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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5

“하아아아.”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내 앞에 앉아있는 서아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세희 연구소장님. 갑자기 찾아오셔서 뭐 하는 거예요? 용건이 없으시면 빨리 돌아가 주세요.”

나는 부소장실에 배치된 커다란 테이블 위로 널브러지며 말했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 예린이 빨리 안 돌아오려나?”

“….”

서아의 눈빛이 따갑다.

뭐, 서아가 나보다 3배는 일하고 있는 건 알지만!

서아는 평소에도 일을 많이 해왔지만, 나는 일을 안 하다가 하는 셈이니까 무한 배로 힘들어….

즉, 산술적으로 내가 더 힘들다는 말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아가 앉아있는 쪽을 올려다봤지만, 서아는 이미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서아의 탁자 위에 놓인 유리 케이스가 눈에 띄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 폭신한 솜을 깔고 그 위에 남색 열매가 올려져 있었는데, 평범한 장식물 같지는 않았다.

“서아야, 책상 위에 그거 뭐야?”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서아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번에 보고서로 제출한 신규 오브젝트, 남색 새싹 사신이는 아시죠?”

“음, 알지.”

몰랐지만, 서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당연히 알아야 하는 이야기 같아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 오브젝트의 생성물이에요. 남색 새싹 사신이가 저보고 먹으라고 건네준 건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관련 사항은 어젯밤에 제출한 보고서에 기록해 뒀습니다.”

“그… 그렇구나.”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미니 사신이가 줬다니까, 왠지 저 남색 열매가 맛있어 보였다.

“그거, 걱정되면 내가 먹어볼까?”

“안 됩니다.”

서아는 단호한 얼굴로 거부했다.

쳇.

***

호텔 방에 도착해서 양팔을 마주 잡고, 위로 끌어올려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었다.

탁자 위에 우글우글한 황금 사신이들도 내 모습을 보더니, 똑같은 자세로 팔을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서로를 돌아보면서 히히, 웃었다.

아 귀여워.

혹시나 해서 사신이 쪽을 돌아봤지만.

옴뇸뇸.

사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서 자기 몸통만 한 푸딩을 열심히 먹고 있을 뿐이었다.

사신이도 시크한 매력이 있긴 했지만, 가끔은 황금 사신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벌써 정오를 지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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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면 아주 가까운 거리를 왔다 갔다 한 것 같았는데, 호텔로 돌아와 보니 시간이 상당히 오래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좀 지친 기분이었다.

너무 커다란 오브젝트를 봐서 그런가?

광활한 풍경을 봤는데도 통쾌하거나 시원한 게 아니라 압도된 기분만 가득했다.

이런 사태를 예상했는지, 비서는 다음 일정을 잡지 않고 푹 쉬라고 전했다.

비서는 내일부터 연구소 투어가 시작된다고 알려왔다.

터덜터덜 걸어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자, 두 개로 양분된 세계가 보였다.

세련되고 깔끔한 건물들이 즐비한 연구소 밀집단지.

그리고 그 너머에 붙어있는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연구소 단지 외부.

연구소 밀집단지 외부는 슬럼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보였다.

갑자기 든 생각에 앉아있는 사신에게 다가가서 번쩍 들어 올려 창문 앞으로 데려왔다.

“사신아. 우리 오늘 점심은 저쪽에서 먹어볼까?”

음식점이 잔뜩 있어 보여서 그런지, 사신이의 더듬이가 관심 있는 것처럼 좌우로 살랑거렸다.

“그럼, 가자!”

나는 사신이의 손을 잡고 호텔 방을 나섰다.

뚜방뚜방.

사신이도 기대가 되는지, 걸음걸이가 활기찼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호텔 입구에서부터 막혀버렸다.

“연구소 구역을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비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회색 사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미 이 지역 연구소 직원들에게는 회색 사신이 올 거라고 철저하게 공지를 한 뒤였다니….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연구소 구역 내에도 쇼핑 및 식당 같은 편의시설이 많이 입주 중이니, 그곳을 이용해 주세요.”

제임스가 붙여준 비서는 미안한 얼굴로 갈 수 있는 식당을 안내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무표정한 사신이의 표정에서 약간 심술이 돋아난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저녁의 호텔 방.

마치 내가 호텔 방을 탈출할 것을 예상하고 계속 감시하던 예린이를 잠재웠다.

피곤해 보이는 데도 계속 깨어있으려고 하길래, 황금 나무의 능력으로 재워서 침대 위에 편하게 눕혔다.

원래 내 근력으로는 침대로 이송은 힘들었겠지만, 전에 얻은 촉수 능력으로 손쉽게 옮길 수 있었다.

“사신아…. 어디 가면 안 돼.”

편안한 자세로 침대 위에 누워, 아귀를 껴안고 잠든 예린이의 입에서 잠꼬대가 흘러나왔다.

호텔 창문 너머로 보자, 불야성처럼 불빛을 밝힌 밤거리가 보였다.

오늘 점심에 가지 못한 길거리였다.

사실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니까, 흥미가 마구 샘솟았다.

히히.

유령화로 몸을 숨기고 호텔 창문으로 뛰어 내렸다.

