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너희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시든?(2)
결국, 백시현은 훈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증폭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천천히 해라, 시간은 많으니까.”
훈련 첫날부터 이미 몇 달 분량의
훈련을 해냈으니, 나로서는 좀 천천
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인들은 단전을 인지하고 사용하
는 법만 몇 달씩 배운다던데, 우리
제자님께서는 너무 뛰어나 하루 만
에 끝내버리네.
오늘은 아빈이의 마법 지팡이만
부러트리고, 시현이랑은 대련만 조
금 하고 끝내려 했거늘 예정이 크게
틀어졌다.
내일부터는 뭘 가르쳐야 하려나.
“강해지는 건 빠를수록 좋은걸요.”
“왜, 빨리 은퇴하고 싶어서?”
영웅이 된 애들은 늦게 은퇴하려
고 하는 애들이 많은데 특이하군.
인지도를 얻고, 최대한 인생의 황
금기에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 그
리고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싶으면
최대한 빠르게 은퇴해버리는 애들이
대다수인데, 아무래도 우리 제자는
다른가 보다.
“블랙 머라우더는 여전히 밖을 돌
아다니잖아요. 지금도 누군가를 습
격하고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마라. 블랙 머라우더라면
네 옆에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블랙 머라우더를 퇴
치하고 싶다 이거지?”
“예!”
“그럼 너는 곧바로 은퇴한다만. 안
아쉽냐?”
“상관없어요! 블랙 머라우더를 쓰
러트리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돈이나 명성보다는 블랙 머라우더
퇴치가 우선인가. 바보인지 정의감
이 넘치는 것뿐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구만.
“무조건 단련만 한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다. 쉴 땐 쉬어야지, 그러니
까 씻고 와라. 집에 가자.”
“예!”
백시현은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하
며 샤워실로 뛰어들었다.
혼자 남아 조용해진 훈련장의 출
입구에 몸을 기대고, 훈련장 내부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부드러운 녹색 매트, 벽여
기저기에 붙어있는 충격 흡수장치.
방음도 완벽하고 샤워실이나 창고
도 있다. 나쁘지 않은 훈련장이다.
첫날부터 매트가 뒤집히긴 했다만,
그것 이외에는 충격 흡수장치가 정
상적으로 작동해서 내 힘을 견딜 만
큼 뛰어난 훈련장.
내가 리미터를 풀어도 잠깐이라면
이 훈련장은 견딜 수 있으리라.
“여길 우리 전용으로 영구히 대여
한다 이거지? 정말 돈이 썩어나네.”
지부장이신 현석이에게 들은 바로
는 버려진 지하 방공호 하나를 일주
일간 개조해서 만들어낸 곳이라고
했다. 겸사겸사 이계침식에 당하더
라도 몇 주는 견딜 수 있는 물질생
성 장치나 반발역장도 설치했다고.
“얼마나 하려나 여기.”
아무리 블랙 머라우더가 실질 0
급의 괴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좋은 훈련장을 내어줄 거라고는 생
각하지 않았다.
현석이는 더 좋은 시설을 찾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시설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관리국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뭐 인위적으로 적이라도 만들어
서 훈련하나?”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
각하며, 벽에 기대 핸드폰을 꺼냈다.
띠리릭.
뚜루루루루.
“예, 총기 전문 영웅 데인저 라이
플입니다.”
단호하면서도 딱딱한, 절제된 여성
의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나다.”
“서…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순식간에 약해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용건을 꺼냈다.
“의뢰했던, 김태준이란 녀석의 위
치정보. 알아뒀나?”
“예.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자주
가는 위치를 뽑아놨습니다.”
“도청기 부착은?”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나도 인지하기 힘든 장소에서 저
격하는 그녀가 실패했다면,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숙소도 관리국 내부의 숙소를 이
용하고, 물건을 사거나 운동하는 것
도 관리국 내부 부지에서 행하고 있
습니다. 도저히 저격할 상황이….”
“알겠다. 위치정보는 이 핸드폰 번
호로 보내놔.”
이것도 내가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나.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심약한 그녀의 목소리가 핸드
폰에서 흘러나왔다.
“저… 저기 선생님.”
“뭐냐?”
“그 김태준이란 사람 영웅관리국
의 대변인 아닌가요..? 왜 그런 사
람의 위치정보를….”
“영웅답지 못했다.”
“네? 선생님 그게 무슨….”
삑.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줄 필
요는 없으니까. 아무리 내 사상에
감화된 영웅이라 해도, 그녀는 아직
내게 신뢰를 주지 못했으니, 지금은
이 정도 관계로 충분하다.
나는 눈을 감고, 오늘 밤 할 일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끼익.
샤워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제자의 목소리가 지하에 메아리쳤
다.
“스승님! 기다려주셨네요. 먼저 올
라가셔도 되는데!”
