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짐승들은 좀 맞아야 말을 들어.(2)
저렇게 말은 했지만, 그들은 나를
배신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그들을 팔아넘기거나, 중요한 정보
를 발설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나는 구원자나 마찬가지
니까.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느끼며 그
렇게 생각했다.
띵.
1층입니다.
빠르게 지상으로 상승한 탓에 느
껴지던, 몸 전체를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일은 다 보셨습니까?”
“오냐.”
나에게 무릎 차기를 얻어맞아 이
빨이 부러진 호랑이 괴인이 내게 말
을 건넸다. 아마 나를 밖까지 안내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다.
간부인데도 열심히구만.
“지부장한테도 말해줬지만, 앞으로
자주 올 예정이거든?”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부하 놈들 입을 조심하
라고 일러두고, 나 보이면 재깍재깍
굽히라고 말해둬.”
“예.”
만족스러운 대답에 정면을 바라보
고 걸음을 옮기자, 검은 양복을 입
은 호랑이가 뒤로 졸졸 따라왔다.
처음엔 별 신경을 두지 않았으나
달라붙어 졸졸 따라오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에 열불이 타올랐다.
“조폭도 아니고 졸래졸 따라오
냐? 차라리 네가 앞에 서던가.”
“어떻게 아가. 회장님보다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저는 뒤쪽이 어
울립니다.”
또 아가씨라고 하려고 했던 거지?
다시 머리통에 무릎을 박아버릴까
고민했지만, 부러진 이빨을 보자 그
런 생각이 사라졌다.
송곳니가 한쪽만 부러진 거면 역
전의 전사다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냐고 우길 수라도 있지, 두 쪽 다
부러지면 꼴사나운 모습이 아닌가.
쟤들도 부하들 앞에 나갈 텐데,
그런 몰골은 좀 심하겠지.
그보다.
“회장님은 또 뭐야?”
“수장님보다 높으신 분이니, 회장
“님이십니다.”
“미쳤냐?”
내가 왜 너희들 회장님이야. 이놈
의 짐승계 괴인들은 뇌까지 근육이
라 그런지 맛이 가버린 모양이다.
“세계정복 결사의 회장이 마법소
녀라면 참 잘 돌아가겠다. 그치?”
“세계정복 결사라뇨, 대장벽 너머
정화봉사단입니다. 국제연합에 허가
도 받은 봉사단체죠.”
저 괴상한 단체명은 또 뭐야.
“분명 마지막에 봤을 때는 이세계
오염 치료지원 협회였는데?”
“국제연합에 위장단체임이 들통나
서 박살 났습니다.”
“잘한다. 아주.”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위장단체
를 몇 군데 파악했다고 국제연합에
서 지원요청이 들어왔던가.
아마 그때 걸린 듯싶다.
그나저나. 대장벽이라.
“실제로 대장벽을 넘기도 하나?”
“예. 관련 지부가 있고, 거주민에
게 생활용품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설명을 듣자니 동훈이가 떠올랐다.
저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고. 거기
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던.
영웅의 짐을 내려놓고, 정의를 실천
하려던 그의 마지막 외침.
이렇게 가까운 장소에 그의 말을
실현할 방법이 있을 줄이야.
“그 단체. 실제로 봉사활동도 하는
거지? 대장벽 너머 사람들에게 생활
용품 전달이라고 말하는 거 보면.”
“예. 아무래도 위장기업이니 그리
크게 활동하지 않습니다만.”
“거기 봉사량 늘려봐. 단체 소속에
내 이름도 넣어두고.”
“그 말씀은?”
호랑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
를 바라보았다.
저 덩치가 얼굴을 들이미니 시야
가 가득 차버렸지만, 그리 나쁜 생
각은 들지 않았다.
“안 들키게 커버쳐줄 테니까. 봉사
활동하는 양을 늘리란 뜻이다. 영
웅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국제연
합도 신경을 덜 쓸 테니.”
봉사단체 하나 정도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있다. 마침 떠오른 생각
도 있으니.
쾅.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호랑이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온 힘을 다해 땅에 이마를 박았다.
A급 상위에 속하는 괴인이 그런
행동을 취하자, 땅이 진동하고, 금속
으로 된 복도바닥이 갈라졌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충돌로 생
겨난 충격파가 복도를 휩쓸더니 천
장에 있던 전등들이 깨져나갔다.
“모자란 저희를 위해 회장님이 몸
소 나서주시다니. 이 라이가! 감복
했습니다.”
쩌렁쩌렁한 외침이 따갑게 귀를
찔러왔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고
함이 끝나자마자 폭탄이라도 터진
양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애애애앵.
