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사신이 부른 곳에 도착해 보니, 확실히 특이하게 생긴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반가워하고 있었다.
앙증맞게 귀여운 뿔이 두 개 솟아있는 황금 사신.
어떻게 이런 게 돋아난 거지?
신기해서 황금 뿔 사신을 손에 쥐고 머리 위의 뿔을 꾹꾹 눌러보았다.
오 말랑말랑해.
아무래도 이 뿔은 저기 있는 여자에게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노란 탐정에게 후배 2호라고 불렸던 여자였다.
타인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식으로 변화한 황금 사신은 처음 보네.
황금 뿔 시너지일까?
아니면 원래 애착 인간을 조금씩 닮는 능력을 원래 갖추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재밌는 감촉의 황금 사신의 뿔은 계속 누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르면 쭈그러들었다가, 떼면 통하고 튕겨 나오는 뿔.
황금 사신은 살짝 간지러운지, 몸을 뒤척이면서 히히, 웃었다.
저절로 새어 나오는 미소를 머금으며 장난을 치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오브젝트들이 달려들었다.
아마 이 녀석들이 나를 부르게 한 원인이겠지?
하나하나는 꽤 약하지만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에게 위협적인, 그런 오브젝트였다.
황금 사신 혼자서 인간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오브젝트 숫자가 꽤 많았다.
하나하나 겹치기로 죽이기는 귀찮으니까, 공간을 침식해서 한꺼번에 처리해야겠어.
손을 펼쳐서 오브젝트들이 있는 공간을 붙잡고 그대로 뀩 쥐었다.
오브젝트들은 공간과 함께 공처럼 말려들어 갔다.
좁은 다락방을 가득 메웠던 오브젝트들이 사라지자, 한결 공간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그걸 보고 후배 2호는 자연스러운 탄성을 작게 흘리면서 감탄했다.
공간 압착을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해 보이는 눈치였다.
손아귀를 내려다보니, 헤실헤실 웃는 황금 뿔 사신이 보였다.
뿔이 돋아났어도 성격 자체는 비슷한 것 같네.
손바닥을 펼쳐서 그 위에 세워놓자, 황금 뿔 사신은 양손을 활짝 펼치면서 이제까지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전달해 왔다.
‘즐거웠다.’
‘말랑말랑 폭신했다.’
‘재밌었다.’
‘여러 곳에 놀러 다녔다.’
황금 사신들이 전달하는 의지는 언제나 개인의 감상에 집중되고 파편화된 이야기들이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뭐 그만큼 밝고 즐거운 감정 자체는 절실하게 느껴졌다.
황금 뿔 사신은 폴짝폴짝 뛰고, 활짝 웃으면서 자신이 겪은 것을 공유하려고 했다.
황금 뿔 사신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착 인간이 곤란해 보인다고 했다.
도와달라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긴 하네.
황금 뿔 사신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면 큼지막한 발톱 자국이 가득했다.
콘크리트도 제대로 부수지 못한 흔적이었지만, 이 흔적에서는 강력한 존재의 편린이 느껴졌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사악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흔적.
이상한 점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황금 뿔 사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흔적을 남긴 존재가 황금 사신보다 격이 높아서 그런 걸까?
여기가 서울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처리해 두는 편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왠지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
오랜만에 만난 회색 사신은 왠지 전보다 친숙하게 느껴졌다.
사신이랑 계속 같이 다녀서 그런지, 훨씬 귀엽고 친밀한 느낌이었다.
회색 사신의 손바닥 위에 서서, 신나는 표정으로 폴짝폴짝 뛰는 사신이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을 반가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살짝 반성했다.
진작에 세희 연구소에 들러서 황금 사신이들을 만나게 해줬어야 했는데!
이상한 것은 회색 사신과 사신이 둘 다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있는데, 왠지 대화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었다.
회색 사신은 말 못 한다고 들었는데, 이상하네.
그래도 회색 사신은 말 못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당연히 노란 탐정 사무소 후배 2호의 의견보다는 세희 연구소 소속 엘리트 연구원의 의견이 당연히 정답일 거야.
신나게 폴짝거리던 사신이는 가족과의 해후를 마쳤는지, 회색 사신의 손바닥 위에서 점프해서 내 가슴팍 위로 착지했다.
그리고 옷 사이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가서 위를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따뜻해!’
‘편안해!’
마치 사신이가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바닥에 떨어진 일기를 다시 손에 들었다.