“신경 쓰지 마라, 너 혼자 놔뒀다
가 무슨 일이 생기느니…”
말문이 막혔다.
변신을 푼 그녀의 모습은 마법소
녀일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
다. 회색빛 머리가 검은색으로 돌아
왔을 뿐.
나와 달리 머리 색만 달라지는 정
도의 변신. 그런 상황이니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옷이 그게 뭐냐.”
“본래 이렇게 입어요!”
헐렁헐렁하다 못해 허벅지까지 내
려가는 거대한 티셔츠. 펑퍼짐하게
축 늘어진 청바지. 심지어 허리띠도
없는지 끈으로 대충 허리를 묶었다.
나도 패션에 관심이 없지만, 그런
내가 봐도 도저히 옷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
“…차라리 교복을 입고 다니지.”
18살이었으니 분명 고등학교 3학
년. 차라리 시퍼러딩딩한 교복이 더
어울릴 것이다.
“고등학교는 이미 졸업했어요. 대
학 학부도요!”
진짜로 뭐 하는 애지?
“고등학교는 그렇다 치자. 대학?”
“대학원 다니다가 영웅으로 각성
해서 휴학했습니다!”
설마 이 녀석 의외로 똑똑한가?
하는 행동만 봐서는….
“일단 올라가자.”
“예!”
백시현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스승님은 샤워 안 하셔도 돼요?”
“땀 안 흘렸다.”
“변신 안 푸세요?”
“못 풀어.”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대답을
무뚝뚝하게 해서일까, 백시현이 입
을 다물었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답답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나서서 떡밥을 던졌다.
“대학 나왔다고 했지?”
“맞아요!”
“무슨 학과였냐.”
“원자력공학이요!”
하필이면 침공 이후 다 망한 학문
인가. 똑똑한가 하면 바보스러운 모
습을 보이니,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뭐,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늘 아침 잠깐 보았던
집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2층 가정집.
어디 아파트라도 내줄 줄 알았는
데, 아예 훈련장 위쪽에 집을 하나
지어버리는 행동력을 보니 관리국이
돈이 많기는 많았다.
“아. 훈련 끝났어요?”
“오셨습니까.”
“그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두 생명체
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요즘 들어 살이 빠지기 시작한 흰
털뭉치. 운호.
길게 늘인 연 모양 날개를 달고
있는 요정. 린.
“린. 오늘 많이 배웠어!”
“침착해라. 시현. 붙잡지 마라.”
순식간에 뛰쳐나가 자신의 마스코
트에게 달라붙는 백시현.
린 또한 차갑게 대꾸하긴 하지만,
담담히 말을 받아주고 있는 것을 보아
하니, 사이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마스코트와 친한 건 좋은 일이지.
위급한 상황에서 마스코트는 마법소
녀의 방패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아빈이는 아직 안 돌아왔나?
“아빈이는 아직 안 돌아왔어요.”
내가 두리번거리며 아빈이를 찾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운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언제 나갔지?”
“11시쯤에요.”
그럼 7시간 정도 지났나. 곧 돌아
오겠군.
“일단 밥부터 먹자.”
“제가 만들게요!”
백시현의 손에 붙잡혀있던 린이
하늘을 날고, 백시현이 주방으로 뛰
어 들어갔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백시현에게 내동댕이쳐진 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익숙해졌다. 날개도 달려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다.”
“일주일 만에 익숙해질 정도면, 평
“소에도 저러나.”
“그렇다. 항상 주변을 무시하고 목
표를 향해서 돌진하더군.”
목표가 정해지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저돌맹진형.
하나씩 그녀에 대한 정보가 쌓여간
다. 그녀를 제자로 받은 이유 중 하
나인 그녀에 대한 정보들. 그녀를 강
하게 만들면서도, 그녀의 약점과 전
투방식을 알아내고 뒤틀기 위한 염탐.
언젠간 완전한 그녀를 내 안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리라.
“린. 너는 무슨 기준으로 그녀를
골랐지?”
“무슨 뜻이지?”
“모르는 척하지 마라,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다른 영웅과 달리 마법소
녀는 정해지는 게 아니라 마스코트
가 정하는 거라는 거.”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듯 각성
하는 여타 영웅과 달리, 마스코트
개개인이 적절한 조건을 찾아 각성
하는 영웅. 그것이 마법소녀다.
“예를 들어, 운호는 나를 고른 이
유가 정의의 마음이라고 실토했지.”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다물어.”
달라붙은 흰 털뭉치를 발로 밀어
내고, 린에게 시야를 맞췄다.
“운호. 당신은 그런 것까지 털어놓
은 겁니까? 규정 위반입니다.”
“아아아아 안 들려요. 어차피 전
안 돌아가요. 처벌 안 받아요.”
