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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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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아 온라인.

한국에서 만든 가상현실 게임이자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MMORPG.

-지만, 개발 소식이 처음 퍼질 때만 해도 실리아 온라인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가상현실 게임이 없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미 가상현실 게임이 즐비하게 나온 현재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단어가 큰 메리트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MMORPG라는 장르 자체가 매력을 잃어가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영상이든 게임이든 짧은 시간 내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MMORPG는 그와 정반대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연기하고 성장하는 재미는 있으나 호흡이 너무 길다. 제대로 성장하려면 시간을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 하니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MMORPG들은 성장의 일부분을 돈, 속히 말하는 과금을 통해 대체할 수 있게 하여 딜레마를 해결했지만….

살아남은 대가로 과금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기 힘든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렸다.

하지만 실리아 온라인은 당당하게 증명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잘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지루한 성장 과정을 버티기 힘들면 성장 과정도 재밌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실리아 온라인을 인기 게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유저들이 주로 뽑은 것은 그래픽과 자유도였다.

자세히 보면 그래픽인 게 티 나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래픽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자유도.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 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즐기는 느낌이 드니 헤비 유저, 라이트 유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실리아 온라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게임이 아니라 진짜 이세계다!”

“외계인을 수천 단위로 갈아 넣어서 만든 게 분명하다!”

“MMORPG에 빠지면 현실과 게임을 구분할 수 없게 되니 일정 시간만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들까지 나올까.

덕분에 다른 게임사들은 죽어 나갔지만 경쟁의 세계는 냉정한 법.

다른 게임사들은 울고 게이머들과 실리아 온라인은 웃는.

아름다운 세계의 완성이었다.

* * *

때는 실리아 온라인이 오픈한 후 반년이 지난 시점.

반년이나 지났지만 실리아 온라인 관련 커뮤니티는 여전히… 오히려 오픈 직후보다 성행하고 있었다.

서로 아는 것을 공유하고, 새로운 정보가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 올라온 글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시간 본인 개쩌는 거 발견함;]

본인은 모험을 좋아하는 실붕이임

그래서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돌아다니기만 했음

최근엔 그라시스 왕국 근처 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오늘 뭔가 특이한 걸 발견함

(꽃밭 앞에 세워진 오두막 사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오두막임

꽃들 상태를 봐선 아마 꽃밭도 오두막에 사는 사람이 만든 것 같음

여기까지 보면 그냥 산에 사는 사람 처음 봄? 이러겠지만

(무덤 사진)

(검 사진)

무덤 앞에 꽂혀 있는 검이라니

이건 누가 봐도 개쩌는 검 아님?

못 참지 ㅋㅋ 당장 뽑으러 간다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사진)

(You Died)

????

뽑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즉사함;

ㅈㄴ어이없어서 리플레이 돌려보니까

(의문의 인물이 찍힌 사진)

맞는 순간에 누가 검 휘두르는 게 아주 잠깐 보였음

순간적으로 체력바도 뜬 거 보면 아마 레이드 보스인 것 같은데 3인칭 촬영 모드로 해놓을걸;

아니 이 새끼들 이런 곳에 누가 봐도 뽑고 싶게 해놓고 보스를 처박아 두는 건 뭐임 ㅡㅡ

아무튼 신규 보스 발견한 거 같음

다음번에는 몰래 들어가서 뽑아 봐야지

[댓글]

-도굴꾼 검거

┕어이, 도굴꾼이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라고 해주겠나?

-씹ㅋㅋㅋ 사람 사는 거 알면서도 남의 무덤에 손대는 새끼가 어딨냐. 죽을 만했네

┕아니 솔직히 이걸 어떻게 참음; 이걸 참으면 남자가 아님

┕그건 ㅇㅈ;

┕엑스칼리버 못 참긴 해

-이 게임은 왜 파도 파도 새로운 게 나오냐

┕그래서 모험할 맛이 남 ㄹㅇ. 다른 겜은 몇백 시간 돌아다니면 할 게 없는데 이 겜은 할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임 ㅋㅋㅋ

┕그… 몇백 시간이면 충분히 즐긴 게 아닐?까?

-오 공대 꾸려서 함 가본다

┕후기 ㄱㄱ

-왜 하필 산 탔냐

┕’그 곳에 산이 있으니까’

┕간지 지리네 ㄷㄷ

-와 근데 진짜 검 멋지게 생겼네 ㄷㄷ

┕스텟 궁금하다 혹시 얻으면 알려주셈

┕ㅇㅋㅇㅋ 딱 기다려 내가 해봄ㅋ

┕라고 써있는데요?

수많은 낚시와 정보가 혼재한 커뮤니티의 바다.

