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6
내게 달려드는 여러 사령들을 상대하고 있다 보면 작금의 내가 얼마나 강한 지를 느낄 수 있다.
저들이 내 발목을 붙잡기 위해 사용하는 저주는 무의미하거나, 설령 작은 영향을 끼치더라도 신성의 앞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러다 보면 날 직접 해하기 위해 저들이 달려들지만 그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전투를 전문적으로 익히지 못한 사령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허술했으니까.
드워프가 만든 방패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공격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또 다시 방 하나에 가득하던 사령들을 처리한 나는 가벼이 심호흡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메이스를 털어냈다.
전투를 끝마친 후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은 기묘한 고양감이었다.
메스가키 스킬의 버프 효과와는 다른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언가.
내가 여태까지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돌파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 아그라의 개짓거리에 희생될지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수련을 거듭했다.
허나 노력을 한 것에 비해 강해졌다는 것에 대해 성취를 느낄 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의 대적자는 대개 나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였으니까.
조금 자만심이 들 무렵이면 강제로 머리를 꾹 눌러서 땅바닥에 박히게 만들어주더라고.
내가 무슨 두더지잡기의 두더지도 아니고.
나 좀 강해졌을지도라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바로 대가리를 깨주시니 원.
단순 스펙으로만 따지면 지금 내가 강한 축에 속한다는 걸 알거든?
그렇지만 박살나고 깨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다보니 내가 허약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
근데 이 던전에 들어와서 사령들의 머리를 메이스로 찍어주고 있자니 내 강함이 그나마 체감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상성이 좋은 상황이라 한들 이 던전은 아카데미 2학년이 되어서야 출현하는 장소.
그에 반해 나는 아카데미 1학년 중간고사를 치르는 사람.
평범하게 움직였다면 이 곳에 들어오자마자 그 기사들에게 박살났을 것이다.
허나 그 기사들은 내게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이 저택에 있는 그 누구도 내게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충분할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세상이 내게 가하는 억까의 정도가 그것보다 심해서 그렇지.
어. 그러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건가?
잡다한 생각을 하며 방 바깥으로 빠져나오니 많은 것이 달라진 저택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택의 복도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내가 공략하는 방을 따라서 점차 번지고 있었다.
장식물들은 깨지거나 부서지거나 찢어졌고,
바닥과 벽에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흩뿌려졌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새들어오며 샹들리에를 뒤흔든다.
스산한 소음이 울려퍼지는 저택의 풍경을 뒤로 한 채 또 다시 멀쩡한 방의 문을 연다.
이래서야 내가 이 저택을 망가트리고 있는 용역업체가 되어버린 느낌이네.
그 어떤 물건도 건드린 적이 없는데 말이야.
난 계속해서 위쪽으로 향했다.
가족끼리 화목한 식사를 즐겼을 식당을 박살내고.
여러 옷과 보석들이 가득한 방에 머무르던 귀부인의 머리를 찍고.
맨 윗 층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집사를 쓰러트렸으며.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한 때 이 가문의 당주였을 것을 재로 되돌려 주었다.
그에 따라 저택의 모습이 점점 더 처참하게 바뀌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던 저택이 나라는 침입자에 의해 폐허로 물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깥에서 보았던 저택의 풍경과 닮아가는 느낌이구나.>
그 끝에 도착한 장소는 맨 위층에 있는 방이었다.
모든 것이 반파되어버린 저택에 마지막으로 남은 멀쩡한 장소.
아드리의 침실.
그 곳의 문을 벌컥 열었더니 저택에 왔을 때 나를 맞이해주었던 아드리가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나를 맞이해주었다.
“넌 뭐야?”
턱을 괸 그녀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의문이었다.
“왜 네가 움직이는 곳마다 저택이 무너지는 거야? 내 통제 안에 있어야 할 이 저택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 거냐고.”
“난 위대한 허접♡ 주신의 사도거든.”
차가운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질문을 내뱉은 아드리에게 마법의 말을 내뱉어 주었다.
신의 사도가 기적을 일으키겠다는데 뭔가 문제가 있나요?
꼬우시면 허접 주신님에게 기도로 문의해 주시겠어요?
나한테도 대답을 거의 안 해주는 게으름뱅이가 답변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아드리가 눈썹을 내리자 재차 목소리를 냈다.
“넌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
“글쎄♡ 방구석 외톨이 유령보단 잘 알고 있을 걸?♡ 당연하게도♡”
내가 이 저택을 몇 번이나 공략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드리 너는 모르겠지만 난 널 수백 번도 넘게 쓰러트려 본 경험이 있어.
심지어 아무 장비 없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적도 있지.
그런 내가 이 저택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웃으며 성실히 대답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답변은 아드리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면 그 입을 강제로 여는 수밖에.”
그 말과 함께 아드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방 바깥으로 내쫓아졌다.
중심을 잡을 틈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복도가 기울어 나를 공처럼 아래로 떨어트렸고 미끄럼틀을 타듯 아래로 흘러내린 나는 다시금 정문 앞에 도달했다.
낙하의 충격에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금 몸을 일으키니 저택의 계단 맨 위에서 아드리가 모습을 보였다.
