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9

   변명하면 할수록 눈이 차가워지는 비앙카 탓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크라슈는 식은땀을 훔치며 신전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싸늘하게 자신을 보는 비앙카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후에 프리만 신성 왕국을 둘이서 같이 돌아보는 걸로 합의를 보긴 했지만.

   매일 같이 붙어 있는 마당에 그걸로 화가 풀리는 것이 신기하긴 했다.

     

   [ 망나니 같은 놈, 또 새 여자를 들이려는 게냐. ]

     

   그 순간 복도 창문에서 크림슨가든이 나타났다.

   그녀는 날개를 정돈하곤 크라슈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 회귀자란 놈이 거시기를 마음대로 놀리면 어찌 되는지 모르느냐? ]

   “사람을 무슨 취급 하냐. 그렇게 문란한 생활한 적 없다.”

   [ 흥, 물리적으로만 놀리고 다니는 게 문란한 줄 아느냐? 네 정신 자체가 문란해 빠졌다. ]

   “문란한 건 크림, 네 입이고.”

     

   은근히 음담패설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이지.

     

   [ 쯧쯧, 나중에 어디선가 자기 아이를 뱄다는 여자가 나타나서야 정신 차리지. 그때는 칼부림 당해도 할 말 없을 게다. ]

   “그럴 일 없거든.”

     

   사람을 뭐로 보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적어도 멸망을 막을 때까지 누군가와 그렇게 될 마음도 없다.

     

   이 망할 세상은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보다 크림, 저번에 비앙카 건으로 이야기 한 거 기억나?”

   [ 안 그래도 발하임의 청송관 쪽으로 불러놨다. ]

     

   크림슨가든이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무것도 못 한 채 보기만 하는 게 어떤 건지는 나도 아니까. ]

     

   종들이 무기력하게 죽는 모습을 그저 봐야만 할 때가 많아서일까.

   크림슨가든도 비앙카를 많이 고려해준 모양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크림슨가든도 비앙카에게 정이 쌓인 거겠지.

     

   “고마워. 비앙카가 좋아하겠네.”

   [ 너 따라가겠다고 맨몸으로 가방 싸던 걸 말리는 것보다야 낫겠지. ]

   “그건 말려줘라.”

     

   비앙카가 그 꼴 나는 건 절대 못 본다.

     

   [ 네놈이 잘하면 그럴 일도 없겠지. ]

     

   이번과 같은 꼴로 또 나타나지 말라는 크림슨가든의 속내였다.

     

   “노력할게.”

   [ 죽어도 그런 꼴로 다시 안 나타난다고는 안 하는구나. ]

     

   미래를 아는 크라슈기에 차마 확답은 할 수 없었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

     

   [ 성녀와 노닥거리러 가기나 해라. ]

     

   그러니 크라슈는 창문 밖으로 나가는 크림슨가든을 쓴웃음 지으며 보았다.

   그러곤 도착한 방문의 문을 두드렸다.

     

   “성녀님, 크라슈 발하임입니다.”

   – 아, 잠시만요.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끼익하니 방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짙은 금발의 여성인 성기사 디오나가 있었다.

     

   그녀가 열어준 방문 안으로 들어서자 아스트리아가 이쪽을 보았다.

     

   “또 뵙네요. 크라슈 님.”

     

   태양 빛 머리카락 아래 아스트리아의 모습은 아까와 조금 달랐다.

   옷을 다른 것을 입고, 평소 안 하던 화장도 하여 꾸민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크라슈는 사실 이 모습이 더 익숙했다.

   대외적인 활동이 많아진 성녀는 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며 아스트리아는 늘 꾸밈을 게을리하지 않았었으니까.

     

   크라슈의 기억 속 아스트리아는 늘 저런 모습이었다.

     

   “그렇죠. 데이트는 잘 준비하셨나 봅니다. 아름다우시네요.”

     

   크라슈가 너스레를 떨자 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또 눈을 피했다.

   늘 보던 아스트리아였다.

     

   “디오나.”

     

   그사이 눈을 피하고 있던 아스트리아가 디오나를 호명했다.

     

   “아스트리아 님.”

   “괜찮아. 방에서는 안 나갈 거니까.”

