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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9

내가 사는 도시 ‘RS’는 행복한 도시였다.

거리를 걷다 보면 느껴지는 도시의 분위기는 활기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활기가 넘치고,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도시에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은 이 도시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잘 관리된 공원에선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울창한 녹지를 배경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역동성과 활기는 여타 도시들처럼 오브젝트 사고가 빈번한 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오브젝트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도시는 아주 특별했다.

하지만 그 반동인지 사람을 죽이고 붉은 원을 그리는 정신병자들이 자주 출몰하고, 가스 폭발 등의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기는 했다.

그래도 서울처럼 사막이 사람을 학살하고, 호수가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오브젝트와 달리, 정신병자와 안전사고는 대처할 수 있는 위협이었으니까.

도시의 주민들은 서로 커뮤니티를 이뤄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행동이 수상한 사람들을 신고하는 등, 좀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직 주민들의 커뮤니티 활동은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희망이 가득한 도시는 갑자기 재난 영화의 한복판이 되었다.

튼튼해 보였던 도로는 무너져 내렸고, 이웃 주민은 갑자기 오브젝트로 돌변해서 사람을 씹어먹었다.

“아, 죽겠네.”

사람들을 마구 습격하는 오브젝트를 피해서 도망치던 도중 건물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려서, 정신을 잃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위에 파묻힌 상태였다.

입은 바짝 마르고, 바위 밑에 깔린 하반신은 고통스러웠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건물에 깔리고도 살아남았다니!

하지만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도시는 여전히 혼란과 파괴가 가득했고, 비명과 콘크리트의 붕괴음이 계속해서 들려왔으니 말이다.

아마 이대로 탈수로 죽거나, 살인 오브젝트가 나타나서 죽겠지.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도중, 이상한 것이 보였다.

조그마한 회색 사신처럼 생긴 황금색 오브젝트가 잔해 위를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면 황금 사신의 손짓을 따라 억울한 표정의 봉제 인형처럼 생긴 오브젝트가 뒤뚱뒤뚱 걸어와서 돌을 마구 삼켰다.

미니 황금 사신들도 조그마한 손발로 돌멩이를 짊어지고 날랐다.

설마 구조 작업인 건가?

오브젝트가 사람을 구하려고 하다니 신기하네.

그래도 나는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은 사이 뙤약볕에 오래 있었는지, 열이 오르고 사람이 말라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지럽고 목이 말랐다.

그때 바위 그림자 사이를 살금살금 다니는 무언가가 보였다.

바위에 파묻힌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허공에서 물을 만들어서 먹이는 무언가.

정신을 잃은 채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방긋 웃는 물처럼 청량한 소녀 형태의 오브젝트였다.

물을 나눠주는 푸른 아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오다가, 내가 눈을 뜬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바위 뒤로 숨었다.

바위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살펴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건가?

그리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서는 내 눈꺼풀을 잡아당겨서 눈을 감겨버렸다.

그리고 물처럼 청량한 기운이 몸을 감싸자,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눈을 몰래 뜨자, 허공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수놓는 푸른 아이가 보였다.

<아픈 곳, 모두 나아주세요.>

<태양 빛에 지지 말아주세요.>

글자를 다 쓰고 싱긋 웃던 푸른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깜짝 놀라서 안개처럼 흩어져서 사라져 버렸다.

사람을 돕는 요정 같은 오브젝트도 있었구나.

드디어 살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푸른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

신기하게도 추적을 시작하자마자, 도시는 완전히 붕괴해 버렸다.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무력하게 휩쓸려 나갔다.

도시의 재난 상황이 전해졌는지, 수많은 황금 사신과 푸른 사신이 미니 사신 정원에서 튀어나와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흩어졌다.

완전히 붕괴해 버린 도시에서 하얀 아귀의 추적은 쉽지 않았다.

마치 세계가 나서서 추적을 방해하는 기분이 들 정도!

튼튼해 보였던 도로는 지뢰밭처럼 변했다.

갑자기 부서져 내리는 아스팔트는 ‘우연히’ 뒤틀리고, 방향을 틀어서 우리를 향해서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하얀 아귀가 내딛으려던 바닥은 ‘우연히’ 무너져 푹 내려앉았다.

뀨우.

그때마다 짧은 팔다리를 가진 아귀는 애처로운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환경보다 더욱 사악한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인간처럼 변장한 오브젝트들이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공격해 왔다.

인간을 향한 악의에 민감한 황금 사신들이 그때마다 출동해서 오브젝트를 일찌감치 제거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우리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도시 전체에서 내가 ‘눈’으로 죽음을 유도할 때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운명을 끌어오고 확률을 비틀어서 그런가?

하지만 말랑 폭신 아귀들은 그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추적은 어떤 남자를 포위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불길한 색의 붉은 정장을 걸친, 왓슨과 닮은 램프를 들고 있는 남자였다.

