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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8

더듬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 머리 위로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맹렬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손으로 더듬이를 덮어도 빛이 뚫고 나올 정도의 광량!

이번에도 이 삐친 머리만 특별 취급이네.

더듬이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어 보자, 밝은 빛에 골목길에 드리운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밝게 빛나면서 움직이는 더듬이가 신기한지, 후배 2호에게 붙어있던 황금 뿔 사신이 내 머리 위로 올라탔다.

솔직히 아귀를 처리하고 얻은 능력은 지금처럼 ‘황금 사신을 유인하는 용’ 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황금 뿔 사신은 양팔을 활짝 벌리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더듬이를 잡으려고 내 머리 위에서 뛰어다녔다.

잡힐 듯 말듯 더듬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주자, 황금 뿔 사신은 더욱 열성적으로 머리카락을 붙잡으려고 했다.

초롱아귀의 초롱불처럼 귀여운 더듬이를 자유롭게 흔들 수 있는 능력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숨겨진 다른 능력이 있었다.

사냥에 도움이 되는 능력.

그리고 ‘검은 나비’ 때부터 엄청나게 가지고 싶었던 능력.

오브젝트의 본체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열화되어서 그런지, 어느 방향에 존재하는지 알아내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꽤 쓸만한 능력 아닐까?

소년의 시체에 초롱불을 비추자, 이 사태를 일으킨 오브젝트의 방향이 느껴졌다.

골목길 출구 쪽 방향에서 약 120도 범위 정도네.

소년에게 빛을 비추고 나자, 머리카락에서 나오던 광량이 점점 줄어들더니 평소대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빛을 여러 번 쫴서, 추적을 여러 번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람과 물건이 우글우글한 도시에서 ‘전방 120도’라는 단서만 가지고 본체를 추적하는 건 무리수 같은데….

흠,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느라 더듬이 컨트롤이 뜸해진 틈을 노리고 황금 뿔 사신이가 더듬이를 입으로 물어버렸다.

예린이도 자꾸 더듬이를 입에 넣던데 아귀 미끼라서 그런 건지, 황금 사신들도 모두 더듬이를 붙잡는 데 성공하면 입에 냠하고 물었다.

더듬이를 살랑살랑 흔들자, 황금 뿔 사신이도 더듬이랑 같이 살랑살랑 공중을 유영했다.

더듬이랑 같이 휘둘리는 황금 뿔 사신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재밌어 보이네, 나도 나중에 아귀보고 해달라고 해볼까?

그러던 중, 아귀에 생각이 닿았다.

아귀 잡고 얻은 능력이면, 아귀도 갖고 있지 않을까?

죽인 건 촉수 아귀고, 내가 가진 건 마시멜로 아귀지만 아귀는 아귀니까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

짝, 박수를 치고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미니 사신 정원에서 아귀를 불러내자, 엄청난 부피를 가진 아귀가 나타났다.

하지만 골목이 너무 좁아서 둥글둥글한 모습의 아귀가 아니라, 골목 모양으로 찌그러진 마시멜로 아귀가 나타났다.

뀨르르….

불편해 보이는 하얀 아귀는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짓눌린 아귀의 몸통이 수많은 둥근 구체로 분열을 시작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구체들에 팔과 다리, 꼬리가 돋아나더니 미니 아귀로 변했다.

크기가 작아져서 2배는 귀여워진 하얀 아귀였다.

뀽!

미니 하얀 아귀가 귀엽게 울부짖었다.

***

남자는 오래된 꿈을 하나 꾸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게 된 계기가 된 시기의 꿈.

[저와 계약을 하나 하는 게 어떠신지요.]

자신을 ‘계약의 악마’라고 소개한 수상쩍은 오브젝트와 계약을 하는 순간의 과거였다.

다만 자세한 계약의 내용은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계약 내용 중의 하나가 계약의 세부 사항을 잊어버리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남자는 계약을 한 시점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의 뇌리를 지배했던 광기는 사라져 버렸고,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하는 일은 언제나 성공했고, 방해하는 자들은 사라졌다.

그와 같이 도시를 만들어 나갔지만, 그를 축출하려고 했던 배신자는 광기에 젖어 미쳐버렸다.

감히 남자의 도시에 경찰을 배치하려고 했던 공무원들은 실종되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피로 이루어진 붉은 원을 그리는 정신병자들이 속출했다.

그때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의 광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옮겨갔을 뿐이었고, 그의 성공은 다른 누군가가 이뤘어야 할 과실이었구나.

그때 그는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내가 원하던 계약이 이런 거였어.’

도시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 사고도, 대형 가스 폭발도.

그리고 그의 아내와 아들, 딸이 모두 자살한 사건도.

모두 결과적으로 그를 위한 일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맺은 계약의 내용이 뭔지는 몰랐지만, 분명 그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계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편하고 행복한데, 대가조차 없다니!

“시장님! 일어나보세요!”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오랜만에 꾸던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높은 건물, 마천루의 꼭대기에 있는 시장 집무실.

그 집무실의 푹신한 소파 위에 누워있던 붉은 정장의 남자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막 잠에서 깨어나서 꿈속에 반쯤 잠긴 그의 시야에 세련된 가구와 액자로 장식된 사무실을 배경으로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비서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지금 도시가 완전히 난장판이 됐어요! 빨리 도망가야 해요, 시장님!”

비서는 공포에 질린 듯 눈을 크게 뜨고 대피해야 한다고 소리치며, 손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비서와 달리 침착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창문 앞에 섰다.

그런 그가 목격한 것은 완전한 파괴와 혼란의 현장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을 위해서 일어난다고 믿는 남자에게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나의 도시에 이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도시 곳곳에서 뒤틀린 형상을 한 오브젝트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도륙하고, 폭발이 일어나면서 건물들이 내려앉았다.

