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rologue

       

    커버접기

       0.

       

       언제나 그러하듯, 익숙한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항상 깨어날 때면 주위는 냄새들로 가득하다. 피 냄새,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 살점이 타 들어가는 냄새 등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깨어나는 곳은 언제나 전쟁터였으니까. 혹은,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막 죽음이 일어나는 상황. 그 무엇이든 다 유사한 상황이다. 피가 살점이 난무하는 목가적인 살육의 현장.

         

        그곳이 그의 고향이었다. 때문에 이 상황은 그에게 퍽 익숙했다. 눈에 보이는 사방에는 시체나 죽어가는 생명이 즐비하고, 까마귀는 자신의 먹잇감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다. 이윽고 쥐 떼가 나타나나 오도독거리며 한 시체의 손가락을 긁어 먹었다. 어디 쥐 뿐이랴, 쥐를 잡아 먹기 위해 삵은 시체들 사이에 숨어 어슬렁 거리고, 그런 삵을 잡아 먹기 위해 위에서는 검은 큰독수리가 허공을 배회한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서로의 생명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의 현장은 생명이 가장 강하게 움 틔우는 자리인 셈이다.

         

        언제나 처럼의 광경이기에 그는 능숙하게 심호흡을 하며 죽음과 생명, 그리고 피냄새를 가득 들이마셨다.

         

        언제나 처럼의 광경이기에, 언제나 처럼의 목적이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심호흡을 하는 것은 벌써 질리도록 했기에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었지만, 깨어난 후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자신을 깨운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항상 일정한 기간을 요구했다. 아니, 몇 백번이던가, 혹은 몇 천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번엔 또 무슨 목적일까. 그는 가장 최근에 깨어나 요구 받았던 목적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의 대전쟁에 함께 하기를 요청한다. 그대라면 능히 저 삶으로부터의 예속에서 저들을 풀어내어 죽음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사령술사 블리토드. 모든 영역으로부터 생명체를 삶에서 벗어나 죽음으로 이끈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시작이라는 신념을 지니던 자. 그로서는 당시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목적이었고, 그가 받는 조건도 만족스러웠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그 남자와 계약을 맺었다.  

         

        최전선에 서서, 블리토드의 요구대로 그 앞에 있던 모든 생명을 죽음으로 보냈다. 유한한 삶을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했다. 목을 잘라내고, 심장을 부쉈으며, 때로는 몸을 분쇄 시켰다. 그는 항상 처음으로 돌진했고, 마지막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결과였다. 전쟁터에 서 있던 것은 그 혼자였으니까.

         

        그 이전에도 무료할 정도로 반복한 행위는 숨 쉬듯 간단했다. 순조로운 피와 살점의 나날. 혼자만의 전쟁을 끝내고 복귀하면 블리토드가 박수를 치며 그에게 축하의 의미로 샴페인을 건넸다. 샴페인을 마시고 홀로 하늘과 땅을 보며 걷다가 다시 블리토드의 곁으로 복귀한다. 참으로 간단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블리토드. 아, 그 자는 정말 미친 작자였다.

       

     

        어느덧, 블리토드 혼자만 주장하는 그 대전쟁은 작은 왕국 규모의 생명체들 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러했듯, 그도 홀로 만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블리토드는 그를 만류했다.  

         

        ‘이번엔 내가 하겠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블리토드를 쳐다보았다. 항상 그가 전쟁을 했으며 블리토드는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그가 일으켜 세운 백골 군단(白骨 軍團)은 전쟁의 관망자였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관망자로 바뀌어 있다는 황당한 상황에, 그 남자도 마지막에는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는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블리토드는, 아 정말로 그 미친 작자는 직접 말한대로 손수 나서 마지막 생명을 거두어 갔다. 남은 생명체들의 반절의 생명을 수확했을 때, 그 작자는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마침내 모였다! 내가 불사자의 지배자! 아크 리치에 도달할 만한 생명력이 나의 손에 들어 왔어!’

         

        블리토드의 환호성을 들으며, 그는 황당함을 넘어선 공허함을 느꼈다.

         

        블리토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던 것은 불사(不死)였다. 삶에서 죽음으로 이끈다고 주장하던 그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가장 삶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질문했다. 처음과 주장이 다르지 않냐고. 이것은 계약의 위반이라고. 블리토드는 미친 듯이 웃었다. 아니, 정말 미쳐서 웃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너는 너가 요구한 조건만 받으면 되잖아. 걱정하지 말라고. 그건 확실히 줄 거야. 너 덕분에 내가 여기에 도달한 건데 그걸 잊어버리면 안되지.’

