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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7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는 벽돌 벽이었다.

벽돌 틈으로 벽 너머의 불꽃이 넘실거렸다.

천장은 붉은 천을 두른 것처럼 붉은 불길이 넘실거렸고, 검은 연기의 덩굴손이 춤을 추듯 위로 말려 올라갔다.

인간이었으면 질식했을 정도로 매캐한 공기 속,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짙어서 크림 같은 질감을 가진 연기가 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 답답한 시야 속에서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내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고 널브러진 황금 사신들이 보였다.

빛을 뿜어내던 장작의 빛이 꺼진 것만 제외하면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하게 쓰러져있는 황금 사신들.

정원에서 부활하면 내 장작에 부담을 줄까 봐, 부활도 하지 않고 잠이 드는 것을 선택한 아이들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황금 사신을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들어 올리자, 현재 상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팔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게로 나를 짓눌렀고, 억지로 움직인 손가락은 모래처럼 무너져 내렸다.

피부는 마른 모래 같은 고운 입자가 되어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

장작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고갈된 것은 세희랑 만났을 때를 제외하면 처음이네.

황금 사신을 쓰다듬어 주려고 해도 손이 모래처럼 부스러지고, 장작을 전달하려고 해도 장작이 얼마 없었다.

나는 멍하니 누워서 장작이 차오르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팔을 움직이면 손목이 부러지고, 발을 내디디면 발목이 부스러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저 천천히 타들어 가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장작은 꽤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마치 중앙 연구소 사태 때, 송파구 주민들이 보내주는 장작처럼 공포, 혼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변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린이는 괜찮을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예린이의 걱정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어느 정도 장작이 회복된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변에 널브러진 황금 사신들을 그러모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장작을 천천히 옮겨 넣었다.

꺼진 형광등에 불이 붙는 것처럼, 황금 사신의 몸이 깜빡이며 천천히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엄마다!’

정신을 차린 황금 사신들은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내 품 안에 얼굴을 파묻고 비비적거렸다.

‘진짜 엄마야!’

그래그래, 엄마가 여기 있어.

나도 황금 사신에게 반응을 돌려주며, 꾹 하고 안아 주었다.

그나저나 진짜로 죽을뻔했네.

생소한 세계에서 생소한 육신으로 죽을뻔했어.

생각만 해도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이뤄질 것만 같았는데, 장작 연비가 이렇게나 안 좋았다니….

아마, 이미 죽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그런 거겠지.

도대체 그 세계는 뭐였던 걸까.

0호 유물이라는 것들과 관계가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금 사신들이 바닥에서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몇몇 황금 사신들은 내가 언제라도 장작을 잃어버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 내 머리카락을 꾹 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안심하라는 의지를 전달하며, 길을 나섰다.

뚜방뚜방.

오리 가족의 여행처럼, 활기찬 걸음으로 줄지어서 지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연기로 시야 확보도 잘 안됐지만, 나와 황금 사신들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뚜방뚜방.

걱정스러운 표정의 황금 사신들은 나랑 같이 걸어 나가는 것이 즐거운지, 점점 원래의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으로 황금 사신들을 이끌어 지상에 도착하자, 커다란 이변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건만 낮처럼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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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양과는 달리 불길한 핏빛이 거리에 드리워져 있었다.

시야 한 편을 가로막던 영체 장벽이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

창문 밖으로 진홍색 빛이 밀어닥쳤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변은 알 수 없는 고함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고요한 호텔 방 안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밤거리는 더 이상 어둠에 잠겨있지 않았고, 대신 붉은 빛이 그 자리에 드리워져 있었다.

불꽃처럼 일렁거리지만, 그 규모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빛이었다.

혹시나 해서 반대쪽 커튼을 걷어내고 확인하자, 강렬한 열기가 얼굴로 밀어닥쳤다.

그리고 그 열기의 너머에는 거대한 불의 벽이 우뚝 솟아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일렁이는 높고 거대한 불꽃의 벽이었다.

그러고 보니 호텔 방에는 이미 사신이도 사라진 상태였고, 그렇게 많이 있던 황금 사신이도 내 곁에는 겨우 한 마리밖에 안 남아있었다.

