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자회견.
-오늘 아침, 도시 구역 일부가 붕
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스 진행자의 음성에서 심각함이
묻어나왔다.
-다행히 시민 여러분의 노력으로
대피가 빨리 이루어진 덕분에 사망
자는 없었습니다만, 중경상자 수십
명이 생겨난 대참사였는데요.
감각 내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안 잡혔는데, 여파에 휘말렸나. 요즘
너무 힘을 쓸 기회가 없다 보니 힘
조절에 실패했을지도 모르겠군.
너무 감정에 휘말렸나.
그들에게 향하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잠재웠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
이라고, 그렇게 외면하며.
괴인과의 전투에 휘말려 생긴 부
상이니 관리국이 총력을 다해 회복
시켜줄 것이다.
운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
라보았지만,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거면 됐다. 운호는 나를 말리지
도 부추기지도 않을 것이다. 이 정
도 거리감이 있다면 우리는 사이좋
게 지낼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관리국에서 공식
발표가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텔레비전에 비치는 화면이 바뀌었다.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기자회견장. 화면 밖에서 안
경을 쓰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걸어와 마이크 앞에 섰다.
‘영웅관리국 대변인. 김태준’이라
는 자막이 화면 아래로 지나갔다.
그는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기자
의 눈빛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범하
게 마이크의 위치를 조정하며 대본
을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짧지만 깊게 고개를 숙인 후, 그
는 이어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 7시 05분경, 강대한
이계의 힘이 감지되었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평범하게 듣기 좋
은 목소리. 발음도 확실하고, 거슬리
는 숨소리도 없으며, 침이 튀는 소
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가 듣기에는 저건 평범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것 봐라?
약하게 느껴지는 정신조작계열 능
력. 그리 강력한 힘은 아니지만, 사
람들을 홀리기에는 충분한 힘.
관리국은 알고 있는 건가?
-관측된 힘의 총량은 A급. 확보한
영상을 분석한 결과, 괴인 타입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파트너에게 말을 걸었다.
“운호야. 저거 느껴지냐?”
“어떤 것 말인가요?”
“지금 목소리에서 정신조작 흘러
나오는데. 아니, 정신조작보다는 훨
씬 약하니 감정조작에 가까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이 운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관리국에서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움찔.
이계의 힘을 탐지할 때처럼 운호
의 수염이 움직였다.
66
・정말이네요?”
“나만 느낀 건 아니었군.”
혹시나 해운호와 교차검증을 해
보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추가로, 해당 괴인은 최근에 있
었던 영웅 습격 사건을 일으킨 범인
임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관리국은
해당 괴인에 대해……
“뉴스 좀 자주 볼 걸 그랬어. 관리
국이 저런 짓을 할 줄이야.”
“전 자주 봤는데 왜 여태껏 몰랐
던 걸까요.”
“네가 둔해서 그랬겠지.”
“너무하셔요.”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운호도
30년 차 마스코트. 기운을 느끼거나
감정을 읽는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날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집에
서 뒹굴뒹굴하기만 해서 그렇지, 운
호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꽤 심각한
문제다.
-해당 자료들을 취합해본 결과.
높은 이계의 힘 보유량에 더해, 계
획을 꾸밀 수 있는 지성을 가진 것
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 녀석, 몇 번 본 적 있냐?”
“예. 뉴스에서 관리국이 발표할 때
마다 나오더라구요.”
“몇 년 전부터?”
“5년? 그쯤 된 것 같아요.”
꽤 오래되었군.
인지할 수 없을 수준의 미약한 감
정조작. 저런 능력을 지닌 자를 대
변인으로 내세운 목적은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다. 아마 관리국에 관한
호의를 키우고, 반발심을 억누르기
위해서겠지.
이 사실을 현석이가 알고 있을까?
아니면 저 대변인의 개인적인 일
탈?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어느
선까지 이어져 있지?
어느 쪽이건 확인해야 할 일이 갑
자기 생겨난 건 변하지 않는다.
-이에 관리국은 해당 괴인을 A급
괴인으로 지정하였으며, 괴인의 행
동 양식이 향후 데이터베이스에 기
록될 예정입니다.
A급이라.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생각
이 계속해서 솟아났다.
“운호야. 아무래도 언제 한번 관리
국도 뒤져봐야 할 것 같다.”
“저도 찬성이에요. 영웅의 힘을 마
음대로 사람들에게 사용하다니.”
“그래. 정의롭지 않은 영웅이지.”
관리국에 부패가 스며든 것은 알
았지만, 일반 시민에게도 감정조작
을 흩뿌릴 줄이야.
과연 저걸 파헤치면 어떤 것이 끌
려 나오고, 어디까지 도려내야 할까.