일기의 내용은 다시 살펴봐도 끔찍했다.
그리고 정황상, 이 일기의 주인은 의뢰인 소년으로 보였다.
만약 일기의 주인이 소년이라면 도대체 왜?
일기의 내용처럼 범인이 소년이라면 굳이 탐정 사무소에 의뢰할 이유가 있는 건가?
모르겠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의뢰를 계속 해야 하는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는 건가.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다락방에서 내려와 소년의 집 밖으로 나섰다.
***
복잡해 보이는 표정의 후배 2호를 따라가는 도중,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황금 뿔 사신 녀석이 후배 2호랑 만나서 집을 나간 거면, 엄청 오래전 일이 아닌가?
그럼 검은 점액을 못 봤을 것 같은데….
히히.
이 집 나간 불량아에게 어떤 장난을, 아니 어떤 벌을 주는 게 좋을까?
아마 처음 당하면 깜짝 놀라겠지.
다른 황금 사신에게 정보 전달도 못 받았을 테니, 검은 점액을 처음 보는 신선한 반응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후배 2호의 가슴팍에 묻혀서 양팔을 흔들며 즐거워하는 사신이를 보면서 갑자기 든 재밌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
소년의 집을 나서자, 보이는 것은 어둠침침한 골목길.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운 거리였지만, 그래도 공기가 통해서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무심한 표정의 회색 사신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언제나 웃고 있는 사신이랑 다르게 회색 사신은 입을 앙다물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볼이 튀어나와 있었다.
꾹. 꾹.
그리고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회색 사신을 끌어안고 볼을 찌르고 있었다.
여… 역시 정신 오염이 있는 거 맞는 것 같아!
난 깜짝 놀라서 회색 사신의 표정을 살폈다.
화가 나서, 나도 공처럼 말아버리는 건 아니겠지?
확인한 회색 사신은 무표정했지만,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털을 보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자, 왠지 눈앞에 흔들리는 머리털을 물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리 정신 오염이 진행되어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니까.
옴뇸뇸.
어디선가 쿠키를 꺼낸 회색 사신은 쿠키를 작게 베어 물고 오물거렸다.
사신이도 회색 사신에게 쿠키를 받고는 쿠키를 잘라서 내 입 속에 넣어 줬다.
냠냠.
좀 심하게 달지만, 맛있는 쿠키.
사신이가 먹여주는 쿠키를 먹으면서, 난로처럼 따끈한 회색 사신의 온기를 느끼면서 앉아 있으니, 집보다 더 편안한 기분이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ZnpFOU4yZmlaUzBDRzVTcW1zWDJmbXRXMjdGTG01M3Q4T2Y1Sjh1V2p2Mw
그러던 중, 회색 사신의 시선이 골목의 끝으로 향했다.
골목의 끄트머리서, 희미한 실루엣이 걸어왔다.
대낮인데도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끝에서 소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지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평범하게 걸어오는 소년을 보면서 왠지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 끔찍한 일기를 봐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게 분명했다.
소년의 얼굴은 조금 초췌해져 있었지만,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어두운 골목의 틈을 파고든 빛이 소년의 손을 비추는 순간 나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피투성이 손.
희미하게 느껴지던 혈향은 그 손을 보는 순간 골목을 가득 메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탐정 누나. 누나가….”
슬픈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가오는 소년을 보자, 본능적인 거부감이 나를 덮쳐 저절로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 거부감의 표현에 소년의 표정은 굳어지고,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멈춰 섰다.
“탐정 누나?”
소년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뚜방뚜방.
그때 노랗게 타오르는 눈을 빛내며 회색 사신이 소년에게 다가갔다.
***
온몸에 피 칠갑하고 나타난 소년.
후배 2호의 거부감을 보고 마음에 상처받은 소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소년.
하지만 내가 보기에 소년은 이미 죽어있었다.
시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죽을 운명이었다.
마치 내 ‘눈’으로 파괴 조건을 채운 것처럼.
이 소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레일에 올라탄 상태였다.
소년의 정신은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고, 그 자리를 광기가 대신 채우고 있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죽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유사한 죽음의 확정이었다.
소년은 10초를 넘기지 못하겠지.
나를 본 소년은 겁먹은 것처럼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다가 덜컥 멈춰 섰다.
기계가 멈춘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정지.
그리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졌다.
소년의 죽음과 함께, 골목에 환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내 더듬이에서 폭발적인 광량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뭐야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