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인생이 다 그런 거지.(2)
치이이익.
달궈진 불판. 여기저기 튀는 기름.
그 위에서 삼겹살이 꿈틀거리며 구
워지고 있었다.
아니, 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뒤집히지 않은 삼겹
살은 한쪽 면이 시커먼 색으로 변하
며 연기를 내뿜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옛 영웅은
고기를 뒤집을 생각이 없는지 그것
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깝게.
내가 작은 몸을 일으켜 집게를 집
어 들고 고기를 뒤집으려는 순간,
눈앞의 영웅은 입을 열었다.
“이게 정확히 얼마 만이지? 10년
이 조금 넘었던 거로 기억한다만.”
내 협소한 인간관계에서 친구, 전
우라 부를 수 있는 녀석이 입을 열
었다. 내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말을 고르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군대로 잡혀가기 직전이니
17년일 거다.”
실제로는 스스로 들어간 거지만.
그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17년이라. 벌써 그렇게 된 건가.”
10년이 넘게 만나지 않은 녀석을
친구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유달리 끈끈한 인연이니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과 피로 범벅되어, 악이 창궐하
던 시절을 피로 함께한 전우. 설령
기억에서 사라지고, 연락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인연은 영원할 테니.
“그 뒤로 연락이 끊어져서 죽었나
싶었는데 잘 살아 있었네.”
“말도 없이 떠난 건 미안하다.”
어차피 군대에 있어서 연락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겠지만, 지금 생
각해보니 조금 섭섭했다. 미리 언질
이라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너도 사정이 있었겠지.”
나는 그런 속마음을 감추고 조용
히 입을 열었다.
거짓을 말해서일까. 조금 텁텁해진
입을 적시기 위해 잔에 얕게 깔린
소주를 입에 흘려 넣었다.
작은 아이가 단숨에 소주를 들이
켜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그는 웃으
며 입을 열었다.
“풋, 그 모습으로 술 마시면 누가
뭐라고 안 하냐? 방송도 끝났으니
변신도 좀 풀지 그래?”
“어쩔 거야. 어차피 영웅증명서 내
밀면 나이 다 찍혀져 나오는데.”
변신인가.
역시 말해야겠지.
“변신 못 풀어.”
“음?”
“전역하기 몇 주 전에 갑자기 마
법소녀로 변하더니 변신이 안 풀리
더라. 그 뒤로 쭉 이 모양이다.”
그가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벌리
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얼빠진 표
정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운호 녀석이 그러더라, 마법소녀
로 산 시간이 너무 길어서 본질이
마법소녀로 뒤바뀌었다고.”
웃기는 이야기지.
말하다 보니 입이 말라 다시 소주
잔을 기울였다.
“운호라니, 네 마스코트?”
“어.”
마스코트에 대해서 떠올리자, 갑자
기 부아가 치밀었다.
오늘도 일은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뒹굴며 살을 찌우고 있겠지.
“내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
고, 넌 어떠냐. 방송에서 말한 거
보면 봉사활동 다닌다고?”
내 살찐 마스코트는 그다지 언급
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기에, 은근슬
쩍 말을 돌렸다.
다행히도 그는 내 마스코트에 흥
미가 없는지 더는 말을 꺼내지 않고
새로운 주제에 맞춰주었다.
“봉사활동이라.”
피식.
그는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나에
게 얼굴을 가까이 옮겼다. 어두운
고깃집의 조명 탓일까. 그의 얼굴은
갑자기 나이가 들어 보였다.
단련된 몸 덕분인지 얼굴은 영웅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시간
에 흐름에 따라 미약하게 새겨진 주
름의 그림자가 얼굴에 떠올랐다.
“하람아.”
“뭐.”
“대장벽 너머로 가본 적 있어?”
“몇 번 있었지. 거대괴수 잡는다고
불려간 적도 있었고, 대규모 범람
때도 꾸준히 나가고.”
영웅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경험
이 있을 것이다. 기괴하게 변한 대
지, 뒤틀린 물리법칙, 이계에 침식당
한 장벽 너머. 인류가 포기한 장소.
