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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2

영체 장벽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군용 공항에 도착하자,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제임스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제임스 시티를 떠날 때만 해도 죽을 것 같이 초췌했던 인상은 많이 옅어진 상태였다.

통통한 아귀를 입고 어정쩡한 자세로 두 발로 선 채, 표정을 구기고 있는 나를 보고 잠깐 놀란 것 같은 제임스는 이내 시선을 돌려서 예린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어. 고맙네. 조금 전에 연락받았는데, 비서가 한국의 병원에 중상을 입은 채로 입원했다는군. 분명 자네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 정말 고마워.”

예린이는 제임스의 말에 손을 휘저어 가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비서분의 운전 솜씨 때문에 겨우 살아남았는걸요.”

제임스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앉아서 대화를 나누자며 우리들을 공항 안쪽으로 안내했다.

제임스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 나가며 공항 시설들을 소개해 줬다.

군용 공항답게 심플하고 황량한 시설이었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해둔 것인지, 약간의 편의 시설도 눈에 띄었다.

공항 격납고 한 부분을 임시 벽으로 둘러싸고 만들어 둔 휴게실로 들어간 제임스는 내부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로 우리들을 이끌었다.

탁자 위에는 온갖 종류의 과자들이 놓여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옴뇸뇸.

나는 후다닥 자리에 앉고 커다란 푸딩 통을 하나 껴안고 천천히 퍼먹기 시작했다.

뒤이어 의자에 앉은 제임스는 탁자에 놓인 과자를 하나 꺼내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거 내가 관광지를 추천했는데, 면목이 없군. 멀쩡하던 영체 방벽이 그런 식으로 무너져 버릴 줄이야. 역시 오브젝트 관련 문제는 확신할 수가 없어.”

조그마한 젤리를 하나 꺼내서 먹던 예린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제임스가 이런 사태까지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걸 물어보질 않을 수가 없군. 그 사태에 대해서 뭔가 아는 거라도 있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자다가 일어나니 갑자기 장벽이 불타오르고 있어서…. 사신이는 알 수도 있겠지만, 물어볼 수가 없죠.”

예린이는 정신없이 푸딩을 먹고 있는 내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고 일어나니 하늘이 붉게 물들고, 사신이는 갑자기 사라진 상태였어요. 영체 방벽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요. 그리고 비서가 찾아와서는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해서, 호텔을 서둘러서 나섰죠.”

“그리고 뭔가와 충돌해서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갔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때마침 사신이가 찾아와서 저도 살고, 비서도 살 수 있었어요. 그게 아는 전부예요.”

예린이의 말처럼 내가 생각해도 진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장작을 조금 더 회복한다고 늑장을 부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지.

“그런가, 결국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지금 오브젝트 협회에서 예상하기로는 요즘 급증하던 ‘오브젝트 마약’ 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어.”

제임스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예린이를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안색은 꽤 괜찮은데, 자세가 불편해 보이는군. 어딘가 다친 건가?”

“네,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갔을 때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괜찮네요. 아마 푸른 사신이가 뭔가를 해준 것 같아요.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봐야겠죠.”

“그런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보군.”

제임스의 담담한 물음에 예린이가 대답했다.

“돌아가야겠죠. 몸도 정상이 아니고, 사신이도 내심 돌아가길 바라는 것 같더라고요.”

예린이의 예상외의 대답에 푸딩 통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예린이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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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이 성격이면 당연히 또 어디 놀러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걸까?

아무리 봐도 미니 사신 정원을 통해서 세희 연구소로 옮겨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제임스는 예린이의 말을 듣고는 잠깐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

그리고 다시 고개를 예린이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그럼, 돌아갈 때도 내 전용기를 타고 가게.”

“와, 정말요?”

제임스의 대답에 화색을 띄운 예린이는 내 손을 붙잡고 흔들며 좋아했다.

“이번에도 또 전용기를 같이 타보겠네!”

같이 비행기를 탈 생각으로 만면에 미소를 띤 예린이.

사실 몰래 혼자서 텔레포트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되겠네….

똑똑.

나무로 만들어진 문 위로 조용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비행기 준비가 끝난 것 같군.”

제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보자고. 제임스 타워를 한국에도 건설하기로 했으니 조만간 볼 수 있을 거야.”

예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푸딩을 먹고 있는 나를 들어 올렸다.

“자, 집에 가자.”

예린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강한 오브젝트만 잔뜩 나와서 힘들었던 미국 여정의 끝이었다.

***

언제나 밝고 포근한 분위기의 미니 사신 정원에 밤은 없지만, 만약 밤이 있다면 지금이 아닐까?

미니 사신들이 영체 방벽 근처 도시에서 사람들을 돕다가 정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원 한가운데 모여서 황금 사신들은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자랑했다.

인간이 죽어버린 슬픈 이야기도, 인간을 살려낸 무용담도, 그리고 인간에게 호의를 받은 행복한 이야기도.

서로 손을 맞잡고 의지를 나누는 사이에 희석되고 증폭되어 사라졌다.

