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가 고르게 깔린 공원 한편에 강아지가 작은 발소리를 울리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강아지는 작은 소리로 왕왕 거리며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었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공원의 풍경이었다.
머리 위에는 따스한 햇볕이 적당한 강도로 나뭇잎을 비추고 있었고, 나무 밑의 그늘에서 편하게 늘어진 채로 시원하게 울리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었다.
공원을 바라보다가 목이 마르면 보온병에 담긴 얼음물을 목 뒤로 시원하게 넘겼다. 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내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일상의 행복한 단면처럼 보였지만, 얼굴은 억지웃음을 짓느라 얼굴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사실 이 휴식 공간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건물 내에 조성된 가짜. 가짜 공원을 돌아다니는 행인들도 모두 가짜, 연기 중인 직원이었다.
모두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었는데,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실수하면 죽으니까.
강아지는 신나게 들판을 뛰놀고, 주인은 그런 강아지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주변의 행인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귀엽다고 해주는 겉보기에는 매우 행복해 보이는 상황은 금세 끝을 맞이했다.
신나게 놀던 강아지는 이제 충분히 놀았다는 듯이 주인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눈을 감았다.
“어머, 벌써 피곤하니? 들어가서 쉴까?”
중년 여성은 정말 아쉽다는 얼굴로 강아지를 안아 들고 공원 구석에 마련된 출구로 나갔다.
중년 여성이 나가고 그 문이 닫히자 공원 내부는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행복한 일상의 단면은 온데간데없어졌고, 행인들의 얼굴은 고된 노동자의 그것으로 변했다.
삐이익.
모든 상황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울리자 모든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 엎어져, 한숨을 내쉬었다.
태양처럼 들판을 비추던 조명은 대부분 꺼졌고, 필요 최소한의 불빛만을 남긴 친숙한 어둠이 공원 내부를 채웠다.
“아 진짜 뒤지겠네.”
너무 억지로 웃어서 굳어 버린 얼굴 근육을 열심히 문지르며 풀어 주고 있자니, 옆에 누군가 풀썩 앉으며 투덜거렸다.
이름도 모르는 직원 중의 아무개. 직장 동료들의 이름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걸 보니 신입인 모양이다.
말을 아껴야하는 연구소 내부 구획에서 입을 함부로 여는 것만 봐도 신입 티가 났다.
“이거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덥석 받았더니, 여기서 하는 일을 해 보니 일에 비해 돈을 너무 적게 주는 거 아닌가? 저 그로테스크한 병신 개새끼 하나 케어하는데 지켜야 할 게 왜 이렇게 많아?”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서 소름이 싸악 돌았다.
개의 청력을 생각하면 너무 가까웠다. 미친! 신입 교육은 제대로 하고 보내야 할 거 아니야!
어느새 공원에는 태양 빛에 버금가는 강렬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도 다시 나기 시작했다. 다시 정오의 행복한 공원이 된 것이다.
신속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멍청한 신입과 거리를 벌리고 지웠던 영업용 미소를 다시 얼굴에 띄웠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방긋 웃으면서 거리를 벌리니까, 그 멍청한 신입은 이제서야 상황을 깨달았는지 사색이 되었다.
“아… 아니지?”
하지만 신입의 바람과는 달리 강아지는 신입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으로 안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집채만 해진 채로 벽을 박살내며 등장한 것이다.
“와아”
직원 일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울렸다.
그리고 그 강아지가 신입을 천천히 해체하며 잡아먹는 것을 웃으며, 감탄사도 섞어가며 감상해야만 했다.
신입의 실수로 발생한 계약에도 없던 추가 근무였다.
한참 신입을 찢어놓던 오브젝트는 분이 풀렸는지 다시 강아지 크기가 되어 직원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호화로운 자기 개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입이 있던 자리에는 인간이었던 피 웅덩이와 그 핏물 속에 푹 잠긴 오브젝트 보고서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인간은 갈기갈기 찢겼지만 오브젝트로 만든 튼튼한 보고서는 멀쩡했다.
#이 보고서는 서울 연구소의 자산입니다. 외부로 반출 하지 마십시오.
#이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연구소 외부에서 읽을 경우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브젝트 명 – 귀여운 강아지.
오브젝트 위험 등급 : 3
관리 가능 여부 – 관리 난이도 (하)
관리 방법 – 애완견처럼 보고 칭찬하고 귀엽다고 계속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그 외에는 애완견에게 어울리는 식품과 산책, 그리고 직원들을 활용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쓰다듬기 등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중요하다.
주의사항 – 대상의 귀여움을 부정하면 대상을 죽이려듭니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어떤 말을 내뱉을 땐 목숨을 저울에 올려 두고 곰곰이 생각합시다.
제거 가능 여부 – 시도하지 않음.
제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됨.
하지만 관리 이득이 관리 비용을 아득히 넘어서므로 제거를 시도하는 것은 금지된다.
격리 가능 여부 – 격리 불가능.
