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6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매력 수치를 올리는 방법은 크게 세 개다.
다른 스텟들이 다 그렇지만 캐릭터의 기본적인 성능을 키우거나 템빨로 어떻게는 밀어 붙이거나 소모품을 사용해 해결을 보는 방법이지.
보통 소울 아카데미에서 커다란 매력 수치가 필요할 때에 쓰는 방법은 아이템이나 도핑이다.
매력 수치라는 게 던전을 공략하는 데 하등 쓸모가 없다 보니 보통 유저들이 잘 안 건드리거든.
물론 특정한 컨셉을 잡고 플레이를 한다면 매력 원툴로 캐릭터들을 다 꼬셔서 해결 보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그건 예외 중의 예외고.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방법도 게임하고 똑같다.
이제 와서 일주일 안에 매력 수치를 올려봐야 얼마나 올리겠냐고.
메스가키 스킬의 특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기본적인 매력 수치는 보장되어 있는 것 같으니 나머지는 템하고 도핑으로 해결을 봐야지.
“그래서 이 물건들을 구해 오면 되는 겁니까?”
‘네. 맞아요.’
“정확해. 정보 팔이. 개 노릇을 하다 보니까 눈치가 좀 생겼나봐?”
“하하. 물론이죠.”
알새틴은 내가 종이에 적어 건네 준 명단을 눈으로 가볍게 훑어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 정말로 이게 맞습니까?”
‘왜요?’
“나한테 관심이 많네? 정보 팔이 주제에?”
“죄송합니다. 허나 영애께서 관심을 지닐 만한 물건은 아닌 듯 해서 말입니다.”
그럴 만도 한가.
저기에 내가 적어 놓은 물건들은 하나 같이 외견과 관계된 물건이다.
수도에서 유명한 가게에서 만든 옷.
화장품과 향수.
거기에 내가 사용할 여러 치장품까지.
평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게 내가 무력적으로 강해지는 데에 치중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알새틴의 입장에서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거 맞아요. 알새틴.’
“정보 팔이. 그거 맞으니까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해. 건방지게 굴지 말고. 알겠어? 허접아?”
“예. 알겠습니다.”
‘그거…’
“그거 구하는 데 얼마나 걸려?”
“원하는 기간이 있으십니까? 거기에 최대한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이요.’
“일주일. 가능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알새틴은 내 요구사항에 별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야지.
이번에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해서 최대한 타협을 한 내용이니까.
안 된다고 했으면 실망할 뻔 했다고.
‘그러면…’
“그럼 최대한 빠른 일처리 부탁할게. 정보팔이.”
*
알새틴은 자신이 장담했었던 대로 현장학습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부탁했던 물건들을 들고 왔다.
모니터 너머로 보던 물건들을 실물로 보게 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라.
게임 속에서야 내가 어떤 물건을 착용시키더라도 게임 속 캐릭터가 착용을 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가 어떤 물건을 준비했다면 그걸 사용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러니까 알새틴이 가지고 온 바니걸을 걸쳐야 하는 건 나라는 소리다.
이걸 머릿속으로 생각해봤을 때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는 것에도 슬슬 익숙해진 나다.
조금 나아가더라도 충분히 참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뭣보다 숲의 주인을 만날 때만 바꿔서 입으면 그만이니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을 때는 괜찮았어.
잠깐의 치욕만 참으면 된다고 봤거든.
그렇지만 그 실물을 보고 내 몸 앞에 가져다 대 보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옷이 아냐!
피부를 가린다는 의복의 기본적인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잖아!
중요한 부분을 다 가리면 괜찮지 않으냐고?
네가 바니걸을 입어야 되는 입장이 되어 봐!
그런 말이 나오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입고 싶지 않았다.
허접 주신이 내민 퀘스트만 아니었더라도 그냥 불태워버렸으리라.
하지만 내 도주로를 가로 막고 있는 굴욕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두려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미지에서 시작되는 공포는 그만큼 거대했던 것이다.
생각해봐. 허접 주신이 나를 골리기 위해서 메스가키 스킬을 강화했을 적을.
그 때 나 페이비한테 음란 성녀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지껄였다고.
그만큼 벌에 진심인 허접 주신이야.
퀘스트 실패의 처벌로 가벼운 걸 준비하겠냐고.
그럴 리가 없지.
지금 돌이켜보면 바니걸은 좀 과했던 것 같긴 해.
바니걸이 매력을 가장 많이 올려주긴 하지만 그 외에도 매력을 올려주는 여러 복장들이 존재하긴 하니까.
그렇지만 이걸 준비할 때는 불안했단 말야.
혹시나 매력 수치가 부족해서 사이틸 숲의 주인이 안 만나 주면 어쩌냐고!
다른 옷을 입었다가 흑역사는 흑역사대로 쌓고 처벌은 처벌대로 받으면 억울하잖아!
하아.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뭐하겠냐.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래. 눈 한 번 딱 감고 바니걸을 입는 거야.
그거면 돼.
프레이랑 조이랑 페이비가 보는 앞에서 바니걸을.
갸아아아악!
허접 변태 주신 너!
진짜 영악하네!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 넣으면 바니걸을 준비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지?!
그치?!
이 길로 가든 저 길로 가든 내가 흑역사를 쌓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준비를 한 거지?! 신
의 권능을 이딴데가 쓰지 말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변태 새끼야!
“학생 여러분들!”
허접 주신을 욕하던 나는 저 앞에서 들려온 외침을 듣고서 공상에서 빠져 나왔다.
“저 숲이 바로 저희가 현장학습을 하게 될 사이틸 숲입니다!”
*
아카데미의 현장 학습은 간단하게 말해 숲이라는 필드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다.
