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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7

세희 연구소 소장실에서 서아와 나는 벽면의 모니터에서 재생 중인 보안 CCTV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침묵으로 가득한 소장실에서 차트와 도표로 가득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얌전해 보였던 유리 플라밍고는 도대체 왜 탈출한 거지?

나는 서아를 보면서 물었다.

“도대체 갑자기 탈출한 이유가 뭘까? 영상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누군가의 도발이나 공격은 없었어.”

서아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세희 연구소에서 인수하기 전까지 격리했던 연구소를 철저하게 분석했어요. 그랬더니 몇 가지 의심 가는 요소가 있긴 하더라고요.”

“그래? 그 의심 가는 요소가 뭐였어?”

나는 서아의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서아는 군사시설같이 흉흉해 보이는 일련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사진 안에는 두꺼운 강화 외벽으로 둘러싸인 인상적인 구조물과 언제든지 폭파해 격리실 자체를 지하로 묻어버리는 폭파설비가 눈에 띄었다.

그 사진을 본 내 감상은 ‘와, 돈 정말 많이 썼구나.’ 정도였다.

“우리 연구소에 이런 고강도 격리시설이 없었던 점이 원인 같아요. 아마 탈출할 가능성이 보여서, 공격성을 드러내고 탈출한게 아닐까 싶네요. 탈출 후의 행동만 봐도, 사람들을 습격하기 보다는 계단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니까요.”

“탈출이 힘들어 보일 때는 무해한 척을 하다가, 만만해 보이니까 도망쳤다는 건가?”

왠지 오브젝트가 우리 연구소를 우습게 보고 탈출했다는 이야기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제 더 이상 그런 탈출극은 일어나지 않겠지.”

시선을 돌려 탁자 구석을 바라보니, 든든하고 귀여운 병사가 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물로 만들어진 창을 한 자루 비껴든 황금 사신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과 귀여운 모습이 시너지를 내서, 두 배로 귀여워진 황금 사신이였다.

유리 플라밍고 탈출 이후, 어디선가 투구와 창을 구한 황금 사신이들이 연구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격리실에 한 마리씩.

사무실에 한 마리씩.

복도에서도 뚜방뚜방.

휴게실 푸딩 앞에는 우글우글.

우리가 볼 때는 귀엽기만 한데 오브젝트들에게는 조금 다른지, 황금 사신이가 돌아다니자 다른 오브젝트들의 공격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귀여운 황금 사신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 직원들도 만족도 대상승!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세희 연구소의 완성이었다.

***

워터파크의 인공 해변에서 꿈같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 아래에는 부드러운 모래사장에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플라스틱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예린이가 있었다.

침대가 딱딱해서 불편할 텐데, 예린은 눈을 감고 순수한 만족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예린이 위에서 힘을 빼고 누워 편안한 자세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위에는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황금 사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배 위에 누워서 쉬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내 배 위에서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예린이도 행복해 보이고, 나도 딱딱한 침대 대신에 푹신한 예린이 위에 누워있으니 행복했다.

거기에 황금 사신들도 행복한 완벽한 낙원.

즐겁게 뛰어노는 황금 사신들의 모습을 보니, 요즘 사그라들었던 장난기가 다시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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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마시멜로 망치로 때린 푸른 사신을 안 괴롭혔네.

황금 사신이 삐질지도 모르니까, 평등하게 장난쳐야지.

막내는 너무 연약해서 장난 고르기가 좀 곤란했다.

황금 사신처럼 세탁기에 넣으면 사지가 뜯어질 것 같아.

물 위를 튕겨 다니는 즐거운 황금 사신들, 달콤한 간식 그리고 내 더듬이를 먹는 예린.

그런 평온한 하루의 마무리는 갑작스럽게 찢어진 공간의 균열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예린이의 목을 노리는 것처럼 뻗어 나오는 공간의 단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서 미니 사신 정원을 주변으로 뻗었다.

다행히도 공간의 균열은 내가 장악한 공간을 찢어버리지는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섰다.

“!”

갑작스러운 사태에 예린이는 너무 놀라서 그런지, 목소리를 내는 것도 까먹고 목을 감싸며 몸을 일으켰다.

갈라졌던 공간은 다시 순식간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지만, 공간 절단에 휘말린 바닥은 이리저리 뒤엉켜 서서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나는 예린이가 죽을뻔했다는 생각에 조금 화가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으로 감각을 퍼트렸다.

대충 9할 정도는 그 공간을 잘라먹던 나무의 짓이겠지.

나무를 다진 톱밥으로 만들어 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손에 휴대폰을 든 제임스가 격리실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왜 연락이 안되는 거야? 모두 나와! 지금 당장 제임스 시티를 탈출해야 해.”

제임스는 엄청나게 서둘러서 뛰어온 것처럼 땀으로 온통 범벅이 되어있었다.

강철 벽을 푸딩처럼 잘라버리는 공간 절단을 봐서 그런지, 예린이는 별다른 질문도 없이 수영복 위에 웃옷만 걸쳐 입고 서둘러서 제임스 뒤를 따라갔다.

카트를 타고 탈출하면서 보는 연구소의 풍경은 난장판이었다.