연구소 구역을 넘어가자,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깔끔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와닿는 것 같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꽤 재미가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있었다.

갓 구워낸 따뜻하고 바삭한 빵에 얇게 썬 부드러운 소고기를 듬뿍 얹어 구워낸 요리.

얇게 썰린 소고기는 풍부한 육즙으로 반짝였고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소고기 사이사이에는 잘 익은 양파가, 그리고 그 위로는 부드럽게 녹은 치즈가 얹어져 소고기와 양파를 감싸고 있었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저거 이름이 뭐지?

몰래 가서 하나 슬쩍해 올까, 했지만 내 정수리 위에 황금 사신이가 있어서 포기했다.

왠지 훔치면 사람을 슬프게 했다고 화낼 거 같아.

애들 교육에도 안 좋을 것 같고…?

미니 사신들을 애들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황금 사신들이 내가 하는 장난을 자주 따라 하는 걸 보면 영향을 받긴 하는 거겠지.

정 먹고 싶으면 나중에 예린이에게 사달라고 해야겠다.

뚜방뚜방.

식당으로 가득한 거리를 신나는 걸음걸이로 나아갔다.

연구소 단지 근처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씩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더 이국적인 요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국에서 봤던 음식을 보게 되면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해외여행의 묘미일까?

하지만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가자, 기분 나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도 그걸 느꼈는지, 오물오물하던 내 더듬이를 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휙휙 둘러보기 시작했다.

맛있는 탄내.

불타는 강철 돼지상의 냄새다.

예린이에게 음식을 사 와달라고 하려면 이 주변이 안전한 편이 좋겠지?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얹고 의지를 전달하자, 황금 사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뚜방뚜방.

미로처럼 얽힌 건물 사이로 탄내를 따라가자, 기대감에 들뜬 기분이 들었다.

내 앞을 걷는 황금 사신도 오브젝트를 물리칠 생각에 신이 나서 뚜방뚜방 걷고 있었다.

복잡하게 세워진 건물들의 미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고, 골목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결국 나와 황금 사신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낡은 외관을 가진 한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낡은 외관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은 많아 보였지만, 드나드는 사람의 대다수는 인간이 아니었다.

서울숲의 괴인 같은 오브젝트화 된 인간들.

여기에 불타는 돼지상이 있겠네.

황금 사신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건지,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냄새를 쫓아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냄새의 흔적은 의자와 제단을 지나 건물 지하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교회의 지하는 허름한 외관과 어울리지 않게 광활하고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오브젝트를 숨겨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하에는 중간중간 경비를 서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보였지만, 그들은 영체를 볼 수 없었으니 가볍게 무시하고 통과!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서울숲에서 보았던 것과 그리 차이가 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울리는 처절한 비명 그리고 바닥에 널린 검게 탄 해골들과 커다란 강철 돼지상.

황금 사신은 까맣게 탄 해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을 보더니 절망한 것처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뼛조각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원통해하는 황금 사신.

사람들이 쉬이 죽어 나가는 세상인데도, 황금 사신은 언제나 슬퍼하는 게 신기하네.

고개를 돌려 파괴 조건을 확인하자, 서울숲에서 봤던 조건과 똑같았다.

<소화 불량.>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지만 이미 한 번 풀었던 퀴즈니까 해결은 간단.

강철 돼지상의 안으로 들어가자, 돼지상 내부의 공간이 어딘가로 연결되는 것이 느껴졌다.

전에는 이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 시공간 능력을 얻어서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내장 속과 같이 습하고 꿀렁거리는 그로테스크한 공간.

서울숲에서 봤던 풍경이었지만, 그 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까맣게 불탄 해골들이 나타나서는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구경하고만 있었다.

분명 전에는 나를 붙잡고, 원망을 쏟아내던 분들 아니었나?

내가 한 발짝 앞으로 걷자.

해골들이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얼굴 가죽 하나 없는 해골들이라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당혹스러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가면,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술래잡기 같네, 뭔가 즐거워졌어.

충분히 해골들과 놀아주다가 슬슬 능력을 써서 도망가는 해골들을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소화 불량.>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거대한 돼지의 울부짖음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며 나를 어딘가로 확 잡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안 돼! 내 술래잡기!

내 술래잡기를 방해하려는 힘에 힘껏 저항을 시작하자, 좁은 내장 속에서 밀려 나와 하늘 위로 튕겨 나갔다.

그러자 내려다보이는 것은 검은 점액으로 가득한 대지 위로 행진하는 돼지 떼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튕겨 나온 것으로 보이는 내장이 터져서 죽은 작은 돼지 한 마리가 보였다.

죽은 돼지는 거대한 동족의 그늘에 가려 작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길이가 10m는 가볍게 넘는 거대 돼지였다.

하지만 수천 마리의 돼지 떼는 동족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해서 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행군을 이끄는 것은 신화 속에 나올법한 거대한 돼지였다.

땅을 뒤흔드는 걸음걸이.

검은 점액을 살라 먹는 불길의 숨결.

산맥보다 커다란 돼지가 땅에 뚫린 소용돌이 모양의 구멍을 향해 끊임없이 걷고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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