 노아는 이곳에 떨어진 후로 검을 휘두르기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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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몬스터는 끝을 모르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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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에 노아는 아득한 절망과 오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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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곳에서 고민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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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들의 기둥이 되어주기 위해 사리던 몸을 내던지자, 그녀를 가로막던 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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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더, 더!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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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 너머의 한계를 넘어. 노아는 그동안 억눌러놓았던 성장에 대한 욕망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살기만으로 일부 몬스터들을 기절시킬 수 있게 되었을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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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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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무리가 노아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옷과 덥수룩한 수염,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추레한 모습에 비해 그들이 든 검이나 가죽 갑옷은 꽤 쓸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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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접한 겉모습과 달리 그들은 노아가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예리했으며 실수하면 곧바로 상처가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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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아물기를 반복하고, 점차 인간의 급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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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식으로 베어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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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노아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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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습격하는 적과 상황에 적응할 때마다 숲은 한 번씩 요동치며 새로운 적을 쏟아냈다. 등장하는 적들을 전부 베어내고 나면 노아는 항상 한 단계 이상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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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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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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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검을 땅에 박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기절해버릴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머리에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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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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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우중충하게 변한 하늘은 끝없이 빗물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온몸을 끈적하게 적신 핏물이 씻겨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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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에 몇십 명의 사람과 몬스터를 썰어버린 덕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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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노아 본인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아는 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며 과거의 잔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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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네로. 두 아이는 남매 사이였지만, 노예 시장 특성상 오랜 시간 함께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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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네로, 갈색 머리와 녹안을 가진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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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는 남매였지만 노아는 아버지를 네로는 어머니를 쏙 빼닮은 탓에 남매처럼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 또한 그랬다.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닮은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두 사람은 다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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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비슷하게 생긴 쌍둥이나 남매였다면 묶여서 팔렸겠지만, 네로와 노아는 두 사람의 주장이 아니면 남처럼 보였기에 억지로 떨어져 팔려나갈 상황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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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때마다 노아는 몸을 던져서 네로와 떨어지지 않으려 발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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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가 안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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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분한 노예 상인이 짓밟고 발로 차고, 던져버려도 노아는 악착같이 네로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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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잔혹한 세계에서 노아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존재는 네로였다. 그 사실이 노아에겐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때문에 그 어떤 폭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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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나 네로나 반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상품성이 좋았다. 노아를 죽일 게 아니라면 노아와 네로를 붙여 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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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목에서 핏물이 뱉어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아프고, 괴롭고 힘들어도 제 새끼를 지키는 어미처럼 눈을 부릅뜬 채 네로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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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끔찍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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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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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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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처럼 더러운 바닥을 구르고,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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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이러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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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행위를 난 왜 멈추지 못하고 있는 거지? 왜 계속하는 거지? 차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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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저 멀리서 몬스터가 다가오는지 “키힉!”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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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죽고 싶었다. 동시에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선 이유가 필요했고 그게 네로였다. 네로가 안전해졌을 땐 그 이유가 리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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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옳은 일’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는 건 ‘옳은 일’이다. 그러니 노아는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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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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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게 주마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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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에 도전한 것도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안을 지키는 나 자신’에게 취하여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몸을 던진 게 아니냐는 의문이 머릿속에 빗물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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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투둑, 투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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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노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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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 이대로 죽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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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히 반복되는 싸움에서 노아는 진정으로 쉬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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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히힉! 케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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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휘젓고 이내 번뜩이는 죽음을 마주한다. 역겨운 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죽음을 코앞에 두자 노아는 아까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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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게 된 ‘끔찍한 실험’. 온갖 잔인한 것을 마주하며 자라왔던 노아조차 두려움에 잠기게 했던 진정한 죽음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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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노아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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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괜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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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던 입술도, 자신이 아픈지도 모른 채 항상 남을 감싸기 바쁘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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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자신에 취하여, 죽지 못해 살기 위해 소중한 이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리안 또한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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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하고 끔찍한 이 세계에서 버티기 위해 자신과 똑같이 ‘희생’이라는 명분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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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희생 또한 자신의 이기심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빗물처럼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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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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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검을 휘둘렀다. 자세는 엉망이었고, 몸을 삐걱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맴돌던 온갖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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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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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먹먹하게 들리지 않았던 빗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아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머릿속을 침식한 생각들을 함께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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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를 지키려고 했던 게 내 이기심 때문이라고? 그래,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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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가족을 향한 애정으로만 버티기엔 이 세상은 너무 잔혹했다. 죽음이 도리어 안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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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과거의 자신이 이기심 때문에 네로에게 매달렸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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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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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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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물로 녹아내린 듯한 몬스터가 나무를 녹이며 다가오자, 노아는 가늘게 숨을 내뱉으며 땅을 박찼다. 비 때문에 바닥이 질척거렸고 몸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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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희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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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햇살처럼 다정한 리안의 웃음을 손끝으로 더듬듯 떠올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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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심 따위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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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릿속을 좀 먹던 무언가가 강한 의지와 부정에 의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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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에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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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비명을 내지르고, 노아의 목덜미에 붙어있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무언가가 바스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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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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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제 몸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검을 거칠게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녀가 휘두른 검은 달빛 아래 호수처럼 창백한 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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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그녀는 마지막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긴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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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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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탁탁탁탁! 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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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불조심해!”
   “잠깐 앞에 비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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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조용해야 할 시간대에 주방이 시끌시끌했다. 조직의 보스가 경지를 넘어선 것에 관한 파티가 한참 준비 중인 까닭이었다. 리안 또한 그 속에 섞여 두 팔을 거둬 붙이려 했지만 릴리에게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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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노아오빠 좀 붙잡고 있어 줘.”
   “응? 왜?”
   “노아 오빠 몰래 준비하는 깜짝 파티거든! 노아 오빠가 눈치가 빨라서 우리 중 아무나 가서 붙잡고 있으면 분명 들킬 테니까 오빠가 가서 붙잡고 있어 줘!”
   “어어? 나 그런 거 자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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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가 리안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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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수련을 했는지 물어보면서 시간만 조금 때워줘! 최대한 빨리 준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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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리안은 주방에서 쫓겨났다. 리안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노아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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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가 급한 상황이긴 하지만… 당장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 편하게 축하해주자. 아, 가는 김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넌지시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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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노아가 이곳을 떠나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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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며 노아의 방으로 향했다. 고민하며 걸어서 그런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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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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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야 안에 있어?”
   [ 들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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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음기가 섞인 줄리아나의 목소리였다. 리안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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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노아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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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에는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줄리아나만이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리안의 의문에 줄리아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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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시련을 겪는 동안 몸이 꽤 더러워졌다고 씻으러 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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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시선이 욕실 쪽을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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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줄리아나:(음흉)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하아,하아…”

