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24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가지만, 전파로 된 말은 눈 깜짝할 새에 천 리를 넘어 만 리, 십만 리가 넘는 거리를 간다.

락시아에 있는 다은에게 소식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전파마가 인터넷의 바다를 열심히 달린 덕분이었다.

“…카나가, 아르디나 대륙에서 발견됐다고?”

그것도 다은이 카나를 처음 만난 산이자, 카나가 세상에 등돌린 채 은거하고 있던 산 아래에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동 마법에 휘말려 사라졌다는 건 유스티나에게 들어서 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카나가 락시아도 아닌 아르디나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바닷가와 한참 떨어진 산에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쓴 것도 아닌데.

시청자들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다은이 얼굴을 구겼다.

“그게 말이 돼?”

-아니 진짜라고;

-이분 혹시 속고만 사셨나요??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보든가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닌데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신기하네

-모든 사람이 선생님처럼 커뮤를 하는 건 아닙니다

-이 악물고 안 믿는 거 명치 존나 세게 때리고 싶네 ㅎㅎ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팬카페에도 올라와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알았어, 알았어. 확인해 보면 되잖아.”

좀처럼 멈추지 않는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다은은 양해를 구해 수색을 멈추고 자신의 팬카페에 접속했다.

시청자들이 말한 글은 수많은 글 사이에서 홀로 독보적인 추천 수와 조회 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은이 그것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관련된 주제로 떠드는 글도 많았지만, 다은은 그것들을 살펴보는 것을 잠시 미루고 추천 수가 가장 많은 글에 들어갔다.

“…!”

그리고, 글 상단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을 본 다은의 눈이 부릅 떠졌다.

손장난을 치고 있는 분홍색 소녀의 모습이 찍힌 사진.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사진에 들어갈 기세로 뚫어져라 보던 다은이 결론을 내렸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애초에, 다은이 아는 ‘카나’라는 아이는 워낙 특색 있는 아이라서 다른 사람과 착각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다은은 몇 주 동안 카나와 꼭 붙어 지내지 않았던가. 하루 중 떨어져 있는 시간이 드물 정도로.

바깥의 삶도 뒷전으로 미루고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만데, 다른 사람과 착각한다면 카나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사진이 조작되었을 가능성뿐인데.

“…누가 합성한 거 아니지?”

-아오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나쁜 말 마렵네;

-그냥 평생 그렇게 사세요~

-근데 진짜 합성일 수도 있는 거 아님?; 충분히 의심할 만한데 다들 왜 이렇게 화났음;

-합성은 ㅅㅂ 이런 새끼들이 지구평평론 믿는 거구나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어우….”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채팅창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방송 규모가 커진 건 좋지만, 방송을 망치려고 하는 분탕도 그만큼 많이 늘어났다.

다은이 임명한 매니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칼춤을 췄다.

화력에 묻혀 안 보일 거라 생각한 건지, 제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던 놈들의 목이 하늘을 날자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차츰 사그라들었다.

그러는 사이 글을 살펴보던 다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본 글에는 사진 말고도 몇 줄의 글과 영상이 담겨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가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영상.

영상 밑에 적힌 글에 따르면 아무리 봐도 멀쩡해 보이지 않아서, 퍼킬이라는 명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순식간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멀쩡해 보이지 않아서 달려들었다니.’

“쯧. 바보 같아.”

-ㄹㅇ 바보 같긴 함ㅋㅋㅋㅋ

-레벨도 낮은 애들이라던데 대체 무슨 깡으로 저랬는지 몰겠음

-걍 아님 말고라는 생각이었겠지.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자너

-근데 쟤네는 왜 저기 간 거임?

-카나가 썬 기사들 갑옷 조각 줍겠다고 돌아다니는 애들 있음. 주워서 팔면 돈 좀 된다더라

-그걸 사는 애들이 있네;

-기념품 같은 느낌으로 산다는 듯???

-그거 아니더라도 관광지 가는 느낌으로 가보는 사람들도 있고 여튼 꽤 만ㅇ흠

그런 뜻으로 바보 같다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자신의 뜻과는 다르지만, 다은은 그녀에게 동조하는 채팅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도한 비난은 삼가라고 말한 다은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저거… 마기 맞지?”

사진과 영상 속 카나의 주변엔 보기만 해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검은 안개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은이 며칠 동안 지겹게 보던 마기와 똑 닮아 있었다.

카나에게 달려든 두 명이 죽은 것도 분명 마기의 영향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사람 둘을 순식간에 죽일 정도로 짙은 마기라니….

다은이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미친 마법사에게 끔찍한 실험을 당하거나, 복수심에 불타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변태의 손에 붙들려 몹쓸 짓을 당하거나….

다은의 머릿속을 맴돌던 안 좋은 상상들이 틀렸다는 건 달가운 일이었으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다은이 보기에도 카나의 모습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었으니까.

길지 않은 영상에 나온 모습도 그렇고, 그 후에 이어진 다른 목격담에서도 그렇고.

카나는 세상 물정 같은 건 하나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때 묻지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유스티나 님. 승천 의식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있어요?”

“기억을 잃는 경우라.”

뜻밖의 질문을 들은 유스티나가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정신이 망가진 걸 말하는 거라면 있느니라.”

“정신이 망가져요? 어떻게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느니라.”

살아 숨 쉬고는 있지만 외부 자극에도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있다든지, 완전히 미쳐서 날뛰다가 죽는다든지.

