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6
허접 병신이 내어 준 퀘스트를 본 순간 사람이 너무 열이 받으면 아무런 말도 떠올릴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뭐?
뭐어어어?
내가 인기 없는 이유?!
개새꺄!
씹새꺄!
그걸 몰라서 물어 봐?!
메스가키 스킬만 없었어도 난 평판을 회복할 수 있었어!
루시가 예전에 저질렀던 무수한 잘못들은 과거의 치기로 만들 수 있었다고!
내 조건을 생각해 봐! 아카데미에서 문과 무를 가리지 않고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할 수 있는 능력.
얼빠여우가 나를 스토킹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매력.
거기에 더해 대륙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백작 가문의 딸이라는 배경까지!
내 이름이 루시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카데미의 아이돌이 되어 있을 걸?!
사실 이름이 루시여도 메스가키 스킬만 아니었어도 세탁이 가능했을 거야!
지금 내 주변 지인들이 지닌 영향력이 영향력이니까!
솔라딘 왕국의 3왕자이자 아카데미 1학년 사이에서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는 아서가 날 지지해주고 있지?
거기에 더해서 여러 귀족 영애들의 구심점이 되는 조이랑 친구기도 하고.
아카데미 내 평민과 귀족 성직자를 가리지 않고 커다란 인기를 지닌 페이비와도 가까운 사이야.
이 사람들이 날 지지하는 상황에서 내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뉘앙스를 보이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냐고!
물론 여전히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른 영애가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할 걸?!
거기에 더해서 내 능력이 능력이니까 속으로 안 좋게 보더라도 친한 척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근데 이 모든 이점을 메스가키 스킬이라는 벽이 가로 막고 있다고!
허접 좆밥 병신 쓰레기 중에 한 가지를 넣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세탁이 불가능하단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 뭐?!
당신이 인기 없는 이유?!
이거 알면서 긁는 거지?!
쪼잔 악신이랑 자기랑 비교 하니까 꼴 받아서 나한테 뭐라 그런 거지?!
내가 인기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면 이 메스가키 스킬이나 없애 봐 이 허접새 꺄!
눈앞에 울고 있는 베인즈 영애와 그를 달래는 칼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씩씩거리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진정. 진정하자.
허접 병신이 퀘스트 이름으로 엿을 먹이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 벌써 흥분해서 어쩌잔 거야.
그리고 어쨌든 쟤가 가끔 내 기분을 땅바닥으로 쳐박아버리기는 해도 보상은 제대로 챙겨 주니까.
성질을 내더라도 퀘스트 내용을 읽어보고 나서 성을 내자.
그래. 그러는 게 맞아.
[당신이 왜 아카데미의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있을까요?]
첫 문장을 읽은 순간 눈에 힘이 들어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분노를 참아내고 그 아래를 읽었다.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으려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에게서 이유를 찾아봅시다!]
허나 그 다음 문장을 읽은 순간 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이빨로 까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거 긁는 거 맞네.
나한테 뭐라 그러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지 고민하라는 이야기잖아.
이 허접 꼰대 병신이!
나라고 허접 소리를 내고 싶어서 허접 소리를 내는 줄 알아?!
다 스킬 때문이잖아! 씹새꺄아아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 자기를 욕하는 건 그렇다 쳐도 쪼잔 악신이랑 비교하는 건 견딜 수 없다는 거지?!
오케이! 알겠어!
그게 네 발작 버튼이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걸 써먹어 줄게!
솔직히 말야. 네가 주신은 무슨 주신이냐?
소울 아카데미가 게임일 적에는 비중도 뭣도 없던 공기 주제에!
“아가씨?”
허접 주신을 어떻게 하면 꼴받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나는 칼의 목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렸다.
그는 걱정스러운 것처럼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네?’
“허접.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표정이 너무 안 좋으셔서.”
열 받은 게 겉으로 드러났던 건가?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가려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허접 주신을 향한 내 분노가 강렬했던 모양이다.