슬픔은 나누면 없어지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었다.

남은 것은 100인 100색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

황금 사신들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즐거웠고 재미있어 보였다.

폴짝폴짝.

기쁜 것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의지를 교환하던 황금 사신들.

그러던 몇몇 황금 사신들은 뭔가를 발견하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오른 검고 둥근 구체.

호기심이 많은 황금 사신은 그 구체를 빤히 올려다보며 궁금해했다.

도대체 저게 뭐지?

엄마가 준비한 놀이기구?

하늘을 올려다보던 황금 사신들은 시선을 내려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미니 사신 정원의 한복판에서 무언의 결의가 오가고, 황금 사신들은 그 자리에서 흩어져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뚜방뚜방.

황금 사신은 귀여운 발걸음으로 사방으로 흩어져서 마시멜로를 벽돌처럼 네모나게 뜯어냈다.

그리고 둥근 구체 아래에 쌓기 시작했다.

딱딱한 막대형 쿠키는 기둥이 되었고, 얇은 비스킷은 층계를 이루는 바닥이 되었다.

수많은 황금 사신이 마치 찰흙 놀이를 하듯이 즐겁게 건축 작업을 하자, 순식간에 높은 탑이 완성되었다.

구체에 닿을 만큼 높게 솟아오른 탑.

그 탑이 완성되자, 가장 호기심이 많고 용감한 황금 사신 하나가 천천히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다른 황금 사신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칸 한칸, 마시멜로에 올라설 때마다 검은 구체에 가까워졌다.

과자로 된 탑은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황금 사신은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천천히 탑을 등반할 수 있었다.

짠!

위태롭게 흔들리는 과자의 탑의 꼭대기에 도착한 황금 사신은 양손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자세를 취했다.

탑을 끝까지 오른 기쁨을 형상화한 자세였다.

밑에서 숨죽이며 구경하던 황금 사신들도 폴짝폴짝 뛰며 동료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걸 보고 배시시 웃던 황금 사신은 결연한 표정으로 탑에서 뛰어내렸다.

목표는 허공에 떠오른 검은 구체!

황금 사신은 중력에 몸을 맡기고 뛰어내리며 구체와의 충돌에 대비했다.

하지만 대비가 무색하게, 딱딱해 보였던 구체는 의외로 황금 사신을 부드럽게 빨아들였다.

그 경계를 넘자, 황금 사신 앞으로 황폐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구체의 안에는 끝없이 펼쳐진 공간이 존재했다.

파괴된 오브젝트들의 잔해.

검은 점액으로 오염된 대지.

그리고 바닥에 몸을 뉜 거대한, 아주 거대하고 텅 빈 무언가.

황금 사신은 불길해 보이는 그 환경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상하게 이질적이면서 친근한 느낌이 드는 공간을 나아가자, 황금 사신은 거대한 무언가에서 뜯어져 나온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떨어져 나온 조각은 스르륵 녹아내리더니, 황금 사신과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변했다.

더듬이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황금 사신과 똑같이 변한 것이다.

그저 다른 점은 피부가 검은색이었고, 장작의 빛이 하얗다는 점만 달랐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검은 사신을 보면서 황금 사신이 고개를 갸웃하자, 검은 사신도 똑같이 갸웃하고 고개를 틀었다.

팔을 들어 올리면 들어 올리고, 점프하면 똑같이 점프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황금 사신은 뭔가 재미있어졌는지,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손을 뻗은 검은 사신과 손을 맞잡고, 황금 사신은 헤실헤실 웃었다.

‘새로운 동생?’

뭔가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황금 사신은 새로운 동생이 생겨서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 감정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검은 사신도 장작이 점점 노랗게 타오르더니, 희미한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회색 사신이 모르는 곳에서 또 다른 아이가 탄생하고 있었다.

***

늦은 저녁, 세희 연구소.

귀여운 강아지는 지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자신의 개집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귀여운 강아지는 무한한 체력을 자랑하는 황금 사신들과 뛰어다니다 보니, 매일매일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특식이 밥그릇에 채워져 있었다.

그 사료를 먹으면서 귀여운 강아지는 아련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사료보다 훨씬 좋은 음식을 매일 같이 먹었던 행복한 시절.

주변에 있는 모든 인간이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던 즐거웠던 시절.

하지만 그 즐거운 나날은 모두 지나가 버리고, 흔적만이 남아 귀여운 강아지를 슬프게 만들었다.

‘남은 건 너뿐이구나.’

귀여운 강아지는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진, 황금 개집 위에 발을 올려두며 한탄했다.

툭.

하지만, 그 감촉이 이상했다.

가벼워.

갑자기 떠오른 끔찍한 생각에 귀여운 강아지는 발톱을 세워서 개집을 강하게 긁어내렸다.

그리고 밝혀진 잔혹한 진실.

금으로 도금된 껍질이 벗겨지자, 개집은 회색빛 플라스틱의 맨살을 드러낸 것이었다.

‘안 돼!’

드러나버린 끔찍한 현실에 귀여운 강아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신적 충격에 기절해 버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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