“이 저택을 빼앗으려는 발칙한 도둑고양이에게 벌을 내려줄게.”
그녀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저택의 모든 방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물건들이 바깥으로 튀어 나왔다.
대걸래. 쟁반. 먼지털이처럼 귀여운 물건들부터 시작해 저주를 쏘아내는 마법서. 불길한 기운이 인챈트 되어 있는 검. 사령을 불러내는 지팡이까지.
괴담에 나오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구경하며 나는 웃음을 지었다.
이게 대 아드리 전의 1페이즈다.
저 무수한 물건들의 방해를 뚫고서 맨 위층까지 올라가 아드리에게 데미지를 입혀야 하지.
처음에 이 패턴을 마주했을 때는 끔찍했다.
한 시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어떤 물건에 얻어맞아서 경직이 걸리고,
그 후에 여러 물건들의 연계에 걸려서 한 순간에 산화해 버리거든.
뭐어. 이건 옛날이야기고 지금 내 입장에서 이건 몸풀기도 안 되지.
아드리가 불러낸 물건들이 공격을 하는 데에는 규칙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대걸레가 머리를 후려쳐 경직을 시키면 다리에 칼이 박히고 책이 그 자리에 저주를 쏘아내는 식이지.
유저를 억까하기 위한 코딩이지만 이 규칙성을 모두 다 외워버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공격이 날아들든 간에 피할 자리가 보이게 되거든.
“무슨.”
<호. 반응이 좋구나.>
맨 처음 날아든 공격을 피하며 앞으로 내달리자 양 쪽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은 모를 거다. 보고서 반응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어떤 공격이 날아오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모두 알고 있기에 자연스레 피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젠장! 왜 안 맞는 거야!”
아드리는 요리조리 공격을 피하는 내 모습에 열이 받은 것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나인데.
“이딴 공격을 맞으라고 쏘는 거야?♡ 진짜로?♡ 장난치는 게 아니라?♡”
“닥쳐!”
“시끄러우면 닥치게 해봐♡ 아♡ 허접한 외톨이 유령이라 못하는 구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3층으로 향하는 난간을 올라.
상처 하나 없이 아드리의 앞에 도달했다.
내 모습을 본 아드리는 다급히 자신의 근방으로 물건들을 끌어 모았지만 그 또한 게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패턴이었다.
저를 어찌 피해야 하는 지 완벽히 외우고 있단 이야기였다.
무수한 공격을 흘려내며 아드리에게 달려든 나는 새하얀 유령의 얼굴에 신성이 담긴 메이스를 내리 꽂았다.
“끄흡!”
아플 거야.
언젠가 나크라드의 대가리를 박살내겠단 일념으로 쌓아 온 메이스의 숙련도가 가벼울 리가 없잖아?
아드리는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나를 떨치려 했으나 그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던전의 보스라 할지라도 마법사 계열.
이를 악물고서 신체능력을 키운 성기사보다 피지컬이 뛰어날 리 없지 않은가.
그렇게 때리고,
또 다시 때리고,
아드리가 유령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얼굴뼈가 박살이 났을 만큼 후려치고 난 후에 아드리를 중심으로 충격파가 터졌다.
이를 예측하고 있었기에 발을 땅에 붙이고 버티려 해보았으나 불가능했다.
무슨 억제력이라도 있는 건지 자연스레 발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4층에서 1층 바닥으로 떨어진 나는 낙법을 취하고서 다시금 일어나 위쪽을 올려다봤다.
“빌어먹을 년이!”
내게 얻어맞고서 주춤거리던 아드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노기가 담긴 목소리를 내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저택 여기저기에 아드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는 사령들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잠시 바닥에 떨어졌던 물건들이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죽여 버리겠어.””
무수히 많은 아드리에게서 새 나온 목소리가 저택을 울린다.
게임으로 볼 때도 징그럽단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장난 아니네.
예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법을 몰라서 무작정 다 때려잡다가 물건들에게 당해서 죽었던 때가.
얘 하나 깨보겠다고 몇 번이나 트라이를 했었더라.
최소한 몇 시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은 진짜와 가짜가 어떻게 나뉘는 지 알지.
날 베어내려는 검을 가뿐히 막아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운이 좋네.
1층에서 시작을 하다니 말이야.
자신을 특정짓고서 내달리는 나의 모습에 아드리는 당황한 듯 물러서려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날 떨어트릴 수 없단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잖아?
얌전히 포기하라고. 아드리.
메이스가 아드리의 머리를 내리 찍음과 동시에 저택을 가득 채우던 사령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또 다시 아드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찾을 수 있을까?””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해?♡ 진짜?♡”
““허세부리지 마라.””
“2층 접객실의 그림 앞. 맞지?♡ 응?♡ 아니라고 해봐♡”
미안한데 처음 위치를 들킨 순간부터 이미 네 운명은 결정 되어 있어.
네가 어디에서 리스폰 되는지 다 외우고 있거든.
네가 소울 아카데미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인 이상.
그리고 지금의 나를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게 아닌 이상.
네가 아무리 발악을 하더라도 내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러니까 좀 얌전히 쓰러져 줄래?
이러다가 눈 한 번 못 감고 시험을 치러 가야 할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