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7
현장학습 3일 차 때의 저녁. 숲의 한 구석에는 아카데미의 1학년 학생들 과반수가 모여 있었다.
그들이 이 곳에 모이게 된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루시 알른을 쓰러트리는 것.
“우리는 이 현장학습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루시 알른이 죄를 치르도록 할 것이다.”
“와아아!”
한 가운데에 선 아서가 연설을 마침에 따라 그 곳에 모여 들었던 학생들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은 증오이며 울분이었고 신념이기도 했다.
아서는 좌중의 환호 속에서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루시 알른이 잘못한 것은 없다.
현장학습에서 약탈이 일어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허용한 일이니까. 루시가 한 일은 그 규칙 위에서 교수들이 유도한 대로 움직인 것뿐이고.
이 숲이 엉망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그는 이런 규칙을 짜 낸 교수들에게 가야 할 터.
굳이 루시 알른의 죄를 따져야 한다면 그는 약탈의 신호탄을 너무 거하게 쏘아 올렸다는 것이리라.
아서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지적하진 않았다. 만일 그녀가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적의를 사지 않았더라면 아서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규합하는 것도 불가능 했을 테니까.
확실히 루시 알른이 무력적인 부분이나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규격 외의 재능을 자랑한다만 이런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서투르군.
어차피 학생들 중에서 많은 전리품을 수거 할 이들은 뻔했으니 현장학습이 끝나기 직전에 그들만 습격했더라면 이런 연합이 구성될 수는 없었을 터.
루시 알른이 좀 더 교활했더라면 본인은 이런 복수를 꿈꿀 수조차 없었겠지.
연설을 끝마친 후 아서는 여러 파티들의 대장들이 모인 자리로 돌아왔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은 상당했다. 어느 하나 왕국의 밝은 미래라 여겨지지 않는 이들이 없었으니까.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만 하더라도 왕국에서 충분히 엘리트라 불릴 수 있거늘 그 합격생 중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이들이다. 이 곳에 무능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확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무리에서 가장 먼저 입을 꺼낸 것은 베인즈 백작가의 메릴이었다.
루시 알른과 프레이 켄트에게 밀려 비교적 덜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분명 현 아카데미 1학년 중에 상위권에 속하는 무력을 지닌 그녀는 열정이 어린 눈으로 아서에게 물었다.
분명 루시 알른과 악연이 있다 했었지. 이번 기회에 그녀에게 복수를 할 생각인가 보군. 사적인 감정 탓에 제멋대로 움직이지만 않았으면 좋으련만.
“메릴 베인즈. 자네 분명 마물사냥학의 수업을 듣고 있었지?”
“예. 그렇습니다.”
마물사냥학이란 여태까지 인류의 역사에 존재했던 여러 마물들에 대해 배우고 그들을 사냥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과목이다.
지휘관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무가의 자녀들이라면 반쯤 필수적으로 수학해야 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그 수업에서 수십 명이 모여 한 마물을 사냥한 사례를 보여주지 않나.”
“지구전입니까.”
“그래. 본인은 그 과목에서 배운 것을 이 곳에서 써먹어 볼 생각이라네.”
그 과목에서는 인간의 형체를 지닌 마물을 사냥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그 중에서 정석이라 여겨지는 방법은 이러하다. 여러 개의 파티가 서로 제휴해가며 상대하는 마물을 서서히 갉아먹어가며 쓰러트리는 것.
인간의 형체를 지닌 마물은 그 크기가 작기에 거인이나 용을 상대할 때처럼 물량으로 밀어붙이기가 어렵다.
그러니 소수 정예를 끌어 모아 교대로 달려들며 소모전을 벌이는 쪽이 옳다 여겨지는 것이다.
마물사냥학에서 루시 다음으로 뛰어난 성적을 지닌 아서는 그 방법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루시 알른 이외에 다른 파티원들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루시를 쓰러트린다는 소리에 단걸음에 달려 온 자칼 버로우가 질문을 던지자 아서가 웃음을 흘렸다.
“말했잖나. 마물사냥학에 배운 것을 써먹을 것이라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인원이 무척이나 많은데 이들 모두를 루시 알른을 제압하는 데에 써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공대를 네 개로 나눌 거다.”
굳이 네 명이서 하나인 파티를 상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들은 하나일 때보다 넷일 때에 더 강할 지언데.
“성대한 기습으로 그들을 갈라버린 후 하나하나씩 개별 격파한다.”
그 네 명의 파티원들의 위험도를 따지면 제일 처음이 루시. 그 다음이 프레이. 그 뒤에 조이와 페이비가 서게 된다.
앞의 두 사람은 수십 명의 사람에게 둘러쌓이더라도 자기들을 보호할 힘을 지니고 있지만 뒤의 두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루시와 프레이에게는 시간을 끌어 줄 사람들을 붙이고 나머지 정예들이 먼저 조이와 페이비를 제압.
그 후에 프레이마저 찍어 누른 후 마지막으로 남은 인원 모두가 모여 루시 알른을 사냥하는 것이다.
아서가 자신의 계획을 다 이야기해 준 후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사이에 웅성임이 감돌았다.
분명 원론적으로는 옳은 이야기였다. 뛰어난 개인을 사냥하는 데에 이만한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나 그의 계획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그런 조직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겠습니까?”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고 그런 물음을 던졌다.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분명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들이지만 훈련을 받은 병사들과는 다르다.