누군가는 이야기를 위해, 누군가는
관리국의 부름을 받고, 영웅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 가는 장소.
이 녀석은 왜 그런 당연한 이야기
를 하는 것일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그는 말하기 괴로운지, 연거푸 잔
을 기울이며 술을 넘겼다.
시끄러운 고깃집 내부에서 이 장
소만 따로 떨어진 것처럼,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에서, 오로지 삼겹살만이
지글거리며 존재를 어필했다.
나는 작은 손으로 고기를 뒤집고,
잘게 썰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붉게 달아
오른 얼굴에 감춰질 때쯤, 그는 다
시 입을 열었다.
“대장벽 너머, 사람이 사는 장소를
본 적이 있어?”
“산다고 말로는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은 없네.”
매번 불려 나갈 때면 눈앞의 적들
에게 망치를 휘두르기 바빴으니.
“나는 거기에 있었어.”
“십몇 년 동안 말이냐?”
“그래.”
꽤 흥미로운 이야기 아닌가.
대장벽 반대편이 어떤 상황일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상
황인지는 정보가 통제되어 있어 쉽
게 소식을 받아볼 수 없으니까.
나는 조금 탄 고기를 집게로 집어
서로의 접시에 옮겨 담으며 그의 말
에 귀를 기울였다.
“평범하게 살고 있더라. 울고 웃으
면서. 이계의 법칙 때문에 몸이 변
하고 뒤틀리면서도, 아직 자신이 인
간이라며, 서로를 북돋아 주면서 살
고 있더라.”
말하기 괴로운지 그는 연거푸 술
을 들이켰다.
“우리가 조금만 손을 내밀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국제연합
이 조금만 더 손을 뻗어준다면….”
말하다 보니 감정이 격양되었는지
그의 말은 점차 빨라지며, 점차 알
아듣기 힘들어졌다.
술기운이 오른 탓이리라.
붉게 변한 얼굴로 손짓까지 섞어
가며 나를 설득하려 하는 그의 모습
은 조금 전 무대에 서서 당당히 이
야기하던 영웅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휘말려, 과거를, 현
재를 이야기하는 잊힌 중년 아저씨.
“네가 그렇게 보고 느꼈다면 그게
맞겠지.”
“그렇다면….”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늘
어놓았다.
오랜만에 듣는 아름답고, 꿈이 느
껴지는 정의로운 이야기였다.
그가 내뱉는 정의의 숨결은 내 마
음속, 꺼진 잿더미 속의 불씨를 다
시 들출 만큼 올곧은 방향성을 가지
고 뿜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말이다.
동훈아.
시대가 변했어.
이제 영웅은 정의를 쫓지 않아.
이제 영웅이 쫓는 건.
누구건 자신을 알아봐 줄 얼굴.
종이에 적을 스펙 한 줄.
빳빳한 용지에 적힐 숫자거든.
네가 사회에서 떨어져 지낸 시간
만큼, 시대는 크게 변했단다.
그렇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진 않았다.
친구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기
에. 친구의 말에 호응하는 자신이
있었기에. 영웅이 정의를 쫓던, 그저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싶었다.
술에 취해 열심히 정의를 논하는
친구가 조금 부러웠다.
이 괴물 같은 몸뚱이는 술에 취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에 그저 소주잔에
담긴 투명한 액체를 입에 털어 넣었다.
*
“바래다주랴?”
“아무리 은퇴했다지만 집까지 못
걸어갈 정도는 아니다.”
“그래, 잘 들어가고. 자주 보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
해주려 했지만, 그는 도움을 거절하
고 붉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람아.”
“왜 또?”
“우리는 그때 정의로웠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사람들을
지키고 감사 인사를 받던 건 다 까
먹었냐. 다들 진심이었어.”
“그래… 그렇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어
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비틀거리지도 않고, 똑바로 서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다. 텔레비
전 프로에도 출연해보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동료와도 재회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건이란 건 긍정
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법이다.
가로등이 깜박거리는 어두운 밤길
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8평의 조그만 빌라. 사건 사고가
많은 지역인 탓에 가격이 싸서, 큰
맘 먹고 구매한 작은 마이 홈.
