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 권고 상황이 해제되었다는 연락을 듣자마자, 우리들은 카트를 돌려서 다시 제임스 시티로 향했다.
“사신이는 괜찮겠지?”
손바닥 위의 황금 사신이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황금 사신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내 볼을 토닥일 뿐이었다.
떠났던 길을 돌아오자 보이는 것은 무너진 건물들, 파괴된 도로들.
거의 반파된 상태의 제임스 시티였다.
“이거, 복원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어.”
제임스는 카트를 운전하며 돈이 나갈 일이 많아졌다며 망가진 도시를 보면서 한탄했다.
척 보기에도 깨진 도로부터 건물까지, 평범한 구조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건물의 단면은 층층이 다른 색을 뽐냈고, 아스팔트 도로 밑에는 금속 재질의 큐브들이 잔뜩 매설되어 있었다.
아마 오브젝트 대비용으로 만들어진 시설들이겠지.
반파된 도시를 지나, 장벽의 입구에 도착하자 방호복 차림의 사람들이 출입 금지 테이프를 두르고 길을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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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출입 금지 테이프가 둘린 공간의 중앙에는 반으로 뚝 잘린 높은 건물의 잔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의 꼭대기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신이가 있었다.
“사신아!”
반가운 마음에 소리쳐서 부르자, 사신이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순식간에 내 옆자리에 뿅 하고 튀어나왔다.
나는 그대로 사신이를 들어 올려 끌어안아서, 말랑하고 향기로운 사신이 성분을 보충했다.
사신이의 말랑한 볼을 찌부러트리며 말했다.
“사신아 보고 싶었어!”
그러자 사신이의 표정은 겨우 몇분밖에 안 지났다고 황당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
회색 사신과 예린이 서로 해후를 나누고 있는 동안 제임스는 제 역할을 다한 장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유리잔처럼 여기저기 갈라졌지만, 제임스 시티의 장벽은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부시장의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제임스의 곁으로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소식을 전했다.
<부시장의 생존이 확인되었지만 정신 오염이 의심됩니다.>라는 소식이었다.
제임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가자, 오브젝트 격리용 간이 격리 시설 안에서 부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신 오염이 의심된다는 것 치고는 꽤 멀쩡해 보였다.
제임스는 내부에 마련된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부시장의 모습을 보고 격리실 내부 통신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용케 살아있었군.”
“그래, 기적의 힘으로 살아남았지.”
제임스의 말을 듣고, 눈을 뜬 부시장은 별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부시장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눈빛에서는 왠지 모를 광기가 느껴졌다.
언제나 이성적이던 부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아마 저 눈빛 때문에 정신 오염이라고 생각되는 거겠지.
제임스는 부시장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회색 사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회색 사신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고, 예린은 그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절로 시선을 강탈하는 마력을 지닌 회색 사신의 더듬이에서 시선을 애써 돌리며 말했다.
“도시 투어는 다음에 해야겠어.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상황이 이래서야 적어도 6개월은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군.”
“아… 그러면 이대로 사신이랑 한국으로 돌아가면 될까요?”
약간 아쉬운 기색의 모습을 보고 제임스가 덧붙였다.
“정 아쉬우면 로키산맥 장벽 쪽 연구소들을 둘러봐도 괜찮아. 그쪽도 제임스 시티처럼 연구소 밀집 지역이고 민간인이 없어서 회색 사신 진입 허가가 나오기 쉬울 거야.”
회색 사신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기색의 예린.
“금세 결정 내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좀 쉬면서 차분하게 생각 좀 해봐.”
제임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예린 일행을 카트 위로 이끌었다.
“밤도 늦었으니, 숙소에서 쉬고 다음에 보자고.”
하지만 제임스는 그 카트에 탑승하지 않고, 직원을 불러서 근처 호텔 쪽으로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제임스는 같이 가지 않는 건가요?”
“당연히 못 가지. 도시가 엉망인데, 시장이 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제임스는 카트가 근처 호텔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장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세희 연구소 세탁실.
세탁기 하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결국 소장인 내가 와버리게 되었다.
물론 기계적인 문제였으면 내가 올 필요도 없었겠지만, 사신이 관련 문제라서 올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찾아올 일이 별로 없는 이 공간에 도착해서 세탁기 내부를 바라보자, 문제의 원흉이 보였다.
해맑게 웃고 있는 황금 사신이.
근심 걱정 없이 즐거워 보이는 황금 사신이 한 마리가 세탁기 안에 들어가서 투명한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통통.
황금 사신이는 환하게 웃으며 세탁기를 돌려달라는 듯이 투명한 세탁기 창을 두들겼다.
으음.