아직까지 파티원 네 명 간의 연계에도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늘 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펼칠 수가 있을까?
그 답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만일 그런 일이 가능했더라면 왜 영지에서 병사와 기사들을 끌어 모아 훈련을 시키겠는가.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농민들을 끌어모아서 대충 처리를 하고 말지.
“허나 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들이 해 줄 역할은 시간 끌기면 족하니까.”
만일 이 자리가 위험한 마물을 상대하기 위한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아서가 내뱉은 발언은 큰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목숨을 내던져 시간을 벌라는 이야기가 되었을 테니까.
허나 지금 이 자리는 그런 위험천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현장학습의 일부였다.
“연계가 필요한 것은 각개격파를 위해 모은 정예면 충분하다.”
아서는 그리 단언을 하는 것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후에 계획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
“알른 영애. 정말로 괜찮을까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던 조이는 앞으로 있을 습격이 불안했는지 그리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얼빵 영애. 뭘 걱정 하는 거야? 다른 허접 쓰레기들이 날 쓰러트릴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도 이제 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쳐들어 올 거라는 데…”
어젯 저녁. 얼빠여우가 우리에게 습격의 위험성을 알려준 후에 나는 아서를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 레이드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악당이 되겠다 마음을 먹고 숲에서 보이는 사람들마다 털어먹었으니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 인원이 백 명에 가까울 줄은.
얼빠여우가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내 앞에 모인 인원들을 보고서 경악했을 거야. 대체 아카데미에 얼마나 페도들이 많은 거야?
‘괜찮대도요.’
“내가 매일 실수만 저지르는 얼빵 영애랑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아? 다 생각이 있어. 걱정 하지 마.”
“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들었지만 그런다 한들 내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더 많아지는 편이 내 입장에서는 이로웠다. 인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한 번 생겨난 혼란을 통제하기 어려워 질 테니까.
‘그보다 조이…’
“얼빵 영애. 괜한 헛소리 할 시간에 마법점검이나 하지? 제대로 준비 했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 마법을 한 두 번 써봤다 생각하시나요?”
‘그래도…’
“전혀 믿음이 안 가는데. 실수한 거 없다고 확신해? 진짜로?”
“그렇대도요. 전 아무런 실수도… 어라?”
평소 조이가 중요한 순간에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알고 있던 나는 다시 한 번 점검을 해보라고 그녀를 재촉했다.
내 닦달에 못 이겨 제대로 준비했다 이야기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을 살피던 그녀는 이내 눈을 크게 뜨더니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마법에 관해 문외한인 나조차도 알 수 있었다.
‘실수하셨죠?’
“얼빵 영애. 또 이번엔 얼마나 얼빵한 짓을 저지른 거야?”
“별 거 아니에요. 음량 조절에서 좀 착오가 있었을 뿐.”
하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고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역시 얼빵 영애야.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를 저지른다니까.
내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자 그를 보던 조이가 금방 수정할 수 있는 문제니까 괜찮다고 변명했다.
조이. 그게 문제야 아냐. 이번에 또 실수를 했다는 게 문제지.
짜게 식은 내 시선에 조이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을 무렵 프레이가 저 멀리서 달려왔다.
“오고 있어.”
슬슬 때가 왔나.
‘조이…’
“얼빵 영애. 수정 빨리 끝내. 또 허접처럼 얼빵한 실수 하지 말고.”
“알겠으니까 좀 기다려요!”
*
“왕자님. 루시 알른을 찾아냈습니다.”
“어디지?”
“공터 한복판에서 대기중입니다.”
“…뭐?”
공터? 그게 무슨 소리지?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적당한 이 숲 어디에 공터가 있다는 소리인가.
다른 학생이 전해준 소식에 아서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눈으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루시 알른은 정말 공터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나무를 자른 흔적을 보아 이 공터는 루시 알른이 직접 만들어 낸 장소처럼 보이는 군.
습격을 예상하고 무언가를 준비해 둔 건가.
역시 얌전히 당해주지는 않나.
아서는 혀를 차긴 했으나 상대가 습격을 눈치 챘단 사실에 놀라진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니까. 그를 뛰어넘을 정도의 지성을 지닌 그녀가 아서의 노림수를 예측한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무어냐. 루시 알른. 그 짧은 시간에 무슨 함정을 파두었느냐.
아무리 그대가 유능하다 할지라도 그는 무력적인 부분에 있어서다.
세기의 대마법사도 아닌 그대가 이 상황을 뒤엎을 수 있을 만한 수단을 준비하진 못했을 터.
그럼 왜 루시 알른이 저리 당당히 서있을 수 있는가.
허세군. 시간을 끌기 위한 허세. 어떻게든 현장학습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버티겠다는 생각이겠지.
하하. 거기에 넘어가 줄 수는 없다! 잛은 고민 끝에 루시의 당당함을 허세라 확신한 아서는 자신이 이끄는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려 했다.
허나 그 순간.
“아아.”
공터 전체에 루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는… 성량확성의 마법인가? 보통 연설 때나 쓰는 마법을 왜 준비해 둔 게지?
“안녕♡ 여자애 하나를 괴롭히려고 모인 이상성욕의 페도♡ 변태♡ 좆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