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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동물을 교육할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먹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거다!

영상을 보던 저니, 다은이 소파를 요란스럽게 박차고 일어섰다.

다은을 끔찍이 아끼는 어머니가 봤으면 호호 웃으며 등짝을 때렸을 상황.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가끔 그녀의 자취방을 방문하는 어머니는 오늘 오지 않았고, 그녀는 무사히 등짝을 사수할 수 있었다.

“사람도 어쨌든 동물이잖아!”

그야말로 미친 듯한 논리의 비약.

시청자들이 들었다면 물음표로 채팅창을 수놓았을 소리였지만 다은은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예로부터 식사를 대접하는 건 음식 섭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단 말이지.”

귀한 손님이 오면 융숭한 식사를 대접한다.

없는 살림에도 객이 굶으면 안 된다며 극진히 대접하는 사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조금 어색한 사이라도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금방 친해지지 않던가.

요컨대 음식을 같이 나누는 행위는 동석한 사람과 정을 나누며 친밀감을 높이고, 거리감을 좁히는 효과가 있었다.

더불어 대접한 이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게 만드는 검은 속내도 살짝.

“맛있는 걸 먹다 보면 분명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왜, 어릴 때 먹을 거 주는 어른이 괜히 더 멋있게 보이고 그랬잖아.

묘지기도 그렇지 않을까?

‘맛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웬만해선 없을 테니까.

발상의 시작은 이상했으나 도출된 결론은 꽤나 그럴듯했다.

신다은 하면 실행력, 실행하면 신다은.

결론을 내린 다은은 곧바로 가상현실 캡슐에 들어가 방송을 켰다.

순식간에 다은에서 저니가 된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 좀 추천해 줘. 구하기 힘들거나 너무 비싼 건 빼고.”

음식 이름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저마다 맛있다고 느낀 요리를 끄집어내는 채팅창.

저니는 중복으로 나온 것을 제외하고, 멀어서 갈 수 없거나 여건상 살 수 없는 것을 제외한 것들을 꼼꼼하게 적었다.

인벤토리에 넣는다고 해도 음식이 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명색이 아공간인 만큼 조금 더 오래 보존할 수 있기는 해도 딱 그 정도.

마공학자가 만든 보존 가방이란 물건도 있었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요리가 서툰 플레이어는 마을 밖에서 머무는 날이 길어지면 딱딱한 마른 육포나 맛없는 수프 따위를 먹어야 했다.

“처음은 역시 고기 요리가 좋겠지? 아무래도 얻어먹은 게 있으니까.”

묘지기에게 얻어먹었던 코카트리스 고기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불에 굽기만 했는데도 이 맛인데, 만약 제대로 요리한다면…?’

그러면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만 했는데도 군침이 돌았다.

아니, 이게 아니라.

저니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저번에 살짝 보니까 복잡한 요리 도구도 없는 거 같더라고.”

-그걸 또 언제 봤대

-훔칠 거 있나 본 게 아닐까?

-흠… 그럴듯한데?

“그럴듯하긴 뭘 그럴듯해. 아무튼, 산속에 사니까 복잡한 요리는 힘들 거 아냐. 그러니까 손이 많이 가는 고기 요리를 가져다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네가 준 고기보다 이게 더 맛있다’

-이렇게 서열 정리를 ㄷㄷ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성… 그저 joat

-멀리 안 나갈게요. 잘 가세요

“그런 거 아니라고!”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하는 집이 있다고 한다.

고기에 칼집을 내고 온갖 향신료와 와인을 넣고 숙성한 다음에 어쩌고저쩌고… 뭐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 요리라고 하는데….

뭔 말인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날 정도였으니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는 주제에 적합한 요리임은 틀림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음해하는 시청자들과 함께 음식을 사고 다시 묘지기가 있는 산으로 향한다.

몬스터가 보이면 숨어서 숨을 죽이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고, 말을 타고 그라닉을 공부하다 혀를 씹기도 했다.

