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악.
“이것 봐라?”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영웅을 쫓아왔더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빌딩 옥상에 자리 잡은 그녀는 어
딘가로 총을 겨누더니, 스코프에 눈
을 붙이고 기척을 숨겼다.
저격계열인가 하고 잠시 바라보았
지만, 뭔가 이상한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대피경보가 떨어지지도 않아 사람
이 지나다니는 빌딩 옥상 한복판에
서, 어딘가를 저격한다고?
사람 사이에 숨어든 괴인을 저격
하는 관리국의 암살부대 소속 스나
이퍼라도 되나?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그 행동에서
수상쩍은 냄새가 풍겼다. 관리국의
암살부대가 저렇게 허술하게 움직일
리가 없다.
내가 나오고 나서 질이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혼자서 오
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방네
암살자가 여기에 있다고 광고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너무 수상한데.”
나는 혼잣말을 하며 은빛 막대를
입에 물었다. 대체 저 여성이 뭘 노
리고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그녀가 총을 겨눈 방향을 향
해 뛰어올랐다. 건너편 빌딩까지의
거리가 멀어, 지면을 강하게 박차느
라 빌딩 옥상에 금이 갔다.
빌딩 소유주에게 조금 미안한 마
음이 들었지만, 수상한 영웅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빌딩 사이를 가르는 바람을 느끼
며 어두운 밤하늘을 날았다.
새로운 옷이 검은 이유는 밤에 몸
을 숨기기 위함일까.
검은 옷과 머리카락은 밤의 장막
에 쉽게 삼켜지고, 드러나는 흰피
부도 검은 입자에 가려졌다.
단순한 외형변화라 생각했더니, 의
외로 숨어서 활동하기 좋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원하는지 알고 내려
진 힘인 것 같구만. 나는 그렇게 생
각하며 계속해서 빌딩을 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격수가 무엇
을 노리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받아라! 정의의 철권! 아이언 피
스트!”
부끄럽지도 않은지 쪽팔리는 대사
를 내지르며 괴인을 퇴치하는 영웅.
요즘은 정말 저런 게 유행인가.
저런 대사에 신경 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주먹을 휘두르고, 형을
연마할 것이지.
거기다 기술명이라니, 적에게 대처
할 수단만 주는 꼴 아닌가. 거기에
더해 방송도 하는지 카메라맨을 이
끌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가관이구만.
그 또한 영웅의 본래 마음가짐을
잊고 세상의 눈초리를 신경 쓰는 한
명의 광대.
평소라면 정의를 알리기 위해 팔
다리라도 부러트려 놓았겠지만, 오
늘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여자가 있
으니까.
잠시 상황을 봐야겠어.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 요즘
시대 영웅인데, 저런 영웅을 저격할
이유가 있나? 그리 생각하며 빌딩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괴인과 영웅의 사이의 주먹 투덕
거림이 끝나고 영웅이 우세를 잡자.
“궁극일격! 종말의 강타!”
영웅은 자신의 필살기를 자랑하듯,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히고는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며 날아갔다.
쪽팔려서 못 봐주겠네. 그냥 돌진
후, 지면을 강하게 때리는 기술에.
그 순간, 저편에서 총알이 발사되
는 것이 느껴졌다.
짧은 섬광.
눈앞을 지나가는 총알.
-탕.
뒤이어 총알 뒤에 쫓아오는 미약
한 작은 소리.
신경 쓰지 않았으면 도시의 수많
은 소음에 묻힐법한 작은 발사음.
총탄이 날아가는 방향을 알아내고
자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마력이 머리에 집중되고 오감이
강화된다. 시간이 압축된다.
공기를 가르는 총알의 흐름.
앞으로 나가는 작은 총알의 궤적.
총알의 뒤를 뒤늦게 따라오는 귀
를 울리는 파열음.
가속된 인지능력이 빠르게 총알을
쫓았다. 예측되는 도달지점은 영웅
의 머리. 이대로 가만 놔두면 그의
머리엔 총알이 박혀 삶을 마감할 것
이다.
“놔두기엔 조금 그렇군.”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지만,
목숨을 빼앗는 것은 다른 이야기.
후배가 그냥 죽게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말 운 좋은 녀석이구만.
나는 입에 문 막대를 악물고, 매
달려있던 빌딩 벽을 박찼다. 벽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충격파는 벽을 타고 전달되며 유
리창들을 깨부쉈고, 조각난 유리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이미 발사된 총알을 따라잡기 위
해 힘을 담은 도약.
마침 대피경보가 떨어져 주변에
사람도 없고, 누군가의 목숨을 구한
다는 명분도 있겠다 싶어 마음껏 힘
을 풀어헤쳤다.
