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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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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때는 본 적도 없는 천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낡은 나무 천장이었다. 여기저기 좀먹은 것같이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고, 천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빽빽했다.

        

       병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게 맞다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고, 당연히 구급차를 타고 그 뇌졸중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설비가 되어있는 병원이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이고, 규모가 있는 병원이라면 이렇게까지 관리가 안 되지는 않았을 거다.

        

       아니, 그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목조주택을 찾는 쪽이 더 어려울 거다.

        

       한동안 눈만 끔벅이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끼익, 하고,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음침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가벼웠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가벼웠다.

        

       높낮이 조절도 되지 않는 푸르딩딩한 화면의 싸구려 모니터를 매일 내려다보느라 생긴 목디스크도 없는 것 같았고,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생긴 만성 요통도 없는 것 같았다.

        

       양팔을 위로 쭉 뻗어보니 어깨가 결리지도 않았고, 안경 없이도 시야가 또렷했다.

        

       ……그래, 몸이 가볍다. 마치 25년은 젊어진 것처럼.

        

       문제는 내가 25년 젊으면 다섯 살이라는 거지만.

        

       시야가 엄청나게 낮았다. 몸은 빼빼 말랐고, 팔다리는 어른이라기에는 한없이 짧았다.

        

       머리카락은 엉덩이까지 내려올 정도로 치렁치렁했다. 손으로 잡아서 보니 이런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였다.

        

       눈에 보이는 손은,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슬슬 중년이라는 단어에 접근 중인 남자의 손이 아니었다. 무척 작은, 여리여리한 이미지의 새하얗고 창백한 손.

        

       “아, 아.”

        

       괜히 목소리를 내봤다.

        

       너무 어려서 소녀의 목소리인지, 소년의 목소리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술과 담배에 갈린 걸걸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내 침대 주변에 어린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얼굴에 때가 꼬장꼬장하고 죄다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빼빼 말랐다. 거의 원피스로 보일법한 커다랗고 낡은 셔츠를 걸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

        

       “…….”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너, 누구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 중 가장 키가 큰,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애가 말했다.

        

       그 애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아무래도 영어 같았다.

        

       물론 내가 알아들을 만큼 쉬운 단어이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평소에 내가 영어를 듣던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영어가 맞기는 한 건가?

        

       영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데.

        

       “…….”

        

       뭐, 그 말을 알아들었건, 알아듣지 못했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똑같았지만.

        

       *

        

       처음에는 내가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으로 온 줄 알았다.

        

       그 왜, 있지 않은가. 갑자기 사람이 픽 쓰러져서 깨어보니 어느 시대의 누구로 빙의해 있었다……라는 설정의 대체역사물들. 내가 진짜로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역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그런 부류의 대체역사소설을 읽은 적은 있다. 출퇴근 시간에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웹소설을 읽는 거였으니까.

        

       딱히 장르를 가리지도 않았고,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읽었다. 정액제건 편결이건 무료 회차에서 재미있으면 그냥 꾸준히 따라가며 읽었기에, 정말 제대로 된 역사 상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충 시대상을 때려 맞출 감 정도는 있었다.

        

       사람들의 복식이나 뒷골목의 암울한 분위기를 봤을 때 이 시기는 잭 더 리퍼가 뒷골목을 활보하던 빅토리아 시대였다!

        

       ……라는 생각은, 내가 이쪽 세상에서 깨어난 지 이틀 뒤 골목 위를 지나가던 공중전함을 보고 완전히 깨져버렸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전함을 그대로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 생긴 기묘한 분위기의 전함이었다.

        

       증기기관으로 프로펠러를 움직이는지 검은 매연을 궤적처럼 남기며 날아가는 그 전함은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비행선 아래에 전간기 전함의 함교와 함포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나무로 된 갑판까지 있어서 정말로 바다 위의 전함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그 전함이 우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거였지만.

        

       현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수소나 헬륨을 가득 채운 비행선이라도 저렇게 무거운 중량을 지고 날아다닐 수는 없다. 간신히 뜰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함포를 실제로 사용하는 게 가능할 리도 없다. 쏘는 순간에 그 반동으로 무게중심을 잃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그 전함은 그 옆을 호위하듯 날아가는 복엽기와 함께 편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함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대형을 갖추고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창밖 하늘로 날아가는 그 전함을 보고 나서 나는 내가 어떤 세상으로 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읽던 웹소설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하긴, 댓글 한 번 달아본 적이 없는데 잡혀갈 일도 없지.

        

       이 세계는 웹소설이 아닌 게임 속의 세상이었다.

        

       내가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플레이해오던, 한 JRPG 시리즈.

        

       영국 산업혁명 시기를 모티브로 하여 스팀펑크를 끼얹고, 일본 서브컬처 특유의 느낌을 가미한, 일부 오타쿠 계층에 열광적인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

        

       밀레니엄 사의 [아제르나 전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인 것이 분명했다.

        

       *

        

       밀레니엄 사는 일본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사원 수는 40여 명이고, 덕분에 게임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필요한 그래픽과 최적화가 떨어져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유저들로부터 ‘전전세대 콘솔 그래픽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혀 발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속도가 더디다. 사실 비슷한 시기부터 있었던 다른 일본 게임회사들이 요즘 만들어내는 게임의 그래픽을 보면 밀레니엄 사의 그래픽 기술력은 객관적으로 봐도 중간 이하에 해당했다.

        

       하지만 그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고.

