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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한쪽 면이 유리로 된 격리실. 하얗게 칠해진 벽과 천장.

나는 아무것도 없는 격리실 안에 덩그러니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네 녀석도 이젠 끝이다!’ 라는 표정으로 나를 이 격리실에 집어넣은 직원의 표정과는 달리, 중앙 연구소의 격리실에서는 별로 색다른 점을 느끼지 못 했다.

내 예상보다 몇 배는 우중충한 분위기라는 점이 의외라면 의외였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 돌아다니는 연구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직접 오브젝트를 관리하는 말단 직원들의 표정은 서울 연구소의 그것보다 더욱더 좋지 못 했다.

표정만 보면 격리 중인 게 오브젝트가 아니라 저 직원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표정이었다.

삐이익

듣기 싫은 버저소리와 함께 벽에서 고온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부러 맞기는 싫어서 유령화로 가볍게 피했다.

이 격리실에 들어 온 뒤 하는 실험은 죄다 이런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총기부터 시작되었다.

버저를 울리고 총기 사격. 버저를 울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총기 사격 등등.

중앙 연구소에서는 전혀 소용없는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폭탄이 격리실 안에서 터지기도하고 여러 종류의 독가스를 살포하기도 했다. 강산성으로 보이는 액체를 뿌리기도 하고 액체 질소를 들이 붓기도 했다.

이제까지 봐온 오브젝트의 파괴 조건이 다양했던 걸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여러 가지 시도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너무 파괴적인 방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감점 요소였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방법이 해답인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가깝게는 서울 숲 사건의 강철 돼지상의 파괴 조건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만으론 찾아내기 힘든 파괴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걸 모르니까 이런 식의 실험을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맞은 편의 격리실에 갇혀 있는 도마뱀도 그런 사례중 하나 였다.

그 도마뱀의 파괴 조건은 [만 명에게 동시에 기립 박수를 받는다.] 였다.

격리실의 전면은 완전히 투명한 유리라서 지나다니는 사람은 물론 맞은편의 격리실의 내부도 보였는데, 그 안에는 주기적으로 살해당하는 도마뱀이 갇혀 있었다.

딱히 물리적으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고, 크기도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도마뱀이었다. 다만 전신이 파란색이라는 점만 빼면 전혀 오브젝트같아 보이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 도마뱀의 진가는 실험에서 나타났다. 화염방사기로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재로 만들어 버렸는데, 한 시간쯤 지나자 허공에서 푸른 불길이 넘실거리더니 뿅 하고 다시 그 도마뱀이 부활한 것이다.

그 뒤로는 집요한 실험이 계속되었다. 산으로 녹이고, 태우는 등등 여러 가지 부활을 막기 위한 방법들을 동원했지만 도마뱀은 계속해서 부활했다.

그러고는 도마뱀 죽이기를 포기했는지 어느새 다른 격리실로 이동되었다.

나도 그 도마뱀처럼 다른 격리실로 이동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그 파란 도마뱀이랑 달리 다른 곳으로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랑 그 도마뱀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

도마뱀이 있던 자리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고양이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간식이나 장난감등등으로 유인해서 격리실로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고양이도 도마뱀처럼 지지고 볶고 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러지 않았다. 고양이는 아예 영체였는데, 그래서 일찌감치 시도조차 안 하고 격리하기만 하기로 한 거로 보였다.

보이지만 간섭할 수 없는 유령 고양이라 그런지 갇혔는데도 꽤 느긋해 보였다.

하지만 그 느긋함도 잠시뿐이었다.

지루함을 느낀 건지 밖으로 나가려고 유리 벽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고양이의 느긋함은 사라지게 되었다.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격리실 유리 벽에 콩하고 머리를 찧은 것이다.

영체 고양이는 격리실 벽에 가로막혀서 나가지 못하자 벽을 발톱으로 긁으면서 애옹거리기만 했다. 영체 고양이니만큼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울음소리가 한층 더 애처로웠다.

설마? 여기 영체를 가두는 효과가 있는 격리실인 건가?

격리실 벽을 세심히 바라보자, 의미 불명의 힌트가 하나 떠올랐다.

[연구소장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격리실의 벽과 유리창은 모두 오브젝트 판정이었다. 모두 같은 오브젝트거나, 같은 오브젝트에서 파생된 물체로 보였다.

파괴 힌트는 [연구 소장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이번에도 황당한 힌트였다.

소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소원이 뭔지도 모르는 힌트였다.