내 힘으로 가능한 것일까.
-관리국은 해당 괴인의 코드 네임
을 블랙 머라우더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준비해온 서
류를 치켜들었다.
내가 웃으며 힘을 개방하는 모습
이 찍힌 사진, 그리고 그 옆에는 큼
지막하게 블랙 머라우더라는 호칭이
적혀있었다.
하필이면 사진도 파괴를 즐기는
어딘가의 최종 보스처럼 찍혀서……
“그냥 악역이네요.”
“시끄러워.”
옆에서 한 수 거드는 페럿의 머리
를 후려쳤다.
“헤헤.”
운호 또한 내가 정말 화난 건 아
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멋쩍은 웃
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 훈훈한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화면 저편의 딱딱한 기자회견은 계
속해서 이어졌다.
-그럼 남은 시간은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자들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대변인은
누군가를 지목했고, 지목당한 기자
는 마이크를 받고 입을 열었다.
-서상일보 박한식 기자입니다. 블
랙 머라우더가 어떤 영웅과 닮은 모
습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혹시 영웅이 타락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관리국의 엄밀한
조사 결과 해당 영웅은 무죄임이 밝
혀졌습니다.
기계 한번 쏴보는 게 엄밀한 조사
였나. 관리국이 대신 알리바이를 만
들어주니 아무래도 좋지만.
–
그렇다면 괴인과 영웅이 그렇게
닮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웅의 겉모습과 성격, 능력을
그대로 복사한 복제 괴인이죠. 대부
분은 원본보다 약하게 복제되었지
만, 원본보다 강한 복제 사례가 없
는 건 아닙니다.
헛기침으로 말을 끊어 목을 가다
듬은 대변인이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는 첫 발생이다 보니 아
무래도 생소하시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종종 발생했던 타입의
괴인입니다. 특별한 건 없죠.
무난한 답변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
이며 마이크를 진행자에게 되돌렸다.
복구에 걸리는 시간이나 비용, 부
상당한 영웅들의 상태, 괴인의 지
적 능력에 대해 같은 아무래도 좋은
질문이 지나가고, 질문 시간도 성공
적으로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떤 더벅머리 기자
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주간영웅 김현새 기자입니다. 블
랙 머라우더가 A급이라는 기준은
정확히 어떻게 나온 겁니까?
-힘의 크기와 도시에 입힌 피해입
니다. 다음 질…
-그건 이상하군요. 저희가 입수한
전투 영상을 보면, 해당 피해는 블
랙 머라우더가 무기를 한 번 휘두른
것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만. 예. 잘
못 말한 게 아닙니다. 전투 중에 일
어난 모든 피해가 아니라, 단 한 번
의 공격이었습니다.
회견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
투 중에 일어난 총 피해와 공격 한
번은 천지 차이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 급. 왜 최우선 토벌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겁니다.
그 말에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끊겼다. 금기나 마찬가지인
단어가 흘러나왔기에.
ㅇ급. 인류를 멸할 존재들.
“공개 방송에서 저걸 언급하다니,
저 기자 깡도 좋네.”
“그러게요. 저 나이라면 ㅇ급이 얽
힌 것도 겪어봤을 텐데.”
-아직 공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질문.
하지만 관리국의 대변인은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을
넘겼다.
-공적 지정이라고요? 그게 지금
문제입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결정하는 공적 지정이 내려질 때까
지, 국제연합은 ㅇ급이 한국을 활보
하게 둘 생각입니까?
국제연합을 대놓고 언급하다니.
저 기자 이름이 뭐라고 했지?
기억해둬야겠다. 깡도 좋은 것이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
-김현새 기자님. 이 이상 질의를
방해하면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국민 여러분
의 불안도 커질 수 있으니.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침묵의 시간. 대변인은 신중
히 단어를 고르는 것 같았다.
-블랙 머라우더는 이미 이야기의
대상으로 정해진 이계의 존재입니
다. 공적 지정이 내려지지 않는 한,
타인의 손으로 퇴치될 때 어떤 현상
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진짜 구멍이라도 뚫리려나.
이에 국제연합과 관리국은 블랙
머라우더에 공적 지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모든 힘을 다해 해당 이야
기를 풀어나갈 영웅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답변에 기자석이 폭발했다.
-서학일보 김춘환 기자입니다! 그
말씀은 저 괴물이 이야기의 대상이
란 말입니까!
-월간히어로 이환 기자입니다! 사
실상 ㅇ급 괴인이 첫 번째 적인 이야
기를 받은 영웅이 있다는 뜻인지요!
