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Not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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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사람들은 콘텐츠를 다 즐기고 나면 그 게임을 접고 다른 게임을 하러 간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재밌는 게임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여러 게임의 감동을 느끼는 게 훨씬 더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인물은 다르다. 한 게임에 몇 백 몇 천 혹은 몇 만시간을 박은 인간들은 비효율 속에서 살아간다.
‘아 개 노잼. 컨텐츠 존나 없네.’를 외치면서 또 다시 그 게임에 들어가서 할 게 없나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 게임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왜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내가 그 당사자니까.
한 해를 지배했으며 그 해의 GOTY가 되었던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이 있다.
GOTY로 선정된 게임이 다들 그렇지만 소울아카데미는 그래픽도 좋고, 음악도 좋고, 스토리도 괜찮고, 게임으로써의 재미도 지닌 그야말로 갓겜이라 부르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은 게임이었다.
처음 이 게임을 접했을 때의 감동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때의 감동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소울 아카데미를 하도록 만든 원흉이었으니까.
소울 아카데미 한 게임만 만 시간을 넘게 플레이 한 나는 이미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즐긴 상태였다.
단순히 모든 엔딩을 봤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업적작 같은 건 앳저녁에 끝내 놓았고, 컨셉 플레이, 맨몸 플레이, 스피드 런, 특정 기술만 써서 게임 깨기 등등.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보았다.
심지어 유저들이 만들어 낸 모드들도 거의 다 건드려 보았다.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일단 있으면 다 해보았지.
그런 상황이다 보니 소울 아카데미의 DLC가 나오거나 후속작이 나오는 게 아니라면 이 게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컨텐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성처럼 게임을 켰던 나는 가만히 타이틀 화면을 지켜보다가 다시 게임을 껐다.
그리곤 커뮤니티에 들어가 소울 아카데미 후속작에 대한 새 소식이 나왔는가를 확인했다.
언제나 그랬던 일이지만 소울 아카데미의 제작사는 침묵을 고수했다.
이쯤 되면 낼 생각이 없는 거겠지.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차마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소울 아카데미가 나오고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다들 이 게임의 후속작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이게 평범한 게임도 아니고 GOTY가 되며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게임인데 당연히 후속작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다들 그러니까.
모든 게임 제작사가 그러니까.
하지만 소울 아카데미의 제작사는 언제나 침묵을 고수했다.
작은 떡밥조차 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몇 해가 지났다.
무슨 떡밥만 나오면 소울 아카데미2?를 도배하던 어그로들도 다 지쳐서 모습을 감췄다.
한 때 갓겜이라 불렸던 것은 세월이 지나 망겜이 되어버렸다.
망겜의 커뮤니티가 다 그렇지만 소울 아카데미의 커뮤니티도 오래 전에 죽은 상태였다.
항상 있는 사람들만 보이고, 하루에 글 몇 개가 올라올까 말까한 곳이었다.
이 곳이 유일하게 활발해 질 때는 가끔 가다 뉴비가 등장했을 때 뿐.
뭣 모르는 뉴비가 등장해 무언가를 물어보면 야한 뉴비 냄새! 박는다!를 외치며 그들을 이 망겜으로부터 쫓아내는 게 이 커뮤니티의 유일한 기능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상하게 소울 아카데미의 커뮤니티가 활발했다.
뭐지? 또 야한 뉴비가 나타났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이번엔 한 유저가 자신이 만든 모드를 광고하러 온 것이었다.
‘메스가키 모드 만들었는데 해보쉴?’
메스가키 모드는 또 뭐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글을 클릭한 나는 한 유저가 정성스레 쓴 글을 읽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모드의 퀄리티가 좋았다.
보통 유저가 만든 모드는 대부분 지뢰다. 천 가지 모드가 있다면 그 중에서 건질 만한 것은 열 개가 될까 말까다.
허나 이 유저가 올린 모드는 달랐다.
일단 캐릭터의 모델링에 신경을 쓴 게 보였다.
붉은 색 트윈 테일 머리에 장난스러운 눈과 거슬리는 웃음. 그리고 덧니.
보기만 해도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은 그 모습은 메스가키라는 캐릭터성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에 메스가키라는 컨셉에 맞춘 스킬도 괜찮았다.
[메스가키]
[이 빌어먹을 꼬맹이는 항상 상대를 무시하며 도발적인 언사를 사용합니다.
상대가 분노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이 꼬맹이는 자신이 언제든 참교육당할 수 있음을 모르는 듯합니다.]
[신체 능력이 기존보다 낮게 설정됩니다.]
[상대가 분노할수록 캐릭터의 능력치가 높아집니다.]
[다른 캐릭터의 호의를 사기가 어려워 집니다.]
[적의 공격을 받기가 쉬워집니다.]
[수세에 몰리면 능력치가 급감합니다.]
강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약점이 더 많은 게 분명한 제약 스킬인가.
컨셉에 맞게 설정을 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평범한 유저들은 이런 스킬을 쓰레기라며 거르지만 보통 고인물들은 이런 것에 흥분하기 마련.
적의 공격을 받기 쉬워진다. 적을 분노시키면 능력치가 높아진다.
컨셉 딱 나왔다. 탱커하라고 만들어 놓은 특성이구만!
아래에 모드를 만든 유저가 직접 플레이한 영상을 봐도 느낌이 괜찮았다.
몬스터를 앞에 두고 허접~ 약해 빠졌어~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건 좀 깨긴 하는데 그 정도야 컨텐츠가 없어 말라 죽어가던 누렁이에겐 아무런 페널티도 안 되지.
아래로 내려 직접 플레이를 해 본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했다.
다들 퀄리티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호평을 하고 있었다. 다만 유저 중엔 너무 씹덕 컨셉이라 마음에 안 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내게 문제가 아니었다.
난 씹덕이니까!
바로 모드를 다운 받아서 게임에 적용시켰다.
키야. 게임이 안 깨져? 이 모드 제작자 누구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쩐다.
나중에 후원 같은 거 열면 바로 돈으로 교육 시켜줘야겠다.
캐릭터 생성 단계에 들어온 나는 바로 메스가키 특성을 적용 시켰다. 그러자 옆에 능력치 창 옆에 있는 캐릭터가 바로 메스가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커마는 여기서 못 건드리나? 그건 좀 아쉽네.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 탓인지 캐릭터의 능력치가 평균보다 하아안참은 낮았다.
이 정도면 맨손의 고블린을 상대로도 똥꼬쇼를 해야겠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겠지만 처음 플레이를 할 땐 쉽게쉽게 가자. 하드코어 플레이는 2회차부터 즐겨도 되잖아.
일단 탱커 쪽으로 키워 볼 생각이니까 방패 들었을 때 피해 감소를 시켜주는 [철벽] 넣고, 즉사 방지 스킬인 [무너지지 않는 의지] 집어넣고,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를 줄여줄 수 있는 [공포극복] 넣고.
기본 스펙이 너무 낮으니까 이걸 키울 수 있도록 스텟 상승치를 1.5배 해주는 스킬인 [천재]도 넣자.
그리고 스킬 설명을 보면 평민으로 만들었다간 귀족한테 참수당할 거 같으니까 귀족으로 스타트.
이 정도면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를 감안하면 적당한 것 같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오랜 만에 신선한 게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웃으며 캐릭터 생성을 누른 순간 모니터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어. 이거.
잠깐만.
좆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