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53

아직 열기가 남아 간간이 연기가 치솟고 있는 도시의 폐허.

한때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던 거리는 까맣게 타고, 무너져 내려서 예전 모습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늘에 맞닿을 것처럼 높게 치솟은 건물들은 이제 무너진 벽과 깨진 창문 사이로 골격만 드러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던 길거리, 수많은 차량이 통과했던 도로, 수많은 사람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했던 건물들 모두 텅 빈 채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유령 오브젝트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 지역으로 지정되어, 이 거리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그런 폐허 속에서 제임스를 선두로 여러 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방호복으로 온몸을 싸맨 채 천천히 폐허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위험지대로 들어서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쪽 연구소에 조사 협력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회색 사신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으니, 회색 사신을 가장 잘 아는 ‘제임스 연구소’가 도움을 주길 바라는 거겠지.

두 번째 이유는 정부에서도 협력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실종된 마약 단속국 사람들의 수색을 도와달라는 의뢰였다.

[드론 유닛 1부터 80까지 클리어. 현재까지 폐허 내부에서 유령 오브젝트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일행 중, 드론을 조종하던 군인들의 무전이 들려왔다.

[그럼, 각자 흩어져서 작업을 시작하도록!]

제임스가 무전기에 대고 명령을 내리자, 연구원들은 탐지기 같은 것을 들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이 손에 든 것은 오브젝트 마약을 조사하는 데 필요한 탐지기였다.

연구원들이 흩어진 사이, 군인들은 임시 기지로 쓸 천막들을 세우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정신 오염 수치가 높게 잡히는군. 확실히 폐허에 뭔가가 있어.]

제임스는 자신의 측정 장비에 잡히는 정신 오염 수치를 보며 표정을 구겼다.

오브젝트 마약이 이 폐허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뜻이겠지.

제임스의 예상으로는 이번 영체 방벽 붕괴 사건과 오브젝트 마약 사건은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선 마약 단속국 사람을 찾아낼 필요가 있겠지.

될 수 있으면 마약 단속국 팀장을 찾아내는 것이 베스트였다.

요원 중 한 명이 정신 오염된 채, 총상을 숨기고 있었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없어진 단속국 팀장을 찾아야 했다.

간이 천막에 앉은 채,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제임스에게 연구원들이 다가왔다.

제임스가 따로 임무를 부여했던 연구원들이었다.

[제임스, 사진을 촬영해 왔습니다. 정말로 소용돌이가 사라졌더군요.]

그들이 보내온 데이터들은 어떤 공터를 찍은 사진이었다.

둥글게 땅을 파먹은 흔적이 잔뜩 찍히고, 거대한 돼지의 발자국과 파괴의 흔적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공간 왜곡 때문에 위성 관측이 불가능했던, 땅 위의 뒤틀린 소용돌이가 있던 장소의 사진들이었다.

[공간 왜곡이 사라진 시점에서 그럴 것 같긴 했는데, 정말로 사라졌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제임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하더니, 소용돌이가 있던 공터를 촬영한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무슨 단서가 있을지 모르니, 확실하게 현장을 보존하고 봉쇄해 두도록 하지.]

그 말을 들은 연구원들은 작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

제임스의 전용기의 입구로 들어서자, 특유의 분위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고급스럽고 안락한 분위기.

사신이는 그런 분위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뚜방뚜방 걸어서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부드러운 조명이 복도 위로 은은한 빛을 비추고, 보통의 비행기와 달리 널찍한 공간이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잘 꾸며진 복도는 광택이 나는 목재로 마감되어 있었는데, 그 감촉은 더없이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나와 사신이가 머물 공간에 도착하자, 대화를 나누기 편해 보이는 배치로 푹신푹신한 커다란 좌석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신이는 그 좌석들을 발견하자마자, 어색한 걸음으로 뚜방뚜방 걸어가서, 커다란 소파 위에 누워 푸딩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귀 옷을 입고 뚜방뚜방한 사신이 귀여워!

사신이가 푸딩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좌석 공간 너머에 위치한 옷장을 열어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구해달라고 했던 옷들이 옷장 속에 가득했다.

사신이에게 입힐 수많은 종류의 아동복들!

사신이가 지금은 순순히 옷을 입어주고 있었지만,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옷을 입힐 필요가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신이가 아귀 옷을 입은 채로 벗질 않는 점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멋대로의 대명사인 사신이가 얌전히 옷을 입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사신아!”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신이를 부르자, 사신이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짠!

옷장에서 아동용 드레스를 꺼내서 보여주자, 식겁한 표정으로 사신이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도리도리.

절대로 입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WlJKZ0NsamtaQ0sveENFK2VoZUwvVm9ZVDVPbGo3cFdPdmVEcmtPaWY4SQ

쳇, 벌써 기절 약발이 다 떨어져 가네.

좀 더 오래 기절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빨리 깨어나 버린 걸까.

꿈속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사신이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는 못했을 텐데….

설마 사신이가 꿈속으로 들어와서 깨운 건 아니겠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설득이 이어졌다.