목청 좋은 기자 몇몇의 목소리가
들릴 뿐, 소음이 난무하는 방송은
이미 엉망으로 변해버렸다.
“기자회견이 아니라 청문회구만.”
“난장판이네요.”
어떻게든 정보 하나라도 더 뜯어
가겠다며 목소리를 올리는 기자들.
이미 질문 시간이라는 의미는 사라
진지 오래.
-관리국 규범에 따라, 영웅의 개
인정보에 대해서는 본인이 원하기
전에는 밝힐 수 없는 점……
관리국 측에서는 어떻게든 기자들
을 조용히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
다지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누구나~.
벨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옆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뭐냐. 문어 대가리.”
“문어 대가리라니. 너무하시는군
요. 저도 이름이 있..”
“그래 알셸. 뭐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이름으로
불러주실 것이지.’
“유명인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동시에 들려오는 알’셸의 목소리.
문어 대가리는 이제 동시에 말하는
괴상한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촉
수에 달려있던 입을 사용하는 기술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놀리는 거냐.”
“아뇨. 뉴스를 보고 있자니 이하람
님이 나오시더라고요. 대단하십니다.
ㅇ급 괴인이라니.”
“끊는다.”
비밀결사라는 놈들이 할 일이 그
렇게 없나. 영웅한테 전화나 걸게.
핸드폰의 붉은 버튼에 손이 올라
갈 때쯤, 진지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며칠 전에 하셨던 말씀 기억하십
“니까?”
이제야 본론인가.
“며칠도 아니고 어제잖아.”
“그렇군요. 어찌 되었건, 조직 하
나 골라놨습니다.”
“무슨 조직이지.”
“미래과학생명제조학회. 괴수를 만
드는 과학자들 모임이죠.”
요즘은 다 이름을 저따위로 짓나?
내가 센스가 부족한 건지 뭔지 모
르겠네. 하긴 곧 작살날 애들 이름
인데 아무렴 어떠랴.
“위치는?”
“설명하기에는 조금 기니 나중에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규모 정도는 미리 말해라. 그래야
내가 받아들일지 정할 거 아니냐.”
“B, C급 괴수가 50여 마리. 지명
수배 과학자가 10여 명 정도. 별거
아닌 조직이죠.”
별거 아니란다. 그냥 밀고 들어오
면 수도 하나 마비되게 생겼구만.
“너희들 기준에서야 별거 아니겠
지. 저게 뭐냐? 단독으로 국가를 엎
어버리려는 애들인가? 저런 애들이
한국에 왜 있어.”
“한국은 아닙니다.”
이제 이놈들이 날 해외로 보내려
는 모양이다.
“해외 출장은 안 가.”
“해외는 아닙니다.”
“그럼 어딘데. 한국도 아니고, 해
외도 아니면.”
머리에 뭔가가 떠오른다.
잠깐만, 설마..
“옛 북한지역에 있습니다. 대장벽
“인근이죠.”
외국보다는 낫군.
“알았다. 기한은?”
“한 달 내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더 말할 기운도 없어져 일방적으
로 전화를 끊었다. 띠링거리며 문자
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중
에 확인하면 될 것이다.
그보다는 텔레비전 너머 상황이
더 흥미로웠다.
“저걸 왜 틀어주고 있는 거지.”
이미 기자회견은 어디론가 사라지
고 없었다. 화면에 송출되는 것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밀어붙이고, 어
떻게든 기자를 밀어내려는 경호원들
의 몸싸움뿐. 그런데도 방송국은 꿋
꿋이 그것을 내보내고 있었다.
“다음 방송까지 시간이 남거든요.”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운호
의 말. 생각보다 합리적인 이유였다.
시청률은 잘 나오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흥미롭게 몸싸움을 보고 있자.
-쾅.
뭔가가 박살 나는 폭음과 함께,
문짝이 날아와 기자들과 충돌했다.
-내가 그 영웅이다. 이 빌어먹을
기자 놈들아아아!
-저기, 이러는 건 조금.
둘 다 어디서 들은 목소리군.
-아빈은 너무 물러! 본래 영웅은
좀 강하게 나서야 하는 거야!
갑자기 날아온 문짝에 기자들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한 마법소녀가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군청색 코트에 흰 망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미소.
한 치의 흐림도 없는 순수하게 밝
은 눈.
-백시현 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저씨는 빠져있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김태준
대변인은 백시현의 망토를 당기며
끌고 나오려 했지만, 백시현은 당당
히 기자들에게 선언했다.
-내가 블랙 머라우더를 쓰러트릴
크림슨★해머의 제자 백시현이다!
“쟤가 그 제자예요?”
“닥쳐.”
죽고 싶어졌다.
Chapter 13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