일견 놀란 것처럼 보였던 남자는 그 표정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충격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표정은 강렬한 분노의 표정으로 변했다가, 마지막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이 사건도 결국 그를 위한 계약의 안배라고 생각하니, 남자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붉은 정장을 정돈하더니, 비서를 불렀다.

“빨리 탈출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차량 준비는 되어있나?”

“네, 시장님. 어서 빨리 이쪽으로!”

남자가 떠나간 창문 너머에는 커다란 하얀 덩어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뀨우웅!

***

아귀에게 오브젝트의 본체를 찾으라고 시켰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뀨’ 했다.

그리고 우리들을 태우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랑 폭신 하얀 아귀.

배고프면 등을 살짝 뜯어먹으면 맛있는 최고의 교통수단!

미니 하얀 아귀들은 짧은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사악한 오브젝트의 본체를 추적했다.

뒤뚱뒤뚱.

하지만 미니 하얀 아귀를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들을 반겨준 건 정체 모를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건물 잔해물의 폭격이었다.

“꺄악!”

후배 2호의 비명, 그리고 긴장한 표정의 황금 뿔 사신.

하지만 커다란 잔해물의 낙하는 황금 사신의 작은 몸으로는 막기 힘든 ‘쏟아져 내리는 공격’이었다.

푸른 사신보고 막으라고 하기엔, 연약한 막내의 마법이 건물을 붙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장작 소모를 감수하고 공간을 넓게 붙잡아서 막으려고 손을 벌리는 순간, 아무도 태우지 않은 남은 아귀들이 다시 뭉치더니 거대한 하얀 아귀가 되어서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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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마시멜로 아귀와 충돌한 건물은 그 궤도가 틀어지며 우리를 피해서 쓰러졌다.

성공적으로 건물을 막아낸 하얀 아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었다.

뀨!

***

서울숲 인근, 은평구의 길거리를 문신투성이 여자와 그 여동생이 걷고 있었다.

“언니, 이거 엄청 무거워!”

알록달록한 수호자를 인형인 척하고 안고 다니려는 계획이었지만, 커다란 바윗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수호자는 조그마한 체구의 여동생이 들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한숨을 작게 쉰 여자는 수호자를 품에 안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와, 그걸 어떻게 한 손으로 들어?”

품 안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돌덩어리를 한 손으로 안아 드는 여자를 본 여동생은 감탄했다.

너무 쉽게 들고 다녀서, 돌이 아니라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식량 같은 생필품을 사러 나온 여자와 여동생은 길을 가다가, 지나치기 힘든 장면을 보여주는 TV 화면을 발견했다.

거대한 하얀 아귀가 울부짖는 장면.

핸드폰으로 찍혀서 그런지 화질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들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장면이었다.

“언니, 이거 언니가 만든 거랑 똑같이 생겼어!”

“하얀 수호자? 나 말고도 연금술사가 있었던 건가?”

여자가 보기에 화면의 하얀 아귀는 수호자치고는 심하게 가벼워 보이는 게 이상했지만, 아직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그 위에서 아귀의 더듬이를 붙잡고 무표정한 얼굴로 올라타 있는 회색 사신이 보였다.

회색 사신이라… 세희 연구소에 연금술사가 있는 건가? 찾아가 볼 필요가 있겠어.

여자는 TV 화면 앞을 떠나며, 세희 연구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

박살 나는 도시의 외곽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차량이 한 대 있었다.

도시의 주인인 남자가 타고 있는 차량이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램프는 불길한 냄새를 풍기면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지?’

그의 적이 나타날 때마다 타오르던 램프였지만, 램프는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벌어진 일의 스케일도 남달랐다.

집단 자살이나, 지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 따위는 예삿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오브젝트 대 준동과 도시 붕괴!

퍽!

하지만 순조롭게 잘 달리던 차량은 갑자기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마시멜로에 파묻혀 버렸으니까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붉은 정장의 남자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위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노랗게 타오르는 눈동자와 회색의 몸을 가진 오브젝트.

도대체 왜 회색 사신이 나를 노리는 거지?

하지만 괜찮아.

내 램프는 무적이다.

그는 램프를 들고 차량 밖으로 나가, 당당히 그의 적을 맞이했다.

***

후배 2호는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단순히 의뢰 하나를 해결하려고 온 건데, 의뢰자는 죽어버렸다.

게다가 지금은 하얀 마시멜로를 사신이랑 같이 타고 난장판이 된 도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신이들과 도착한 곳은 도시의 주인인 남자의 앞이었다.

붉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고풍스러운 램프를 들어 올렸다.

탐정 선배가 가진 ‘왓슨’이랑 비슷한 디자인의 램프였다.

램프에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후배 2호의 시야가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주변에 있던 하얀 아귀, 회색 사신, 사신이는 모두 사라지고 붉게 물든 기이한 공기만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불안해.

붉은 원을 그려야 해.

그들이 올 거야.

빨리 붉은 원을 그려야 하는데.

물감은 내 배 속에 있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용도 칼을 꺼내서 그대로 배를 찌르려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한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슬프고 애틋한, 올곧게 자신을 위하는 감정.

그 감정은 그녀에게 ‘제발 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깜짝 놀란 그녀의 시야에 희미한 사신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뿔에서 영롱한 빛을 뿌리면서 힘들어 보이는 사신이.

내 배에 달라붙어서 칼날을 붙잡고 있는 사신이였다.

어? 내가 왜 갑자기 이런?

그녀가 깜짝 놀라서 나이프를 떨어트리는 것과 동시에, 사신이도 정신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손바닥으로 받아낸 사신이는 힘없이 축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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