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애들은 놔둬도 알아서 잘 커.
부스럭부스럭.
안주로 펴놓은 과자 봉지를 헤집
는 현석이의 손을 따라 신경 쓰이는
소리가 울렸다.
근무시간이라 술을 마실 순 없다
며 물을 퍼마시는 주제에, 우리 집
의 귀중한 식량이 낭비되고 있었다.
운호는 그저 과자를 먹을 수 있다
는 사실이 마냥 좋은지 볼이 터지도
록 쑤셔 박고 있지만.
“매일 이런 것만 먹고 사니 키가
안 크는 거다.”
뭔 미친 소리야 이건.
“난 뭘 해도 안 커 미친놈아.”
“시도는 해보았나?”
“괴인한테 팔다리가 잡아 당겨져
도 안 크더라. 그 이후 포기했어.”
실험을 도와준 두 괴인은 그 보답
으로 팔다리를 찢어주었다.
그들도 내 팔다리를 당겼으니, 나
또한 그들의 팔다리를 당겨주었다.
서로서로 같은 것을 주고받는 정
당한 거래였으니 그들도 만족했을
것이다.
“우유를 마셔보는 건 어떤가.”
“진심이냐 농지거리냐.”
저게 진심이라면 저걸 관리국 지
부장이랍시고 앉혀놓은 국제연합 놈
들도 좀 처맞아야 할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여전히 농담을 잘
못 알아듣는군.”
그냥 전대의 블루 시절부터 네 농
담이 재미가 없는 거야.
옛날부터 그는 자기 농담이 재미
있다고 믿는 것 같았기에 그가 속한
전대의 팀원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마 자기 색이
파란색이라고 썰렁한 농담이나 내뱉
었던 건가.
“네 부하 직원들이 불쌍하네.”
저런 딱딱한 농담에 매일 반응하
려면 죽을 맛일 터.
조직 생활도 힘들겠어.
“그들 앞에서는 농담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총괄하는 지부장이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니.”
“아, 그러셔.”
씁쓸한 맥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다. 약한 탄산이 목을 자극했다.
단순한 흉내다. 술을 마시는 흉내.
이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알콜이
라 해도 취하는 기분은 느낄 수 있
으니. 이대로 놓아두면 내일 아침까
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
기에, 그런 유사 취기를 빌려 그에
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던졌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왜 왔냐? 전
할 말이 있으면 부하들이라도 대신
보내면 될 텐데.”
내가 찾아가도 바쁘다는 핑계로
대리인이랑 만나게 했던 녀석이.
“내가 부탁하는 처지니 직접 얼굴
을 봐야 하지 않겠나?”
“부탁? 뭐 또 죽여야 할 타락 영
웅이라도 나타났냐? 요즘 없었으니
나타날 때 되지 않았나?”
“그런 잔인한 시절은 오래전에 지
났다. 그렇기에 너도 관리국을 그만
둔 것 아닌가.”
“글쎄다. 사람이 힘을 얻으면 나쁜
짓을 하기 마련이지. 사람 마음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오늘만 해도 누구를 죽이려 드는
여자를 교육해주고 왔다고.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을 골라서
힘을 내린다고 해도, 마음속에는 어
떤 심상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
도 모르니.
“그 건에 대해서는 항상 이야기가
맞지 않는군. 어찌 되었건, 오늘 부
탁할 이야기는 피가 튀는 험악한 이
“야기가 아니다.”
물을 들이켠 현석이는 한숨을 내
쉬며 입을 열었다.
“영웅 습격자에 괴인 반응이 확정
되었다. 코드네임 블랙 머라우더. 사
건 발생 장소에서 이계의 힘도 검출
되었고, 해당 적을 퇴치하라는 이야
기를 얻은 영웅도 발생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괴인?
이계의 힘?
그 이야기가 너무나도 예상 밖이
었기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의 말
을 기다렸다.
“이에 관리국에서는 블랙 머라우
더를 크림슨★해머의 복제 괴인으로
확정하였다. 아직 너를 의심하는 사
람들이 있었지만, 블랙 머라우더를
퇴치하는 것을 이야기로 삼은 영웅
이 태어나 그 의견도 사라졌다.”
나는 놀란 마음을 숨기며 현석이
의 말에 대답했다.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말하네.”
그게 현석이답긴 하다만.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감시자를
놀려먹었다고 보고서가 올라왔다.”
“당연하지. 그따위 실력으로 누굴
미행해.”
감시자라면 응당 빌딩 정도는 산책
하듯이 뛰어넘을 실력은 있어야지.
“그건 넘어가도록 하지. 이후 있을
한 가지 절차만 거치면 너는 혐의
대부분을 벗을 수 있다.”
현석이는 품 안에서 헤어드라이어
처럼 생긴 검은색의 작은 기계를 꺼
내어 나에게 들이밀었다.
“영웅관리국 한국지부장 박현석의
권한으로 강제집행하겠다. 이는 거
부할 수 없으며, 변명이나 반론으로
대표되는 모든 자기변호를 금한다.”
“마음대로 해라.”