노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쩍쩍 갈라진 것처럼 따가웠고 목 안쪽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노아는 구역질을 참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끼르르릇!

길쭉한 부리와 펼쳤을 때 6m가 넘는 날개, 3층 건물만 한 크기의 몬스터가 눈을 벌겋게 붉힌 채 노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끼르르릇!

끼에엑!

그런 몬스터가 무려 3마리나 되었다.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검을 휘둘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몬스터에게 이지가 없어, 급소를 쉽게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노아는 흐릿하게 풀리는 초점을 겨우 바로 잡으며 이곳에 들어온 시간을 세어보았다. 못해도 일주일 이상은 지났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거지?’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숲속, 쉴 틈 없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 노아는 이곳에 떨어진 후로 검을 휘두르기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몬스터는 끝을 모르고 달려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에 노아는 아득한 절망과 오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몬스터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곳에서 고민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다른 이들의 기둥이 되어주기 위해 사리던 몸을 내던지자, 그녀를 가로막던 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더, 더, 더!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어!’

한계 너머의 한계를 넘어. 노아는 그동안 억눌러놓았던 성장에 대한 욕망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살기만으로 일부 몬스터들을 기절시킬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죽어라!”

“…!”

인간 무리가 노아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옷과 덥수룩한 수염,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추레한 모습에 비해 그들이 든 검이나 가죽 갑옷은 꽤 쓸만해 보였다.

허접한 겉모습과 달리 그들은 노아가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예리했으며 실수하면 곧바로 상처가 늘어갔다.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아물기를 반복하고, 점차 인간의 급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베어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배워나갔다.

그렇게 노아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노아가 습격하는 적과 상황에 적응할 때마다 숲은 한 번씩 요동치며 새로운 적을 쏟아냈다. 등장하는 적들을 전부 베어내고 나면 노아는 항상 한 단계 이상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허억,헉…”

푹!

노아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검을 땅에 박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기절해버릴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머리에 열이 올랐다.

쏴아아아 -..

어느 순간부터 우중충하게 변한 하늘은 끝없이 빗물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온몸을 끈적하게 적신 핏물이 씻겨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에 몇십 명의 사람과 몬스터를 썰어버린 덕분일까?

빗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노아 본인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아는 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며 과거의 잔상을 떠올렸다.

노아와 네로. 두 아이는 남매 사이였지만, 노예 시장 특성상 오랜 시간 함께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네로, 갈색 머리와 녹안을 가진 노아.

두 아이는 남매였지만 노아는 아버지를 네로는 어머니를 쏙 빼닮은 탓에 남매처럼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 또한 그랬다.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닮은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두 사람은 다르게 생겼다.

서로 비슷하게 생긴 쌍둥이나 남매였다면 묶여서 팔렸겠지만, 네로와 노아는 두 사람의 주장이 아니면 남처럼 보였기에 억지로 떨어져 팔려나갈 상황이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노아는 몸을 던져서 네로와 떨어지지 않으려 발악했다.

“이 새끼가 안 떨어져?!”

흥분한 노예 상인이 짓밟고 발로 차고, 던져버려도 노아는 악착같이 네로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잔혹한 세계에서 노아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존재는 네로였다. 그 사실이 노아에겐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때문에 그 어떤 폭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노아나 네로나 반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상품성이 좋았다. 노아를 죽일 게 아니라면 노아와 네로를 붙여 둘 수밖에 없었다.

