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방뚜방.
심심해서 연구소 내부를 돌아다녔다.
새로 입소한 오브젝트가 있나 싶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전혀 없었다.
설마 나를 이용한 피규어 같은 게 잘 팔려서, 새로운 연구 활동은 아예 접은 건가?
그때 내 눈에 익숙한 황금 개집이 보였다.
전보다 크고 화려해진 황금 덩어리.
그 개집에서 ‘귀여운 강아지’가 팔자 좋게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세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쩔쩔매면서 관리 중이었다.
요즘 안 찾아갔더니, 귀여운 강아지는 행복해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연구원들을 짓밟고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왠지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은데….
애호 받는 강아지가 아니라, 지배하는 강아지처럼 돼버렸다.
유령화로 격리실에 진입해서 보니, 오랜만에 만난 강아지는 크기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크기만큼 간이 부었는지, 나를 보고 큰 소리로 짖었다.
‘감히! 함부로 내 격리실에 들어오다니!’
이런 느낌이 드는 울부짖음이었다.
다행히 아예 까먹은 건 아닌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서 손바닥만 해져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드러눕더니 끼잉거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귀여운 척해도 안 돼.
너는 이족보행형이다.
***
똑. 똑. 똑.
물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소리에 소년은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뜨면 소년의 눈에 비치는 것은 끔찍한 현실.
꿈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지만, 역시 현실이었다.
“흐, 흑.”
소년은 훌쩍거리며 천장에 걸린 시신을 천천히 침대 위로 내려놨다.
그리고 침대를 덮은 얇은 천으로 시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누나….”
소년은 슬픈 상황이지만, 최대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탐정 누나랑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은 남아있었다.
그 뒤로는….
모르겠어.
그 뒤의 기억은 애매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왜 나를 살려둔 걸까?’
‘이런 짓을 한 범인이 돌아오면 어떡하지?’
‘나도 죽는 건가?’
‘이제 누나도, 엄마도, 아빠도 없어졌어.’
어둡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철창에 갇힌 채 공포에 질린 소년.
공포심에서 비롯된 비관적인 생각들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창 안에 갇혀 있었지만,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는 이 순간이 탈출할 기회였다.
소년은 천천히 철창으로 다가가서 닫힌 철창의 문을 손으로 밀었다.
끼이익.
외부에 철저히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철창은 잠겨있지 않았다.
왜 문이 잠겨있지 않지?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키고 철창 너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탁. 탁. 탁.
텅 빈 지하 복도에 소년의 운동화 소리만 메마르게 울려 퍼졌다.
양옆으로 늘어선 철창 안에는 시체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시체들은 모두 소년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소년이 아는 사람만 배치해 둔 것처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소년은 파랗게 질린 채,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끝을 향해서 천천히.
소년은 끔찍한 복도를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그 끝에 발견한 것은 굳게 닫힌 철문이었다.
건너편을 볼 수 없는 철문 앞에 서서, 침을 삼키고 문을 밀었다.
이번에도 철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손쉽게 열렸다.
철문 너머의 공간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밝은 빛이 내리쬐는 계단.
불길한 붉은 페인트로 꼼꼼히 칠해진 넓은 공터 너머로 출구처럼 생긴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깔끔하게 정돈된 방 중앙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마치 박물관의 전시품 혹은 미술품처럼 배치된 콘크리트 구조물.
배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낡고, 삭았고, 그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마치 오래된 폐허에서 뜯어온 것처럼 생긴 폐기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콘크리트 중앙에는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고, 짙은 혈향을 풍기는 핏물로 그려진 둥근 원.
거칠게 그려진 원이었지만, 왠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원이었다.
소년은 그 원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무서워져서 눈을 떼고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출구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
아침부터 소년의 집주변을 서성였지만, 전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이 되었다.
나는 척 봐도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이는 현장을 발견하고, 바로 경찰에 연락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하게도 ‘담당 지역이 아닙니다.’ 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이 도시에는 경찰이 없었다.
대신 경찰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자경단 비슷한 단체가 있었다.
‘RS 자치 위원회.’라고 자신들을 명명하는 단체였다.
그래서 그 자경단의 연락처를 얻어서 다시 연락했지만, 그들은 여기까지 찾아오질 않았다.
‘검은 녹’ 거주 구역은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있던데, 그 이야기가 진짜였다니.
“이게 말이 돼?”
나는 투덜거리면서 챙겨둔 ‘회색 사신 푸딩’을 꺼냈다.
대체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신이가 유독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가격이 좀 비싼 것만 제외하면 맛있어서, 사신이랑 먹다 보니 거의 주식처럼 먹게 되어버렸다.
오브젝트로 만든 위험한 푸딩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직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옴뇸뇸.
숟가락으로 푸딩을 떠서, 사신이에게 가져가면 작은 입으로 푸딩을 오물거렸다.
그리고 남은 건 나도 냠냠.
사신이 한입, 그리고 나도 한입.
그렇게 먹다 보니, 순식간에 점심으로 가져온 푸딩을 다 먹어버렸다.
아쉬워 보이는 사신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콩콩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찰도 없고 자경단도 안 오니까,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네.
나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소년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서 살펴보니 작은 소년 혼자 살기에는 엄청 넓은 집이었다.
벽과 가구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
도대체 뭐가 이런 흔적을 낸 걸까?
벽을 긁은 흔적을 유추해 보면 어깨높이가 2m나 되는 대형 괴물의 발톱 자국이었다.