이계의 힘이 정말 검출될지는 모
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아직 적도 아닌 친구를 내 손으로
찢어버릴 수도 없고.
삐빅. 삣.
기계음이 들리더니 뭔가가 기계에
서 쏘아졌고, 평범하게는 느낄 수
없는 약한 파장이 나를 흩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것은 마법소녀의 마스코트나 영
웅의 서포터들이 발하는 이계의 힘
을 탐지하는 파장.
현석이의 손에 들린 것은 그 파장
을 과학적으로 구현한 물건이다.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계의 힘을 숨기거나 위장하는
괴인도 있지만, 그런 힘이 나한테
있을 리가 없으니.
삑. 삐비빅.
결과가 나온 듯, 현석이는 뽑혀
나오는 작은 종이를 바라보았다.
”
“결과는?”
“깨끗하군. 약간의 오염은 감지되
지만, 이 정도라면 정상 범위다.”
“다행이네. 괴인의 살점을 뒤집어
쓸 일이 많아서 혹시나 했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씩씩하게 웃
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 안쪽은 검게 타들어 가고 있
지만, 이로써 나에 대한 혐의는 벗
겨질 터. 생각지도 못한 일로 혐의
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계의 힘이란 말이지.
검은 옷으로 변하면 이계의 힘이
뿜어져 나오나?
새로운 힘이 괴인의 힘이라니, 운
호 녀석이 쓸모없음이 또다시 증명
되었다.
현석이는 기계를 품 안으로 집어
넣고 다시 과자를 씹기 시작했다.
내용물이 모두 사라진 과자 봉지
가 하나둘씩 방구석에 쌓이고, 또
다른 봉지가 입을 벌렸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집 과자가 다
동나게 생겼구만.
“볼일도 끝났는데 안 가냐?”
계속 먹고 싶으면 돈을 내놔라.
“아직 이야기는 안 끝났다. 다만
너에게 이 일을 맡겨도 될지 고심하
고 있을 뿐.”
“어차피 날 찾아온 거 보면 나 말
고 적임자가 없어서 아니냐? 다른
선택지가 있으면 그리로 가던지.”
“그도 그렇다만, 네 모습을 보면
정말 의심이 피어오르는군.”
“내 모습이 뭐가 어때서?”
“적어도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다
리를 벌리고 배를 긁지는 않아 주었
“으면 하는군.”
“그게 뭔 상관인데.”
내 행동과 외모의 격차를 신경 쓸
거라면 진작에 말투부터 고쳤다.
“중요한 점이다. 너에게 맡길….”
누구나~ 꿈꾸는~ 소망하나~.
핸드폰 벨소리. 왜 하필 이럴 때
전화가 오는 거지.
“전화 좀 받고 올게.”
“다녀와라.”
대체 어떤 놈이 전화를 걸었는지
화면을 보자, 문어 대가리라고 적혀
있었다.
제기랄.
급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와 전화를 받았다.
“타이밍 죽인다? 지금 관리국 높
은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죽을래?”
“그럼 아예 안 받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화풀이를 하십니까?”
“의심받으려면 뭐 못하겠냐? 뻣뻣
한 얼굴로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끊
으라고?”
・어 잠깐. 그래도 되는 것 같기
도 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닥쳐. 아무튼, 빨리 용무나 말해.”
내 실수를 인정하긴 싫었기에, 험
악한 말투로 되받아쳤다.
“괴인이 대충 완성되었습니다. 어
떻게 회수하실 겁니까?”
“만들기 어렵다면서 하루 만에 나
“온다고?”
“만들기 어려운 것과 걸리는 시간
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지성
체가 없는 괴인이라면 자아를 성장
시키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필요 없
으니까요.”
“그거 말인데, 자아 심어서 다시
만들어줘. 성격은 나랑 비슷하게. 해
줄 수 있지?”
어차피 이미 혐의를 벗어난 이상
내가 조종하는 방식은 필요 없다.
차라리 자율행동형을 만들어서 괴인
으로 활동시키거나, 내가 움직이는
동안 나로 변신시키는 것이 사용하
기 편할 것이다.
・…우리가 무슨 봉인 줄 아나. 다
만든 걸 왜 다시 만들라는 거야.’
저런 혼잣말은 종족의 본능인가.
몇 번 말해도 안 들어먹네.
“봉 할래? 아니면 한국지부 폭발
하고 한국에서 철수할래?”
마침 영웅관리국의 높으신 분 바
로 옆에 있고, 거기다가 신고하면
포상금도 두둑이 나오겠구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최대한 빨리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상위 괴인이어야 하
니까 유전자도 넘기마.”
“뭘 만드실 생각이신지요.”
“내 복사품으로 사용할 예정인데,
적어도 다른 이야기의 사천왕급 강
함은 필요하지 않겠냐?”
본래 필요한 괴인은 해머 한 방에
터질 약하디약한 괴인이었지만, 계
획이 틀어졌으니 필요한 스펙도 달
라졌다. 나를 위장하려면 그 정도
강함은 필요하리라.