쾅.
영웅의 눈앞에 착지하자, 발아래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하늘로 치솟
았다. 파편 사이로 놀란 영웅의 얼
굴이 보였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영웅 습격…”
걱정 마라. 오늘 습격할 녀석은
네가 아니니까.
총알의 궤도에 맞춰, 빠루를 들어
올렸다.
캉. 카가가가각.
빠루의 머리에 총알이 걸리며 급
격히 회전했다.
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그냥 놔
두면 총알을 놓칠 것 같았기에 오른
팔에 힘을 불어넣었다.
별생각을 안 하고 빠루를 뻗었다
고는 하나, 내 손이 잠시 튕겨 나갈
뻔한 총알의 무게감.
일반적인 총알이 아니다.
거대괴수나, 괴인을 퇴치하기 위한
특수 총알. 그렇다면 뭔가 추가적인
효과가 있을 터.
-콰과과과.
총알 뒤편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
오더니 추진력이 더해졌다.
늦었어.
일반적인 총알이 아니라고 알아차
리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와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대로 빠루를 뒤
틀어, 총알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슈우우우. -쾅.
불꽃을 뿜어내며 하늘로 날아가던
총알은 폭발하며 사라졌다.
충격 강화 마법에 2차 추진에 폭
발이라. 더럽게 비싼 총알이겠네. 총
알 하나에 몇 개나 되는 효과를 박
아넣은 건지. 내가 잠시 돈을 폭발
시키는 불꽃놀이를 보고 있자.
“영웅 습격자! 방금 그건 뭐냐!”
뒤에서 영웅의 고함이 들렸다.
영웅 습격자?
문맥상 날 지칭하는 것이겠지. 나
는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
가가 말했다.
“누가 네 녀석을 저격하려고 해서
대신 막아줬어. 고맙지?”
“그걸 믿을 리 없지.”
믿기 싫으면 말고.
“이럴 땐 그냥 고맙습니다. 하는
거야 어린놈이.”
나는 땅에 다리를 내지르며 그의
턱에 그대로 주먹을 박아넣었다. 예
의범절 주입 겸, 설명하기 귀찮으니
기절이나 시키자는 의도를 가지고.
힘의 가감을 하지 않은 탓인지,
상대 영웅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턱을 얻어맞
은 영웅이 그대로 땅으로 쓰러졌다.
쿵.
주인이 쓰러지자 영웅의 팔에 매
달려있던 거대한 주먹이 땅을 울리
고,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쪽은 어느 정도 정리됐고.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시선
을 돌렸다.
저편에서는 총을 쏜 여자가 당황
하며 도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저것에게 뭐 하는 녀석이냐고 물
어봐야 하겠군.
나는 카메라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준 후, 흙이 드러난 길바닥을
박차고 여성을 향해 뛰어올랐다.
도약의 여파를 받은 보도블록이
박살 나고, 다져진 흙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저건 관리국이 보상이
든 사후대처든 알아서 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저 여자
의 정체니까.
*
카각. 깡.
힘 조절을 하지 않고 점프한 덕분
에 빌딩 옥상을 지나칠 뻔했다.
다행히 빠루 머리로 건물 난간을
잡을 수 있었지만, 대신 난간이 바
닥에서 뽑혀 나왔다.
빠루 끝에서 뭉개져 대롱거리는
금속 난간을 보며, 잠깐 생각했다.
가끔 힘 좀 풀어줘야 하겠다고,
너무 오랜만에 힘을 개방하니 도저
히 제어할 수 없다.
아까 그 영웅도 괜찮으려나.
어느 정도 힘을 가감하긴 했는데,
혹시 턱뼈가 부러진 건 아니겠지.
“히익….”
공포에 질린 여성을 바라보며 빠
루에 달라붙은 금속 난간을 뜯어내
옥상 한구석으로 던졌다.
까강. 까가강.
일그러진 금속 난간이 바닥에 부
딪히며 울리는 금속음을 들으며 나
는 한 걸음씩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내가 무서운지, 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뒤쪽으로 조
금씩 기어갔다.
“오. 오지마..”
덜덜 떨리는 몸과 입으로 쥐어짠
공포에 질린 목소리. 당연히 그런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너, 뭐냐?”
빠루로 턱을 어루만져주며, 그녀에
게 물었다.
“아… 어… 으아….”
그에 더더욱 공포에 질렸는지, 그
녀는 바들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죽이진 않을 거니까 말해보렴?
너도 빌딩 옥상에서 자유낙하 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빠루를 옮겨 방금 뜯겨나간 난간
을 가리켰다. 저쪽이 비어있다고.
“……”
“조?”
빨리 좀 말할 것이지.
