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과거의 한 때를 비추고 있다.
시간에서 자유로운 이 연구소이기에 보일 수 있는 기이한 현상.
중앙 연구소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과거의 조각.
오브젝트는 국가 단위의 기밀이었던 시절.
연구원은 몰래 연구하고, 공무원은 오브젝트를 수거하고, 언론은 정보를 조작하던 시절.
정부 소속 연구원들만이 겨우 그 정보를 얻고 연구를 할 수 있었던, 30년 전의 기억이었다.
그녀가 말했었지.
“소장님, 인상 좀 펴세요. 오브젝트는 분명 소원을 들어 주려고 나타난 거예요. 인간을 도와주려는 요정님 비슷한 그 누군가의 선물인 거죠. 바라고 바라고 계속 바라면 분명히 이뤄지는 행복한 세상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딱히 연구원도 아니었고, 엘리트도 아니었고, 공무원도 아니었던 여자.
그저 오브젝트에 휘말렸을 뿐인 여자.
폴터가이스트에 휘말려 하반신 마비가 되어도 저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던 여자.
“다시는 물어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다시 물어보고 싶군.”
“그렇다면 오브젝트는 왜 이리도 잔혹한 것이냐고.”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겠냐고.”
환영 속의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만약 오브젝트가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이라면, 인류의 소망은 이렇게나 추악한 것이겠지.”
나는 이 소장실에 존재했었던 한 여자의 환영을 흘려보내며, 다른 환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장실에서 벌어지게 될 미래의 한 장면을 말이다.
연구소의 모두가 염원하는 미래.
언제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오는 도래의 때.
***
노란 남자와 불편한 대치 상황.
매우 긴장한 남자와 달리 나는 긴장할 이유가 없지만, 이런 분위기는 역시 불편하기만 하다.
유령화를 풀고 땅에 발을 디뎠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흠칫 놀란 남자와 여자였지만, 그 이후의 반응은 꽤 달랐다.
더욱 경계하면서 긴장하는 남자와 경계심이 확연하게 옅어지는 여자.
보통 나를 보면 흉흉한 소문때문인지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런 이유 없이 호감을 느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몇몇 존재했다. 아마 이 여자도 이유 없이 호감을 느끼는 타입으로 보였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춘 여자는 방긋방긋 웃으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그런 여자의 행동에 남자는 심각하게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갑자기 왜 저렇게 멍청하고 부주의한 짓하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여자는 남자 쪽에는 관심도 안 주고 내 주의를 끄는 데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쭈그려 앉아 박수를 치며 부르는 꼴이 신기한 야생 동물을 발견해서 하는 행동처럼 보이긴 했어도, 그녀가 원하는 대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겨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선배! 제 쪽으로 오고 있어요!”
“…”
여자가 신나서 말했고,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남자의 분위기를 읽지 못할 정도로 여자는 흥미진진해 보였다.
그녀는 평소에 기쁠 일이 별로 없던 걸까? 겨우 천천히 다가가는 것뿐인데, 가슴속의 불꽃이 한층 크게 타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흐음, 회색 사신이 위험등급으로 특급을 받은 오브젝트라는 건 기억하는 거지?”
“…”
여자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쪽으로 천천히 뻗고 있었다. 그 표정은 너무 진지해서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아마 야생 동물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바로 도망갈 정도로 무서운 표정이었다.
너무 손이 천천히 오는 게 짜증 나기도 했고, 너무 긴장해서 부들부들 떠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그냥 손을 쭉 뻗어서 여자의 손을 낚아챘다.
“와!!!”
여자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어느새 여자는 내 손을 꽉 쥐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손 잡았어요!”
“손 쪼그매!”
“그리고 뭔가 좋은 향기가 나지 않아요?”
여자는 어느새 나를 잡아당겨 품 안에 넣고 감탄만 지르고 있었다.
뭐, 좀 시끄럽지만 불꽃에 장작은 되니까 밥 먹는 셈이라고 칠까.
***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냐고? 탐정의 후배라는 녀석이 개소리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선배! 이거 탐정 사무소에 데려가서 살짝 숨겨두죠! 무해해 보이지 않아요?”
후배는 회색 사신의 손을 들고 까딱까딱 흔들며 말했다.
회색 사신의 흉악한 소문에도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질 않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 저딴 게 내 후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생각을 조금 고쳐먹었다.
외눈 안경으로 볼 때 극히 위험해 보였지만, ‘회색 사신은 역시 위험하지 않다.’ 라고 말이다.
내 외눈 안경의 단점은 오브젝트의 능력 중 극히 일부만 비춰준다는 건데,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신의 능력 중에서 저 흉흉한 능력들을 상쇄시키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내 최초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지.
회색 사신에 대한 사건은 대부분이 오해라는 가설 말이다.
“그래그래, 사신을 데려가든 말든 후배 마음대로 해. 그전에 여기서 탈출해야 하지 않겠어?”
“아! 그러네요. 우선 탈출부터 해야죠!”
“탈출의 제1 조건은 3일을 버티는 거야. 다행히 상황이 상당히 좋아졌어. 3일을 버티는 건 생각보다 달성이 쉬워졌다는 거지.”