         

        황당한 소리. 저 미친 작자는 그의 실존(實存) 조건을 무시하고 있었다. 이 따위로 대강 계약을 수행하면, 누가 다음번에 그를 깨워 줄 것인가. 아마 아무도 없을 지도 모른다. 땅을 걷고, 물에 잠기며, 허공을 박차고, 별을 바라본다. 그렇게 세상을 느낀다. 가끔 깨어나는 그에게는 이것이 실존의 방식이었다. 다시는 이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조용히, 점잖게 사령술사를 타일렀다.

       

       이것은 명백한 계약의 위반이다. 당장 처음에 주장했던 바를 실현 시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거 참 시끄럽네, 그냥 가만히 있다가 너가 바라던 거 받아먹고 가면 되잖아.’

         

        이제 그도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강제로 이행할 수 밖에 없다고 읊조렸다.

         

        ‘하, 지랄도 좀 정도껏 해야지. 그 동안 함께 했던 정이 있어 충고 해줬는데 뭐라는 거야? 그럼 어디 한번 해봐라 새끼야 – !’

         

        사령술사, 아니 아크 리치 블리토드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미친 새끼! 너가 나와 내 백골 군단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니 새끼가 고맙게도 보는 족족 죽여준 생명들은 모조리 내 군단으로 흡수시켰다! 기껏해야 혼자 노는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

         

        그는 왼손의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블리토드의 심장을 파괴시켰다.

         

        ‘……뭐야, 씨발?’

         

        이어서 오른손의 주먹을 뻗었다. 유지하고 있던 블리토드의 형체가 크게 일그러졌다.

         

        ‘자, 잠깐만! 말로 하자, 말로…! 응? 우, 우리 친구 였잖아…? 야, 야!! 그동안 함께 해왔던 정이 있잖아…!!’

         

        방패로 그를 가격했다. 블리토드의 형체가 산산 조각이 났다.

         

        ‘이 좆 같은 자식이…! 그래, 지금은 마음껏 웃어 둬라. 너가 오래 묵어서 상황 판단도 제대로 못 하나 본데 난 이미 아크 리치다. 라이프 베슬도 못 찾는 니 새끼가 날 죽일 수는 없어!’

         

        그는 창을 내찔러 블리토드가 있던 허공을 갈랐다. 창 끝에 걸린 블리토드가 품고 있던 생명을 한 번 가볍게 비틀었다. 블리토드의 생명은 블리토드가 처음에 설파했던 주장을 그대로 이행했다.

         

        ‘아니…씨발, 이 뭔…?’

         

        창을 갈무리 하며 그는 생각했다. 블리토드는 언제나 너무 말이 많았다. 이제야 좀 조용했다.

         

         

         

        기억을 마무리하며 그는 상황에 대한 적응을 끝마쳤다. 눈을 뜨고, 귀를 연다. 죽음이 가득한 소멸의 공간에서 그는 실존을 주장한다. 예상과 같았다. 시체과 살점이 즐비하다. 모든 곳에 죽음이 덕지 덕지 붙어 있었다.

         

        ……모든 곳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기다랗고 풍성한 옅은 금색 머리카락은 손질이 잘 된 탓인지 윤기가 흐른다. 피부는 때가 타는 것을 경험 하지도 못한 것처럼 깨끗하다. 입고 있는 옷감의 질은 그가 언뜻 보기에도 최고급이었다. 전쟁터에는, 적어도 죽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몸을 잔뜩 떨며, 그를 고개를 들어 올려 보았다. 달빛을 받아 안 그래도 밝은 모습이 마치 순백으로 빛난다. 모든 어둠을 찢어버리며 홀로 빛으로, 그녀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적색과 푸른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저는 성녀 에실리아! 제가 당신을 깨웠어요! 당신에게 정식으로 계약을 요청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저의……호위기사가 되어주세요!!!”

         

        달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옅은 금발을 휘날리며 자신을 성녀라고 밝힌 여자는 애절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데스나이트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Score 3.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trayed by her own Order*, the Saint begged the death knight to become her guard—the death knight who could destroy the world. *tl note: she was betrayed by the church, not her own doing. Author Notes: Contains Authentic fantasy, and wholesome love. I hope this brings you the reader a little bit of jo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