애호 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거대화한다.
현존하는 재질로는 묶어둘 수 없다.
두꺼운 철판도 뚫고 나갈 정도인데, 다른 방식의 격리로는 대상의 죽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추방 가능 여부 – 시도하지 않음.
격리 실험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화한 대상이 애호해 줄 주인을 찾아다닌다면 그 피해는 예측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TV에서 인간이 제거할 수 없는 오브젝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핵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거대 비행 해파리. 부서지지 않는 강철탑. 물리적으로 손댈 수 없는 유령 같은 오브젝트 등등.
“이런걸 보면 지구의 주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 같다.”
국립 연구소를 다니는 친구를 앞에 두고 투덜거리며 치킨을 한 입. 모교 앞의 맥줏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북적거리는 소음을 배경으로 맥주를 한 모금.
“그건 그렇지. 오브젝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는 몰라도 안전하게 살 땅이 모자라서 다음 세대는 꽤 힘들어질 걸?”
오브젝트 종말론이 대두되는 세상이었다.
인간을 해치는 오브젝트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중에 인간이 제거 할 수 없는 오브젝트도 많았다.
인간의 힘으로 파괴도 추방도 격리도 안 되면 그냥 자연 재해 취급하는 수밖에 없다.
매년 오브젝트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 중이었다.
“이번 관리 업무 로테이션 때 또 신입 한 명이 죽었어. 신입은 죽고, 경력자는 지쳐서 떠나고 여기도 개판이야.”
“그래도 너는 꽤 안전한 오브젝트 담당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처법이 명확하면 꽤 안전한 업무일 텐데.”
“적어도 내가 맡은 개새끼는 호불호가 명확하니까 말이야.
그냥 귀여워하고 웃고 감탄하면 되는 건데, 죽을 수도 있어서 그런가? 스트레스가 대박이야.”
“프흐흐, 귀여운 강아지인가 뭔가 그거였지? 대처법이 확실히 밝혀졌는데도 꽤 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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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와 근육이 없이 혈관과 내장이 덜렁거리는 개새끼가 ‘귀여운 강아지’라니. 핏줄이 맥동하던 표피를 쓰다듬을 때마다 절로 욕이 나오는 개새끼였다.
“처음 그 개를 봤을 때는 욕밖에 안 나왔는데, 요즘은 좀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안락한 집. 맛있는 밥. 여가 생활도 나보다 잘 즐기는 것 같던데.”
서울 연구소에 막대한 수익을 내주는 ‘귀여운 강아지’는 그야말로 막대한 예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직원이 그 개의 케어를 위해 고용됐고, 그 개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뤄졌다. 고용된 직원이야 죽기 싫으면 케어를 잘해야만 했다.
“너희 ‘귀여운 강아지’ 취급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더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배부른 소리지.”
“아 그거 다 경쟁 연구소에서 언론 플레이하는 거야. 이익은 좀 나눠먹어야 하는 건데, 서울 연구소장 그 돼지가 혼자서 다 처먹으니까 집중 공격당하는 중이지.그런데 언론 플레이를 해서 뭘 노리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던데?”
“뭐, 하여튼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조심하라고.”
술자리는 이런 식으로 별 영양가가 없는 대화가 오고 가다가 끝이 났다. 생각해 보면 사실 중요한 대화였는데 말이다.
***
인공 공원처럼 화창하고 아름다운 진짜 공원 한복판,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났다.
“우리는!”
“오브젝트의!”
“노예가 아니다!”
광인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몰려들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오늘은 드물 정도로 먼지 없이 화창한 날씨인 것이 원인이었을까.
오늘따라 갑자기 개새끼가 진짜 태양을 보고 싶어 한 게 문제였을까.
오늘은 내가 이 개새끼를 안고 가는 역할이었던 게 문제였던 걸까?
그 목적이 없어 보이던 언론 플레이의 끝이 이런 테러 행위라는 걸 미리 눈치챘다면 달라졌을까?
소위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증오심을 불태우던 이들은 누군가의 지원과 약간의 충동질만으로 테러를 수행했다.
아무리 우리 개새끼가 하루에 몇백만 원짜리 밥을 먹고 황금으로 된 개집에서 산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웃긴 건 정작 목표로 한 개새끼는 폭탄을 피해냈고, 저 개새끼 정도의 눈치와 민첩성이 없는 나는 몸통이 반으로 갈라진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어머 어머. 우리 귀요미 놀라진 않았쪄요?”
눈앞에서 테러가 터지고 직장 동료가 반갈죽이 되어도 우리 연구소 일동은 프로의식을 놓지 않았다.
놀란 개새끼를 달래기 위한 직원의 혼신의 힘을 다한 우쭈쭈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다음 생에는 편하게 놀고먹는 오브젝트로 다시 태어나기를 빌면서 말이다.
***
그 소원 덕분인지, 나는 죽음 직후 숲속에서 오브젝트가 되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