유스티나의 말을 들은 다은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면 카나도 그럴 수도 있다는 거 아니에요…?”

“글쎄. 속단할 순 없지만 그럴 확률은 낮으니라. 이 몸이 말했던 건 모두 승천 의식에 실패한 사례이니.”

“으음….”

그렇다면 카나는 왜 저러는 걸까.

유스티나는 다은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느냐?”

“아….”

락시아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던 유스티나가 플레이어… 사도에 대해 알고 있을 리 없다.

사실 따로 소개할 틈도 없었고.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다은이 간략하게 사도에 대해 유스티나에게 설명했다.

물론 다른 세계에서 온 플레이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말해봤자 들을 수도 없으니 동쪽 바다 건너 대륙에서 에델의 인도를 받아 아르디나에 당도했다는 식으로.

유스티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에델 님의 가호라니. 어쩐지 다른 둘과 다르게 약한 녀석이 이곳까지 온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겠느니라.”

“아, 아하하….”

“그래. 에델 님의 가호 덕분에 먼 거리에서도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말이렷다? 그리고 그를 통해 그 아이를 찾았고?”

“네. 다른 사도가 발견했대요.”

“너와 그 아이는 각별한 사이 같아 보였으니 확인은 충분히 했을 터. 굳이 이 몸이 말을 얹을 필요는 없겠지.”

“가, 각별한 사이라니…. 그런 거 아니에요.”

부끄러운 듯 몸을 틀었던 다은이 흠흠 헛기침했다.

“…근데, 정말 그렇게 보이나요?”

“오히려 그렇게 안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만. 아무튼, 이제 돌아갈 셈이더냐?”

“그래야겠죠.”

다은은 처음부터 카나를 따라온 거지, 만약 카나가 오지 않았다면 락시아에 발을 디디지도 않았을 것이다.

승천 의식이 끝나고 남아있던 것도 카나를 찾기 위해서였으니, 행방을 찾은 이상 다은이 락시아에 남아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유스티나 님도 아르디나로 같이 가실래요? 이젠 락시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다르게 말하면 떠날 이유도 없느니라. 어차피 우리가 넘어가면 다툼밖에 더 생기겠느냐? 그곳으로 이주한다고 해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느니라.”

“아, 그렇죠….”

이미 전쟁이 남긴 흔적을 보고 온 다은은 어렵지 않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의외의 인물이 대화에 껴들었다.

“유스티나 님만 괜찮으시면 저도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요?”

“…셀린? 락시아에 남으신다고요?”

“네. 에델 님이 말씀하신 일이 아직 남았거든요. 카나 님을 찾는 일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아뇨, 죄송할 것까지야…. 셀린이 없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 오히려 지금까지 같이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죠.”

“그것도 에델 님의 말씀 때문에….”

“…에잇, 아무튼요! 셀린이 절 위해 하신 모든 행동이 에델 신이 시킨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얌전히 제 감사 인사를 받으세요!”

정든 동료가 떠나는 건 아쉬운 일이나, 본업을 한다는데 다은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올 때는 셋, 갈 때는 혼자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외로운 생각이 들다가도, 빨리 카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 다은이었다.

“은혜를 지우고 멋대로 사라지다니. 마지막까지 건방진 꼬마이니라. 그러니, 찾게 되면 이걸로 한 대 때려줄 수 있겠느냐?”

“이건…. …카나한테 전해달라는 뜻인가요?”

“이 몸의 말을 뭐로 들었느냐. 이걸로 때려주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후에 어떻게 하든 그것은 네 마음이니라.”

“아하하. 네, 꼭 그럴게요.”

다은은 유스티나가 건넨 물건을 챙겨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이후의 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다은은 숙소로 돌아가 방에 풀어놨던 자신의 짐과 카나의 짐을 챙겼다.

잊은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을 마친 그녀가 떠날 채비를 마쳤다.

“아르디나까지 너를 데려다 줄 사람을 붙여주겠느니라.”

“음….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다은이 있는 중심부부터 해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며칠, 거기서 배를 타고 아르디나까지 가는 데 또 며칠.

거기서도 카나가 있는 산까지 가려면 또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주일, 넉넉하게 잡으면 2주가 넘는 시간이 필요한데, 다은은 그 정도의 시간이 없었다.

‘방을 더럽히면 안 되니까….’

아무 인적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간 다은이 검을 뽑았다.

‘…역시 무서워.’

아픈 건 싫고, 죽는 건 무섭다.

그렇지만 아르디나로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

통각을 최저로 낮춰서 느껴지는 건 거의 없을 텐데도, 반짝이는 검 끝을 마주하자 다은의 심장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카나와 했던 단련 덕분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이상하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거짓말쟁이. 죽을 일 없게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다은은 마음에도 없는 투정을 내뱉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더 머뭇거리면,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포기해 버릴 것이다.

눈을 질끈 감은 다은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무슨?!”

“저니 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스티나와 셀린이 다급하게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다은의 검은 그녀의 목을 꿰뚫었다.

검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어느새 뜨거운 맥동이 다은을 사로잡았다.

서서히 암전되는 시야에 언뜻 황금색 신성력이 비쳤던 것도 같았다.

‘지금, 갈게.’

만나서 못된 거짓말쟁이를 혼내줄 거야.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기 전, 다은은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마기에 의해 황폐해진 마을.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카나가 찍힌 사진을.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