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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1

영체 방벽이 무너졌다.

도시를 지켜주던 믿음직한 수호자는 불길에 휩싸인 채,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도시 내부를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때는 익숙했던 도시의 미로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자, 숨을 내쉴 때마다 타오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마치 폐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황혼 녘의 지평선처럼 지평선을 따라 타오르는 영체 방벽의 붉은 빛이 폐허가 된 도시의 실루엣을 물들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외벽들은 도시의 해골처럼 보였고, 연기와 화염은 하늘로 끊임없이 치솟고 있었다.

손바닥 보듯 익숙했던 거리는 파괴와 화염의 영향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서둘러. 빨리 빠져나가야 해.”

길 안내를 하며 앞장서서 가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반쯤 박살 난, 벽면에 등을 붙이고,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가 보는 방향을 보니, 팔다리가 길쭉한 말라비틀어진 괴인들이 도로를 배회하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소금쟁이처럼 팔다리가 길쭉한 오브젝트.

저 녀석들은 불타는 거대 돼지와 달리 도시 구석구석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습격해 왔다.

저 녀석들만 없으면 도시 밖으로 탈출하는 게,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너편에 나타난 구부정한 괴인은 주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꼴을 볼 때, 저 괴인은 최소 몇 분은 여기서 돌아다닐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오래 돌아다닐 것 같아. 어떻게 할까?”

“이대로 기다리자. 저쪽 골목을 지나서 나가면 숲이니까 안전할 거야.”

‘그렇겠지.’라고 나는 작게 덧붙이며 최대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심호흡했다.

멸망한 도시의 흔적 같은 탄내가 폐부 깊숙이 들러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기침을 꾹 참고 숨을 고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기다리길 몇 분, 길거리를 배회하던 괴인이 골목길을 꺾어서 시야 밖으로 빠져나갔다.

“30초. 30초만 더 기다렸다가 뛰어서 지나가는 거야.”

“그래.”

친구의 침착한 말에 이제는 꽤 안정된 호흡으로 대답했다.

25초. 26초.

마음속으로 시간을 세면서 있을 때, 큭큭큭 거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목소리가 완전히 가버린 웃음소리였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친구를 돌아보니 친구는 고개를 들어 올린 채, 어딘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서 올려다보니, 우리가 기댄 벽 뒤로 기괴하게 길쭉한 목을 빼고 있는 괴인이 웃으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뛰어!”

친구의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찼다.

그그그극.

괴인의 손이 우리가 있던 아스팔트 바닥을 케이크처럼 긁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미친, 미친, 미친.

거의 다 왔는데!

뒤를 돌아보며, 속으로 욕을 사정없이 내뱉으며 숲이 있는 쪽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우리들은 뛰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익을 것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거대한 돼지가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돼지, 뒤에서는 천천히 따라오는 괴인.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하,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언제나 침착했던 친구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여기가 끝인 건가.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자,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이 탄내 나는 지옥이 조금 청량하고 습하게 느껴졌다.

습기?

아무리 그래도 이런 타버린 전쟁 폐허 같은 곳에서 습기와 청량감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그와 동시에 정체불명의 문자열이 하늘을 수놓더니, 우리들을 물방울이 보호하듯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모두를 지켜주세요!>

그와 함께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조그마한 오브젝트 하나가 보였다.

맑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오브젝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폐허가 된 돌담과 뒤집힌 자동차, 부서진 아스팔트의 틈새 등의 온갖 곳에서 황금색 오브젝트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잔뜩 숨어있던 미어캣이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귀엽게 고개를 내민 오브젝트들.

“황금 사신이야. 살았어!”

친구는 긴장을 풀어버린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황금 사신? 그게 뭔데?”

또 다른 오브젝트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는 친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너, 여전히 오브젝트에 관심이 없구나.”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황금 사신’이 뭔지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Golden Little Reaper.>라는 이름이 붙은 수상쩍은 팬 사이트를 들이밀면서 말이다.

팬이라기보다는 광신도 같은 눈빛을 보이는 친구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내 룸메이트가 이런 녀석이었다니!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괴인과 거대한 돼지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리고 작은 황금색 오브젝트가 내 바지 밑단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길 끝을 가리키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길을 재촉하는 무해해 보이는 오브젝트였다.

바지 밑단에 달라붙은 녀석을 손바닥 위로 옮기자, 아기처럼 양손을 내밀며 좋아했다.

귀여운 외모의 황금 사신에게서는 따뜻한 햇볕 같은 굉장히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뭐, 좀 귀엽기는 하네.”

“그렇지?”

친구는 싱긋 웃으면서 황금 사신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서 걸어 나갔다.

나는 해맑게 웃는 오브젝트를 손에 들고.

아니, ‘황금 사신이’를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도시를 돌아보니 그렇게 많아 보이던 괴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작은 요정 같은 아이들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체감에 불과했지만, 왠지 사태가 해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

막대한 돈을 지어서 만들어진, 지하 시설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돼! 제발 한 번만 봐줘!”

“안 됩니다. 횡령이잖아요. 오브젝트 관련 횡령은 중형이라고요.”

이세희 연구소장은 내 발을 붙잡은 채로 사정하고 있었다.

“횡령은 아니야! 그도 그럴 게, 이 지하 시설은 연구소 증축에 불과한걸…?”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찬란한 광채를 흩뿌리고 있는 황금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저 커다란 황금상은 뭔데요? 척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요?”

