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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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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보스 몬스터를 만드는 요소는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높은 스텟 아닐까? 공격력, 체력, 방어력 같은 거.”

“쫄을 많이 소환하는 몹.”

“디버프를 난사하는 것도 까다롭지.”

“광역기 난사.”

돌아오는 답은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보스의 능력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스텟이나 기믹 같은.

그렇다면, 잘 만든 보스 몬스터란?

“배경 스토리가 있어야 더 매력적이지.”

“그것보다는 컨셉이 더 중요한데.”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난이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외형이 별로면 조금 식지 않아?”

“어려워도 납득할 수 있는 패턴.”

모르긴 몰라도 ‘강한 보스 몬스터’를 물었을 때보다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잘 만들었다는 뜻이란 보스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고,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보스의 외형에서 매력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보스의 과거에 감명을 받고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하나하나 모여, 혹은 상충되며 더 매력적인(잘 만든) 캐릭터가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보스, 잘 만들지 않았어?”

라고 물으면

“흠… 그 정돈가?”

라는 반박이 날아오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나을 듯.”

이건 그냥 분탕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지만 MMORPG에서, 그것도 여러 명이 힘을 합쳐 공략하는 레이드(Raid)의 잘 만든 보스 몬스터의 기준은 얼추 정해져 있다.

외형, 스토리, 컨셉.

물론 중요한 것들은 맞다.

플레이어가 매력을 느끼면 게임에 대한 몰입감이 높아질 테고, 몰입감이 높아지면 유저들이 게임에 안착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러나 없다고 해서 모든 유저가 실망하고 게임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즐기는 방식 또한 사람마다 다르며,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단순히 레이드를 반복해서 클리어하여 장비를 맞춰 캐릭터가 강해지는 게 좋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만든 레이드 보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약 5년의 MMORPG 경력을 가진 남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였다.

예를 들어 보자.

기믹에 따라 다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레이드는 보통 보스의 공격을 버티면서 죽지 않고 보스의 체력을 모두 깎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RPG 게임에는 체력을 회복할 수단이 존재한다.

어떤 게임에서는 포션, 어떤 게임에서는 특정 역할군… 이른바 힐러(Healer)라고 하는 역할이 그 수단이다.

즉, 힐러란 병참과도 같은 역할이며,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반대로 말하면 힐러만 죽이면 손쉽게 파티를 몰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레이드 보스도 다른 역할은 무시하고 힐러부터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겠지만….

그걸 유저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까?

보스가 힐러부터 노리지 않거나 처음부터 즉사기를 난사하지 않는 것은 보스가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게임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후방의 적부터 죽여서 게임을 끝내거나 보스에 입장하자마자 죽었는데, ‘와! 보스 엄청 세네!’ 하면서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은 장군이라는 컨셉으로 나온 보스가 수백 명의 부하를 우르르 불러내서 싸운다면?

매력도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느낄 수 있지, 불합리함으로 플레이 자체를 막아버리면 매력을 느낄 리 없다.

이렇듯 매력 이전에 합리가 먼저 있어야 잘 만든 레이드 보스 몬스터라는 게 남자의 의견이었다.

잘 만든 보스가 매력적이고 강할 순 있지만, 매력적이고 강하다고 해서 잘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었으므로.

“아, 씨발!”

쾅!

그런 남자의 기준에서, 그가 도전 중인 보스 몬스터는 ‘못 만든 것’에 속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잘못 만든’이나 ‘왜 이따위로 만든’에 속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스방? 있긴 하다.

보스방이라는 것이 다른 곳보다 보스를 마주할 확률이 높은 장소를 의미한다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통에 도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또 죽었어?”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도발도 씹고 달려와서 나부터 써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

“누가 힐러 키우라고 칼 들고 협박함?”

“자기가 키워놓고 남한테 성질부리죠?”

몬스터에게 으레 있는 어그로 시스템.

적개심이라고도 부르는 이 시스템은 몬스터에게 피해를 주거나 스킬을 사용할 때 쌓이고, 몬스터는 그 수치가 가장 높은 사람을 공격한다.

보통 탱커 역할의 직업엔 적개심을 대폭 늘리거나 어그로를 가져올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보스는 어그로를 억지로 땡기는 ‘도발’이라는 스킬을 써도 무시하고 힐러를 향해 달려든다.

게다가 공격력도 높아서 한 대만 맞아도 한 많은 이승을 떠나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

그 외에도 한 번에 한 파티만 도전할 수 있는 등의 불합리한 요소로 범벅을 한 보스였다.

“오키. 이제부터 레이드 갈 때 다른 힐러 데리고 다녀라. 난 다른 팟으로 감.”

“아, 아, 에바야 진짜. 너 없으면 힐러 하루 종일 구해야 한다고.”

“내 알 바임?”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음해한 놈들만 추방하죠 형님. 아니면 레이드 갈 때 저만 데려가 주셔도… 헤헤.”

“배신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마세요….”

남자는 언제 몰아갔냐는 듯 순식간에 태세전환 하는 파티원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 농담을 나누는 것과 반대로, 남자의 파티는 착실하게 전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보스의 다음 검에 동료 힐러 또한 그의 곁으로 따라왔다.

그와 동시에 빙글 뒤로 돈 보스는 검을 크게 휘둘러 달려드는 딜러 세 명을 일격에 보냈다.

이어지는 동작으로 탱커 하나를 밀어내고 검기를 날려 멀리 떨어져 있던 마지막 딜러를 처리했다.

다른 역할들보다 튼튼한 탱커를 무시하고 물렁물렁한 힐러와 딜러부터 처리한 보스.

남은 것은 치유도 받지 못하고, 보스를 잡을 딜량도 나오지 않는 그저 튼튼한 샌드백 둘 뿐.

잠시 후 탱커마저 쓰러지고 전장엔 오직 누더기 같은 후드 케이프를 뒤집어쓴 보스만이 홀로 서 있었다.

익숙한 빛무리가 쓰러진 파티원들을 감싸는 것을 보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망겜 수준. 못 해 먹겠네 진짜.”

* * *

하나, 둘, 셋… 일곱.

“그리고 여덟.”

습격을 할 땐 꼭 여덟 명을 모아서 하라는 행동 강령이라도 있나.

오늘도 여덟 명, 어쩌면 여덟 마리의 불나방을 해치운 나는 비척비척 걸어가 적당히 큰 바위에 앉았다.

힘든 건 아니야.

고작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나가떨어지는 놈들을 상대로 체력을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

다만 날아드는 불나방엔 그 나름의 귀찮음이 있어서….

심지어 불나방이 검과 마법을 휘두른다니까?

그래서 조금, 피곤하네.

나는 애꿎은 두 눈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세계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몇 년 차였지?

오른 손가락을 접어가며 헤아리다가 손을 두 번 접었다 피고 때려 쳤다.

대충 십몇 년 된 거 같은데,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치킨이나 먹고 싶다….”

오늘도 이뤄지지 않을 소망을 되새기며 입맛만 다셨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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