안전한 곳에서 위험을 겪을 일이 없었던 학생들에게 진짜 위험이 도사리는 실전을 경험시켜주는 개념이지.
어쨌든 간에 아카데미의 이념은 세상에 위험을 가져다 주는 던전을 상대하기 위한 인재들을 키우는 거니까.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이 하하호호 떠들고 있게 내버려둘 순 없단 거다.
그럼 현장학습에 와서 마물과의 싸움을 피하면서 몸을 사리기만 하면 어쩌냐고?
당연히 그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있다.
숲에 존재하는 여러 마물들을 처치하고 얻은 전리품을 15개 이상 들고 오지 못하면 성적에 패널티가 들어가거든.
다음 학년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에서 평균보다 훨씬 더 높은 성적을 받을 필요가 생기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사실상 유급이 확정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러니 학년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채찍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근도 존재한다.
현장학습이 끝날 때 지니고 있는 전리품의 개수에 따라 성적에 보너스가 들어가거든.
잔여물 100개를 가지고 가면 보너스를 최대로 받을 수 있던 걸로 기억한다.
상위 다섯 파티에게는 순위에 따라 성적 이외에 물질적인 보상도 주어지고 말이야.
그러니까 내 목표는 단 하나다.
‘저희의 목표는…’
“우리 목표는 간단해. 1등. 다른 허접들이 우리의 위에 있는 걸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현장 학습에서 1등을 거두는 것.
거기에 더해서 숲의 주인을 만나 그의 인정을 받는 것.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그리 선언하자 프레이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최선을 다해보죠.”
조이는 최고라는 목표에 두 손을 꼭 쥐며 의욕을 드러냈으며.
“최대한 노력할게요.”
페이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원의 면면을 보니까 가슴이 웅장해지네.
아카데미 초반 시점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의 파티가 아니야.
보통 이 시점에서 이 세 캐릭터 중에 하나만 파티로 들여도 노력했다는 평을 받고 두 사람이 있다면 고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세 사람이라니.
커뮤니티에 올렸다면 치트 소리를 들었을 거야.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똥꼬쇼가 보상을 받은 느낌이라 흐뭇해하고 있자니 프레이가 손을 들었다.
“전략은 있어?”
‘네. 있습니다.’
“있어. 궁금해 허접 검사?”
“응.”
‘저희는 사람 사냥을 할 거에요.’
“우린 허접 쓰레기들을 사냥할 거야.”
“네?”
내가 말을 내뱉기 무섭게 페이비의 입에서 의문이 터져 나왔다.
왜? 내가 이상한 말 했어?
“저어. 사람 사냥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건가요?”
‘말 그대로에요. 그러니까…’
“허접 성녀님. 점점 조이를 닮아서 얼빵해지시는 건가요? 말 그대로에요. 다른 허접 들러리들의 손에 있는 물건들 가져올 거랍니다. 허접들도 제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뻐할 걸요?”
현장 학습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다른 학생들이 마물을 사냥하고 얻은 것을 빼앗는 거다.
마물을 하나하나 잡아서 전리품을 습득해봐야 한계가 있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그런 방식으로도 1등을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난 모니터 너머의 플레이어가 아니거든.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되어야만 하지.
“그으래도 되는 건가요? 규칙을 어기는 건.”
“페이비. 그건 괜찮아요.”
페이비의 의문에 대답을 해 준 것은 조이였다.
그녀는 페이비의 어깨를 잡고서 고개를 저었다.
“약탈은 현장학습에서 권장되는 일이거든요.”
“…네?”
“오라버니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요.”
간단한 이야기다.
숲에 도사리는 마물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사이틸 숲이 넓은 편이라고 하지만 던전처럼 마물이 무한하지는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마다 마물을 만날 수 있겠지만 이틀이 지날 즈음부터는 그렇지 못하리라.
그 때부터 전리품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할까?
몇 안 되는 마물을 찾아 숲을 뒤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독히 비효율 적인 일이다.
반나절을 들여서 전리품 두 세 개를 구할 바에야 전리품을 한가득 들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노리는 편이 쉽고 편하지.
“그치만.”
“페이비. 생각해봐요. 교수님이 말했던 규칙 중에 다른 학생들 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가요?”
“분명 목숨에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반대에요. 목숨에 위협만 안 가하면 되는 거에요.”
아카데미 측에서 약탈을 막을 생각이었다면 다른 학생에게서 전리품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했겠지.
근데 그런 게 없잖아.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사실상 약탈을 방조한 거지.
이게 게임이었을 적엔 약탈이 정석이었다고 사냥이 고인물 플레이고.
“그렇지만. 그렇지마안…”
심성이 고운 페이비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 했으나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았다.
내 인벤토리에 바니걸 복장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걱정마세요. 첫날부터 약탈을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 마요. 허접 성녀님. 첫 날부터 허접들을 털어먹진 않을 거니까요.”
아직 사냥을 시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털어먹어봐야 나오는 게 거의 없을 테니까.
첫 날부터 하하호호 떠드는 애들을 습격할 이유는 없지.
제일 좋은 시점은 첫날밤이다.
넘실거리는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하나 둘 지쳐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을 때 기습을 걸고 다녀야지.
한 번 다른 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나면 경계심이 깊어져서 귀찮거든.
“결국 다른 분들이 고생해서 얻은 걸 빼앗는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쵸?’
“그런데요?”
페이비. 네가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나쁜 일이 아니라니까?
애초부터 아카데미에서 이렇게 하라고 강요를 하는데 어쩌겠어!
나는 가해자가 아니야!
아카데미가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피해자라고!
2학년이나 3학년에 재학 중인 사람에게 물어도 이게 정석이라 그러는데 나한테만 뭐라 그러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