“그것도 횡령 아니야. 원래 있던 황금을 재활용했을 뿐이라고.”

원래 있던 황금?

아… 설마?

“설마, 이거 ‘귀여운 강아지’의 개집이에요?”

그런데, 황금 개집은 귀여운 강아지의 격리실에 고이 잘 놓여있었을 텐데?

개집을 빼돌린 거구나.

그런데 개집이 사라졌다는 보고는 들은 적이 없는데?

아무리 우리 연구소가 대충대충 일해도 황금 개집이 사라진 걸 보고 안 할 리가…?

에이, 당연히 하겠지.

그런 중요한 것까지 보고 안 할 리가 없어.

솔직히 눈이 달렸으면 커다란 개집이 없어진 걸 못 보고 지나칠 리가 없잖아?

설마, 보안팀에서 진짜 보고 안 한 건가?

그놈들은 월급을 왜 받는 거야!

그리고 이 지하실은 도대체 언제부터 파기 시작한 거지?

평소에는 어수룩하면서 이럴 때만 용의주도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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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한 가닥 남아있던 연구소에 대한 신뢰가 증발해 가고 있을 때, 세희 연구소장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개집을 그냥 들고 온 게 아니라, 몰래 도금된 개집으로 바꿔치기 해뒀어….”

하, 다행이다.

그럼, 지하 시설을 증축했을 뿐이니 횡령이 아닌 건가?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을 때, 황금상의 뒤편으로 빼꼼하고 뭔가 튀어나왔다.

황금 사신이였다.

세희 연구소장은 황금 사신이를 보고는 손으로 가리키며, 열렬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이 황금상은 황금 사신이들도 아주 좋아하는 황금상이야! 나 때문이 아니라, 이 황금 사신이들을 봐서라도 좀 봐줘!”

세희 연구소장이 손바닥 위에 올려둔 황금 사신이를 들이밀었다.

황금 사신이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느낌이면서도, 세희의 표정을 보고 애절한 표정을 따라 했다.

마치 ‘제발 황금상을 부수지 말아줘!’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 황금 사신이가 사용하는 시설이라면 명분은 있겠네요.”

황금 사신이를 위해서 세희 연구소장을 이번 한 번만 봐주기로 마음먹고, 화가 난 것처럼 꾸미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러자 황금상 근처에서 고개를 내밀고 화가 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황금 사신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달려들었다.

황금 사신이들이 잔뜩 달라붙은 채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황금 사신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네.’

***

제임스가 보내준 공항으로 향하는 수송차 안에서 나는 표정을 잔뜩 구긴 채, 흘러가는 도시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타버린 도시와 완전히 붕괴한 영체 장벽.

이 도시는 오브젝트 위험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군인들이 밀고 들어와서 사람들을 바쁘게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고 있었다.

영체 장벽 완전 붕괴,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오브젝트 공격이 있는 것치고는 피해가 아주 적은 편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금 사신들과 푸른 사신들의 대대적인 활약상이 있었다.

수많은 목격자와 동영상으로 미니 사신들의 활약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순수하게 귀엽고 이타적인 모습이 오브젝트답지 않아서 인기가 많았다.

그때 예린이가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이 옷도 입어보자!”

예린이는 다양한 옷들이 잔뜩 찍힌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여주며 들떠 있었다.

예린이도 그렇고, 미니 사신들도 그렇고, 다들 나에게 옷을 입히고 싶어 하는데 이유가 뭘까?

나는 표정을 잔뜩 구긴 채, 묵묵히 예린이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삐진 예린이를 위한 서비스였다.

내 장난에 정신을 잃어버렸던 예린이는 생각보다 정신을 빨리 차려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엄청나게 놀랐었는지, 단단히 화가 나 보여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귀찮지만, 미니 사신들이나 예린이가 이상하게 좋아하는 옷 입기!

물론 로키산맥 속에서 옷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얀 아귀를 옷처럼 입었다.

내가 하얀 아귀를 입은 것이 웃긴 건지, 아니면 내가 자신을 위해서 옷을 입은 것이 마음에 드는 건지, 예린이는 금세 기운을 되찾았다.

그리고 내가 미안해서 몇 가지 옷을 입어줄 것을 알아차렸는지, 몇 가지 끔찍한 옷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프릴이 잔뜩 달린 인형 옷 같은 것들이었다.

척 보기에도 복잡한 리본과 매듭 등으로 혼자서는 입지도 못하고, 움직이기도 불편한 옷으로 보였다.

설마 그것들도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예린이의 표정을 보니, 꼭 입히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불안해졌다.

***

푹신한 마시멜로가 눈발처럼 흩날리고, 솜사탕의 구름이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결치는 핫초코의 바다가 달콤한 초콜릿 향기를 남기는 곳.

언제나 신나게 뛰어노는 미니 사신들로 북적였던 미니 사신 정원은 깊은 고독 속에 잠겨있었다.

이 공간을 돌아다니던 미니 사신들이 모두 사람들을 돕기 위해 빠져나간 상태라서, 정원이 정말 쓸쓸해 보였다.

그런 미니 사신 하나 보이지 않는 정원의 허공 한복판에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흠 하나 보이지 않는 말끔한 완벽한 구체.

<불변하는 검은 공>

완벽한 검은색으로 물든 검은 공이 미니 사신 정원 위에 태양처럼 떠오른 것이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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