-습격경보. 습격경보.
-막대한 힘이 기지 내에서 탐지되
었습니다. 기지 내 전투원들은 무장
후 출격에 대비하길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막대한 힘이…
이게 뭔 난리야.
괴인 하나 받으러 왔을 뿐인데,
졸지에 습격자가 되게 생겼다. 몰려
오는 괴인들을 바라보며, 이걸 어떻
게 해야 할까 생각에 잠겼다.
*
“그래서 다 때려눕히셨다고요?”
“다른 방법이 없었어. 호랑이 놈은
이마가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
지, 괴인 놈들은 그걸 보고 습격자
라며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오지.”
지부장 방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도 않았는데, 다시 방에서 촉수 머
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까 그렇게 멋지게 헤어져 놓고
이게 무슨 꼴이람.
“라이가도 있었으니. 말로 하시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호랑이 놈이 설명한답시고 일어
서다 기절해버리지 뭐냐.”
피가 모자라 급성 빈혈로 인한 기
절이라니. 괴인 주제에 무슨 꼴인지,
설마 채식주의자라 철이 모자란다거
나 하는 건 아니겠지.
덕분에 쓸데없는 일이 늘었으니,
다음에 본다면 반대쪽 송곳니도 부
러트리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 녀석의 추태 따위 알게 뭔가.
동아시아 지부의 지부장인 촉수
머리는 한숨… 아니, 점액을 내뿜으
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든
지부에 미리 알려두겠습니다. 그러
니 이하람 님도 자제해주시길.”
“그래. 부탁한다.”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이쪽
에서도 사양이다.
오늘 하루 때려잡은 괴인들을 돈
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몇 년치
생활비는 될 것이다. 무료봉사도 아
니고 이게 무슨 꼴인지.
이야기도 끝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다른
생각이 떠올라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까 그 호랑이한테 말했던 건데,
그 녀석이 다 잊어버렸을 수도 있으
니까 너한테도 말해둬야겠다.”
“뭡니까?”
“너희들 대장벽 너머 정화봉사단
인지 뭔지 운영한다면서?”
“예. 훌륭한 위장조직이죠. 돈도
별로 안 들고, 평판도 괜찮습니다.”
촉수 머리는 떠올린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촉수를 사방으로 뻗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내 이름 좀 넣어줘. 되도록
높은 자리에.”
“……운영비를 착복하실 심산이시군
요. 처음부터 그걸 목적으로….”
그는 촉수를 내리깔며, 나를 바라
보았다. 저놈의 촉수는 왜 저리 현
란하게 움직이는 걸까.
“월급은 들어오면 좋겠다만, 이름
만 올려둬. 영웅이 속해있다고 하면
국제연합도 신경을 덜 쓸 거 아냐.”
다 너희들을 위해서란다.
“무슨 속셈이시죠?”
나를 못 믿겠다는 듯,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흥분했는지 촉수
에서 괴상한 색의 점액도 뿜어졌다.
더러워라.
“표면적이라고 해도, 봉사단체가
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만.”
“친구가 하던 일이라 그래. 대장벽
너머의 봉사활동.”
술자리에서 나눈 푸념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나에게 열렬히 외쳤다. 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기에 이리도 기억
에 짙게 남았으리라.
웃긴 일이다. 정작 영웅들이나, 국
제연합은 관심 없는 대장벽 너머에
서 악의 단체인 괴인들이 봉사활동
을 하고 있었다니.
“너희의 그 일이 잘될수록, 친구가
기뻐할 것 같거든.”
***
대화를 마치고 기지에서 나왔다.
전투원이 죄다 의무실로 실려 간
덕에 나를 배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조용하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수많은 소리
가 엉키면 비명처럼 들린단 말이지.
끼이익. 쿵.
방금 빠져나온 빌딩의 낡은 문이
시끄러운 경첩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두운 골목길 사이의 더러운 빌
딩. 어느 누가 저기에 괴인 결사의
지부가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빌딩에서 시선을 떼고, 어두
운 골목길을 걸으며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그 녀석 번호가 뭐였더라. 연락처
정도는 적어놨어야 했는데.
그나마 유심칩이라도 남아있으면
전화번호부를 복구할 수 있겠지만,
핸드폰의 파편은 지금 내 집 마루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잘못된 번호를 눌러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걸기를 몇 번. 인내
심이 바닥날 때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익숙한 목소리. 딱딱한 말투.
“현석아, 하람인데. 시간 되냐.”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라면 거절
한다. 이하람.”
내가 얘한테 얼마를 빌렸더라…?
“그런 이야기 아니고, 네 힘을 좀
써줬으면 해서 그래.”