저번에 내부 CCTV로 사신이가 황금 사신이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는데, 괴롭히는 게 아니라 놀아주는 거였던 걸까?
하지만 나는 차마 세탁기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다.
세탁기의 문을 열고 황금 사신을 잡아서 꺼내려고 했지만, 황금 사신은 나가기 싫은 것처럼 세탁기를 붙잡고 늘어졌다.
귀여운 황금 사신이의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나가기 싫어했다.
억지로 꺼내는 건 포기.
세희 연구소 직원이라면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하는, 품속의 회색 사신 푸딩을 쓰는 수밖에….
푸딩을 꺼내서 황금 사신이의 눈앞에서 흔들자, 장난감을 쫓는 고양이처럼 푸딩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푸딩의 껍질을 뜯고 스푼으로 살짝 떠 올리자, 푸딩이 살짝 흔들리며 그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냈다.
세탁기 속에 숨어있던 황금 사신은 어느새 내 무릎 위에 서서 양손을 벌리고 있었다.
푸딩을 달라고 아기 새처럼 ‘아’ 하고 벌린 귀여운 입.
걱정 하나 없이 해맑은 표정.
언제나 해맑고 즐거워 보이는 황금 사신이를 보니, 괜히 부러워져서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사신이도 황금 사신이랑 놀아줄 때 보면 귀여운 장난을 자주 치던데, 이런 기분으로 장난치는 게 아닐까?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건 너무 하니까, 푸딩을 가지고 살짝 장난을 쳐봐야겠어.
푸딩을 살짝 떠서, 황금 사신이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했다.
황금 사신이가 수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다가가지만, 점점 멀어지는 수저에 결국 바닥에 콩하고 쓰러져 버렸다.
역시 황금 사신이도 귀여워!
푸딩을 먹지 못해서 울상을 짓는 황금 사신이에게 다시 푸딩 수저를 내밀자, 약간 의심스러운 눈치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푸딩을 베어 물려는 순간 뒤로 샥.
다시 허탕을 친 황금 사신이는 살짝 슬픈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안 줄 거야?’라고 물어보는 것 같은 표정.
‘주기 싫으면, 나 안 줘도 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서 그런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푸딩이 먹고 싶지만, 인간을 위해선 포기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분명 말을 못 하는데, 표정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난쳐서 미안해!”
장난 좀 치려다가, 황금 사신이가 너무 슬퍼 보여서 결국 얌전히 푸딩을 먹였다.
옴뇸뇸.
언제 울먹였냐는 듯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푸딩을 야금야금 먹는 황금 사신이.
역시 괴롭히는 것보단 행복해 보이는 쪽이 좋아.
***
제임스 시티 근처, 위성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 고급 호텔.
나름대로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던 고급 호텔이었지만, 제임스는 우리들을 위해서 호텔 전체를 빌려버렸다.
예린이는 엄청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기 무섭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커다랗고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에 누운 예린이의 위로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든 황금 사신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품 안에 황금 사신들을 잔뜩 끌어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예린이를 구경하다가, 뒤를 돌아 어두운 호텔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야경을 내려다보니 텅 빈 호텔 주변으로 제임스 연구소 관련 직원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슬슬 미니 사신 정원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올 때 필요한 황금 사신들은 예린이 곁에 잔뜩 배치해 뒀다.
이제 새로 얻은 능력으로 장난을 치러 갈 시간이야.
히히.
***
미니 사신 정원 내부에는 유일한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푸른 사신들이 모여 사는 마녀의 과자집.
과자들을 푸른 사신의 마법으로 엮어서 만든 튼튼한 집이었다.
공중과 핫초코의 바다 위를 넘나드는 마법의 집.
핫초코의 바다 위에 정박 중인 그 과자집 안에서 푸른 사신들의 집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속닥속닥.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감정과 의지를 주고받는 푸른 사신들.
이번 집회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엄청나게 약하면서 자신을 구해주려고 노력한 인간에 대한 자랑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은 푸른 사신들은 굉장히 부러운 표정으로 축하를 건넸다.
인간과 교류하다니!
부끄러움이 많은 푸른 사신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애착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가 한계였다.
푸른 사신의 자랑에는 점점 살이 붙기 시작했다.
<가… 같이 누워서 쉬기도 해요!>
그리고 자랑에는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과를 잘라서 직접 먹여주기도 했어요!>
<!>
<!>
<!>
어느새 자랑하던 푸른 사신은 가장 용감한 푸른 사신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그런 즐거움과 재잘거림의 문자열이 새어 나오는 과자집 위로 불길한 그림자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복수의 망령이자, 해결되지 않은 분노의 그림자였다.
마시멜로 망치의 원한을 잊지 않은 회색 사신이었다.
푸른 사신들은 다가오는 위협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애착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