마지막 남은 황금 사신이는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 황금 사신이에게선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빨리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그 순간,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표정의 비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비서는 사신이가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나의 손을 붙잡고 호텔 밖으로 나를 안내했다.

“빨리 출발하죠.”

호텔 주차장으로 나온 비서는 오토바이 헬멧을 나에게 건네고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나를 앉혔다.

“꽉 잡으셔야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 밖으로 나서자 마치 공기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타오르던 영체 장벽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불의 벽을 뚫고 거대한 돼지들이 땅울림을 울리며 연구 단지 내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지옥 속에서 비서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는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조금이라도 장벽에서 더 멀리, 더 안전한 곳으로.

이미 도로는 버려진 차량으로 가득했고, 시체들이 거리에 잔뜩 쓰러져 있었다.

불에 타죽은 사람.

뇌가 빨려 죽은 사람.

불을 뿜는 돼지들은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며 사람들을 태워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형 오브젝트는 그들이 남긴 시체만으로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서 비서는 결연한 의지와 절박함이 뒤섞인 모습으로 오토바이를 곡예 하듯 정확하게 조종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무너져 내리는 세상의 잔해 사이를 춤추듯 돌아다녔고, 돼지의 불길과 추적을 능숙하게 따돌리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도주 솜씨였고, 도주에 성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변덕스러웠다.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과 함께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나와 비서는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퉁. 퉁.

정신을 잃었다가, 황금 사신이가 헬멧 위를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참을 아스팔트 위를 굴렀는지 완전히 박살 난 오토바이는 저 멀리 보였고, 내 근처에 쓰러진 비서는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윽.”

옆구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

어딘가 부러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신음을 내자, 황금 사신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몸 상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게 고속으로 달리던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갔는데, 살아남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아마 황금 사신이가 보호해 준 것이겠지.

그때 나와 비서를 발견한 돼지는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나를 주시하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는 점점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뼈가 부러진 채로 뛰어서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 소리를 듣고 황금 사신이가 용감한 표정으로 우리들 앞으로 뛰쳐나왔다.

거대한 돼지는 배를 부풀리며 불길을 토해낼 준비를 시작했다.

공기는 마치 열기를 머금은 것처럼 흔들렸고, 황금 사신이는 자신의 작은 몸으로 그 불길을 막아내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공간이 찢어져 내렸다.

용암과 불꽃으로 이루어진 돼지는 천둥 같은 포효가 아니라 무덤 같은 깊은 침묵만을 토해내며 최후를 맞이했다.

그토록 위협적이고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돼지는 두 동강이 났고, 그 형체는 그 끔찍한 형상을 유지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종이처럼 거칠게 찢긴 돼지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불꽃과 연기 속에서 노랗게 빛나는 불빛이 일렁거렸다.

반으로 찢긴 돼지 너머로 실루엣이 일렁였다.

어둠을 꿰뚫는 안광.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작은 신장과 불타는 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색으로 말랑거리는 피부.

“!”

사신이가 수많은 황금 사신이들을 거느린 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아!”

나는 옆구리의 통증도 잊은 채, 사신이를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갔다.

사신이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폭풍처럼 밀어닥치며, 살아남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

절뚝이며 다가온 예린이는 반가운 얼굴로 나를 꼭 껴안고는 얼굴을 비비댔다.

“사신아 어디 아파?”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평소보다 푸석푸석해. 그리고 빛도 훨씬 약하고….”

생기를 잃어버린 뺨을 쓰다듬으며, 내 눈동자 속의 불꽃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예린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예린이가 훨씬 아파 보였다.

온몸에 긁힌 상처투성이에, 옆구리 쪽도 엄청 아파 보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장작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예린이를 구한다고 공간을 잡아 찢었더니, 조금씩 차오르던 장작이 다시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이 나 있던 장작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걱정, 반가움, 호의, 애정.

온갖 종류의 감정이 예린이로부터 쏟아져 들어와서 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죽을 위기를 넘겨서 인지는 몰라도, 전보다 장작 공급이 강해진 예린이였다.

예린이의 품속에서 고개를 돌리자, 난장판이 된 거리가 보였다.

하늘에는 유령 오브젝트, 땅에는 돼지들.

그리고 저 멀리에는 이 사태의 원흉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돼지의 왕.

그 돼지왕의 얼굴이 자욱한 연기를 뚫고 내려와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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