     

   성녀로서 남녀가 같이 있는 모습은 세간에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녀도 크라슈와 둘이 있는 모습을 바깥에 보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아스트리아 입장에서는 자기 방에 남자를 들여 둘이서 대화하는 시점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걸 애써 숨겼다.

     

   “……알겠습니다.”

     

   짧게 숨을 내쉰 디오나가 물러섰다.

   그녀는 크라슈를 힐끗 보곤 방문을 닫고 나갔다.

     

   발하임 직계씩이나 되는 사람이 선은 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크라슈와 아스트리아는 단둘이 방에 남게 되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그 침묵 속에서 먼저 움직인 건 크라슈였다.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반대편으로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스트리아가 또 한 번 움찔거렸다.

   동시에 탁자 밑에 그녀의 손이 바쁘게 꼼지락거렸다.

     

   그사이 의자를 빼어 앉은 크라슈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단둘이서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네.”

   “그리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중요한 거래 같은 걸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신성 왕국 쪽 이야기를 좀 하려는 거니까요.”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아직 14살밖에 안 된 아스트리아다.

   크라슈가 배려해주자 아스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네?”

     

   아스트리아가 조금 얼빵하게 대답했다.

   크라슈도 그녀를 의아하게 보자 아스트리아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 그렇죠! 발하임 직계나 되는 분이니 성녀에게 할 말이 있으실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스트리아가 당황하며 말을 돌렸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크라슈는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다.

     

   “……혹시 제가 정말 데이트 신청을 한 거로 생각하셨습니까?”

     

   아스트리아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얼굴이 잔뜩 붉은 것이 영락없이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그걸 본 크라슈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자각했다.

     

   ‘내 생각보다 이맘때 아스트리아는 덜 영악했었나.’

     

   크라슈가 아스트리아를 만난 건 라헬른 아카데미의 졸업식 때였다.

     

   ‘그때의 아스트리아는 지금보다 더 성장한 거였고.’

     

   크라슈는 뒷머리를 잠시 긁적였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럼 데이트는 왜 받아들인 거지.’

     

   그녀가 진짜 데이트라고 여겼다면 당연히 거절했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게 성녀에게 데이트 신청이라는 무례한 말을 내뱉었으니까.

     

   얼굴도 질색인데 성격도 무례한 남성의 데이트 권유.

   아무리 발하임의 직계라 해도 성녀라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왜 받아들였단 말인가.

     

   “……성녀님, 제 얼굴 질색이지 않습니까? 날카로워 보여서 못돼 보인다거나.”

   “아, 아뇨?”

     

   크라슈의 질문에 자기 혼자 오해한 것에 너무 부끄러워진 그녀가 무심코 대답했다.

     

   “굳, 이 말하면 잘생긴 편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러곤 부끄러움 탓에 평소의 태도를 조금도 유지 못한 그녀가 솔직하게 대답해 버렸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그녀의 눈이 이제는 뱅글뱅글 돌았다.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움이라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자기 속마음을 이렇게 남에게 대놓고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사이 크라슈는 그녀의 말을 듣고, 몸을 굳혔다.

     

   ‘그때랑 말이 이렇게 다르다고?’

     

   부끄러움 맥스 상태인 아스트리아를 보아하니 저 말은 진심이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사람 취향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였을 수도 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크라슈가 하나둘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스트리아가 했던 각종 발언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분명 미운 정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스트리아 이 녀석, 처음부터 자신한테 마음이 있었다.

     

   가끔씩 내뱉던 모진 말들은 전부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함이었고 말이다.

     

   그걸 오늘에서야 알게 될 줄이야.

   크라슈가 헛웃음을 삼켰다.

     

   그 당시에 아스트리아는 한 눈치 하는 크라슈가 눈치 못 챌 정도로 잘 절제했었으니까.

   성녀 된 자가 이성에게 마음 품으면 안 되니까 철저히 절제한 것이다.

     

   그러다 막바지에 터져 진심을 보였고.

   크라슈는 그 진심에 데이트를 나가지 않음으로 답했다.

     

   크라슈가 자기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개쓰레기네.’

     

   비록, 신창의 등신 짓거리 탓이 있었다곤 하나 아스트리아에게 무척이나 실례되는 짓을 했다.

     

   ‘이제는 없던 일이 됐으니 사과도 못 하고.’

