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9
아카데미의 던전 입구로 가는 길.
페이비는 불안한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약속을 했기에 발을 움직이고는 있으나 그 발걸음은 몇 번이고 멈춰섰다가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기를 반복했으니.
그녀의 발길은 계속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만 있었다.
그녀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너무도 단순했다.
자신의 마음 속에 품은 궁금증 그 하나 때문에 교리를 어기고 자신의 욕망을 따랐기 때문에.
“바보.”
페이비는 평소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고 말을 하고 다녔다.
그를 속죄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기만 한다면 아르마디께서는 분명 용서를 해주실 터이니.
중요한 것은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 지에 대해서라고 말이다.
허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지금 이 순간.
페이비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저지른 죄는 용서를 빈다고 용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바보. 멍청이.”
아무리 마음 속의 헤맴이 심했다 하더라도 이런 짓을 저지르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악신의 사도와 거래를 하다니.
그날 밤.
자신의 치졸한 마음을 원망하고 교회를 빠져나왔던 그 날에.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었던 그 때에.
페이비는 악신의 기운을 지닌 자를 마주했다.
본래라면 그를 본 순간 교회의 사람을 불러 토벌을 했어야 할 터이나 페이비는 그러지 않았다.
그 입술에서 새어나왔던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에.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겠다는 그 말은 페이비의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렸고 그렇게 그녀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알른 영애는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고 있나요?’
페이비가 처음으로 내뱉은 물음에 남자는 눈을 얇게 뜨고는 웃음을 흘렸다.
‘이미 그대조차 알고 있는 것을 왜 질문하는가? 그 자가 사랑받지 않기를 원하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모두가 공평히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었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빼앗는 게 아니었다.
페이비는 그저.
그저?
‘답해주마. 그래. 루시 알른은 아르마디에게 사랑받고 있다. 무얼. 아르마디의 사도로 간택된 자다. 사랑받지 않을 수가 없지.’
아르마디의 사도.
그 단어가 페이비에게 준 충격을 결코 가볍지 아니했다.
역사적으로 아르마디께서는 사도를 두지 않으셨다.
이는 성경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아르마디께선 세상을 공평히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사도를 두지 않는다.
교회에서 일을 하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그 상식에 반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거짓말.’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이니. 그대가 어찌 받아들이건 상관없지.’
뒷걸음질을 치며 부정을 하는 페이비의 모습에 남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유쾌하군. 마침 기분이 좋으니 한 가지 질문에 더 답을 해주겠다. 물어라.’
‘또 거짓말을 하실 거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허나 들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나?’
페이비는 망설였다.
본래라면 지금이라도 발을 돌리는 편이 옳았다.
거래니 뭐니 하더라도 외면을 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페이비는 어둠 속에서 발을 떼어내지 못했다.
‘…전. 저는.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호오. 악신의 사도에게 그를 묻는 건가?’
‘…’
‘그건 너무 비싼 질문이야. 지금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도 아니고. 우선 치료를 해라. 그리고.’
“허접 성녀님?”
“히약?!”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비명을 내지른 페이비는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다가올 통증에 눈을 꾹 감은 페이비였지만 그녀에게 충격은 닿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건틀릿 낀 손을 볼 수 있었다.
“뭐하시는 건가요? 친구를 따라 얼빵 성녀가 되고 싶으신가요?”
옆에서 들려오는 신랄한 발언에 페이비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 챘다.
루시 알른.
지금의 그녀가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어떡하지?
페이비는 루시의 도움을 얻어 일어서고 나서도 벌벌 떨며 바닥을 바라봤다.
“뭔가요? 긴장돼요? 겁먹었어요? 알고 보니 친구보다 더한 허접이셨군요?”
“그런 건 아니에요.”
루시의 말에 페이비가 고개를 저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주신 교회의 성녀로 지냈지만 그렇다 한들 온실 속의 화초처럼만은 자라지 않았던 그녀다.
던전에 들어가 마물을 마주한 일도 몇 번 있는 페이비가 아카데미의 던전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 할 리가.
“그럼 왜 그래요?”
페이비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었다.
악신의 사도와 거래를 한 것이 들킬까 두렵다고 어찌 이야기를 하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르마디의 사도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루시는 모를 것이다.
그날 밤이 지나고서 페이비가 루시에게 이야기를 거는 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그녀의 웃음을 볼 때마다 아르마디의 빛 아래에 자신의 그림자가 들킬 것이 두려웠단 것을.
마음 같아선 교회의 방 하나에 숨어 영원토록 속죄의 기도를 올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비가 두려움을 참고 루시에게 말을 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루시가 어째서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는 건지 궁금해서.