그 속에 던져진 한 게시글은 바닷속을 헤엄치던 물고기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윽고 달려든 물고기 떼에 의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정보의 사실 여부와 새로운 레이드 보스의 발견, 무덤 앞에 꽂힌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생김새의 검.

자칫 묻힐 수도 있었던 글이 인기글까지 올라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 * *

“…뭐야?”

시체가 빛무리로 변해 사라진다.

갑자기 사라진 시체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없애는 마법도 있는데 시체가 사라지는 일 정도야 가볍지.

시체를 유족에게 배달해 주는 아티팩트일 수도 있고.

그런 마법을 개발할 시간에 방어 마법을 고안했으면 1초라도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네.

닿지 않을 충고를 마음속으로 넘기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혹시라도 검에 피가 튀기라도 했을까 샅샅이 살펴보았다.

“…피가 안 묻어서 다행이야.”

내 검에 튄 피는 상관없지만, 이 ‘크림슨 이지스’에 피가 튀는 건 곤란하다.

피비린내는 산 자의 몫.

고인의 안식을 방해하면 안 되지.

“푸흐.”

내친김에 기름먹인 천으로 손질하다가, 갑작스럽게 웃음이 터졌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베고 죄책감 없이 검을 손질하는 꼴이라니.

예전의 나라면, 그러니까 전생하기 전 지구에 살던 때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인데.

이제 와서 감상에 젖기에는 이 세계에서 겪은 일이 너무 많네.

분명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건장…하지는 않아도 남자였던 내가 웬 여자아이가 되어 있고, 주위는 현대와 한참 거리가 먼 판타지스러운 것들뿐이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적응은 어떻게든 되더라.

정신줄을 놓으면 그대로 목이 날아갈 판인데 느긋하게 적응할 시간이 어딨겠어.

덕분에 여자애가 왜 이렇게 남자애처럼 행동하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

“돌이켜 보면 그때 죽은 거겠지?”

교통사고였을까? 아마 트럭에 치인 걸지도 몰라.

왜, 트럭에 치이면 이세계 전생한다는 말이 있었는걸.

옆 나라에서 넘어온 농담에 불과한 밈이었지만 이렇게 전생하고 나니 사실 진실을 알고 있던 선구자들이 아니었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그립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삶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요즘은 예전 세계 생각이 자주 들더라.

“치킨 먹고 싶어.”

그중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먹거리.

이쪽 세계 음식들이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서 그립단 말이지….

분명 이 몸으로는 그런 음식을 입에 댄 적이 한 번도 없을 텐데.

이게 영혼의 기억…?

아무튼, 차원수의 등장으로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건 입증되었지만 차원을 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안타깝게도 지구에서 치킨을 포장해서 실리아 행성에 돌아와 닭 다리를 뜯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방법만 있다면 당장 시도해 볼 텐데.

일해라 마법사들.

“…시도나 해볼까?”

차원을 넘겠다는 말은 아니다.

방법도 모르고, 차원을 넘어 도착한 곳이 지구라는 보장도 없으니 그건 무리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될 때쯤이면 또 모르지만.

그러니 직접 치킨을 만든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지만 치킨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어차피 하는 것도 없이 산속에 틀어박혀 사는 삶. 오늘부터 내 목표는 치킨의 맛 재현이다.

“근처에 코카트리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닭과 파충류가 섞인 것처럼 생긴 몬스터, 코카트리스.

먹어본 사람들에 의하면 닭과 비슷하거나 더 맛있다고 하니까 써도 되겠지?

그럼 가장 중요한 닭은 준비됐고.

“밀가루, 기름, 소금, 우유, 달걀….”

또 뭐가 필요하더라.

기억나는 재료를 하나씩 헤아리며 산에서 내려갈 채비를 했다.

닭은 몰라도 나머지 재료들은 산에서 구할 수 없으니까 간만에 마을에 내려가야겠네.

“…아.”

해진 케이프로 몸을 싸매던 중 아까 일이 떠올라 손이 멈칫했다.

여기까지 사람이 올 줄도 몰랐고, 묘지 앞의 검에 손댈 줄도 몰라서 반응이 좀 늦었었다.

다시 생각해도 꽤 화나지만, 어차피 죽은 놈인데 화내서 뭐 하겠어.

“괜찮겠지?”

자리를 비운 사이 아까 같은 불상사가 벌어질까 조금 걱정되지만….

길이 나있지도 않은 곳인데 설마 또 사람이 오겠어.

그랬으면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날 동안 사람 한 명 못 보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걸려 한참을 무덤 앞에서 망설이다가.

“…다녀올게.”

연분홍색 머리 위로 케이프를 덮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다녀오렴.’

그럴 리가 없건만.

불어오는 바람이 어쩐지 내게 잘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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