     

   크라슈는 아직도 얼굴을 못 들고 있는 아스트리아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가짜 성녀에 관해 아십니까.”

     

   그녀의 부끄러움을 덜어줄 겸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자 아스트리아도 겨우 정신 차렸다.

     

   “가짜 성녀라면…….”

   “최근 신성 왕국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성녀를 말하는 게 맞습니다.”

     

   아스트리아의 고개가 기울여졌다.

     

   “사실 그 성녀가 가짜가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아스트리아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드디어 아스트리아가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부끄러움보다 크라슈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어쩌면 성녀님 입장에서는 듣지 않는 게 더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크라슈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교단의 깊은 비밀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도 막상 말하려고 하니 잠시 꺼려지긴 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것 같네요.”

     

   아스트리아는 늘 그렇듯 태양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들려주세요. 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제가 모르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 모습은 성녀라는 말과 딱 어울렸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이내 진실을 입에 담았다.

     

   “그 가짜 성녀라 불린 이는 300년 전에 죽었다고 기록된 성녀입니다.”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아스트리아의 웃음도 굳었다.

   이건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성녀님의 미래기도 하죠.”

     

   쿵!

     

   그 순간 방문이 거세게 열렸다.

   거기에 서있는 것은 다름 아닌 디오나였다.

     

   조용히 몰래 바깥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크라슈의 발언을 듣자마자 들어온 것이다.

     

   “디오나.”

     

   아스트리아의 두눈이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변했다.

   지금 이 자리를 방해하지 말라는 의사였다.

     

   “아스트리아 님!”

     

   디오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발하임의 직계인 소년이 대체 그 사실을 어찌 알고 있다는 건가.

   이건, 신성 왕국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괜찮아요. 계속해 주세요.”

   “성녀란 건 반쯤 불사의 존재입니다.”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성녀의 육체는 불로불사에 가깝다.

   늙어가는 육체는 몸속에 가득 찬 신성력으로 인해 세포가 노화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크림슨가든과 가장 비슷한 것이 성녀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딱 하나.

   신성력도 잡아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건 정신이다.

   육체는 평생토록 유지 되지만 성녀의 정신은 평균적으로 250세쯤 망가진다.

     

   그저 신성 왕국 안에서 누군가를 치료하는 삶만으로 영위하는 성녀다.

   그들 대부분은 끝내 삶의 의지가 박약해져 정신적 한계에 봉착했다.

     

   그렇기에 신성 왕국은 대략 200년을 기준으로 성녀를 갈아 끼운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정신이 망가진 전 성녀를 유리관에 넣고, 신성력을 강제로 사용하게 하여 전부 짜낸 뒤 유리관 속 물에 신성력을 깃들게 한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될 영유아기의 예비 성녀를 그 물속에서 지내게 한다.

     

   그것이 바로 성배고.

   그게 바로 성녀의 대물림이다.

     

   모든 설명을 마치자 디오나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녀는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즉, 가짜 성녀는 예전 성녀의 껍데기입니다.”

     

   지금 활개 치고 있는 가짜 성녀는 치매가 온 신성력이 쥐어짜져 노파가 된 300년 전의 성녀다.

     

   성녀는 신성 왕국의 치부이자 절대 발설되면 안 될 비밀이다.

     

   그런 그녀가 밖을 활보할 수 있던 이유는 신성 왕국 내부.

   성녀의 대물림을 반대하는 새로운 파의 강행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게 신성 왕국 프리만의 성녀 끊어내기의 시작이기도 했지.’

     

   이 모든 것은 아스트리아가 직접 해준 이야기였다.

     

   지금의 아스트리아도 성배에 관해서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아직 몰랐을 것이다.

     

   그야 당연하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이곳에 있는 디오나 스텔라가 성녀 대물림 반대파와 합세한 뒤.

   신성 왕국에 정면으로 맞서다 죽은 이후였으니까.

     

   그리고 그때가 바로 그녀가 창공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 계기기도 했다.

     

   각 왕국과 제국에서 후계자가 될 창공의 세대를 등에 업고, 그녀는 신성 왕가와 신전을 상대로 협박을 벌였다.

     

   자신의 존재를 전 세계에 까발려 신성 왕국의 근간을 흔들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자유를 줄 것인가로.

