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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9

제3 트리니티 연구소 납치 사건 피해자들을 오브젝트 협회 측으로 인도하고 나니, 드디어 세희 연구소에 평온이 찾아왔다.

“하.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네.”

오브젝트 협회 사람들이랑 한참 동안 드잡이질 하다 돌아온 세희 언니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널브러졌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인 세희 언니의 뺨 위로 황금 사신이가 달려들었다.

달려든 황금 사신은 힘들어하는 세희 언니를 위로하듯이 토닥거렸다.

황금 사신의 위로에 세희 언니는 순식간에 기운을 차리더니, 달라붙은 황금 사신이를 집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 위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황금 사신이도 뭔가 바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길래, 나도 손가락으로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아, 편안하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안뜰에 위치한 파라솔.

그리고 그 밑에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

그곳에 앉아서 음료수를 먹으면서 황금 사신이들이랑 놀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네.

황금 사신이마다 좋아하는 쓰다듬는 방법이 달랐는데, 이 녀석은 정수리쯤이 취향.

햇살 아래 대자로 뻗어서 햇빛을 만끽하는 저 녀석은 배를 간지럽히는 걸 좋아했지.

손을 뻗어서 배를 간지럽히니까, 아니나 다를까 간지러운 것처럼 마구 웃으면서 좋아했다.

예전에는 전부 똑같이 생긴 황금 사신이들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좀 더 사신이 전문가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세희 연구소 제일 중요 업무는 사신이들이랑 놀아주는 거니까!

물론 김중뢰 선배나 서아 언니는 절대로 아니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테이블 위에 세워둔 핸드폰 앞에는 쭈그려 앉은 황금 사신이 하나가 집중해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핸드폰을 움직이면 머리가 화면 따라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정도의 엄청난 집중이었다.

대부분의 황금 사신이는 화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조금 의외였다.

황금 사신이 보고 있는 것은 탈출한 아귀를 촬영 중인 뉴스.

오브젝트 전문 방송사에서 운영 중인 헬기들이 아귀를 멀찍이서 쫓아가며 촬영 중인 영상이었다.

“어?”

그리고 촬영 카메라에 이상한 장면이 비쳤다.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린 트리니티 연구소와 사람 하나 없이 한산한 근처 도시의 풍경.

근처 도로에는 사람이 까맣게 타서 죽어버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세희 언니, 트리니티 연구소가 보여요.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그러네, 탈출한 사람들이 이야기 해준 것보다 훨씬 심각해 보여.”

트리니티에 대형 사고가 터진 것으로 보였지만, 세희 언니도 나도 사신이에 대한 걱정은 별로 되지 않았다.

사신이는 무적이니까!

갑작스러운 관악구 사태에 허둥지둥하던 아나운서는 새로운 정보를 받았는지, 침착한 얼굴로 현재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오브젝트 협회 측의 정보를 얻었는지, 꽤 상세한 트리니티 연구소 납치 감금 사태에 대한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납치, 감금.

그리고 연구원들이 오브젝트로 변했다는 수많은 증언.

방송 내용의 골자는 ‘트리니티 연구소가 수상하다.’였다.

종횡무진으로 달려가던 아귀는 그대로 폐허가 된 트리니티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TV를 보고 있던 황금 사신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황금 사신이가 허공에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남자는 생각보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존재감은 ‘아귀급’이라서 파괴 조건으로 또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인간의 형상을 무너트린다.>

아귀급인 것치고는 허무한 조건이었는데, 아마 몸 안에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던 거겠지.

남자가 반으로 잘리는 순간,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오브젝트는 검은 점액으로 녹아내렸다.

철퍽.

잘려 나간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연구소 안으로 찾아왔다.

아니, 이런 위험한 곳에 아직도 사람들이 있었네?

나타난 사람은 푸딩 공장 외국인 아저씨의 일행이었다.

푸딩 공장의 제임스와 소심한 아저씨.

그리고 척 보기에도 경호원 같은 남자 4명.

그들은 검은 정장을 입고 이어마이크까지 착용한 채, 굳은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왔나 보네.

갑작스러운 인간의 등장에 황금 사신들이 활짝 웃으면서 제임스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제임스를 지키듯이 서 있는 남자들은 갑자기 달려드는 황금 사신을 보고 막아서려고 했지만, 제임스가 손짓으로 멈추고는 달려드는 황금 사신들을 한 아름 안아 들었다.

“하하하, 우리 귀요미들. 잘 있었나?”

황금 사신을 대하는 게 전보다 훨씬 능숙하고 친근해 보이는 제임스였다.

경호원들은 황금 사신이 달라붙든 말든 무시하고 제임스 주변에 서서 자신의 직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들은 경호원들의 어깨까지 기어 올라왔는데, 무시를 당하자 시무룩하게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소심한 남자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황금 사신 한 마리.

소심한 남자에게 버려졌던 황금 사신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다가가자, 소심한 남자는 눈을 질끈 감더니 황금 사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황금 사신은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손바닥 위에 달라붙었다.

“하, 하하.”

소심한 남자는 귀여움 반, 두려움 반이 섞인 얼굴로 웃었다.

손바닥에 달라붙은 황금 사신이는 그런 남자를 보면서 헤실거렸다.

목표로 했던 ‘트리니티에 숨은 검은 점액의 원흉’을 쓰러트렸다.

