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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9

   EP.99

     

   첫째 날. 나는 마을 근처의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뿔이 달린 들개나 그 들개보다 덩치가 큰 거대 쥐 같은 짐승 류가 대부분이었고 사실 유해 동물 정도의 느낌이었지 몬스터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애매한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하루를 꼬박 보내고 마을로 돌아오니 토끼가 작은 쉼터를 구해놨었다.

   주변의 불빛이 모두 꺼져 있었기에 노숙을 하거나 웃돈을 주고 숙소를 찾아야 할 뻔했는데, 토끼의 센스가 좋지 않았나 싶다.

     

   둘째 날. 마을이 안 보이는 위치까지 길을 뚫어냈다.

     

   여전히 나타나는 몬스터는 짐승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이 4개가 달린 살쾡이나 송곳니가 날카롭게 자란 미친 소 같은 것들.

     

   아직까지는 마왕의 하수인 어쩌고 하는 알림이 없는 걸 보니, 확실히 마왕성과의 거리는 아직 먼 것 같았다.

     

   「마왕성에 근접한 몬스터일수록 더 강하고 똑똑해요.」

     

   토끼의 이어진 설명에 나는 녀석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격이 높은 존재일수록 5층을 클리어하는 게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렇게 맞이한 셋째 날.

     

   나는 길에서 서로 전쟁을 하고 있는 두 무리의 짐승들을 볼 수 있었다.

   영역 다툼. 대부분의 짐승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영역은 그 짐승이 똑똑하고 강할수록 더 넓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몬스터가 영역 싸움을 할수록 나는 어부지리를 취할 가능성이 올라갔고 그 말인 즉, 마왕성까지 가는 길이 그나마 수월해짐을 의미하니까.

     

   나는 그 전투 현장에 난입해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 쥐들을 일망타진했다.

     

   그 이후 나는 현장에서 ‘하수인을 처치’했다는 알림을 받았고 그곳에서 마력석이라 이름이 지어진 검은색 돌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넷째 날. 전날 주운 마력석은 기대 가치가 꽤 높은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런걸 어디에 쓰는 건가 싶었는데 옆에 있던 토끼가 마력석의 용도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고위 마법을 사용할 때, 공기 중의 마력이 부족해 그것을 끌어 모으기 위한 소모품.

   간혹, 등급이 높은 마력석은 대기의 마력을 천천히 흡수하기 때문에 마법 지팡이로 가공하여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검에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여 마력석을 잘 보관해 두기로 했다.

   물론 지금 나의 마력 스텟이 40이 훌쩍 넘었기에 부족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나쁜 선택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떠나게 된 사냥.

   무슨 이유에선지 오늘은 토끼가 나와 함께 움직이고 싶어 했고, 딱히 녀석이 방해를 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별 뜻 없이 녀석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튜토리얼 이후 처음으로 검을 휘두르기를 망설였다.

     

   ***

     

   -키히힛!

     

   마왕성까지 길을 뚫기 위한 4일 차.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난 초라하고 아담한 생명체에 나는 순간 백설 공주에 나오는 일곱 명의 난쟁이들이 떠올랐다.

     

   “오! 키링노움이군요!”

   “키링노움?”

     

   토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로운 몬스터를 바라봤다.

   약간이지만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몬스터. 사실 말이 백설 공주의 난쟁이지 외모만 보면 돼지와 쥐를 반반 섞은 느낌이라 좀 징그럽기까지 했다.

     

   “예, 장난치기 좋아하는 요정족 몬스터죠! 물론 그 장난이 본인들 기준 장난이라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어질어질하지만요!”

   “그으…래…?”

   “사실 저것도 웃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계속 웃고 있는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키링노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어떻게 계속 매사에 장난스러울 수가 있겠어요!”

     

   토끼의 말에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녀석을 돌아봤다.

   매사에 장난스러운 건 이 녀석이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

     

   “헤헷? 뭘 그렇게 봐요?”

   “……아니다. 됐다.”

     

   본인의 성격에 대한 자각이 있기나 한 건지, 토끼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내 뒤로 물러났다.

   처리를 하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하라는 의미.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선뜻 검에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지?’

     

   지금까지 싸워온 몬스터는 대부분이 지성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선보이지 않았다.

   나를 죽이기 위해 손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을 뿐.

     

   그나마 전략을 짠 것처럼 몬스터의 무리가 나를 포위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냥을 실시하는 짐승의 본능적인 영역이었지 이성이나 지성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키링노움이라는 몬스터는.

     

   “……나 하나만 묻자.”

   “오! 여기 와서 질문 같은 거 한 적 없었는데 웬일이래요?”

   “지금 저거 울고 있는 거냐?”

     

   키링노움의 웃는 얼굴 뒤로 느껴지는 절망감과 분노.

   그리고 희망과 두려움이 한데 뒤섞인 아득한 공포에서 나는 도저히 출처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냐고……요? 지금 저한테 키링노움이 우냐고 물은 거예요?”

     

   나의 물음에 토끼가 당황스럽다는 듯, 내 말을 반복하며 반문했다.