최대한 서둘러서 떠난 것처럼 문은 죄다 열려 있었고, 종이와 첨단 기구들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공간 절단에 휘말린 토막 난 시체들이 보였다.

“조금 전, 장벽의 이상을 보고 받았어. 여유 시간은 6시간인데 시간의 흐름이 난장판이 됐을 테니 확실하지 않아. 6시간이 1시간이 될지, 1초가 될지, 1년이 될지 아무도 몰라. 서둘러야 해.”

제임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방벽이 버텨주고 있어서 다행이야. 방벽 너머 나무가 처음 영역확장 했을 때는 다들 도망가느라 바빠서 피해가 막심했었는데 말이야.”

제임스는 ‘부시장이 그런 선택을 할 줄이야.’라고 작게 덧붙였다.

연구소 내부 부지를 지나서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공간을 찢어발기는 절단이 여러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으로 보였다.

높은 건물들은 그 형상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이 드물었고, 낮은 건물들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나는 황금 사신 두 마리를 각각 예린이와 제임스의 머리 위에 올려두고, 차량 밖으로 뛰어내렸다.

“사신아?”

나는 고개를 돌려서 멀어져가는 예린이를 한번 쳐다봐 주고, 유령화로 방벽 쪽으로 달려 나갔다.

예린이의 목숨을 위험하게 했으니까, 복수는 해줘야지.

***

여기는 어디지?

주변 상황을 인식하려고 해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래, 나는 장벽 제어실에 있었지.

장벽을 지켜야 해.

위험한 오브젝트들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야 하는데….

내 눈에 비친 현실은 제어실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부서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린 혼돈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같았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잠긴 것처럼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의 색상과 모양이 만화경처럼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나의 사고와 세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서,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혼돈의 폭풍 속에서 닻처럼 나를 고정시키고 있는 내 손바닥이 콘솔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콘솔의 타이머는 6시간, 그다음에는 글자가 뒤섞여 1시간 그리고 그다음에는 -30시간.

콘솔에 표시되는 시간은 엉망진창이라서 ‘남은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 바로 이게.

기록으로만 읽었던 장벽 너머의 시간 오류라는 녀석이로군.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구르고 뒤틀리는 세계.

내가 손을 얹고 있는 제어판은 이미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나서 흩어졌다.

이미 수천 년이 지난 것처럼 낡고 부서지고 망가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잠시만 눈을 떼면 다시 온전하게 돌아와 있었다.

계속 멀쩡히 남아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나, 혹은 나라고 추정되는 무언가도 뒤섞여 있었다.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 살아있어서, 그 시체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이미 6시간이 지났을 것 같은데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멈추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영원히 이 박살 난 시간 속에 박제되어, 이 상황을 영원히 반복하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끝없이 충돌하고 합쳐지고 루프 하는 출구 없는 미로.

나의 감옥이었다.

***

뚜방뚜방.

단정하고 번화했던, 지금은 누구도 없이 한산한 거리를 홀로 걸어 나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적막한 도시 한가운데서 쓸쓸한 리듬으로 울려 퍼졌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 신기해 보이는 시설들.

분명 내일 예린이랑 같이 돌아다녔다면 굉장히 즐거웠을 도시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도로와 건물은 박살 났고, 도시에는 사람 하나 없이 급하게 도망친 흔적들만 남아있었다.

물길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나는 도망친 흔적들을 역주행하며 목적지로 점점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불길하게 진동하는 장벽에 가까워졌다.

장벽에 가까워질수록 나무의 기척이 강하게 느껴졌다.

폭풍우가 치는 밤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가끔 공간이 찢어지며 도시를 잘랐다.

커다란 장벽 앞에 도착하자, 장벽의 상태는 굉장히 안 좋아 보였다.

형상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보였다.

깨진 도자기를 억지로 기워놓은 것 같은 상태의 장벽.

갈라진 벽의 틈새는 상처처럼 벌어졌고, 그 상처에서는 기괴한 짙은 푸른빛이 핏물처럼 스며 나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장벽을 올려다보다가, 그대로 장벽의 상처로 뛰어들었다.

***

제어판과 나만이 명확한, 안개 속에 흩어진 것처럼 혼란스럽고 알아보기 힘든 세계가 정렬되기 시작했다.

강대한 오브젝트가 이 세계를 관측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보이는 것은 여전히 박살 나 있지만 색다른 세계였다.

무수히 많은 이질적인 현실을 뜯어내서 조각조각 이어 붙인 풍경.

살아 숨 쉬는 모자이크 같은 세계.

대지는 마치 퍼즐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지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붙여서 만들어져 있었다.

생명으로 맥동하는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대지.

길게 드리운 그림자들이 홀로 춤추는 유령의 대지.

그리고 그 퍼즐처럼 엮인 대지의 끝에는 드높은 나무가 길고 굵은 뿌리를 퍼트려 조각들을 붙잡고 이어 붙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은 황혼과 새벽, 낮과 밤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어지러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시간 자체가 깨진 거울의 파편들을 늘여놓은 것만 같은 하늘.

하지만 이 초현실적인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었다.

파편화된 하늘 위에 떠서 나무를 묵직한 빛으로 찍어 누르는, 거대한 남색 달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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