그녀의 무엇이 아르마디의 마음을 끌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그를 따라하게 된다면 자신도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페이비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바닥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손을 매만지던 중 페이비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뚫고서 루시가 그 아래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는 얼굴을 들어서 위를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
“쫄은 거네요?♡ 한심한 겁쟁이♡”
그 말을 들은 순간 며칠 동안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던 페이비의 마음에 붉은 색이 스몄다.
“아니에요. 전 겁먹지 않았어요?”
“정말요?♡ 아닌 것 같은데~♡”
“정말이에요.”
페이비가 다짐하듯이 이야기를 하자 루시는 재단하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페이비의 머리카락을 해치고 빠져나갔다.
“그럼 가죠. 허접 성녀님. 게으름 부릴 시간이 없답니다.”
그리 말을 하고는 앞서 걸어가는 루시의 등을 본 순간 페이비는 저 자그마한 등이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커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뭐해요? 안 올 거에요? 아직도 다리가 굳어 있는 거에요 겁쟁이 성녀님?”
“아. 아뇨. 갈게요.”
멍하니 그를 구경하다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페이비는 빠른 걸음으로 다급히 루시의 뒤를 따라 잡았다.
“저기. 알른 영애님.”
“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저희 오늘 어디까지 공략을 할 예정인가요?”
페이비는 오늘 루시에게 던전을 공략하러 갈 거라는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 어디까지 갈 것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조이에게 분명 고될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말을 들었을 뿐.
“끝까지요.”
“…네?”
루시의 대답을 들은 페이비는 자신이 잘못 들은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는 던전 공략 가능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공략을 진행하시겠다는 것으로 여겼다.
허나 루시는 페이비의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100층까지 갈 거에요. 준비도 끝마쳐 놨어요.”
“어. 그치만 저 던전 1층에서 시작을 하는데요.”
페이비는 여태까지 아카데미의 던전을 공략한 적이 없는지라 1층에서 시작을 해야 했다.
아무리 루시가 던전을 공략하는 속도가 빠르다 하더라도 1층에서 100층까지 공략을 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이는 페이비가 루시 알른의 능력을 의심해서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봤을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꺼내 본 말이었다.
1층에서 100층까지 걸어가기만 하더라도 하루로는 벅찰 텐데 중간중간 전투가 섞이면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저기요. 허접성녀님.”
“네?”
“무능한 성녀님이 못한다고 제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루시의 웃음과 함께 튀어나온 대답에 욱하고 대답할 뻔 했던 페이비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진정하자.
분명 던전에 처음 들어가는 나를 놀리려고 저러시는 걸 거야.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니까.
저기에 넘어가서 뭐라고 하는 건 어린 아이같은 행동이라고.
넌 어린 아이가 아니잖아. 페이비.
“그렇군요.”
페이비가 웃음을 지으며 답을 하자 루시도 웃음을 지을 뿐 그 이상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루어진 침묵 속에서 던전의 입구에 도착한 페이비는 오늘 함께 던전에 들어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던전에 들어가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녀님.”
전투학 교수인 칼.
초임 교수이지만 여러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신 분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열과 성을 다하시는 데다가 성격도 좋으신지라.
특히나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화 속 기사 같은 외모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으시지.
페이비는 자신의 친구들이 칼 교수님이 너무 좋다 그러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교수님.”
“나도 잘 부탁해.”
그 옆에 있는 것은 프레이 켄트였다.
유력한 차기 검성이자 현 대륙의 신성 중에 가장 뛰어난 무재를 지녔다 평가받았던 사람.
루시가 두각을 드러내며 그 평가가 조금 꺾이기는 했으나 그녀의 강함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당장 주신 교회의 성기사단장도 할 수만 있다면 교회의 기사로 만들고 싶다 그랬을 지경이니.
“네. 저도 잘 부탁 드릴게요.”
“근데 성녀님. 체력은 좋아?”
“저 말인가요? 보통 성직자분들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페이비의 체력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편도 아니다.
성직자로써 이리저리 돌아다녀야하니 만큼 최소한의 체력은 있지만 그 뿐.
페이비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프레이는 페이비를 가만 올려보다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힘내.”
…예?
힘내라고요?
영문을 알 수 없는 프레이의 말에 페이비가 눈을 깜빡였지만 프레이는 그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저기.”
“인사 다했죠? 그럼 가죠.”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페이비가 프레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 목소리는 루시의 목소리와 겹쳐 사라졌다.
그렇게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던전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된 페이비는 던전의 풍경을 보고서 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아카데미의 교수 분들이 직접 만든 거라고요?
잘 만들었네요.
진짜 던전이랑 다를 게 없어요.
역시 소울 아카데미라고 해야하는 걸까요?
그렇게 던전 안을 둘러보던 페이비는 이내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서 고개를 돌렸다.
루시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위 아래로 페이비의 모습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알른 영애님. 왜 그러시나요?”
“허접성녀님. 업어도 되죠?”
“…네?”
업어요?
저를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