오브젝트를 이용해서 오브젝트를 가둔다. 이러니까 직원들 표정이 그렇게 자신만만했구만.

나를 안 꺼내는 이유도 명백했다. 영체를 가두는 감옥에서 꺼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괜히 꺼냈다가 이송 중에 도망가버리면 난감한 일이니 말이다.

정말 통과할 수 없는 건가? 라고 생각해서 손을 벽에 들이밀어 봤더니 약간의 저항감만 느껴졌을 뿐 쑤욱하고 통과되었다.

응? 이렇게 맥없이 통과가 가능하다고?

다만 벽속에 들어간 손으로부터 엄청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마치 사람들이 잔뜩 모인 체육관같은 소음이었다. 웅성거리고, 이해할 수 없는 말소리 같은 것이 잔뜩 섞인 그런 소음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그냥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

연구소 내에 경보가 울려 퍼졌다.

최고등급 위험도의 실험체인 회색 사신이 격리실을 탈출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었다.

증거로 제시된 문제의 CCTV 녹화 영상에는 회색 사신이 벽을 통과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영상 속의 회색 사신은 자기 팔을 집어넣고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몸 전체를 벽으로 집어넣었다.

물론 그런 영상이 찍혔다고 격리실 문을 여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회색 사신의 지능이 굉장히 높다는 것은 이미 보고되어 있었기에 문을 열게 만들기 위한 기만책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반대편 벽에서는 회색 사신의 모습이 찍혀 있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 의견에 힘이 실렸다.

물론 실제로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여겨지므로 외부로 통하는 문과 창문은 모두 봉쇄. 연구소 내의 인원들도 모두 밖으로 출입이 금지되었다.

현장직, 사무직을 가리지 않고 회색 사신을 찾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현장 직원들은 모두 구석구석 발로 뛰어다니며 회색 사신의 흔적을 쫓았고 사무 직원들은 모든 CCTV를 면밀히 분석해서 회색 사신이 비친 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오른손에는 대형 방패, 왼손에는 삼단봉을 착용하고 연구소 내부를 순찰하는 업무가 부여되였다.

영체화까지 가능한 위험등급 특급의 오브젝트를 겨우 이런 무장으로 쫓으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 대상은 그 흉악한 소문의 회색 사신이 아닌가?

다행인 점은 회색 사신이 밖에 나와 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제까지 탈출하지 못 했던 회색 사신이 이제서야 탈출을 시도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연구원들은 모두 내부 벙커로 숨어들었고 돌아다니는 건 연구원이 아닌 일반 직원들뿐. 다들 커다란 방패를 들고 돌아다니니 그렇게 넓어보이는 연구소 복도도 굉장히 좁아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소 복도는 유독 어두워 보였다.

검은 나비가 천장에 빼곡하게 붙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검은 나비가 간간이 날아다녔다.

그러고 보니 검은 나비가 언제부터 있었더라? 일주일 전쯤이었나?

별일은 아니네.

별일은 아니야.

그러고 보니 숙소의 거울에도 나비가 잔뜩 비치던데 이상한 건가?

별로 이상하지 않아.

아 따가워.

검은 나비가 날카로운 이빨로 나를 물었다.

그런데? 나비가 이빨이 있었던가?

있을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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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이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랬더라? 어제부터 그랬어.

별일은 아니네.

“야, 너 팔뚝에 벌레 물린자국이 왜 이렇게 많냐? 아직 초여름인데, 모기가 그렇게 많았나?”

같이 순찰을 도는 동료의 목소리가 왠지 멀게 느껴졌다. 나비가 천장에서 내려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잔뜩 날고 있었다. 귓구멍에도 나비가 앉아서 소리가 안 들리는 건가?

나비때문에 동료의 얼굴이 보이질 않아.

“야야, 너 어딜 보는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은 차려야지.”

나비들이 방해야. 걸어 다닐 수가 없네.

도대체 나비들은 언제 치울 건데?

이러면 우리 현장직들만 고생하는 건데, 연구소는 매번 이런다니까.

나비로 가득한 시야 한복판에 강렬한 노란색이 내 눈을 찔렀다.

회색 사신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노란색이었다.

회색 사신이 손짓하고 있었다. 빨리 자기 쪽으로 오라는 듯이 손짓 했다.

아, 빨리 신호기로 사신을 발견했다고 알려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여.

나비가 온몸에 잔뜩 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 졸려서 서 있을 수가 없다.

나는 회색 사신을 눈앞에 둔 채 정신을 잃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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