후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왜 갑자기 상황이 좋아졌다는거예요? 별로 바뀐 것도 없는데.”
“그거야, 회색 사신이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그렇지.”
“?”
후배의 순진한 표정을 보자 다시 두통이 몰려왔다.
“연구소에서 왜 아귀를 당장 안 풀어두는지는 알지?”
“네! 연구원 같은 고급 인력이 아귀에게 희생되면 중앙 연구소 측도 손해가 막심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럼 왜 연구원들을 탈출 안 시키고 시간만 끌고 있는 걸까? 그냥 다 탈출시키고 바로 아귀를 풀어놓으면 되잖아?”
후배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에헤이. 그럼 회색 사신이 연구원들 틈에 섞여서 도망가잖아요. 회색 사신때문에 아귀를 풀어놓는 건데. 그것도 몰라요?”
폭력을 부르는 표정의 후배의 머리를 콩하고 지팡이로 두들겼다.
“그래 그러니까 유리해졌다는 거야. 회색 사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연구원들을 탈출시킬 수 없어.”
“엥? 그런데 회색 사신은 이미 격리실을 통과한 전과가 있는데요? 연구소는 왜 탈출 못한다고 단정 짓는 거죠?”
“글쎄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나야 잘 모르지. 그래도 회색 사신이 탈출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증거 아닐까? 이런 재미도 없는 흉흉한 곳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사신의 태도를 보면 흥미가 떨어지면 어디든지 떠나버릴 것 같은 성격으로 보이는데, 아직 이 연구소에 있는 걸 보면 연구소 외벽은 격리실처럼 탈출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꽤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네? 부르셨어요?”
“이제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어. 사신이랑 열심히 놀 수 있지?”
유령화로 도망가는 게 가능한 회색 사신의 흥미를 끌어서 계속 붙잡아 둬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
탐정 남녀를 만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예상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심심하지 않게 부단히 노력을 한 탐정과 그 조수덕분이었다.
아마 저런 노력이 없었다면 아귀 이야기를 들은 뒤라도 심심해서라도 유령상태로 뛰쳐나갔을 텐데 말이다.
의외로 재밌던 건 남자 쪽이 해주는 이야기였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탐정일하면서 겪은 일들은 이야기로 엮어서 해주는데, 꽤 재미있었다.
다만 가슴속 불꽃에 반응은 전혀 없었다. 탐정 남자는 나에게 호감도 비호감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거겠지.
반대로 여자 쪽은 인형 놀이에 가까웠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호의는 과해서 탐정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보여줬다.
“이제 곧 3일이에요.”
“그동안 수고했어.”
3일간 이들이 한 고생은 나랑 놀아준 것말고도 많이 있었다.
여자 쪽은 연구소 일용직이니까, 주기적으로 근무를 나가야 했다.
남자는 주기적으로 오는 수색을 피하고, 흔적을 지우고, 내가 감시 카메라에 비치지 않도록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여자가 식량이나 물등을 가져올 수 있는 직원이라서 다행이었다.
식량과 물을 주기적으로 훔쳐야 한다? 지금 보다 난이도가 몇 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여자는 자료를 잔뜩 품에 안고 탐정옆에 서 있었고, 남자는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탁탁 두드렸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바닥을 두들겼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안 되네.”
“네? 그럼 어떡해요?”
뭔진 몰라도 그들의 계획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
3일이 흘렀다. 후배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보낸 것 같았지만 꽤 힘든 일정이었다. 다행히 사신이 내 이야기에 흥미를 보여서 다행이었다.
이제 탈출하면 의뢰 완료겠지.
내 옆에는 자료를 잔뜩 품에 안고 있는 후배가 서 있었다. 후배의 어깨에 손을 올린뒤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 번 두드렸다. 목적지는 탐정사무소!
“안 되네.”
“네? 그럼 어떡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보지만, 공간 이동의 오브젝트는 나를 원하는 장소로 옮겨 주지 않았다. 오브젝트가 고장 난다는 말은 못 들어 봤으니, 무언가 방해를 하는건가?
설마? 하고 회색 사신쪽을 돌아봤지만, 여전히 햄스터처럼 볼을 부풀리고 끊임없이 과자를 먹으면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오브젝트가 말썽이네. 플랜 B가 필요한 시점이야.”
“와! 플랜B도 있었어요?”
“아니. 없어.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나는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간절한 목소리로 되뇌었다.
“왓슨, 여기서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왓슨, 여기서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왓슨, 여기서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파이프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마치 왓슨의 가스램프의 불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손에는 왓슨의 가스램프가 손에 쥐어졌다.
“엑, 그거 쓸 거예요? 왠지 꺼림칙하던데…”
후배가 언제나 하는 염려는 가볍게 흘려보내고 왓슨에게 질문을 하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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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누군가 내 이동을 막고 있어. 그 원인이 뭔지 알고 있나?”
[소장실]
연기는 피 같은 글씨를 그려내었다.
흐음, 소장실에 이동을 방해하는 오브젝트가 있는 건가? 가서 봐야 견적이 나오겠어.
나는 능숙한 동작으로 가스램프의 불을 껐다. 왠지 그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