다행히 이번엔 코카트리스를 만나는 일 없이 무사히 묘지기의 거처에 도착한 저니가 비지땀을 닦았다.

“안녕!”

“….”

예상대로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다.

‘쫓겨나지 않은 게 어디야.’

발을 들이자마자 살벌한 공격이 날아오는 것보다 무응답이 훨씬 낫지.

긍정적으로 생각한 저니가 척척 발걸음을 옮겼다.

“음식, 보답!”

“…?”

문장을 구사하기엔 아직 미숙한 탓에 문장 대신 짤막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말한 저니는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음식을 꺼냈다.

갓 나왔을 때처럼 김이 펄펄 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온기가 느껴졌다.

“나, 음식 준다.”

“…하아?”

아, 이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데.

말보다는 한숨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니는 꿋꿋하게 묘지기에게 음식을 내밀었다.

어제 저니가 했던 것처럼 음식을 빤히 바라보던 묘지기가 마침내 그녀가 내민 음식을 받았다.

털을 잔뜩 부풀리고 경계하던 고양이가 다가온 것 같은 감격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경계심 많은 야생동물 같지 않아?”

“…?”

“앗, 아니, 아니.”

그녀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묘지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무슨 짓인지….”

한숨을 푹 쉰 묘지기가 오두막에서 가져온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에 넣었다.

긴장되는 순간.

우물우물.

냠냠.

“…어어.”

아무 반응도… 없어…?

맛있는 걸 먹으면 조금의 반응은 보일 줄 알았는데, 묘지기는 그저 무미건조한 태도로 포크를 움직일 뿐이었다.

포크로 고기를 찍고, 입에 넣는다.

육포를 씹어도 이것보단 다채로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설마, 맛이 없나?”

냠.

“…맛있는데.”

제 몫의 고기를 먹어본 저니의 의문이 더욱 커졌다.

뜨거웠을 때 먹었으면 더 맛있었겠지만 살짝 식은 지금도 충분히 맛있었다.

-존심 상한 듯 ㅇㅇ;

-’큰맘 먹고 고기를 나눠줬더니 다음 날 고기 요리를 들고 왔습니다. 이거 싸우자는 건가요?’

-네 맞워요~

-멕인다고 생각한 거 아님?

“진짜 그런가…?”

저니가 혼란에 빠진 사이 묘지기의 그릇이 텅 비었다.

“다 먹은 걸 보면 맛이 없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목석도 아니고 어떻게 아무 반응도 없을 수 있지?

하다못해 어깨 정도는 들썩일 수 있잖아.

…진짜 생체 골렘 그런 건가?

달그락.

묘지기가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꽃밭을 가꾸는 데 신경 쓰더랬다.

“….”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 계획이 초장부터 어그러졌다.

어벙한 표정으로 묘지기의 모습을 쫓던 저니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후… 후후, 후후후…! 그래, 한 번에 넘어오면 재미없지.”

처음부터 그건 기대도 안 했어.

이제 와서 실망할 이유도 딱히 없다고.

저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디 세상의 모든 산해진미를 가져다줘도 똑같이 반응할 수 있나 두고 봐!”

-무서워요;

-오늘 처음 보는데 이분 갑자기 왜 이러시나요?

-처?음(일주일 이상 팔로우 챗)

그날 이후 저니의 일과는 매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방송을 켜고 음식을 사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틈틈이 팬카페에 들어가 새로운 글을 확인하고, 어렵게 구한 그라닉 사전을 보며 공부했다.

마지막으로 산에 올라 묘지기에게 음식을 바치고 반응에 실망하는 것까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평소 잘 받지 않는 시청자들의 도움까지 받을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영 신통치 않은 반응에 저니의 정신이 점점 깎여갔다.

“으흐, 으흐흐흐…. 맛있는 게 그렇게 싫어? 그러면 이번엔 괴식을 먹여 볼까…? 실리아에 하와이안 피자가 있던가…?”

-어어 정신 차려라;

-안 아프게 죽는 방법 ㅇㄷ

-안 아픈 거 맞음?

