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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9

마치 구름이 내려왔다고 착각할 만큼 자욱한 안개 속.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는 그런 안개 속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다만 검은 요원이 생각했던 것만큼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대산에 들어선 뒤로는 서울보다 안전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위협적인 오브젝트는 눈에 띄지 않았고, 간간이 보이는 오브젝트라고 해봐야 안개 속을 유영하는 귀여운 구름 고기뿐이었다.

지금도 금발 소녀의 곁에는 구름 고기들이 소녀에게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아저씨. 구름 고기가 정말로 많아요.”

지금도 금발 소녀의 손바닥 위에는 구름 고기가 누워서 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구름 고기가 싫지 않은지, 구름 고기와 놀면서 소녀는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구름 고기가 이렇게 지상에 오래 붙어있는 오브젝트가 아니었을 텐데요.”

검은 요원은 그 외에도 조금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하는 산행인데도 별로 불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마치 구름 고기들이 대신 길 안내를 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곳은 안개가 너무 짙어서 지형지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나침반은 제대로 방향을 가리키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돌아다녔다.

이런 상황이니, 검은 요원은 길 찾기를 포기하고 지도와 나침반을 품속에 집어넣어 버린 지 오래였다.

등산로처럼 꾸며진 길이 있었지만, 정말로 올바른 길을 타고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구름 고기들과 함께 안개가 자욱한 숲을 돌아다닌 지 몇 시간, 튼튼한 돌을 쌓아서 만든 거대한 계단이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 끝까지 뻗어나가는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자, 점점 안개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요원이 볼 때 그 빛은 달빛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밝았기에, 걱정을 품고 고개를 돌려 금발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녀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양 빛이 아니에요.”

계단을 오를수록 안개가 점점 옅어져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극장의 커튼처럼 안개가 걷히며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용돌이치는 안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마을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란 탐정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베일 속에 감춰진 마을이었다.

하늘 위에는 커다랗게 떠 있는 달이 태양을 대신해서 마을에 주황색 빛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을 위 하늘에는 다양한 종류의 구름 고기들이 우아하게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반투명한 촉수를 늘어트린 구름 해파리, 장엄한 구름 고래, 그 외에도 수많은 이름 모를 물고기 형상의 구름 고기들이 마을 위를 날아다니며 이색적인 풍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하얀색 바닷속에 만들어진 인어들의 도시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이었다.

“와아! 정말 멋져요.”

금발 소녀가 신기함과 흥분으로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소녀의 붉은 눈동자는 주황색 달빛 속에서 반짝이며 호기심을 마구 뿜어내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검은 요원은 금발 소녀의 곁에 서서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신중했지만, 어조에는 감탄의 기운이 느껴졌다.

검은 요원은 들떠 보이는 소녀를 지키듯이 서 있었지만, 마을의 고요함과 상공에서 펼쳐지는 구름 고기의 아름다운 흐름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평온한 세희 연구소 안뜰.

그 안뜰에는 처음 보는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시멜로 벽돌로 만들어진 둥근 콜로세움.

한쪽 벽에 늘어선 관객석에는 수많은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들, 그리고 푸른 사신들까지 모여서 앉아 있었다.

관객석 중앙에는 영원히 불타는 설탕 플라밍고가 있었고, 그 모닥불 위에는 꼬치에 꽂힌 마시멜로가 잔뜩 구워지고 있었다.

뀨힝힝.

미니 사신의 한입 크기 정도로 작아진 하얀 아귀들이었다.

그리고 콜로세움 중앙에는 세기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승 상금은 회색 사신 푸딩 100개!

관객석 반대편에는 대용량 푸딩이 무려 100개나 산처럼 쌓여있는 상태였다.

“크아아앙!”

거대한 물 덩어리로 만들어진 회색 사신 골렘이 울부짖었다.

쿵쿵.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회색 사신 골렘의 반대편에는 거대한 검은 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사신들이 자기 몸을 블록 조각처럼 변형해서 뭉친 거대 검은 사신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엄마 골렘 펀치!>

<골렘 펀치!>

푸른 사신들의 문자열이 하늘을 수놓자, 골렘이 묵직한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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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 검은 사신이 휘청였다.

습기가 섞인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자, 황금 사신들은 하얀 아귀를 뜯어먹으면서 열광했다.

나는 관객석에 마련된 ‘엄마 자리’에 누워서 즐거움으로 가득 찬 투기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 일의 발단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뉴스만 보던 중에 우연히 흘러나온 권투 경기 영상을 황금 사신이 봐버린 것이다.

묘하게 인기를 끌던 황금 사신 간의 권투 시합이 규모를 키우더니, 모든 사신이 합심해서 이런 시합까지 열어버리게 되었다.

경기는 막바지로 보였다.

처음에는 물리 면역을 가진 거대 검은 사신이 유리해 보였지만 경기가 길어지자, 거대 검은 사신의 움직임이 점차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가드를 올린 채, 건실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골렘에게 펀치를 잔뜩 얻어맞고 스코어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검은 사신들의 움직임이 제각각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상냥한 엄마 골렘 어퍼컷!>

<골렘 어퍼컷!>

삐걱거리는 거대 검은 사신의 스트레이트를 몸을 숙여 피해낸 뒤, 쏘아지는 어퍼컷!

그것이 마무리 일격이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제각각 통솔되지 못한 움직임을 보이던 거대 검은 사신은 그 일격에 맞고 조립식 장난감이 분해되는 것처럼 산산이 분해되어서 널브러졌다.

심판을 맡은 황금 사신이 푸른 깃발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선언했다.

푸른 사신 측의 승리였다.