   하지만 녀석은 곧바로 나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릴 뿐.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 중이라 금방 성장할 건 예상했는데……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토끼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느낀 녀석은, 잠시 ‘쓰읍’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쓸더니, 이윽고 질문에 대한 응답을 꺼냈다.

     

   “음, 맞는 것 같네요.”

     

   녀석의 답변은 간결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묻지 않은 영역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김시인 플레이어 씨. 당신 그거 알아요? 성좌와 플레이어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 감각이라는 것이 존재하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하지만 가끔 그들 중에서 약간 뛰어난 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감각이 더 발현돼요.”

     

   육감 六感

     

   과학적으로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물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

   그리고 토끼는 그것이 격의 상승에 따른 초월자들의 각성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김시인 플레이어 당신, 어떻게 저 몬스터가 울고 있는 걸 알았어요? 눈물은 흘리지도 않는 종족인데.”

   “감으로.”

     

   나의 답변에 토끼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격의 수준이 이제 슬슬 도우미를 넘기 시작했다는 의미예요. 아시겠어요?”

     

   내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되어 간다는 말.

   말을 이해는 했으나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육감이라는 표현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이고 멸망이 오기 전부터 한 번씩 있었던 나름대로 흔한 경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더 이상 녀석이 꺼낸 이야기를 분석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격이니 뭐니 하는 어렵고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현재 내 눈앞에 나타난 저 ‘몬스터’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출했다는 것.

     

   게다가 무언가를 갈망하듯, 나에게 목숨을 걸고 애절한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릉. 철컥!

     

   나는 검을 검집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키링노움의 감정에 희망이 피어오르더니 따라오라는 듯, 나에게 손짓을 했다.

     

   -키힛! 이힛!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감각적으로 무언가를 도와달라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오? 따라가시려고요? 뭔 짓을 할 줄 알고? 저거 꽤 영악한 놈인데?”

   “조금 꺼림칙해서 말이지.”

     

   토끼가 은근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나도 녀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감정이 살아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몬스터.

   인간과 대적하는 마왕의 잔재들이 인간, 심지어 지금 5층에서는 용사의 역할을 맡은 나에게 뭔가 득이 될 만한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건 못 참아.”

   “난 또, 호구 지망생인 줄 알았네. 그럼 같이 가요! 나도 사실 5층을 다 탐방한 건 아니라서 궁금하긴 하거든요!”

     

   나는 토끼와 함께 키링노움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왜소한 덩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발자국. 하지만 하체가 긴 것은 아니었기에 보폭 자체는 그리 넓지 못했다.

     

   ……티잉.

     

   “방금 들었어?”

   “어허, 왜 이래요? 저 도우미 형상은 토끼입니다만? 나랑 청각 내기 한 번 하실?”

     

   나의 물음에 녀석이 씨익 웃으며 쫄래쫄래 뒤를 따랐다.

   싸우는 소리와 함성 소리. 비명과 함께 무언가를 베고 찌르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자 나는 이곳에서 소위 말하는 몬스터들의 영역 다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며칠 전에 봤던 싸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친…”

     

   나의 입에서 당혹감이 가득담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서걱! 서걱!

     

   근육질의 거대한 괴물의 육중한 도끼질에 사지가 분리되며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가는 키링노움들.

   녀석들도 무기를 꺼내 들고 결사 항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기본적인 체급의 차이가 4배는 나는 듯한 괴물들을 제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죽이라! 퀴익!

   -키링노움! 오늘 우리 점심! 퀴익! 살릴 이유 없어라!

     

   회색빛깔의 피부와 위로 솟은 거대한 두 쌍의 송곳니를 가진 전사들.

   멧돼지와 흡사한 두상을 가진 놈들이 거대한 대검과 양날도끼로 키링노움들의 움막을 무차별적으로 박살내고 있었다.

     

   스윽.

     

   “……회색 오크”

     

   그렇게 놈들을 보며 몸을 숨기던 중, 나의 뒤에 있던 토끼가 슬쩍 나의 옷을 잡아당겼다.

     

   “……내가 어지간하면 참견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튑시다. 사실 저도 여기에서는 플레이어 신분이라 죽으면 죽을 수도 있거든요. 핫핫.”

     

   도망을 가자는 녀석의 말. 나도 사실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마왕성에 아무리 근접했다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놈들의 수준은 근 나흘간 만난 그 어떤 몬스터보다 위협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까.

     

   소수라면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영역 싸움.

     

   나름대로 생존에 걸린 전쟁을 벌이는 상태였으니, 그 수가 백은 그냥 넘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때.

     

   -키히히히힛!!!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었던 키링노움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옆구리에 있던 짜리몽땅한 검을 뽑아 들었다.

     

   스윽! 스윽!

     

   하지만 문제는 녀석의 기합에 이곳에 있는 모든 오크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는 것.

     

   -퀴이이익!!! 비겁한 노움 놈이 인간을 불렀다라! 죽이라!

   -우! 우! 우! 우!

     

   졸지에 노움의 용사가 되어 버린 상황.

   나는 나보다 거대한 도끼가 투척되는 것을 보며 급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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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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