‘이 정도면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갑자기 하늘 위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울리는 커다란 땅울림.

쿵쿵.

커다란 발걸음 소리와 다가오는 오브젝트의 기척.

황금 사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갑자기 다가오기 시작하는 오브젝트의 기척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벽을 박살 내면서 나타난 것은 오랜만에 보는 오브젝트.

오랜만에 보지만 그립지는 않은, 영원히 보고 싶지 않던 오브젝트가 튀어나왔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들을 돌아보는 아귀.

아귀의 움직임에 맞춰서 황금 사신들도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들을 지켜주세요!>

푸른 사신들도 높이 날아오르면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방울 보호막을 덮어씌웠다.

그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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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는 바닥에 깊은 발톱 자국을 남기면서 주변을 배회하고만 있었다.

덤벼들지 않고 살펴보기만 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네.

왜 저러지?

전에 만났을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던 것 같은데….

원인이 뭘까?

***

사신들과 아귀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아아, 이젠 다 끝났어. 여기서 아귀랑 회색 사신이 싸우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야.”

통역사는 현 상황을 비관하며 절규했고, 황금 사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볼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경호원들도 바짝 긴장을 한 채, 횃불을 높이 들어 올렸다.

긴장감이 가득한 상황.

하지만 제임스는 현 상황을 보면서 뭔가 다른 것을 느꼈다.

아귀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설마?

제임스는 자기 손에 들린 0번 유물을 보관 중인 서류 가방을 들어 올렸다.

가방을 따라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아귀의 시선.

이럴 수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0번 유물은 모두 회색 사신 관련이 아니었던 건가?

0번 유물을 꺼내서 반응을 확인해 봐야 할까?

그렇게 계속 이어지던 제임스의 생각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끊어졌다.

트리니티 제3 연구소장의 몸에서 폭발하듯이 그림자와 촉수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로 치솟은 그 폭력적인 촉수의 물결이 트리니티의 지붕을 아예 날려버리고, 불길한 빛으로 빛나는 하늘을 드러냈다.

“하늘색이?”

제임스는 하늘을 보면서 경악했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액체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제3 연구소장의 몸에서 퍼져나간 그림자는 그 지면을 검은 액체로 가득 채웠다.

닿는 모든 것을 녹여서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검은 점액.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들이 딛고 있는 지면은 푹신한 마시멜로가 대신 자리했다.

회색 사신을 주변으로 펼쳐진, 어색하게 오려 붙인 것 같은 마시멜로 세계의 단면.

검은 점액은 마시멜로의 대지를 침범하지 못했다.

어둡고 불길한 그림자가 탐욕스럽게 주변 건물들을 차례차례 집어삼키고 있었다.

빌딩들이 즐비했던 거리는 검게 물든 벌판으로 변해버렸고, 건물의 빈자리를 비틀리고 흉측한 촉수들이 대신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검게 녹아내린 하늘은 마치 끈적끈적한 검은 바다가 뒤집혀 있는 것 같았다.

그 검은 바다에서 시야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존재가 바다의 표면을 뚫고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좀 더 흉측하고 검게 변했지만, 그 모습은 분명 그것이었다.

중국의 도시를 괴멸시킨 오브젝트.

거대 해파리.

해파리의 거대한 돔은 하늘에 매달린 기괴한 캐노피처럼 펄럭이며 검은 점액을 비처럼 뿌렸다.

그 밑에서 흐느적거리는 거대한 촉수들은 어느새 날카롭게 날을 세워 우리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사람들을 보호해 주세요!>

<다치지 말아 주세요!>

푸른 사신들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이해할 수 없는 문자열을 급하게 허공에 새겼다.

황금 사신들은 사나운 표정으로 하늘로 뛰어올라 촉수를 대적하려 했다.

촉수와 사신들이 충돌하기 직전, 검은 물을 가르고 나타난 거대한 오브젝트가 제임스 일행을 감쌌다.

검은 물에 천천히 썩어들어가고 있는 아귀였다.

***

온몸을 해파리의 검은 촉수에 꿰뚫린 아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

아귀가 인간을 보호하다니!

난 깜짝 놀라서, 정원의 범위를 조금 더 늘려서 쓰러진 아귀를 검은 물로부터 보호했다.

아귀의 상태는 처참했다.

한쪽 눈은 썩어서 사라졌고, 검은 점액에 침식된 부분은 물리 면역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천천히 재생하고 있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시작의 오브젝트가 만든 돌.>

파괴 조건이 여전했으니까.

팔다리가 문드러진 상태에서도 아귀는 제임스가 있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제임스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에서 하얀색 불꽃이 치솟았다.

제임스는 깜짝 놀라서 가방을 놓쳤고, 그 가방은 활활 불타오르더니 재가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태양처럼 빛을 뿜어내는 둥근 돌멩이.

돌멩이는 점점 하늘로 떠오르더니,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 하얀색 불이 붙었다.

익숙한 장작의 불길.

아프긴커녕, 기분이 좋았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신뢰, 우정?

하얀 태양은 저번에 만졌던 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장작을 채워주고 있었다.

아귀는 이제 제임스가 아니라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수에 찬 아귀의 눈빛은 그리워 보이기도 했고.

애절해 보이기도 한 그런 눈빛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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