애원을 곁들여서 사신이의 심리적 부채감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안 통하겠지만, 사신이의 장난에 기절했던 지금이라면 통할 것 같았다.

“사신아, 그러면 3가지 옷을 꺼낼 테니까. 그중에 하나라도 입어줘. 응?”

미간을 좁히고 있던 사신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마지못해서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성공이야!

선택지랍시고 비슷한 옷을 나열하면 사신이가 토라질 테니, 적당히 다양하면서도 귀여운 옷을 골라서 들어 올렸다.

첫 번째, 프릴이 잔뜩 달린 분홍색 아동용 드레스.

사신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힝.

두 번째, 검은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고딕풍의 풍성한 아동용 드레스.

사신이는 깊이 고민하다가, 지나쳤다.

세 번째, 사신이의 신장에 걸맞은 유치원복.

사신이는 그걸 보고, 다시 처음부터 옷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어떤 옷도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하나의 옷을 선택했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나는 자포자기로 가만히 서 있는 사신이에게 옷을 입히고 자세를 조정하고 아귀까지 들려주었다.

완벽하게 귀여운 사신이 완성!

나는 핸드폰을 들고 사신이의 사진을 마구마구 찍으면서 생각했다.

3번째를 고를 확률이 가장 낮을 줄 알았는데, 3번째를 고르다니.

단순히 천이 적은 걸 고른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나 옷감이 싫은 건가?

능력이나 특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연구자다운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사신이의 귀여운 모습에 금세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옷을 입은 사신이의 사진 두 종류!

아귀옷이랑 유치원복이라니 너무 행복해.

미국 여행의 성과로는 훌륭한 성과였다.

미국행을 마무리하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행복한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

제임스 연구소 소속 연구원은 정신 오염 수치 분포도를 만들기 위해서 측정 장비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포도는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상태였다.

어떤 교회 건물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정신 오염 수치가 점점 옅어지는 형상을 띄는 분포도였다.

그러던 도중, 유독 수치가 튀는 지역이 있어서, 수치를 기록해 가며 천천히 그 지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여기는 D블록 7번. 예상과 다른 수치가 관측된다.]

‘도대체 뭐지?’

이런 황량하고 움직임이 없는 폐허에 오브젝트가 숨어있는 건가?

왠지 으슬으슬해지는 기분에 연구원의 걸음은 점점 느려져만 갔다.

삐. 삐. 삐.

불규칙한 간격으로 소리를 울리는 측정 장치의 인도를 따라서 움직이자, 무너진 건물 중앙에 어색하게 놓인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이 바위가 원인인가?

도대체 이 바위가 뭐길래?

[수상한 바위를 발견. 지금부터 조사하겠다.]

절차에 따라 특이 사항을 보고한 뒤, 방호복의 성능을 믿고 바위를 천천히 밀었다.

그러자, ‘짠!’하고 뭔가가 높이 튀어나왔다.

마치 들켰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는 황금 사신이었다.

뭐야, ‘황금 사신’이었구나.

흉악한 오브젝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했지만, 위화감이 들었다.

황금 사신이 저렇게 정신 오염 수치가 높았던가?

방호복을 뚫고 맛있는 향기가 났다.

태양을 닮은 황금 사신이의 향기.

뭐, 황금 사신이는 착하니까 별문제는 아니겠지.

그 순간 방호복에서 강력한 전류가 흐르더니, 연구원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어둡게 물들어 가는 시야 속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의 황금 사신이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 정신 오염이 감지되어서 기절한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연구원은 황금 사신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려고 했지만, 전기에 지져진 입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은 새까맣게 물든 대지 위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즐겁게 웃었다.

폴짝폴짝, 뛰기만 해도 즐거웠다.

이리저리 뛰고 달리기도 하고, 미끄러운 바닥에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바닥 위에 누워서 히히 웃던 황금 사신은 문득 떠올렸다.

나가서 모두와 놀면 더 재밌을 텐데!

이제 새로 생긴 막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모두에게 소개를 해줄 시간이었다.

황금 사신은 검은 사신의 손을 꼭 잡고, 검은 구체 밖으로 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검은 구체의 경계 앞에서 검은 사신은 걸음을 멈췄다.

도리도리.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검은 사신.

황금 사신은 나가지 않겠다는 검은 사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가기 싫다면 어쩔 수 없나?

그런 결론을 내린 황금 사신은 손을 크게 흔들었다.

다음에 또 올게!

그리고 황금 사신은 폴짝 뛰어서 경계를 뛰어넘었다.

어두운 공간에 혼자 남은 검은 사신은 희미하게 남아 있던 미소를 지우고 터덜터덜 어딘가로 걸어갔다.

재밌었다.

검은 사신은 생각했다.

재밌었다고.

그리고 커다란 엄마의 몸에 기대서 의지를 전달했다.

‘재밌었어요.’

하지만 그 의지는 전달되지 않고, 튕겨 나가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엄마도 일어나세요.’

자기도 살아났으니까, 분명 엄마도 깨어날 거라고 믿으면서.

황금 사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장작을 엄마에게 불어 넣으면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눈물을 또르르 흘리면서 계속.

장작을 너무 써서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때까지, 계속.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