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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4

“으음….”

난간 밖에 몸을 반쯤 걸치고 밖을 내다봤다.

아까보다 색이 짙어진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머리통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다은이 살며시 허리를 감쌌다.

“조심해. 잘못하다 떨어질라.”

“응.”

혹여 떨어져도 다치진 않겠지만, 걱정해 준 사람한테 매몰차게 대할 필요는 없으니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파랗다’는 말보다 ‘검다’라는 말에 가까운 바다에, 해초처럼 긴 머리카락이 떠다니고 있으니 음산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다은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알 것 같네.

“진짜 못생기긴 했네.”

“헉… 말넘심….”

“말넘심?”

“말이 너무 심하다는 뜻이야.”

“…말이 심했나?”

“그럼!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하면 상처받을 거 아니야. 사실이긴 하지만….”

“그 말이 더 상처받을 거 같은데.”

그리고 못생겼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다은이 먼저 하지 않았어?

그런 뜻을 담아 돌아보자, 자기도 아차 싶었는지 슬쩍 눈을 피했다.

사실, 세이렌보다 흉측하게 생긴 몬스터는 많다.

마물과 차원수까지 포함하면 더 많고.

그걸 알면서도 세이렌의 외모가 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묘하게 인간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것이 인간을 흉내 내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묘한 불쾌감이 올라오니까.

그걸 일컫는 용어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거기까진 기억이 안 나네.

여기저기 일그러지고 비늘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들을 내려다보다가 흥미가 떨어져서 몸을 배 안으로 집어넣었다.

덤으로 아직 허리를 붙잡고 있는 다은의 손도 떼어냈고.

못내 아쉬워 보이는 얼굴은 무시했다.

“음색이야 그럴듯하지만, 생긴 게 저래서야 노래 듣고 왔다가도 기겁하면서 도망칠 것 같은데요?”

“아까 나한테 말 심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뭐… 사실이잖아. 나라면 절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으음. 그렇긴 해.”

언제 훈계했냐는 듯 외모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는 게 웃기긴 하지만, 나도 다은의 말에 동의했다.

어류를 닮은 이빨하며 날카로운 지느러미가 번뜩이는 걸 보면 노래에 홀려 바닷속에 몸을 던지려고 하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세이렌의 노랫소리에는 사람을 홀리는 마나가 깃들어 있거든…. 그것에 당한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잊고 맹목적으로 노랫소리만 쫓게 돼….”

“어? 그렇지만 우리는 멀쩡하잖아요.”

“멀쩡해야지.”

나는 다은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가리켰다.

“그게 얼마짜리 마도구인데. 고작 세이렌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했다면 당장 뱃머리를 돌려서 발토라로 다시 달려갔을걸.”

그리고 브론딘의 멱살을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려야지.

지금까지 마기를 잘 막아내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카나도 세이렌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응. 그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세이렌은 바다에 사는 몬스터.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나와는 연이 없는 게 당연했다.

“응응! 카나가 다른 사람보다 땅에 가깝긴 하지.”

“…때리기 전에 물어는 봐줄게. 그거, 무슨 의미?”

“…엣. 때릴 거야? 정말로…?”

하는 짓이 푼수 같아서 그렇지, 다은의 외모는 상당히 예쁜 축에 속했다.

그런 미인이 무릎을 꿇은 채로 애교를 부리면서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다니.

나는 몸을 움츠리는 다은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자 다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때리진 않고, 바다에 집어넣을 거야.”

“엣.”

애교는 개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서 헛소리를 하는 거 같으니까 세이렌 곁으로 보내주는 게 도리 아닐까?

뒤에 덧붙인 말에 다은이 잠시 배 밖을 내다보았다.

어서 들어오라는 양 여전히 배 주위를 맴돌고 있는 세이렌.

그들 중 하나와 다은의 눈이 마주쳤다.

“….”

….

세이렌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몬스터이다.

그러니 인간을 적대감 어린 눈으로 보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샤악!

“히익?!”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이렌은 다은에게 더 적대적이었다.

위협적으로 팔을 흔드는 세이렌에 기겁한 다은이 거북이처럼 목을 쏙 집어넣…

-으려다가, 내 손에 붙들려 난간 너머로 몸이 훅 쏠렸다.

“꺄아아아아악! 카나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친구들이 기다리잖아. 어서 가봐.”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살려줘!”

“어라. 땅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나보고 땅에 가깝다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거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다은을 괴롭히던 것을 멈추자 다은은 안도했고, 바다에서 먹잇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세이렌들은 아쉬워하며 팔을 거두었다.