엄청나게 크네.
늑대로 치면 어깨높이가 2m면 몸길이는 4m는 되겠네.
나는 수첩을 열고 알게 된 사실들을 정리했다.
저 정도 크기의 괴물이면 누군가 목격했을 거야.
난장판이 된 집을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손바닥 위에 있는 사신이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사악한 오브젝트는 기가 막히게 잘 찾는 사신이인데, 별다른 반응이 없네.
사건 해결 이전에, 의뢰인이 실종되어 버린 건 어떻게 해야 할까.
탐정 선배는 그냥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사건을 뚝딱뚝딱 해결하던데 말이야.
아마 탐정 선배는 이 현장을 보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범인은 북쪽에 있다! 우선 걷자!’
도대체 어떤 추리를 거치는 건지 모르겠어.
노하우라서 안 알려주는 걸까?
집을 세심히 돌아다녔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찰싹찰싹.
그러던 도중, 사신이가 내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응? 왜 그래?”
손바닥 위의 사신이를 내려다보자, 사신이는 손가락을 뻗어서 천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위를 보니, 천장 위에 네모난 흔적이 보였다.
의자 위에 서서 천장을 꾹 누르자, 사다리가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특이한 다락방이었다.
집안의 그 어떤 곳보다 발톱 자국이 많이 남은 다락방.
왠지 생활감이 별로 없던 다른 곳과는 달리 생활감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완전히 난장판이네.
유일하게 멀쩡한 것은 낡은 책상 하나뿐.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놓여있었다.
노트를 펼쳐보니, 개발새발한 글씨체로 적힌 일기였다.
타인에 대한 저주로 가득한 일기.
누군가를 죽여버리겠다는 문장이 가득한 일기.
자신을 괴롭히는 가족들에 대한 저주.
검은 녹에 대한 차별을 방관하는 이 도시의 주인을 향한 저주.
특히 이 도시를 이룩한 ‘RS’라고 불리는 남자에 대한 저주가 가득했다.
일기를 천천히 읽고 있을 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아아악.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벽째로 자르는 참격.
반응하기엔 너무나 빠른, 내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 참격이었다.
펑.
기다란 낫처럼 생긴 칼날은 손바닥에서 공중으로 점프한 사신이에게 가로막혔다.
“!”
나는 깜짝 놀라서 바닥에 쓰러졌고, 사신이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락방에 놓인 책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챙그랑!
뒤늦게 사신이에게 잘려 나간 날카로운 낫이 바닥에 떨어지며 섬뜩한 소리를 자아냈다.
그 책상 아래서 거무튀튀한 색깔의 흉악한 오브젝트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
격리실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주자는 파란 도마뱀.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혼신의 춤을 추는 오브젝트가 있었다.
댄서는 두 발로 선 귀여운 강아지.
몇 시간이나 계속 춤을 춘 강아지는 힘들어 보였다.
강아지의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고, 눈초리는 온순해졌다.
슬슬 지겨워질 때쯤, 좋은 생각이 났다.
양손에 황금 사신을 소환해서 ‘귀여운 강아지 담당’을 하겠냐는 의지를 전달했다.
임금은 하루에 사신 푸딩 1개.
업무 내용은 강아지가 인간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기.
원래부터 인간을 핍박하는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던 황금 사신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황금 사신에게 임무를 주고 나자, 갑자기 절박한 의지가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황금 사신도 깜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두리번거렸다.
황금 사신이랑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한 전달력이었다.
의지를 더듬어 찾아보니, 집 나간 불량 황금 사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였다.
상당히 긴박해 보이네, 우선 가봐야겠어.
강아지는 황금 사신에게 맡기고 검은 펭귄 능력으로 날아갔다.
***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며 사방을 돌아봤다.
사방에는 날카로운 낫을 가진 4족 거미 오브젝트들이 한가득.
베인 상처 때문에 온몸이 쓰라렸다.
사신이는 강했지만, 적들이 너무 많았다.
사신이가 달려들면 순식간에 모두 죽여버릴 수 있었겠지만, 그때마다 저 오브젝트들은 나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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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사신이는 나를 지켜야 하니,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안해 사신아.
나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그때 갑자기, 사신이가 소리치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리고 황금 뿔이 환하게 빛을 내면서, 주변 공간을 진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뭔가 신비로운 힘이 느껴졌다.
그 순간, 공간을 침식하듯이 시야에 회색빛이 스며들었다.
마치 현실이 다시 쓰이는 것 같았고, 이 초현실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회색빛의 사신이 서 있었다.
회색 사신의 등장에 활발하게 움직이던 오브젝트가 침묵하고, 온 세상이 숨을 죽인 듯 공기가 무거워졌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것 같은 다락방에서 회색 사신은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신이를 들어 올려서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관찰했다.
꾹. 꾹.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뿔을 눌러보는 회색 사신.
사신이의 말랑말랑한 뿔은 그때마다 찌그러졌다가 튕겨 올라오길 반복했다.
장난치는 회색 사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는 동시에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도 사라졌다.
그 순간, 오브젝트들이 회색 사신에게 달려들어 광란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걸 본 회색 사신은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고, 주먹을 쥐었다.
뀩.
과시하는 느낌도 없이 간단한 손짓만으로 다락방의 공간이 우그러들더니, 오브젝트들을 검은 덩어리로 뭉쳐버렸다.
여태까지 낫을 피하느라 했던 고생이 억울해질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