울다가 말고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베인즈 영애를 보고 있자니 머리에 오른 열이 식었다.
크흠. 울던 애가 눈치를 볼 정도면 내 표정이 살벌했나 보네.
칼에게 베인즈 영애를 데리고 돌아가라 이야기 한 후 홀로 남은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 아직 남은 퀘스트의 내용을 읽어 내렸다.
[우선은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게 된 이유를 알아봅시다!]
[루시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자!]
[보상 : ???]
[실패시 : 토 ㅋㅋ 끼 ㅋㅋ]
나를 긁기 위해 만들어진 퀘스트 치고 그 내용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과거의 업보에 대해 조사해보고 그 업보를 갚을 방법을 찾아보자 그거지?
확실히 이건 건설적인 조언이기는 하네. 거기에 더해서 제대로 된 보상까지 있으니 나쁘지 않아.
그런데 있잖아. 토끼는 뭐야? 저 사이에 ㅋㅋ거리는 건 또 뭐고.
설마해서 물어보는 건가 내가 생각하는 그 토끼는 아니지?
현장학습이 끝난 후로 내 인벤토리에 처박혀 다시 나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걸 의미하는 거 아니잖아.
왜 아니라고 말을 못해?!
빨리 아니라고 하란 말야!
네 사도가 바니걸을 입고 치욕스러워 하는 걸 즐기는 허접 변태 주신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라고!
그렇게 소리를 치긴 했지만 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허접 주신이라면 충분히 내가 바니걸을 입고 치욕에 몸부림치는 걸 보며 와캬파헉농쭉ㅋㅋㅋ을 외칠 녀석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실패시 패널티라는 건 분명 내가 다시 바니걸을 입는 것일테지.
근데 어떤 상황에서 바니걸을 입게 되는 거지?
집 구석에서 바니걸을 입은 채 얼빠 여우가 침을 흘리는 걸 구경하는 거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어.
그렇지만 겨우 그 정도로 허접 변태 페도 사디 주신이 만족할까?
경우에 따라선 바니걸 의상을 입은 채 아카데미에 등교를 해야 할 수도 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머리를 휘저어 최악의 상상을 지워버린 후 이 퀘스트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결심했다.
*
내 과거의 업보에 대해 조사해야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지닌 내가 가장 먼저 들린 장소는 알새틴의 주점이었다.
여러모로 생각을 해봐도 이 녀석만큼 날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말야.
칼을 비롯한 내 주변 애들은 내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베인즈 영애처럼 날 미워하는 애한테 질문을 던지면 온갖 감정이 담긴 욕설이 튀어나올 게 분명하잖아.
물론 알새틴이라 해서 완전히 중립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보를 파는 걸 업으로 하는 녀석이니 그나마 객관적인 의견을 내어줄 수 있겠지.
“영애님이 과거에 저지른 여러 일들에 대해서 조사해 달란 말씀입니까?”
그런 판단 하에 알새틴에게 물음을 던졌더니 알새틴이 눈에 띌 정도로 황당하단 기색을 보였다.
얘도 요즘에 나랑 가까워졌다 싶으니까 점점 더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한다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불만 있어?”
“아뇨. 그게 자신의 일은 원래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그치. 보통은 자기 일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게 맞아.
근데 나는 루시 본인이 아니라고.
메스가키 모드를 만들어낸 정체 모를 개자식 때문에 루시의 몸에 빙의한 불쌍한 인간일 뿐이란 말야!
그런데 어떻게 루시에 대해서 알겠어!
물론 이 모든 사정을 알새틴에게 늘어놔봐야 미친 년 취급을 당할 게 분명했기에 난 제대로 된 변명을 준비했다.
‘제가 왜 기억을 해야 하죠?’
“내가 왜 허접 좆밥 들러리들의 일을 기억해야해? 허접 쓰레기라 그에 걸맞는 취급을 해줬을 뿐인데?”