…너희는 또 왜 그러고 있었는데.

설마, 내가 정말로 다은을 바다로 떨궈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던 거야?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갈래, 아니면….”

스릉.

검을 들어 보이기 무섭게 세이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공격은 고사하고 제대로 위협한 것도 아닌데 개미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걸 본 다은이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완전 카리스마 있어….”

순순히 가지 않으면 검을 휘두를 생각까지 하고 있던 나는 뽑아 들었던 검을 멋쩍게 검집에 넣었다.

…저렇게 황급하게 도망가면 내가 몹쓸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귀찮게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건 좋았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에 괜스레 검만 매만졌다.

아직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카나야 혹시 나쁜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니야.”

곧바로 부정했지만 다은은 좀처럼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진짠데 왜 믿어주질 않는 거지.

간만에 느껴지는 억울함에 입술을 삐죽였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몬스터니 나쁜 일이 아니라 착한 일이지.”

“마, 맞는 말이긴 한데… 살려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공격하면 불쌍하잖아. 페어플레이 정신에도 위배되고….”

“…페어플레이? 이건 대련이 아닌데.”

“아니이… 정말로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게 아니라 그냥 그만큼 양심에 찔린다는 말이지….”

“별게 다 양심에 찔리네. 그리고 살려준다고 하진 않았어.”

순순히 돌아가면 공격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닌걸.

그러니 딱히 협정에 위반하는 짓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가?”

다은은 반신반의한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 말에 수긍했다.

“설득력이 있네….”

“당연하지. 난 누구와 달리 헛소리는 안 해.”

“역시 카나야! …그런데 카나가 말한 ‘누구’가 대체 누구야?”

“아티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저기요? 카나 양? 제 말은 왜 무시하시는 거죠?”

“응… 뭔데…?”

“저기요오오~? 안 들리시나요오오~? 카… 우풉!”

“에잇, 진짜.”

자꾸 귀찮게 하네.

나는 얼굴을 들이미는 다은을 밀어내며 아티샤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원래 이 구역에 세이렌이 살았어?”

“몰라…. 평소엔 여기까지 나올 일이 없었으니까…. 아니면 내가 처음 올 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야…?”

“그게 언젠데?”

“아마 십 년은 훌쩍 넘었을걸….”

“그럼 됐어.”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잖아.

드래곤처럼 강대하고 오래 사는 몬스터라면 몰라도 세이렌 같은 어중간한 몬스터가 십 년 동안 서식지를 바꾸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아티샤가 아르디나 대륙으로 건너올 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물고기가 마물이 될 정도로 마기가 넘실대는 바다에 사는 세이렌이라니.

“조금 신기해서.”

굳이 이런 곳에서 사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런 곳에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고, 마기 때문에 해양 몬스터도 많이 없을 테니 먹잇감을 찾는 것도 힘들 텐데 왜 남쪽이나 북쪽으로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무는 걸까.

심지어 마기에 오염될 걸 감수하면서.

내 말을 들은 아티샤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지나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지….”

“으음, 하긴.”

그런 경우의 수도 있겠구나.

하기야 잠깐 본 거로 세이렌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생각하는 건 비약인 것 같기도 하네.

요즘 워낙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어서인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나 봐.

“…푸하!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경계하고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까치발을 들어 비겁하게 키 차이로 내 손을 뿌리친 다은이 말했다.

“…뭐, 그래.”

“엥? 반응이 그게 끝이야? 기껏 편들어 줬더니….”

“편들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에이잇! 내 노력 돌려줘!”

“…그게 노력까지 들일 일이었어?”

“당연하지! 그 뭐냐, 편을 들어준다는 건 일종의 보증으로 볼 수 있는 행위라서 이런 말은 다른 말보다 더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거라고! 이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큰코다치게 될걸?”

“흐응.”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그 한두 마디의 말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소리를 하나 해서 들어봤더니 역시나 헛소리였네.

평소처럼 무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린 나는 눈매를 부러 축 늘어뜨렸다.

“…그래서 이제 내 편 안 들어줄 거야…?”

“…으윽! 기, 기습이라니…! 이 요망한 녀석… 비겁하다!”

그 상태로 올려다보자 다은이 가슴을 부여잡고 휘청거리다 털썩 쓰러졌다.

헛소리 몬스터, 토벌했다.

나는 쓰러진 다은의 시체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들 논다….”

한심하게 우릴 바라보던 아티샤의 말은 덤이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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