“…존경합니다. 영웅 습격자님!”
이건 또 무슨 강아지 풀 뜯어 먹
는 소리야.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녀는 더
더욱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습격자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제가 무슨…”
그녀에게 눈을 맞추었다.
“나는 영웅을 습격하는 악당이야.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건 영웅으로
서 좀 그렇지 않나?”
세간에선 그런 사람들을 타락한
영웅이나, 빌런이라고 부르는데.
나를 존경한다고 말한 것치고는
내가 무서운지 그녀는 더더욱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요・・・ 요즘 영웅이 영웅답지 않다
는 말에 감명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사람을 카메라 앞에서 쓰
러트릴 만큼 강하지 않기에..”
“그래서 영웅을 죽이기 위해서 저
격을 했다? 판을 키우기 위해서?”
“예. 지금 언론들은 습격자를 비웃
을 뿐, 그 사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사건을 키우고 싶었다 이거지?”
“예.”
내 사상에 감화된 영웅인가.
나쁘지 않은 징조다. 적어도 내
사상을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사람
이 나타났으니까.
“나쁘지 않아. 그래. 요즘 영웅은
잘못되었지.”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도 나에게 칭
찬을 들은 것이 기쁜 듯 환하게 웃
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빠루를 치켜들었다.
“난 영웅을 죽일 생각은 없거든.”
내리쳤다.
콰직.
“아아아아아악!”
그녀의 오른손이 부러졌다.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
린다. 그녀는 옥상을 구르며, 왼팔로
오른팔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시끄러. 애들 비명처럼 들리잖아.
조금 시간이 지나, 가까스로 아픔
을 진정시켰는지, 그녀는 얼굴을 들
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 째서.”
“제대로 이해를 못 했나 본데. 나
는 요즘 애들이 싫은 게 아니야. 밝
은 영웅. 좋지.”
그녀의 순수하게 빛나는 눈에 시
선을 맞추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q1….”
“영웅. 나쁘지 않아. 일하며, 사회
질서를 지키고, 합당한 보상을 받아
간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고난을
몰라. 영웅은 항상 밝게 빛나며, 돈
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직업이라
고 생각하지.”
그들은 피와 살로 범벅된 전쟁터
를 모른다. 죽어가던 사람들을 모른
다. 핍박받던 영웅들을 모른다.
그래서는 강한 영웅이, 완벽한 영
웅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에
게 고난을 내리는 것이다.
“저는 그래서 그런 사회에 경각심
을 주기 위해….”
“그만.”
가치가 없는 말을 잘라냈다.
“동지를 죽이려 하는 시점에서 틀
렸어. 그건 정의가 아니야. 영웅이
할 짓이 아니지.”
그녀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
을 뻐끔거렸다. 나는 그녀가 뭔가를
말하기 전에, 계속해서 내 사상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들의 현재 위치는 상관없어. 필
요한 일이고, 사회의 시선으로는 합
당한 대우를 받아 가는 거니까. 죽
을만한 죄는 아니지.”
다독이는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영웅을 칭해서는 안 돼.
고난을 겪고, 아픔을 겪으며, 희생하
려는 자만이 영웅을 칭하는 거야.
사람들이 입에 장난삼아 담을 이름
이 아니라고.”
빠루를 치켜들었다.
“그러니.”
내리쳤다.
“혹시 내 사상을 계속 전하고 싶
으면 내 말을 계속 기억해둬.”
치켜들었다. 내리쳤다.
치켜들었다. 내리쳤다.
영웅답지 못한 행동을 했기에, 다
리 하나 더.
***
“흠흠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
르며 집으로 향했다.
사냥도 좋게 끝났고 불쌍한 영웅
도 구했으며, 내 생각을 이해한 여
자와도 만났다. 이 일을 행하고 처
음 있는 기쁜 소식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슈퍼에서 과자와 맥주를
대량으로 사 들고 봉지를 돌리며 집
으로 향했다.
캉. 캉.
맥주 캔이 부딪치는 소리가 흥겹
게 느껴진다. 오늘이라면 운호가 과
자를 처먹고 부스러기를 사방에 뿌
려놨어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
며, 기쁜 마음으로 집 문을 열었다.
“운호야 나 왔다.”
“늦었군.”
웬 남자 목소리지. 왠지 모르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서 거실 안
쪽으로 몸을 들이밀자.
“어딜 쏘다니나. 이하람.”
“현석이 네가 우리 집에 왜 있어.”
먼지 하나 없는 군청색 양복을 빼
입고, 머리를 뒤로 넘겨 왁스로 굳
힌, 엘리트 분위기의 남자.
영웅관리국 한국지부장 박현석이
거실에 앉아, 운호와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Chapter 09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