망나니 특. 자기가 저지른 일은 기억하지 않음. 그딴 거에 뇌용량을 낭비할 이유가 없으니까.
누군가 듣는다면 저 저 썅년 이라는 말을 내뱉을 이야길 당당하게 했더니 알새틴이 묘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요.”
납득해 줄 거라 기대하고 내뱉은 말이지만 너무도 간단하게 납득하는 알새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미묘했다.
쟤 입장에서 난 이런 말을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란 소리니까.
‘어쨌든 가능하죠?’
“평균 이하의 멍청이인 너라도 이 정돈 할 수 있지?”
“네. 라고 할까요. 사실 조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요.”
알새틴은 잠시 기다려달라 말을 하고는 방 바깥으로 나갔다가 몇 개의 서류를 들고서 돌아왔다.
“알른 영애께서 한 일에 대한 자료입니다. 읽다 보면 새록새록 기억이 나실 겁니다.”
이걸 왜 미리 조사해 뒀던 건지 무척 궁금하긴 하지만 덕분에 수고를 덜었으니까 이번만큼은 넘어가 줄게.
알새틴에게서 서류를 받아든 나는 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루시는 어떤 심각한 일을 저질러 놨으려나.
[국왕 모욕 사건]
첫 문장을 읽은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나는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알새틴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기요…’
“야. 정보팔이. 여기 적혀 있는 거 모두 다 사실이야?”
“제가 어찌 영애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치. 네 스승의 행방에 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 나인 이상 네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게 과거 루시가 저지른 일이라는 거지?
[베네딕 알른의 딸을 보기 위해 찾아온 국왕을 향해 돼지를 닮은 아저씨라 매도. 가축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단 이야기에 주변이 경악했으나 베네딕 알른이 수습하는 것으로 사건이 정리되었음. 공식적으로는 없는 사건 취급.]
오. 씨발. 허접 주신이시여.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체 어느 미친 년이 한 나라의 국왕 면전에다 대고 돼지라는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까!
심지어 이게 요약된 내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루시는 더한 짓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니까 사교계에서 왕따를 당하지 무친련아!
첫 사건을 읽는 것으로 마음이 꺾여버린 나였지만 그 아래에는 아직 수많은 사건들이 남아 있었다.
두렵다. 이걸 읽는 게 너무도 두려워.
그렇지만 이걸 다 읽지 않으면 퀘스트가 클리어 되지 않을 테고 난 바니걸을 입어야 하겠지.
어쩔 수 없어. 두려워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심호흡을 하고서 마음의 다짐을 끝마친 나는 그 아래에 적힌 여러 사건들을 눈에 담았다.
[주신 교회 석상 파손 사건]
[제르 공국 공자 모욕 사건]
[니그 경매장 난동 사건]
[아젤라 카지노 난동 사건]
…
수많은 사건들을 읽으며 확신했다.
루시는 미친년이 맞았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일단 시비를 걸고 보는 진정한 의미의 분노조절장애.
왜 내가 등장하자마자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바퀴벌레라도 본 것처럼 물러났는지 이해했어.
이런 미친년은 아예 눈도 안 마주치는 게 맞지.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이렇게 사고를 쳐놨으니 매력 수치가 아무리 높아봐야 의미가 없지.
이걸 수습하는 게 가능한가?
이 모든 걸 뒤엎고 평판을 회복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 스멀스멀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아래로 글자를 내리던 중 나는 또 다시 충격적인 사건을 발견했다.
[1왕자 모욕 사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1왕자에게 음침한 좆밥 외톨이 왕자라 매도. 그 어휘에 경악한 주변 이들이 루시 알른을 말렸으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음. 상황 자체는 베네딕 알른이 다급히 모습을 드러내 수습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음.]
하아니. 씨발.
이젠 하다하다 왕국 스토리 최종 보스한테도 업보를 쌓아 놓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