문을 열고 들어가자, TV 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그 빌어먹을 털
뭉치가 방에 누워 보는 중이겠지.
“나왔다.”
그렇게 말하고 집 안쪽으로 들어
갔지만, 털 뭉치는 현관 앞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마중 나올 것을 기대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기에, 신경 쓰이진 않았지
만 불쾌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부츠를 벗고 방 안쪽으로 들어가
자, 과자 봉지에 몸을 박아넣고 쩝
쩝거리는 흰색의 덩어리가 보였다.
부아가 치밀어 그 망할 덩어리를
발로 차버렸다.
“아흐아으악?!”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벽에 부딪힌
녀석의 모습은 통쾌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발로 차인 충격에 당황했
는지, 흰 덩어리는 과자 봉지에서
얼굴을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오셨어요?”
태평하게 말을 꺼내는 마스코트의
모습에, 나는 녀석의 얼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과자 먹지 말라고 했을 텐데? 더
살찌면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그・・・ 그게….”
이 녀석의 행동 패턴이야 손에 잡
히듯 뻔했다. 분명 내가 늦게 돌아
오리란 생각에 과자를 다 먹어 치운
후 증거를 인멸하려 했겠지.
계속 말을 얼버무리며 눈알을 굴
리는 게 가증스러워, 나는 손아귀에
힘을 집어넣었다.
얼굴을 붙잡은 손가락 사이로 살
점이 튀어나오더니 둥근 얼굴이 조
금씩 타원형으로 변했다.
“아프니까 그만해주세요! 가후극.”
잘못했다는 자각도 없는 모습에
계속해서 손에 힘을 불어넣자, 손아
귀 안쪽에서 빠득거리며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과자. 안 먹을게요! 죄송해요!”
흰 덩어리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
을 시인했고, 나는 녀석을 붙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퉁.
땅바닥에 떨어진 덩어리는 살짝
튀어 오르더니,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손으로 가다듬었다.
“원래대로 안 돌아오면 어쩌려고
이러셔요!”
“어쩌긴, 본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손으로 뭉개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쥐었다
피며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진 않겠지만,
저 녀석의 행동을 고치려면 이 정도
협박은 필요할 것이다.
“포요오오오.”
내 행동이 무서웠는지 흰 먼지는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저 말버릇도 요즘 길게는 하지 않
더니만, 무의식적으로 나올 만큼 무
서웠나 보다.
이 정도 혼냈으면 적어도 몇 주간
은 과자를 주워 먹진 않겠지. 그보
다 길게 내 말을 지키는 건 저 살
찐 페럿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
운호가 사라진 거실을 둘러보니,
과자 부스러기가 사방에 흩어져 매
우 더러웠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과자 부스러기
를 빗자루로 쓸어 담고, 봉지에 모
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청
소를 하고 있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물론이죠. 다시 영웅이 될 수 있
다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 겁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동훈이
의 인터뷰.
그의 모습은 당당했다.
정의를 쫓는 영웅다운 당당한 모
습의 말과 행동.
촬영할 때는 그답다고 생각하고
바라보았지만, 지금 이렇게 텔레비
전으로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은 온전한 속마음이 표출
된 것일까. 썩어 문드러져 가는 마
음을 다른 이들에게 보일 수 없기에
억지로 위장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방송을 보던 와
중,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구나~ 꿈꾸는 소망 하나~
울리는 벨 소리를 끊고, 귓가에
스마트폰을 붙였다.
“여보세요?”
“이하람 씨 되시죠?”
“예, 그런데요?”
“서울 이능 중앙병원으로 빨리 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능 중앙병원? 거길 내가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김동훈이라는 분을 아시나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제 친구입니다.”
“그분이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돌아가시진 않았지만 위급한..”
툭.
손에 들렸던 스마트폰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스마트폰에서 계속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멍하
니 텔레비전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어깨 위에 올려진 인류
라는 큰 짐은 너 혼자 짊어지고 있
는 것이….”
“이하람 씨? 이하람 씨? 제 말 들
리시나요?”
텔레비전 안의 그는 힘차게 말을
내뱉고, 땅에 떨어진 스마트폰에서
는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Chapter 03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