     

   답은 간단했다.

   그녀는 성녀로서 창공의 세대를 지원하고자 정식 합류했다.

     

   자신의 족쇄를 풀어주고자 그토록 노력해준 디오나의 의지를 이어받은 채 말이다.

   침묵하고 있던 아스트리아가 디오나를 돌아보았다.

     

   “디오나, 내게 이 사실을 확실히 알리지 않은 건 나를 생각해서지.”

   “……저는.”

     

   디오나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착잡한 눈으로 아스트리아를 보았다.

   그녀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랐겠지.

     

   그러나 아스트리아는 강한 이였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디오나가 나 때문에 죽지 않게 하고 싶어.」

     

   그리고 크라슈는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그녀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제가 들려드리려 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스트리아가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크라슈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크라슈의 입장에서는 하나 같이 불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언젠가 신성 왕국과 일이 생겼을 때 쥐고 흔들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입밖에 내뱉게 된다면 신성 왕국의 표적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실을 신성 왕국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성녀에게 직접 알렸다.

   아무리 봐도 고작해야 입방정으로 알릴 만한 사실은 아니었다.

     

   “크라슈 님은 왜…….”

   “알렸냐고 묻고 싶으신 겁니까.”

     

   아스트리아가 침묵했다.

   그걸 본 크라슈는 짧게 미소 지었다.

     

   “은혜받고는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그 당시 창공의 세대의 선발대가 빠진 시점.

   후발대에서 터졌던 최흉의 습격.

     

   거기에 휘말린 크라슈와 아스트리아는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둘 다 크나큰 부상을 입었으나 아스트리아는 성녀이기에 어떻게든 회복될 수 있는 부상이었다.

   반면에 크라슈는 아스트리아의 회복 능력으로도 회복되지 못할 만큼 엉망이었다.

     

   오래전부터 쌓여온 저주가 부상과 함께 폭주하며 크라슈의 몸을 갉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아스트리아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죽, 지마. 당신, 누구 마, 음대로 죽어.」

     

   성녀의 대물림을 위한 성배 때와 같이.

   그녀가 지닌 신성력을 크라슈에게 전부 퍼부어 넣는 것이었다.

     

   오직 크라슈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크라슈가 뒤늦게 눈을 떴을 때.

     

   「……아스트리아?」

     

   아스트리아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자신의 부상이 덜 회복 됐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슈에게 신성력을 전부 쏟아낸 그녀의 주검만이 남아 있을 뿐.

     

   그날, 크라슈는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크라슈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크라슈의 몸에 깃든 신성력은 아스트리아의 의지라는 양.

   목이 통째로 잘리거나 심장이 꿰뚫리는 즉사 급의 부상이 아닌 이상, 그의 몸을 끊임없이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죽지 않는 몸을 이끌고, 수많은 저주를 몸에 담아내며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자신이 죽는다면 아스트리아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크라슈가 그 은혜를 갚을 시간이었다.

   물론 크라슈는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번에 제가 목숨을 부지한 건 성녀님 덕입니다. 그러니 성녀님이 조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은혜를 받은 역할 아니겠습니까.”

   “그건, 영웅적 행동의 당연한 대가일 뿐이에요. 8성급 침식종과 맞서다 그런 상태가 된 이에게 성녀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을 뿐인걸요.”

     

   하지만 크라슈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는 단언했다.

     

   “저를 구해 준 건 성녀이기 이전에 아스트리아 당신입니다.”

     

   아스트리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성녀가 아닌 아스트리아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자기 자신부터 돌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너무 많이 들어서 종종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말이었다.

     

   “아스트리아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괜찮은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크라슈는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멍하니 있는 아스트리아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제가 이래 보여도 좀 많이 강해질 겁니다.”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은 크라슈의 모습은 오늘 처음으로 그의 또래 나이 같은 표정이었다.

     

   “족쇄가 짜증 나면 말해. 잘라내 줄 테니까.”

     

   그 마지막 말은 성녀에게가 아니라 아스트리아에게 하는 말이었다.

   대답 못 하고 있는 아스트리아를 두고, 크라슈는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크라슈의 뒷모습을 아스트리아는 여전히 멍하니 볼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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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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