귀를 막고 흰색 먼지 덩어리로 돌
아간 운호.
평소처럼 굴러다니는 쓰레기로 변
한 운호를 거실 밖으로 차버리고,
린의 심문을 계속했다.
“저 흰색 먼지는 내버려 두고, 뭘
기준으로 골랐지?”
내 말에 린은 주방을 힐끔 쳐다보
았다. 벽 너머에 있는 백시현을 꿰
뚫어 보듯 가늘어진 눈초리.
“말할 수 없습니다.”
“왜지?”
“계약자의 감정을 노출하게 되니
까요. 저는 계약자의 프라이버시와
마법 왕국의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법 왕국은 또 뭐야.
30년 차 마법소녀 인생에서 처음
듣는 게 튀어나왔다.
“마법 왕국? 뭐냐 그건.”
“…운호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처음 듣는데.”
“…규정 위반에 해당합니다. 못 들
은 거로 해주시길.”
마스코트란 녀석들은 죄다 나사가
빠진 건가? 규정을 지키는 공무원처
럼 행동하더니, 중요한 정보를 막
던져버렸다.
째려보면 운호처럼 겁먹어서 정보
를 실토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어, 미간을 좁히고 공중에 떠 있는
린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길 십여 초.
운호와 달리, 린은 아무런 표정 변
화 없이 담담히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집 흰 쓰레기랑은 질이
다르구만. 내면은 어쩔지 모르겠지
만, 이 녀석을 쥐어짠다 한들 정보
가 쉽사리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침식을 함께할 녀석에게
미움받는 것도 사양이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지.
“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뭡니까.”
“넌 배신자냐?”
“…이미 배신한 마스코트들을 보
셨군요.”
“그래.”
순식간에 힘을 회수당하고 공중에
서 추락한 마법소녀.
마지막 순간 배신당해 몸을 빼앗
긴 마법소녀.
처음부터 이계의 힘을 받고 괴인
으로 변한 마법소녀.
모두 배신한 마스코트들의 작품.
“배신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 잘 지켜라. 블랙 머라우더
는 내가 어떻게 못 해도 마스코트
하나둘쯤은 소멸시킬 수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린.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얼굴 근육
이나 심장 소리도 확인했지만, 거짓
말을 하는 징후는 찾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은 당황하는 척이라도 해
야 하는 거 아닐까. 너무 담담한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린에게서
눈을 떼고, 소파에 얼굴을 처박았다.
“윽박질러서 미안했어. 워낙 당한
게 많아서.”
소파에 가로막혀 웅얼거리는 목소
리지만, 린에게 닿았으리라.
“아닙니다. 저희에게도 배신자들은
큰 문제니까요.”
역시 마스코트들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 마법 왕국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잠시 부드러운 소파에 얼굴을 파
묻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린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보다, 하람 님은 왜 변신을 풀
지 않으십니까? 계속 유지하는 건
체력소모가 심하실 텐데.”
“난 변신 못 풀어. 운호가 말하길
특이 케이스라더라.”
“그게 무슨…….”
두근.
내 귓가에 처음으로 요정의 심장
박동 소리가 올라가는 것이 들렸다.
슬쩍 바라본 린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숨길 수 없는 감정의
변화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운호 말로는 본질이 마법소녀에
게 먹혔다더라.”
두근. 두근.
심장 소리가 더더욱 빨라졌다. 저
녀석은 뭔가 알고 있군. 운호보다
아는 게 많은가.
거북한 침묵이 거실을 지배했다.
린은 뭔가를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고, 나는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부
드러운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그런 상태가 이어졌으나.
“식사하세요!”
묘하게 이어지던 대치상황은 백시
현이 거실로 돌진해오며 끝났다.
“밥은 오랜만이네요.”
“왜 그렇게 둥그렇게 변하셨어요?”
“취미에요.”
둥그렇게 변한 몸을 굴리며 식당
으로 들어가는 운호. 그리고 그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백시현.
저 괴상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진지하게 있는 것도 바보처럼
느껴졌다.
“밥이나 먹자.”
“예.”
Chapter 18
Posted by ? Views, Released on January 2, 2024
, Mr. Magical Girl
마법소녀 아저씨
Status: Ongoing Type: Web Novel Author: Cat Swipe, 냥둘러치기 Artist: Hi, VIKPIE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202X.
In the back alleys of Seoul, South Korea…
He looked down at the heroes under his feet—the heroes who adorned themselves in a variety of colorful clothes, as if they were K-pop idols on TV.
Those heroes? They were crawling beneath him, their gaudy outfits smeared with dirt.
That was the true nature of being a hero. He hoped the individuals before him learned that lesson well.
It was time to ensure they never forgot it.
As a magical girl, he swung his hammer down.
This is a bright story. The story of a man reclaiming his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