-아ㅋㅋ 나는 안 아프다고~

-??? 하와이안 피자가 왜 괴식인가요?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일주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서 음식을 바쳤는데 잘 먹었다는 말은커녕 반응조차 없으니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니는 참고 견디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않음?

-다른 방법 찾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하 ㅅㅂ 답답해 뒤지겠네

그녀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죽네 사네 아우성치는 걸 보아 일단 그들에게는 불행인 듯했다.

달그락.

묘지기가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았다.

오늘도 퇴짜 아닌 퇴짜를 맞은 상황.

이제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에휴….”

빈 그릇을 인벤토리에 넣은 저니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내가 틀린 건가?”

-그걸 이제야???

-솔직히 너무 대책 없긴 했지

“그런가….”

늘 자신만만하던 저니도 의기소침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안쓰러운 모습에 그녀를 위로하는 후원이 여럿 터졌지만 그녀의 어깨는 여전히 축 처져 있었다.

“너무 자신만만했나 봐.”

아무도 몰랐던 걸 가장 먼저 알아냈다는 흥분, 선구자로서의 우월감.

눈을 가리고 있던 감정들이 떨어져 나가니 비로소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호감도가 조금이라도 오르지 않았을까? 이제 처음처럼 어이없다는 반응은 안 보이잖아.”

-언제부터 실리아 온라인이 미연시였지

-캬 연애까지 할 수 있는 갓겜

-호감도 조금 올리려고 대체 얼마를 쓴 거야

-원래 데이트할 땐 돈 써야지ㅇㅇ

-이건 데이트가 아니라 그냥 지갑인데;

“…돈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

급격한 다이어트로 인해 홀쭉해진 지갑을 떠올린 저니가 우울한 목소리를 냈다.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보답이랍시고 멋대로 사다 준 건 그녀였지만 묘하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먼 사람 원망해서 뭐 하나. 그녀 자신이 한 일인걸.

스윽.

묘지기가 검을 손질하는 모습을 우울한 눈으로 보던 저니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이 덩달아 흔들리며 목을 간지럽혔다.

“오늘은 일찍 와서 시간도 남으니까 여기 좀만 있다가 갈까?”

-오 좋다

-ㄱㄱㄱ

-Q&A 가즈아

근데 뭘 해야 하지.

지금도 채팅창에 올라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사람들은 묘지기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것은 저니 또한 마찬가지라 꾸준히 말을 걸어봐도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일취월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라닉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말이 없으니 제대로 익히고 있는 건지 확인할 방도가 있나.

언어를 배울 땐 원어민과 대화하는 게 효과적이라는데, 원어민이 말이 없으면 어떡하죠?

답 : 다른 사람으로 바꾸세요.

‘그럴 수 있었으면 그렇게 했지.’

답을 알아도 행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검….”

기름먹인 천이 검을 느릿하게 훑는다.

저니는 천이 지나간 자리가 햇빛을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걸 구경하다가 문득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검술 연습이나 좀 해볼까? 매번 호위를 요청할 수도 없으니까.”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연습해 둬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섰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함?”

-내려치기부터 시작하는 게 국룰이지

“내려치기? 이렇게?”

얍얍.

저니가 머리 위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현실이었다면 팔이 부들부들 떨렸을 테지만 스텟의 보정을 받은 덕분에 문제없이 버틸 수 있었다.

내려치기, 중단 찌르기, 하단 베기….

휙, 휘익!

고요한 공터에 검이 바람을 가르며 우짖는 소리가 맴돌았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저니 자신도 모른다.

다만 뭐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뿐.

‘…푸흡!’

묘지기를 공략하는 거랑 똑같네.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일단 시도부터 해보는 거.

그래, 여행이 언제부터 내 계획대로만 흘러갔었나?

때론 안 풀리는 일도 있고 그런 거지.

운이 좋으면 성과가 있는 거고.

그리고 그때.

‘후우….’

어느 순간부터 손에 들린 검이 묘하게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확 드러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저니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팔을 내렸다.

“조금만 쉬고-”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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