노아는 목에서 핏물이 뱉어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아프고, 괴롭고 힘들어도 제 새끼를 지키는 어미처럼 눈을 부릅뜬 채 네로를 지켰다.

이 끔찍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하아, 하…”

노아는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그때처럼 더러운 바닥을 구르고,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채 버티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었더라?’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행위를 난 왜 멈추지 못하고 있는 거지? 왜 계속하는 거지? 차라리 -…

노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저 멀리서 몬스터가 다가오는지 “키힉!”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노아는 죽고 싶었다. 동시에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선 이유가 필요했고 그게 네로였다. 네로가 안전해졌을 땐 그 이유가 리안이 되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옳은 일’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는 건 ‘옳은 일’이다. 그러니 노아는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아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이런 게 주마등인가?’

시련에 도전한 것도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안을 지키는 나 자신’에게 취하여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몸을 던진 게 아니냐는 의문이 머릿속에 빗물처럼 쏟아졌다.

쏴아아아, 투둑, 투두둑.

빗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노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대로 -… 이대로 죽는 게 맞지 않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싸움에서 노아는 진정으로 쉬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키히힉! 케헥!

힘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휘젓고 이내 번뜩이는 죽음을 마주한다. 역겨운 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죽음을 코앞에 두자 노아는 아까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것이 떠올랐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게 된 ‘끔찍한 실험’. 온갖 잔인한 것을 마주하며 자라왔던 노아조차 두려움에 잠기게 했던 진정한 죽음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노아는 떠올렸다.

[ 나는 괜찮아. ]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던 입술도, 자신이 아픈지도 모른 채 항상 남을 감싸기 바쁘던 모습도.

노아가 자신에 취하여, 죽지 못해 살기 위해 소중한 이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리안 또한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잔혹하고 끔찍한 이 세계에서 버티기 위해 자신과 똑같이 ‘희생’이라는 명분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리안의 희생 또한 자신의 이기심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빗물처럼 녹아들었다.

까드득.

노아는 이를 악문 채 검을 휘둘렀다. 자세는 엉망이었고, 몸을 삐걱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맴돌던 온갖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쏴아아아 -.

그러자 먹먹하게 들리지 않았던 빗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아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머릿속을 침식한 생각들을 함께 베어냈다.

‘네로를 지키려고 했던 게 내 이기심 때문이라고? 그래, 그럴 수 있어.’

오로지 가족을 향한 애정으로만 버티기엔 이 세상은 너무 잔혹했다. 죽음이 도리어 안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기에 과거의 자신이 이기심 때문에 네로에게 매달렸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

“쿠르르륵!”

오물로 녹아내린 듯한 몬스터가 나무를 녹이며 다가오자, 노아는 가늘게 숨을 내뱉으며 땅을 박찼다. 비 때문에 바닥이 질척거렸고 몸이 무거웠다.

‘그 사람의 희생은..’

노아는 햇살처럼 다정한 리안의 웃음을 손끝으로 더듬듯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기심 따위가 아니야.’

그녀의 머릿속을 좀 먹던 무언가가 강한 의지와 부정에 의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키에에엑! ]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비명을 내지르고, 노아의 목덜미에 붙어있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무언가가 바스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흐아아앗!”

노아는 제 몸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검을 거칠게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녀가 휘두른 검은 달빛 아래 호수처럼 창백한 빛을 머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지막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긴 잠에서 깨어났다.

***

달그락, 탁탁탁탁! 촤아악!

“거기 불조심해!”

“잠깐 앞에 비켜주세요!”

평소 조용해야 할 시간대에 주방이 시끌시끌했다. 조직의 보스가 경지를 넘어선 것에 관한 파티가 한참 준비 중인 까닭이었다. 리안 또한 그 속에 섞여 두 팔을 거둬 붙이려 했지만 릴리에게 붙잡혔다.

“오빠는 노아오빠 좀 붙잡고 있어 줘.”

“응? 왜?”

“노아 오빠 몰래 준비하는 깜짝 파티거든! 노아 오빠가 눈치가 빨라서 우리 중 아무나 가서 붙잡고 있으면 분명 들킬 테니까 오빠가 가서 붙잡고 있어 줘!”

“어어? 나 그런 거 자신 없는데!”

릴리가 리안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어떤 수련을 했는지 물어보면서 시간만 조금 때워줘! 최대한 빨리 준비할 테니까!”

그렇게 리안은 주방에서 쫓겨났다. 리안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노아의 방으로 향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긴 하지만… 당장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 편하게 축하해주자. 아, 가는 김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넌지시 말해야겠다.’

만약 노아가 이곳을 떠나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노아의 방으로 향했다. 고민하며 걸어서 그런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

“노아야 안에 있어?”

[ 들어와! ]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음기가 섞인 줄리아나의 목소리였다. 리안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노아는요?”

방 안에는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줄리아나만이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리안의 의문에 줄리아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아아, 시련을 겪는 동안 몸이 꽤 더러워졌다고 씻으러 갔어. ]

리안의 시선이 욕실 쪽을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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