황금 사신들의 박수 소리와 폴짝폴짝 콩콩 뛰는 발걸음 소리가 콜로세움 내부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푸른 사신들은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푸딩의 산더미 속에 숨어서 트로피를 들었고, 패배한 검은 사신들은 재밌었다는 표정으로 히히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승자도 패자도 즐거운 건전한 놀이였다.

“안 돼! 내 점심값이!”

유일하게 슬퍼 보이는 것은 멀리서 콜로세움을 훔쳐보며 돈내기했던 세희 연구소 직원들이었다.

예린이는 내기나 승패에 관심이 전혀 없이, 그저 열심히 미니 사신들의 사진을 찍느라 바빠 보였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사신아, 이거 어때? 보기 드문 미소!”

예린이가 보여준 사진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고 있는 푸른 사신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확실히 보기 힘든 사진이었다.

***

방호복으로 전신을 꽁꽁 싸맨 남자는 미친 듯이 산길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진작에 안개 바깥으로 나왔어야 정상이지만, 아무리 뛰어도, 아무리 달려도 안개가 끝나지 않았다.

남자의 동료는 10명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금 곁에서 달리는 동료는 겨우 2명밖에 안 남아있었다.

“하아. 하아.”

필터가 달린 방호복 때문인지, 너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입을 막고 숨을 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방호복을 벗을 수는 없었다.

벗은 동료들은 그대로 머리를 쥐어뜯겨서 죽어버렸으니까.

오브젝트가 득실거리는 바깥에서 하는 임무치고는 안전한 임무라고 들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물론 헬기를 타고 작전지역에 도착해서 돌아다닐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평온하고 안전했다.

적대적인 오브젝트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거라고 무해한 오브젝트로 유명한 구름 고기들만 잔뜩.

하지만 ‘진화액’을 설치하는 순간, 평화로운 분위기는 사라져 버렸다.

포근하게 주변을 감싸 안던 안개는 이제 먹구름처럼 어두운 빛을 띤 채 천둥이 치는 흉흉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귀여워 보이는 구름 고기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피라냐처럼 변해버렸고, 평온함의 상징인 구름 고래 대신 사람을 씹어먹는 구름 상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안 돼, 그만둬!]

동료의 무전 소리가 헬멧 속에서 울렸다.

옆을 돌아보니 컥컥 소리를 내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던 동료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헬멧을 벗어버리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멈춰서 그 행동을 막으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말로만 하지 말라고 할 뿐, 살기 위해서 발을 열심히 놀렸다.

우드득.

얼마나 지났을까, 뒤쪽에서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헬멧을 벗은 동료의 몸에서 나는 소리겠지.

하지만, 이 미친 질주도 끝이 보였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하얀 빛이 안개를 뚫고 드리우기 시작했다.

[살았어!]

남자는 기쁨에 찬 무전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옆을 돌아보자, 동료의 헬멧 속에는 핏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붉게 물든 구름 피라냐들이 동료의 살점을 곤죽처럼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동료의 방호복에 작게 뚫린 구멍으로 다진 고기처럼 저며진 살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구름 고기의 움직임으로 관성적으로 뛰던 동료의 시체는 철푸덕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이를 악물고 안개 너머로 뛰쳐나갔다.

살았다!

그런 환희를 안고서 뛰쳐나온 곳은, 지옥이었다.

공터에 마련된 헬기는 엉망진창으로 으스러져 있었고, 그 밑에는 피투성이로 널브러진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위를 붉게 물든 구름 상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하, 왜 안개 밖으로 나가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크게 입을 벌리고 날아오는 상어의 입을 마지막으로 남자의 생각은 끊어졌다.

***

콜로세움 뒤풀이를 위해서 온갖 종류의 간식들이 세희 연구소의 안뜰로 배달되어 왔다.

푸딩은 물론 젤리나 쿠키, 마카롱 등의 달콤한 간식들이 잔뜩 깔렸다.

옴뇸뇸.

돗자리 위로 수많은 간식이 깔리자, 미니 사신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이 우글우글 모여들고, 사람들도 그걸 바라보면서 행복해하는 미니 사신 파티.

푸른 사신들은 도망갈 법한 분위기였지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파티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파티의 주인공인 ‘콜로세움 챔피언’이라는 점 때문에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스한 햇살과 맛있는 간식,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미니 사신들.

그야말로 세희 연구소에 어울리는 평온한 오후의 단면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오후의 모습은 예기치 못한 혼란으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곧 다가올 폭풍을 예고하는 듯한 거센 돌풍이 고요한 풍경을 휩쓸고 지나갔다.

찬란하게 빛나던 태양은 점점 더 짙어지는 불길한 구름의 베일에 가려져 주변을 으스스하게 뒤덮기 시작했다.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도는 구름 고기들이 일으킨 돌풍에 간식들이 이리저리 흩날리기 시작했다.

신나게 놀던 미니 사신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바람 속에 희미하게 섞인 석유 냄새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제3 연구소를 박살 내면서 더 이상 맡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악취의 재등장이었다.

검은 사신의 반응은 좀 더 격렬했는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마치 씹어먹을 것처럼 이빨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거대한 구름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구름 고래였다.

하얀 구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정말 거대한 구름 고래는 풍선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세희 연구소를 전부 집어삼키고도 한참이나 남을 만큼 거대한 구름 고래가 세희 연구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후웅.

구름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충돌음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구름이 바람을 밀어내는 소리와 그로 인한 약간의 땅울림이 구름 고래의 거대한 존재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의 전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구름 고래가 세희 연구소를 삼켜버린 것이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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