붉은 정장의 남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차량에서 내려서서, 램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램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광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나나 미니 사신들에게는 소용없었다.

하지만 후배 2호가 갑자기 칼을 꺼내 들더니, 자신의 배를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칼끝에는 칼날을 붙잡은 황금 뿔 사신이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후배 2호가 찔리지 않게 하고 있었다.

제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팔다리를 죄다 박살 내서 막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황금 뿔 사신의 뿔이 영롱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황금 뿔 사신의 장작이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갔다.

황금 뿔 사신의 헌신 덕분인지, 후배 2호는 정신을 차렸다.

대신 황금 뿔 사신은 그 반동으로 축 늘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신아? 괜찮아?”

후배 2호는 손안에 축 늘어진 황금 뿔 사신을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치 내가 죽기 직전처럼, 황금 뿔 사신의 몸은 장작이 바짝 마르고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후배 2호에게 다가가서, 황금 뿔 사신의 몸에 손을 대고 장작을 불어넣어 줬다.

황금 사신이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처음 봤다.

팔다리가 뜯겨도 꾹 참는 황금 사신인데도, 굉장히 아프다고 호소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장작을 잔뜩 집어넣자, 황금 뿔 사신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램프를 든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작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세게 밟으며 나아갔다.

황금 사신을 아프게 했으니까.

쉽게 죽일 순 없지.

천천히 절망스럽게 죽여줄 거야.

***

천천히 회색 사신이 다가왔다.

회색 사신은 무표정했지만, 왠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봤자, 무섭지 않아.

“이 도시에서는 난 무적이다!”

램프를 높게 들어 올리자, 옆에 주차된 차량에서 불이 치솟았다.

수많은 라이벌들을 죽인 차량 폭발이었다.

저 인간을 지키는 것 같은데, 과연 폭발 속에서도 지킬 수 있을까?

짝.

그 순간 회색 사신이 박수를 쳤다.

그와 동시에 차량이 폭발했지만, 그 폭발의 방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불길을 괜히 얻어맞은 하얀 마시멜로 덩어리 오브젝트들만 까맣게 그을려서 불쌍한 표정으로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나는 이 도시의 신인데!

갑작스러운 지진이 일어나면서 도로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짝.

회색 사신의 박수 소리와 함께 지면이 내려앉았다.

적만을 노려야 했던 지면 강하는 나와 회색 사신만을 가둬버렸다.

램프에서 붉은 불꽃이 맹렬히 타오르면서 온갖 현상이 일어났지만, 회색 사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짝.

천천히 다가오는 회색 사신.

짝.

무심한 박수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회색 사신.

그리고 어느 순간, 램프의 불이 강풍에 휩쓸린 촛불처럼 ‘훅’하고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램프가 망가지다니?

그와 동시에 익숙한, 그리고 친숙한 광기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시야가 점점 빨갛게 물들었다.

붉은 원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아니야!

왜 붉은 원을 그리지 않은 거지?

아니야!!

물감은 내 배 속에 있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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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남자가 휘두르는 램프의 힘은 왠지 나와 닮아있었다.

대상의 죽음과 파괴를 일으키고 그 방향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더 손쉽게 방해할 수 있었다.

박수 한 번으로 그 방향을 뒤틀어 버릴 정도로 쉬웠다.

램프의 힘을 방해하며, 천천히 다가가다 보니 램프는 그 힘을 잃고 불꽃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램프가 꺼지자, 남자는 이상 행동을 시작했다.

후배 2호처럼 자기 손으로 내장을 파헤치고 짓이겨서, 바닥에 붉은 원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행동이 아니었다.

내장으로 원을 그리면 그릴수록 남자는 오브젝트가 되어갔다.

배에 뚫린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핏물이 쏟아져 나왔고, 바닥에 새겨진 원은 끝없이 핏물을 삼켰다.

맑았던 하늘이 붉게 물들고, 핏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전신의 피를 모두 쏟아낸 남자는 바짝 마른 채,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미라처럼 말라버린 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미라의 텅 빈 눈구멍에서 램프의 불꽃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붉은 원에서 핏물이 솟아오르더니 세상을 가득 메워버렸다.

사방은 핏물로 가득.

그 핏물은 끓는 것처럼 부글거리더니, 나와 비슷하게 생긴 오브젝트들이 잔뜩 튀어나왔다.

잘못 만들어진 인형처럼 어딘가 일그러진 형상이라서, 기분이 나빴다.

핏물로 만들어진 일그러진 사신들의 입이 열리고 쇠를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은 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시 필요로 했다.]

[신은 잔혹했지만, 인간을 지켜주었다.]

처음 듣는 언어였지만, 왠지 익숙한 말소리였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익숙한 스토리였다.

[인간은 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시 필요로 했다.]

[신은 잔혹했지만, 인간을 지켜주었다.]

일그러진 사신들은 망가진 라디오처럼 똑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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