        

       해당 시리즈의 팬들은 매년 게임이 나와주는 것에도 감사한다. 사실 판매량이 그렇게 대단한 게임은 아니었던지라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던 게임이니까.

        

       시리즈의 역사는 약 20년. 초창기에는 PC판으로 나오던 게임이 불법복제에 큰 피해를 본 이후로는 휴대용 게임기로 거처를 옮겼다가, 이후에 다시 가정용 콘솔용으로 돌아온 뒤 지금은 다시 PC판으로도 나오고 있다.

        

        과거 작품을 현세대 콘솔에 이식하거나 PC판으로 다시 내놓는 식으로 새로운 유저들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있고, 기술적으로는 다소 떨어지나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된 신규 유저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나는 친구에게 영업 당해 약 7년 전부터 신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시작한 사람이 더 깊게 빠져드는 법칙을 충실히 따라, 친구는 구매하지 않는 설정 집을 굳이 일본 온라인 샵에서 직구하거나, 한국어판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일본어판을 플레이하고 블로그에 공략을 연재하는 등, 깨달았을 때는 이미 게임에 굉장히 깊게 빠져든 뒤였다.

        

       시리즈의 역사는 20년이지만 시리즈 내의 세계관은 다양하다. 1편에서 5편, 6편에서 8편, 9편에서 13편, 그리고 14편 이후에서 지금까지 나온 게임들은 각각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로 주기적으로 리부트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덕분에 무려 20년을 이어져 온 시리즈이지만 입문이 엄청나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관이 끝날 때마다 그 대단원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면서 느끼는 감동이 대단하기도 하고.

        

       아마 7년 전 내가 게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

        

       뭐, 그거야 그렇다고 치고.

        

       문제는 어쩌다가 일본인도 아닌 내가 일본 게임 한복판에 떨어졌냐는 거다.

        

       블로그에 공략 글을 연재하면서 빈약한 컷 신을 까거나 반복되는 이벤트 신과 대사를 깐 적은 있다. 설정 오류를 보고 비웃었다가 후에 그게 그냥 떡밥이었다는 것을 알고 글 삭제를 한 적도 있고, 특정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분탕을 친 적도 있다.

        

       …….

        

       음, 아니, 뭐, 켕기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일본에 있는 게임사에서 전부 보고 있었을 리는 없잖아. 그나마도 직접 발매도 아니고 수입사를 끼고 파는 게임인데.

        

       …….

        

       뭐, 지금 생각해봐도 별 의미는 없겠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쪽 세상의 어디에 무슨 역할로 다시 태어났냐는 거다. 그것도 하필이면 또 성별도 다른 여자애로.

        

       세계관 특성상 고아원은 별로 좋은 곳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뭐, 원작 히로인과 같은 곳에만 있지 않다면 그냥저냥 무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자식 없는 부르주아 집안에 입양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실비아!”

        

       벌써 거의 점이 되어버린 전함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깡마른 노파가 나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지팡이를 쥐고 있었고, 등은 굽어있었지만 그 얼굴에 떠 있는 심술궂음이 너무 철철 흘러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씩씩하게 보였다.

        

       참고로 실비아는 이쪽 세상으로 온 뒤에 내가 얻은 이름이었다. 성은 블랙.

        

       원래는 이 고아원에 있지도 않았던 아이였지만, 이틀 전에 갑자기 뿅 튀어나와서 찾아보니 목록에 이름이 적혀있었단다.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냐며 짜증 내는 고아원 주인을 보고, 니가 목록을 똑바로 보지 못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바로 직전에 노파가 든 지팡이에 두들겨 맞는 아이를 봤기에 꾹 참았다.

        

       30대 성인의 힘이었다면 이정도 노파는 패대기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고작 다섯 살 어린아이였으니까.

        

       “네.”

        

       최대한 얌전하게 대답하며 노파를 향해 몸을 돌리자,

        

       “새로운 아이가 들어왔다. 네가 좀 돌봐라.”

        

       네? 제가요?

        

       라는 말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린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나의 성향은 여기선 고려할 가치도 없을 거다. 애초에 내가 어린아이였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어제까지 있었던 고아원의 대장이 맡았겠지만, 하필이면 바로 어제저녁에 한 인자해 보이는 부부가 그 아이를 입양해가 버렸다.

        

       “봐, 나는 너희 같은 거지들이랑은 다르다고!”

        

       우리를 비웃으며 떠난 그 애의 빈자리에 내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제 네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오랫동안 나 몰래 이 안을 숨어다녔으니, 뭐라도 하면 할 수 있겠지.”

        

       그런 이유였다.

        

       언제나 술 냄새를 풍기는 노파에게 반항했다가는 그대로 얻어맞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의 뒤를 따라 1층 응접실로 내려갔더니, 여기 사는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꼬장꼬장하게 때가 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저분한 모습인데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하얀 피부와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짙은 푸른색의 풍성한 머리카락 때문에 나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함께 살게 된 클레어라고 한다. 잘 지내라.”

        

       안 그러면 두들겨 맞을 테니.

        

       뒤에 그런 말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수줍은 듯 치켜뜬 눈으로 나를 보던 그 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애를 본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클레어 팬그리폰.

        

       외모도, 이름도. 내 머릿속의 그 클레어 팬그리폰과 같다.

        

       물론 지금은 팬그리폰이라는 성씨는 가지지 못했겠지만.

        

       ……그리고, 적어도 ‘고아원’에서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등장인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결국 참지 못하고 또 새로운 글을…

    이번 작품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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