“청탁이라면 거절하고 있다만.”
알지,뉴스 틀면 툭하면 나오는
게 너한테 뇌물 줄려다가 역으로 잡
혀갔다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인데.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이는 친
구가 아니라 원수라고 한다.”
“……그렇게 많이 빌리진 않았다만.
아무튼, 이야기라도 좀 들어봐라.”
“빨리하도록. 이미 시간이 많이 낭
비되었다.”
딱딱하기는.
나는 딱딱한 그의 머리 대신, 발
에 치이는 딱딱한 돌멩이를 걷어차
며 말을 이었다.
“대장벽 너머 정화봉사단이라는
봉사단체가 있거든?”
“잠시.”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녀석이 머리에 집어넣지 않았다는
뜻은, 그리 큰 단체는 아니란 이야
기인가.
“확인했다. 연합의 인가를 받은 봉
사단체군. 이 단체에 문제라도?”
“아니, 그 녀석들 일하는 데 도움
좀 줬으면 해서.”
“특정 단체에 이득이 가는 행위라
면 거부한다.”
그래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동훈이의 부탁이라고 해도?”
핸드폰 너머 대화상대의 표정이
굳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
었다.
통화 중이라고 해도, 숨을 들이켜
며 긴장하는 소리 정도는 느낄 수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녀석도 동훈이와 친했으니 그의 죽
음에 느끼는 것이 있었겠지.
동훈이의 이름을 파는 것이 좀 꺼
림칙했지만, 그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서라고 나 자신을 달랬다.
“혹시 동훈이가 마지막 하던 일이
뭔지 알아?”
“모른다.”
“대장벽 외부에 사는 사람들을 위
한 봉사활동이었어. 그리고 그 단체
는 그런 일을 하는 단체고.”
사실은 세계정복 비밀결사의 위장
단체지만 봉사활동은 확실히 하고
있으니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그 녀석이 나한테 그랬지, 대장벽
너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도 필요
하다고.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고 봉
사단체를 찾아다녔거든.”
“그런가.”
이래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니. 딱
딱한 녀석.
“내 이야기는 끝났어. 다음은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
긍정적이라. 현석이치고는 괜찮은
답이군.
“고맙다. 그럼 바쁠 텐데 끊을게.”
그리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요즘 일어나는 영웅 습격 사건.”
통화종료를 누르려는 손이 멈췄다.
“이하람. 네 짓이냐?”
갑작스러운 질문.
그는 어떤 의미에서 이것을 물어
본 것일까.
확정났지만, 친구로서 질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떠보기 위함인가. 답
변이 늦어진다면 의심하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명확
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내
머리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아니. 내가 뭐하러 그러겠냐.”
그렇기에.
발랄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런가.”
여전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고
저 없는 목소리. 그는 내 답에서 어
떤 것을 읽어냈을까.
짧은 침묵이 흐르고.
“그럼 빌린 돈은 최대한 빨리 갚
도록. 전화 끊으마.”
뚝.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많은 생
각을 떠올렸다.
설마 경고인가. 아니면 내가 걱정
되었던 것뿐인가. 지금 관리국은 어
디까지 짐작하고 있는 거지.
국제연합. 영웅관리국.
한국지부 대표 박현석.
그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것을 물어본 것일까.
자신은 관리국과 상관없이 자신에
게 주어진 업무를 할 뿐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대표답
게 나를 잡아넣기 위해서?
모르겠다. 현석이 녀석은 현역일
당시에도 워낙 알기 힘들었으니까.
생각에 잠긴 채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빵빵거리는 자동차의 소음.
시끄럽게 흘러가는 인파의 흐름.
고작해야 몇 분 걸었을 뿐인데,
완전히 뒤바뀐 분위기.
이런 번화가에서 몇 분 거리에 무
시무시한 괴인들의 본거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길을 걷는 이들은 무
슨 반응을 보일까.
공포? 당황? 혼란? 영웅심?
의미 없는 생각이다.
그들에게 괴인은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이야기니까.
기껏해야 놀라며 경찰에 신고하겠
지. 당연히 괴인들이 영웅에 토벌될
것을 믿으면서.
마침, 내 눈앞을 영웅이 스쳐 지
나갔다.
장비 계열 영웅인지 몸에 딱 달라
붙은 라이딩 슈트를 입고 등에 무기
를 맨 채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
는 여성.
오늘의 사냥감이구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빠루를
소환하며 주변 빌딩 위로 점프했다.
검게 물든 몸이 밤의 어둠에 스며
들어 내 모습을 감추었다.
이어 빌딩 옥상을 박차고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뛰어올라 그녀의 뒤
를 쫓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Chapter 08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