“너무 비용이 많이 듭니다. 아무리
저희라 해도 그건 불가능…”
“원하는 조직 하나만 불어. 영웅이
든 적대하는 결사든.”
값을 치러야지. 아무렴.
“진심이신가요.”
“그래. 영웅도 죽이지 않는 선에서
완전히 박살 내주지.”
“관리국 한국지부는 어떠신지요.”
“너희가 죽고 싶구나?”
농담이라도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
“농담입니다. 나중에 적당한 조직
데이터 하나를 보내드리도록 하죠.”
“그래. 잘 부탁한다.”
뚝.
통화를 끊었다.
방 안으로 돌아가자, 텅 빈 과자
봉지가 순식간에 늘어나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쌀이나 라면까지
털리게 생겼다. 뭔데 저렇게 처먹는
거야. 어서 꺼져 좀.
“무슨 전화였나?”
“봉사단체에서 말썽이 생겨서.”
“그렇군.”
이야기가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질질 끌리고 있다. 빨리 저 식충이
둘 중 하나를 집에서 내쫓아야 해.
둘 다 내쫓고 싶지만 그건 힘들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빨
리 말해.”
이대로라면 저 식충이 둘에게 집
의 식량이 거덜 날 것이다.
내 재촉에, 그제야 그는 마음을
굳힌 듯, 과자 봉지를 내려놓고 나
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하람. 제자를 받을 생각 없나?”
애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벌써
노망이라도 들었나.
“미쳤냐. 놔둬도 자기들 알아서 잘
크는 애들을 왜 돌봐줘.”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서류 가
방에서 서류를 꺼내 나에게 던졌다.
“읽어봐라.”
“시시껄렁한 내용이면 그냥 쫓아
낼 거다.”
서류를 들어 올려 내용을 살폈다.
‘백시현. 18세. 한국 청주 출신. 각
성 타입은 마법소녀. 각성일 오늘.’
“각성 일이 오늘인 놈을 어디다 써?
적어도 기본은 있어야 뭘 가르치지.”
“계속 읽어봐라.”
‘확인된 능력은 육체 강화, 무기구
현, 염동력, 전기마법, 회복마법, 초
단기 미래예지.’
“…능력이 이게 뭐냐. 이야기가 무
슨 꼬락서니길래 이딴 힘이 나와.”
6개 중 2개만 나와도 엘리트라 할
법한 마법소녀인데 그런 능력 6개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특히 무기구현
과 염동력이 동시에 나온 건 정말
어이가 없는 수준의 재능.
“계속 읽어봐라.”
그 아래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가 적혀있었지만, 관심 밖이었기에
각성 이후 이야기로 넘겼다.
전형적인 마스코트를 만나 각성,
이후 이야기의 적대 조직은.
“…블랙 머라우더.”
“그래. 특이한 경우다. 조직도 아
니고 단 한 명만을 지정한 경우지.”
“관리국 상층부에서는 블랙 머라
우더가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ㅇ급
괴인이라 예상. 따라서 이런 힘이
내려졌다 판단했다.”
“내 복제품이라 예상하지 않았나?
근데 그렇게 세다고?”
“그럴 리 없지만, 너보다 강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지금은 약하지만, 빠
르게 성장하는 타입일지도 모르고.”
이제야 이 녀석이 제자라는 얼토
당토않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
겠다. 내 복제 괴인을 상대하기 위
해, 나에게 두들겨 맞으며 실전 감
각을 기르게 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압도적인 힘을 가진 대적자
를 내 옆에 두고 감시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사상에 감화시킬 수 있
다면.
성장 방향을 바라보며 약점을 파
악할 수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든 좋게 흐를 수 있
을 거라고.
“돈은 얼마나 나오냐?”
새까만 속내를 감추고, 속물적인
말을 내뱉었다. 평범한 나를 연기하
기 위해서.
“최소한 두 사람이 먹고 살만큼은
지원하지.”
“좋아. 키워보지 뭐.”
나는 밝게 웃으며 승낙의 뜻을 밝
혔다. 앞으로의 삶이 좀 시끌벅적해
질 것 같았다. 적어도 운호랑 둘이
사는 것보다는 더 활기차겠지.
그런데 여자라.
“집은 안 빌려주냐. 여긴 셋이 살
기에는 너무 비좁은데.”
“고려해보겠다.”
당장은 어렵다 이거지.
“아.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내가
블랙 머라우더를 쓰러트리는 건..”
“금지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못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잘 알지 않나. 더욱이 단독으로 이
야기를 이루는 괴인이다. 잘못되면
구멍이 뚫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
블랙 머라우더와 마주하지 않아도
될 타당한 명분도 손에 넣었다.
이야기가 잘 풀리는구만.
“그럼,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가보겠다.”
현석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현관으로 향했다. 그의 철두철미함
을 상징하듯, 과자부스러기 하나 묻
지 않은 양복이 눈에 띄었다.
“다음에 볼 때는 백시현 영웅을
소개할 때가 되겠군.”
“열심히 해보지.”
그래 현석아. 열심히 할게.
정의를 위해서.
Chapter 10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